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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며 살아왔는지 깨닫는다. 그것은 단순한 후회로 끝나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아니, 어쩌면 나는 그것을 헤아릴 용기를 미뤄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놓친 것들은 정말로 사라지는 걸까? 아니면 우리가 너무 앞만 보고 달려가기 때문에 뒤에 남겨진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질 때마다 나는 마치 나를 따라오려 애쓰는 기억들로부터 한 발짝 더 도망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대학 신입생이던 나는 친구들과 나이트클럽에 단 한 번 간 적이 있다. 춤추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위축되었다. 내가 춤을 추면 모두가 웃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구석에 앉아 그들의 에너지 넘치는 움직임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가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 춤을 놓쳤고, 더구나 함께 어우러질 기회도 놓쳤다. 그리고 그 뒤로 나는 수많은 것을 놓쳐왔다. 도전할 기회, 새로운 시도, 그리고 나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들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늦은 나이에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공부도 하고, 여행도 가고, 골프도 배우며 삶의 다채로운 경험을 쌓는다. 그러나 나는 '놓쳤던 것들'과 '아직도 놓치고 있는 것들'을 떠올리며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글쓰기가 내게 남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글은 내가 놓쳤던 순간들을 다시 찾아가는 길이 되어 준다. 춤추지 못했던 나의 열아홉 살을 글 속에서 춤추게 만들 수 있고, 지금의 나를 스스로 용서하며 새로운 경험으로 이끌 수 있다.


레베카 솔닛 (Rebecca Solnit)은 『길 잃기 안내서 - 더 멀리 나아가려는 당신을 위한 지도들』에서 말했다. "길을 잃는 것은 익숙함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나는 익숙한 길 위에 머물며 너무 많은 것을 놓쳤다. 시작하지 않은 대화나 떠나지 못했던 여행들. 그때의 나는 길을 잃는 대신 익숙한 자리에서 멈추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야 깨닫는다. 길을 잃는다는 것이 단순히 뒤쳐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발견의 출발점이었다는 것을. 내가 놓친 순간들은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 멀리 나아가도록 만들어준 나침반 같은 것이었다.







마리나 반 주일렌 (Marina van Zuylen)은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 - 완벽하지 않아 완전한 삶에 대하여』에서 말했다.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 우리의 서사를 형성한다"고. 내가 놓쳤던 많은 것들은 내게서 흘러간 사소한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들은 여전히 나의 일부로 남아 있다. 그것들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내가 발견해야 할 가능성의 문이었다. 떠나지 못했던 여행지는 내 안에서 여전히 풍경으로 존재하고, 춤을 추지 않았던 열아홉 살의 나는 내 글 속에서 다시 춤을 춘다.







실비아 플라스 (Sylvia Plath)는 그녀의 일기에서 일상 속 작은 감정들과 순간들이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한다고 믿었다. 그녀는 일기 속에 놓쳤던 대화와 감정, 그리고 지나가버린 순간들을 기록하며 자신을 새롭게 정의하려 했다. 그녀의 일기 중 한 부분에서, 그녀는 “나는 매일 내 삶의 작은 조각들을 기록한다. 그것들이 나를 잊지 않게 한다”라고 적었다. 나 역시 내가 놓쳤던 것들을 글로 남기며, 그것들이 단순한 후회로만 남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들은 나를 이루는 조각들이었고, 나는 그 조각들을 통해 나의 전체를 이해하고자 한다.







앙겔라 메르켈 (Angela Merkel)은 『자유』에서 "자유는 단순히 선택의 가능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책임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다. 내가 놓쳤던 수많은 것들은 단순히 선택되지 않은 가능성의 흔적이 아니다. 그것들은 내가 책임져야 할 나 자신의 과거다. 메르켈이 말했듯, 자유의 본질은 후회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힘에 있다. 나는 내가 놓친 것들을 회피하거나 잊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들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그것들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글을 쓰는 것은 잃어버린 순간들을 찾아 나서는 것과 비슷하다. 지나간 시간들의 공백을 들여다보며, 그 안에 남겨진 흔적을 발견하려 애쓴다. 떠나지 못했던 길을 상상 속에서 걸어보고, 하지 못했던 말들을 글로 다시 떠올린다. 그래서 글쓰기는 내가 놓쳤던 것들과 조용히 연결되는 과정이다.


