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만의 책장 - 여성의 삶을 바꾼 책 50
데버라 펠더 지음, 박희원 옮김 / 신사책방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자만의 책장』을 펼치면서 처음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왜 우리는 여전히 이런 책이 필요한가?” 데버라 펠더는 여성 문학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여성의 삶을 바꾼 50권의 책을 정리했지만, 역설적으로 이 목록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책들이 아직 그 자리에서 인정받지 못했는지를 상기시킨다. 여자만의 책장이라는 제목은 단순히 물리적인 책장이 아니라, 여성 작가들의 목소리를 모아 그 공간을 다시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여자만의 책장』이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이었다. 울프가 여성 작가에게 필요한 조건으로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이야기했다면, 데버라 펠더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여성만의 책장"을 제안한다. 여기서 "책장"은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여성의 문학적 유산과 목소리를 보존하고, 나아가 이를 공유하고 확장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원제 "A Bookshelf of Our Own"은 "우리만의 책장"을 통해 여성 문학의 연대를 암시하며,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느낌을 준다. 이 책장은 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공동체적이다. 각 여성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공간이자, 이를 다른 여성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연대의 장소인 것이다.


이러한 제목의 뉘앙스는 한국어 번역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여자만의 책장』이라는 제목은 여성 독자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고, 그것을 보관하며,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초대장처럼 느껴진다. 울프가 제안한 "방"이 창작의 독립성을 의미했다면, 펠더의 "책장"은 목소리의 축적과 공유를 뜻한다.


우리는 왜 여전히 "여자만의"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할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여성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은 오랫동안 문학사의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만의 책장』에 등장하는 수많은 작품들은 당대에 혁명적이었다. 예를 들어,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서 울프는 여성 작가에게 필요한 조건으로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이야기한다. 여성에게는 경제적 안정과 창작의 독립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울프의 이 단순하고도 명확한 요청은 지금까지도 완전히 실현되지 못한 요구처럼 느껴진다. 여성 작가들은 여전히 공간과 목소리를 얻기 위해 싸우고 있다.


이 책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여성 작가를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전히 왜 "여자만의 책장"이 필요하며, 여성의 문학적 목소리가 여전히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지를 묻기 때문이다. 문학사 속에서 여성 작가들은 종종 익명으로 작품을 발표하거나, 남성 필명을 사용해야 했고, 심지어 그들의 목소리가 사회적 위협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제인에어』의 샬럿 브론테는 "커러 벨"이라는 가명을 사용해야 했고, 그녀의 자매 에밀리와 앤 역시 필명을 사용했다. 이러한 역사는 문학이라는 공간마저도 여성에게 얼마나 닫혀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은 과연 얼마나 달라졌는가? 오늘날 여성 작가들은 여전히 출판계에서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다.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남성 작가들의 작품보다 문학적으로 덜 평가받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은 여러 연구를 통해 제기되어 왔다. 


예를 들어, 미국의 여성 소설가 아만다 필리파치(Amanda Filipacchi)는 2013년 뉴욕 타임스 기고문에서 위키백과가 여성 소설가들을 '미국 여성 소설가'라는 별도의 분류로 나누는 방식을 고발했다. 그녀는 이러한 분류가 여성 작가들을 문학의 중심에서 주변부로 밀어내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이는 여성 작가들이 남성 작가들보다 문학적으로 덜 진지하게 평가받는 문화적 태도의 일환이라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출처: 뉴욕 타임스, 2013)


또한, 페미니스트 문학 비평 연구에 따르면, 여성 작가의 작품은 종종 남성 작가의 작품에 비해 "개인적"이고 "감정적"이라는 편견 속에서 평가 절하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남성 중심적 문학 평가 체계가 여성 작가들의 작품 가치를 축소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출처: Feminist Literary Criticism)


이와 같은 연구들은 여성 작가들이 여전히 문학 평가와 시장에서 구조적 불평등에 직면해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이러한 경향은 주로 미국과 서구권의 문학 시장을 기반으로 한 결과들이라는 점에서, 다른 문화권, 특히 한국 문학계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나타나는지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여자만의 책장』은 단지 과거의 역사를 조명하는 책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열려야 할 문과 공간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내 책장은 어떤가? 『여자만의 책장』을 읽고 나서야 나는 내 책장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 안에는 남성 작가의 이름이 훨씬 많았고, 여성 작가들의 작품은 몇몇 특별한 예외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이것은 나의 독서 습관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아마도 내가 접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여성 작가의 작품을 주류로 제시하지 않았던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결국, 여자만의 책장이 필요한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는 여성의 목소리가 가득한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여성의 이야기를 기념하는 차원이 아니라, 문학의 균형을 회복하고 목소리의 다양성을 확장하기 위한 작업이다.


『여자만의 책장』은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아 놓은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 책장이 완결된 작업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 목록에 포함된 많은 작가들이 한국 독자들에게는 낯설다. 이는 한국 문학 시장이 여전히 여성 작가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조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더 많은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가 번역되고 출판될 때, 한국 독자들은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고 자신의 책장을 더욱 풍성하게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여자만의 책장』이 시리즈로 이어진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현대 여성 작가들만을 다룬 후속작이 나온다면, 더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여자만의 책장』은 단순히 과거를 정리한 책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를 위한 청사진이다. 더 많은 여성 작가들이 그들만의 방과 책장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이 책장을 만들어가야 한다. 책장은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목소리를 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남성 작가의 작품이 포함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나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뿐만 아니라,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 글자』나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역시 당대 여성의 억압과 고통을 다룬 작품들로, 여성 문제를 문학적 주제로 삼아 큰 영향을 미친 사례로 평가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만의 책장』이라는 제목이 주는 상징성과 메시지를 고려할 때, 모든 책이 여성 작가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다면 보다 명확하고 일관된 주제 의식을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