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과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는 문학적 전통과 스타일은 다르지만, 시간과 고독, 가족의 붕괴라는 보편적 주제를 탐구하는 공통점이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신화적 세계와 미국 남부의 현실적 배경이라는 서로 다른 문화적 토대 위에서 두 작품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다양한 시각에서 조망한다. 이 글에서는 시간, 가족, 공간이라는 세 가지 측면을 중심으로 두 작품의 문학적 깊이를 비교하며, 각 작품이 독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백년의 고독』은 시간의 순환성을 통해 부엔디아 가문의 역사를 신화적 서사로 그려낸다. 마르케스는 마콘도를 중심으로 시간이 직선적으로 흐르지 않고, 마치 강물이 굽이치듯 반복되고 되돌아오는 구조를 채택한다. 첫 번째 아우렐리아노와 마지막 아우렐리아노는 이름뿐만 아니라 성격과 운명에서 놀라운 유사성을 보이며, 이는 시간의 원형적 순환을 드러낸다. 이 시간의 순환은 부엔디아 가문이 고독이라는 숙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암시하며, 과거의 실수가 미래로 반복된다는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보여준다.
반대로, 『소리와 분노』는 시간을 파편화된 방식으로 다룬다. 포크너는 벤지, 퀸틴, 제이슨이라는 세 명의 화자를 통해 각기 다른 주관적 시간을 제시하며, 시간은 개인의 기억과 심리적 경험 속에서 왜곡된다. 벤지의 시점에서 시간은 무의식적으로 뒤섞이며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무너진다. 퀸틴의 시점에서는 시간은 절망과 집착의 대상이 되어, 그의 고통스러운 심리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시간은 이 작품에서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들의 심리를 해체하고 가족의 붕괴를 가속화하는 역할을 한다.
마르케스는 포크너의 실험적 시간 구조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신화적이고 순환적인 시간 서사를 구축했다. 포크너의 파편화된 시간은 개인적 기억과 내면적 혼란을 드러내는 반면, 마르케스는 시간을 가족과 공동체의 운명과 연결하여 더 광범위한 역사적 서사를 형성했다.
가족의 몰락은 두 작품의 핵심 주제다. 『백년의 고독』에서는 부엔디아 가문이 고독이라는 운명적 굴레에 갇혀 서서히 무너져 간다. 우르술라는 가족을 유지하려 애쓰지만, 각 구성원은 자신의 고독과 집착 속에서 길을 잃는다. 아우렐리아노의 전쟁과 레메디오스의 초월적 아름다움은 현실과의 단절을 상징하며, 마지막에 태어난 아우렐리아노는 마콘도의 소멸과 함께 가족의 끝을 맞는다. 마르케스는 가족의 붕괴를 통해 인간 존재의 필연적 고립과 운명적 한계를 탐구한다.
반면, 『소리와 분노』에서 컴슨 가문의 몰락은 가족 내부의 불화와 외부적 변화에서 비롯된다. 퀸틴은 가족의 명예를 지키려는 강박 속에서 스스로를 파괴하고, 제이슨은 탐욕과 냉소로 가족의 균열을 심화시킨다. 캐디의 추락은 남부 전통 사회의 몰락과 맞물려 가족의 몰락을 가속화한다. 포크너는 가족의 몰락을 통해 남부 사회의 변화와 그로 인한 인간적 고통을 탐구하며, 한 개인의 실패가 가족과 사회 전체의 붕괴를 어떻게 반영하는지를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마르케스는 포크너의 가족 서사에 감탄하며, 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백년의 고독』의 부엔디아 가문은 『소리와 분노』의 컴슨 가문처럼 몰락해가지만, 마르케스는 이를 역사와 신화의 순환 속에 배치해 가족의 몰락을 더욱 운명적이고 우주적인 관점에서 그려냈다.
『백년의 고독』의 마콘도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이 마을은 부엔디아 가문의 성쇠와 함께 생성되고 소멸하는, 라틴아메리카 문명의 축소판이다. 마콘도의 공간은 기억과 시간의 저장고로, 우르술라가 지은 집은 가족의 운명과 깊이 얽혀 있다. 마르케스는 마콘도를 통해 인간이 만들어내는 문명과 그 문명이 필연적으로 겪는 붕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소리와 분노』의 컴슨 저택은 남부 귀족 가문의 몰락을 상징한다. 황폐해져 가는 저택은 가족 구성원들의 삶과 함께 점점 쇠락하며, 남부 전통 사회가 상징적 공간으로서의 힘을 잃어가는 과정을 반영한다. 포크너는 공간의 변화를 통해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몰락을 대비하며, 인간의 행동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마르케스는 포크너의 요크나파토파 카운티에서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신화적 공간인 마콘도를 창조했다고 한다. 두 공간 모두 단순한 배경을 넘어, 시간과 기억, 운명을 담아내는 상징적 장소로 기능하며, 인간 존재의 복잡성을 탐구하는 장으로 활용된다.
이 두 작품은 독자에게 단순한 문학적 즐거움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무엇을 잃고 얻는지, 그리고 고독 속에서 인간의 가치는 무엇인지 묻는다. 그들의 문학적 시선은 우리가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방식을 풍부하게 만든다. 이러한 비교는 두 작품의 문학적 유사성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인간 존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이 두 작품이 좋았다면, 아래의 책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추천한다.
『Home』(Toni Morrison)
토니 모리슨은 『Home』에서 고향을 잃은 인물들의 상처와 치유를 탐구한다. 시간과 기억은 단순히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지배하는 심리적 힘으로 작용한다. 『소리와 분노』처럼 모리슨의 작품도 시간을 개인의 내적 여정을 담아내는 중요한 도구로 활용하며, 고통 속에서도 생존과 회복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페드로 파라모』(후안 룰포)
룰포는 『페드로 파라모』에서 순환적 시간과 신화적 공간을 통해 인간의 상실과 기억을 그려낸다. 『백년의 고독』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의 상처와 역사를 품은 상징적 세계다.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깊은 서사적 무게와 초현실적 분위기로 독자를 매혹한다.
한국 착품으로는
1970년대 한국 산업화의 어두운 면을 다룬 이 작품은 빈부 격차와 억압 속에서 가족의 몰락을 탐구한다. 『소리와 분노』가 남부 사회의 붕괴를 가족 서사를 통해 드러냈다면, 이 작품은 한국적 맥락에서의 사회적 불평등과 인간의 고통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짧지만 강렬한 서사는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김약국의 딸들』 - 박경리
박경리의 이 작품은 한 가족의 비극을 통해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전통적 가치관을 비판한다. 『백년의 고독』과 유사하게, 가족의 몰락을 통해 인간 존재의 고립과 한계를 보여준다. 깊은 통찰력으로 가족 관계와 시대 변화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채식주의자』 - 한강
한강은 이 작품에서 사회적 억압과 개인의 내적 갈등을 통해 인간 본성과 고독을 탐구한다. 채식주의자가 된 한 여성이 가족과의 갈등 속에서 소외와 정체성을 경험하는 과정을 여러 화자의 시점으로 풀어내며, 『소리와 분노』의 파편화된 서사와 유사한 문학적 실험을 선보인다.
이 책들은 각각 『백년의 고독』과 『소리와 분노』에서 다루어진 시간, 고독, 가족, 그리고 사회적 맥락 속에서의 인간 존재를 다양한 시각에서 탐구하며, 독자들에게 또 다른 문학적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