어쩌면 놓쳤던 것들은 내 삶의 어딘가에 남아, 내가 발견하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글은 내가 잃어버린 것들과 다시 만나는 방식이며, 동시에 새로운 길을 여는 용기다. 나는 글을 쓰며 그 공백을 메우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공백에 담긴 이야기를 읽어내려 노력한다. 그러한 노력은 잃어버렸던 시간들을 다시 불러오고, 내가 잊고 있던 흔적들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래서 나는 막연히 계속 읽으면서 쓰기로 했다. 글을 쓰는 동안, 놓쳤던 것들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느끼며 놓친 것들과 다시 연결될 수 있기를 조용히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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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4 07: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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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4 13: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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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고독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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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고독』은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세계에 알린 기념비적인 작품이지만, 동시에 현대 독자에게는 다소 어렵고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작품이다. 마르케스는 마콘도라는 허구의 마을을 통해 고향 아라카타카의 기억을 되살리고, 부엔디아 가문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시간, 고독의 본질을 탐구했다. 그의 문장은 한편의 음악처럼 리드미컬하며,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장르 속에서 현실과 신화를 유기적으로 엮어낸다. 그러나 이 책을 처음 읽을 때 느꼈던 경탄은 시간이 지나며 복잡한 감정으로 변했다. 『백년의 고독』이 주는 무게감은 감탄과 피로감을 동시에 안겨주기 때문이다.


마르케스는 인터뷰에서 “나는 내 고향의 이야기꾼들로부터 모든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의 할머니가 들려준 기묘하고 신화적인 이야기들은 마콘도의 탄생에 중요한 영감을 주었다. 이 책에서 마콘도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과 고독, 인간의 역사를 상징하는 살아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마르케스가 마콘도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가 오늘날 독자들에게 여전히 강렬하게 다가올까? 『백년의 고독』이 한때 혁명적이고 신선한 문학적 실험으로 평가받았다면, 지금은 고전으로서의 무게에 눌려 "문학사적 의무감"으로 읽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부엔디아 가문의 이야기는 끝없는 반복과 순환 속에서 고독의 본질을 탐구한다. 첫 번째 아우렐리아노와 마지막 아우렐리아노의 이야기가 거울처럼 닮아 있는 것처럼, 가족의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러나 이 순환은 비극적이다. 우르술라는 가족을 하나로 묶으려 노력하지만, 그녀의 노력은 고독의 무게에 짓눌려 헛되이 끝난다. 아우렐리아노는 전쟁과 사랑 속에서 스스로를 소진하며, 레메디오스는 초월적 아름다움 속에서 현실과 단절된다. 이들 각자의 고독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가족과 문명이 공유하는 고독이다.


그러나 다시 읽을수록 느끼는 것은 이 책의 과잉된 상징성과 무게감이다. 돼지꼬리를 가진 아이, 끝없이 내리는 비, 초현실적 아름다움을 가진 레메디오스 등 마르케스의 상상력은 때로 독자를 압도하고 이야기의 경이로움을 더하지만, "왜 이렇게까지 많은 걸 담으려 했을까?"라는 의문을 자아내기도 한다. 마르케스는 라틴아메리카라는 대륙의 모든 무게를 마콘도와 부엔디아 가문에 담으려 했고, 그 야망은 대단했지만 때로 독자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가진 힘은 여전히 강렬하다. 마르케스의 문장은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다. 마르케스의 문장은 이야기를 넘어, 독자를 마콘도의 세계로 깊숙이 이끈다. 부엔디아 가문의 이야기는 단순한 가족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보편적 운명을 탐구한다. 마콘도의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하나의 원처럼 연결되고, 고독은 그 중심에 자리 잡는다. 고독은 우리를 분리시키지만, 동시에 우리를 연결하는 힘이기도 하다.


마르케스는 『백년의 고독』으로 세계 문학사의 한 장을 썼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 책이 고전으로 남는 이유는 단지 작품의 완성도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라틴아메리카 문학이 세계 문학의 중심에 설 수 있음을 증명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르케스라는 이름 자체가 만들어낸 상징적 무게 역시 이 책을 고전으로 남게 한다. 그러나 미래의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또 다른 질문이다. 언젠가 『백년의 고독』이 현대 독자들에게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고독이라는 주제의 보편성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우리가 고독을 바라보는 방식이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백년의 고독』은 마콘도라는 세계를 함께 살아가게 하는 경험이다. 책장을 덮는 순간, 독자는 부엔디아 가문의 역사를 떠나지만, 그들이 남긴 고독과 시간의 흔적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새로운 질문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느낀다. 마콘도는 정말 사라졌을까? 아니면 그것은 우리가 다시 발견하기를 기다리는 또 다른 세계로 남아 있을까? 첫 장에서 예고된 마콘도의 몰락은 마지막 장에서 완성되지만, 그 순간 독자는 책의 첫 장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진다. 마르케스는 이 순환 구조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시간과 고독을 새롭게 체험하게 한다. 이는 단순히 이야기를 따라가는 독서가 아니라, 독자 스스로가 부엔디아 가문의 고독과 반복 속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문학적 장치다. 그렇기 때문에『백년의 고독』은 이렇게 단순히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마콘도의 시간이 원형으로 흐르듯, 이 책은 끝없이 반복적으로 읽히는 순환 속에 존재하니까. 그리하여, 이야기는 닫히지만, 그 고독과 기억은 독자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며 새로운 해석을 기다린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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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묵은 먼 산의 기억에서 블레이크를 "글과 그림을 동시에 생각한 가장 위대한 거장"(P. 130)으로 언급하며, 자신 또한 그처럼 글과 그림이 공존하는 세계를 평생 탐구하고 싶다고 고백한다. 이 두 예술가의 만남은 단순한 존경의 차원을 넘어 창작의 본질에 대한 대화를 여는 열쇠다.


윌리엄 블레이크와 오르한 파묵. 두 이름을 나란히 두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긴장이 흐른다. 한 명은 18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로, 초월적 비전과 신화적 상징을 창조한 예술가다. 다른 한 명은 21세기 터키를 대표하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로, 주로 글쓰기를 통해 서사를 엮어온 현대의 예술가다. 그는 지난 14년 동안 몰스킨 노트에 일상의 생각과 관찰, 그리고 그림을 기록해 왔다. 먼 산의 기억은 이 수천 페이지의 노트를 한 권으로 집약하여 독자들에게 처음으로 공개한 작품으로, 기억과 일상이 글과 그림으로 엮인 그의 창작 세계를 가장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에 속했지만, 글과 그림을 통합하려는 열망으로 연결된다.


블레이크는 "시와 그림은 하나의 언어"라는 신념 아래 자신의 판화 작업에 글을 새기고, 시를 삽화와 함께 출판했다. 그의 순수와 경험의 노래(Songs of Innocence and Experience)는 순수와 경험, 천국과 지옥, 빛과 어둠이라는 상반된 주제를 문학적, 시각적으로 교차시킨 대표작이다. 이 작품들은 초월적 상징과 강렬한 비전을 통해 독자에게 단순한 해석을 넘어서는 다층적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The Tyger는 경험과 두려움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담아낸 블레이크의 대표작이다. 호랑이의 "불타는 듯한 빛 (burning bright)"은 단순한 동물이 아닌 초월적 존재로 형상화되며, 창조의 신비와 두려움, 그리고 그 창조주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Did he who made the Lamb make thee?"라는 구절은 순수와 경험, 인간 존재와 신의 본질에 대한 블레이크의 탐구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붉은색, 주황색, 검은색으로 묘사된 호랑이는 경험이 가져오는 고통과 성숙의 과정을 시각적으로 상징한다.


블레이크의 시 The Tyger는 문학적 경계를 넘어 현대 음악과 예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마이크 배트(Mike Batt)가 작곡한 곡 Tiger in the Night는 블레이크의 시적 이미지를 음악적으로 재해석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 곡은 사랑과 열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블레이크의 "burning bright"라는 이미지를 차용하며, 불타는 호랑이의 강렬한 에너지를 새로운 예술적 방식으로 구현했다. Tiger in the Night는 블레이크의 상징이 단지 문학의 세계에 머물지 않고, 현대 음악에서도 창작의 영감으로 작용했음을 보여주는 예다. 이는 블레이크의 시가 가진 초월적 힘과 보편성을 증명하며, 그의 작품이 시대를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Mike Batt & The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 Vocal by Colin Blunstone ~ Tiger In The Night


반면, 파묵의 먼 산의 기억은 훨씬 개인적이고 서정적이다. 그는 자신의 일기를 통해 기억과 감정을 그림과 텍스트로 엮어내며, 과거의 자신과 대화한다. 그의 그림은 도시의 풍경, 창문 너머의 자연,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로 채워져 있다. 창문 밖으로 펼쳐진 푸른 풍경과 테이블 위에 놓인 일상의 흔적은 정적인 아름다움과 평화로운 사색을 담고 있다. 이는 블레이크의 The Tyger의 강렬한 상징성과 강렬히 대비된다. 블레이크가 두려움과 경외를 불러일으키는 호랑이를 그려냈다면, 파묵은 따뜻한 색감과 고요한 풍경으로 독자를 위로한다.


파묵이 블레이크를 떠올리며 남긴 고백, "나는 그처럼 평생 글과 그림을 같은 페이지에서 생각하고 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P. 130)는 단순한 동경을 넘어 두 예술가의 접점을 드러낸다. 블레이크가 신화와 상징의 언어로 영원의 경계를 탐구했다면, 파묵은 기억과 일상의 언어로 시간을 초월하는 세상을 구축했다. 한 명은 영국의 산업혁명 속에서 신성한 비전을 노래했고, 다른 한 명은 현대 터키의 역사와 개인적 사색 속에서 인간의 흔적을 그려냈다. 두 거장의 작업은 글과 그림이 서로를 해석하고 확장할 때 얼마나 풍부한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의 작품은 각자의 시대와 맥락을 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깊은 영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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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산의 기억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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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의 『먼 산의 기억을 펼치며 처음 느낀 것은, 이 책이 그의 삶 자체라는 점이었다. 글과 그림, 두 갈래의 길로 나뉘었던 그의 예술적 여정이 하나로 합쳐진 흔적이 페이지마다 숨 쉬고 있었다. 소설가 파묵과 화가 파묵이 서로를 발견하고, 이해하고, 마침내 화해하는 과정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내가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글쓰기다. 이와 같은 열정으로 그림을 그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면 다른 사람이 되었으리란 걸 이제 깨달았다. P. 32


50년 전, 소설가 파묵은 화가 파묵을 묻어버렸다. 물감과 붓을 내던지고, 그림을 조롱하며, 자신은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의 내면 어딘가에는 항상 화가의 유령이 존재했다. 어느 날, 다시 물감을 손에 쥔 그는, 마치 오랫동안 잊혔던 자아와 조우하듯이 노트 위에 붓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 『먼 산의 기억이다. 



오르한 파묵의 이 시각적 노트는 그의 글과 그림이 하나로 엮여 탄생한 예술적 기록이다. 도시의 구조와 부드러운 색감, 아치와 기둥 사이로 보이는 풍경은 따뜻하면서도 고독한 그의 시선을 담고 있으며, 노트에 적힌 문구들은 그림과 유기적으로 결합해 그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작동하는 상상력과 사색을 드러낸다. "Nights of Plague"라는 제목은 그의 창작 세계의 시간성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확장하며, 기억과 상상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그의 예술적 비전을 완성한다. 이 작품은 단순히 풍경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 그 풍경을 둘러싼 시간과 감정, 그리고 그의 꿈과 사랑을 담아낸 하나의 작은 우주처럼 보인다.


파묵의 손길은 자유롭고 충동적이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낙서를 하듯 노트의 줄을 벗어나기도 하고, 작은 글씨와 큰 글씨가 뒤섞였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경이로웠다. 작은 산과 들, 인형 같은 집과 사라지는 거리,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새의 눈. 그의 그림은 단순히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을 담은 일종의 "감정 지도"처럼 느껴졌다.


이 페이지는 오르한 파묵의 일상과 내면을 담아낸 시각적 기록으로, 그의 섬세한 관찰력과 기억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터키의 풍경을 담은 수채화와 그 주변을 채운 글씨들은 마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대화처럼 느껴진다. 그림 속 풍경은 단순히 도시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그가 바라본 삶의 아름다움과 고독, 그리고 이를 초월하려는 그의 욕망을 담아낸 것처럼 보인다. 파묵은 풍경을 통해 자신을 잊고, 또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며, 이 순간을 영원히 붙들어두려는 듯한 시도로 이 페이지를 완성했다. 글과 그림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며 파묵의 내면세계를 한층 더 풍부하게 드러낸다. 이 노트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그가 세상과 맺고 있는 관계를 시각적으로 그리고 서사적으로 표현한 예술적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매일 그리고 있는 일기장의 작은 그림들을 떠올렸다. 펜으로 스케치한 나무들, 물감으로 물들인 간단한 풍경들. 그러나 파묵의 그림은 나의 단순한 습관적 그림과는 달랐다. 그의 그림에는 깊은 사색이 녹아 있었다. 그 사색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글을 쓰는 태도,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 끈질긴 의지로부터 나왔다. 


작가와 화가가 서로를 발견하고, 서로를 받아들이고, 마침내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여정. 파묵은 그림을 통해 글을 풍요롭게 했고, 글을 통해 그림을 살찌웠다. 두 예술적 자아가 공존하며 만들어낸 이 책은, 단순히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예술과 삶이 결합된 하나의 우주였다.



이 페이지는 오르한 파묵의 노트 중에서도 특히 따뜻하고 일상적인 순간을 담아낸 작품처럼 느껴진다. 고아(Goa)에 있는 집의 풍경을 그린 이 그림은, 단순한 건물 묘사가 아니라 그곳에서 흘러갔을 소소한 시간들과 그의 기억을 오롯이 담아낸 시각적 기록이다. 집의 구조와 주변의 나무들, 계단 아래 보이는 강아지 두 마리, 그리고 곳곳에 배치된 텍스트들은 그 공간에서 느꼈던 평온함과 향수를 생생히 전달한다. 특히 강아지가 그의 일상 속에서 그려진 것으로 보아, 이는 그가 단순히 풍경이나 건물을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곳에서의 생명력과 교감을 소중히 여겼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강아지가 포함된 그림이 주는 따뜻한 인상은, 그곳의 평화로운 분위기와 함께 이 작품을 더욱 생생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각각의 문구는 단순한 메모를 넘어, 그가 경험한 시간의 조각들을 한데 엮어내는 역할을 하며, 그림과 글은 상호 보완적으로 그의 내면세계를 풍성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단순히 고아에서의 시간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가 느꼈던 삶의 아름다움과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예술적으로 승화한 하나의 작은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상상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이 문장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소설가 파묵일까, 화가 파묵일까? 아니면 그 둘이 경계를 허물고 완전히 화해한 어느 순간, 삶의 본질을 붙들고자 했던 그 시간의 기록일까? 답을 알 수는 없지만, 이 작은 기록들은 결국 그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조각들이 아니었을까. 


파묵은 말했다. “인생은 일련의 그림으로 구성된다. 사람은 그림 뒤에 오는 그림을 궁금해한다. 그다음 그림이 궁금하기 때문에 죽고 싶지 않다.” 그의 말처럼,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펼쳐지는 한 장의 그림에서 다음 그림으로 이어지는 여정이다. 그리고 그 여정은 단순히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보고 싶어 하는 우리의 열망 때문일 것이다. 그림은 인생의 여정을 닮았다. 각 그림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차곡차곡 쌓이며, 삶의 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림이 끝나는 순간, 우리의 여정도 끝난다. 파묵이 “그림이 끝나면 어둠이 시작된다”고 말했듯, 그 어둠은 그림 없는 삶, 즉 존재 없는 상태를 암시한다. 그렇기에 그림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자체가 우리의 삶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림이 계속되고, 그 그림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곧 삶을 향한 애착과 같다.


결국, 『먼 산의 기억에서 소설가와 화가로서의 자아를 모두 발견하고, 서로를 받아들이며, 마침내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 모든 여정을 그림과 글로 기록하며, 다음 그림을 그리기 위해 다시 붓을 들었다. 그의 노트는 단순히 한 사람의 기억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다음 그림은 어떤 모습일까? 그것은 끝없는 궁금증이자, 삶을 앞으로 이끄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 그림이 끝나지 않기를, 삶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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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의 노래 - 2023 부커상 수상작
폴 린치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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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아일리시 스택이라는 한 여성의 눈을 통해 펼쳐진다. 남편이 사라지고, 아이들의 안전이 위협받으며, 세상은 더 이상 익숙한 모습이 아니다. 그러나 아일리시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아침밥을 차려주고, 냉장고를 채우기 위해 장을 보고, 방을 정리한다. 그녀의 삶은 점점 부서져 가지만, 그녀는 무너질 듯한 현실 속에서 일상의 작은 질서를 붙들려 애쓴다. 이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그녀가 삶을 지탱하기 위해 붙든 마지막 버팀목이다.


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된 순간은, 아일리시가 부엌에서 접시를 닦는 장면이었다. 폭격 소리가 창문을 흔드는 와중에도, 그녀는 싱크대를 붙잡고 균형을 유지하며 깨끗한 접시를 정리한다. 얼핏 무의미하게 보일 수도 있는 그 행동 속에서 나는 삶을 버티려는 인간의 끈질긴 의지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작은 것이라도 붙들어야만 하는 절박함을 보았다.


이 장면은 나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뉴스에서 매일 접하는 비극적인 사건들, 전쟁과 억압 속에서 무너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숫자와 영상으로만 지나칠 때가 많다. 그러나 『예언자의 노래』는 이 익명의 얼굴들 뒤에 숨겨진 인간의 고통과 그들이 붙들고 있는 작은 희망들을 조명한다. 뉴스 화면 속 익명성이 덧씌워진 얼굴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린치의 이야기는 거대한 사회적 혼란의 전조를 넘어, 이미 일어난 개인의 종말에 초점을 맞춘다.


작중에서 예언자가 노래하는 것은 세상의 종말 그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일어난 일들, 앞으로 일어날 일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일어났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일들의 연속이다. 린치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는가?" 『예언자의 노래』는 거창한 정치적 메시지를 외치지 않는다. 대신, 전 세계 어디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작은 종말들이 한 개인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보여준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가족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들을 보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때로는 스스로를 희생하고,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을 마주하는 것이다. 아일리시는 가족을 위해 끝까지 싸운다. 그러나 그녀의 선택은 종종 비극적인 결과를 낳는다. 『예언자의 노래』는 사랑이란 항상 희망을 담고 있지만, 그 희망이 대가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묵직하게 전한다.


그러나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히 비극에 머무르지 않는다. 아일리시가 부엌에서 접시를 닦는 모습은 전쟁, 가난, 혹은 일상의 무게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려는 수많은 여성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폭력과 억압 속에서도, 그들은 삶의 조각들을 이어붙이며 버텨나간다. 이 책은 조용히 묻는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책을 덮으며, 나는 아일리시의 이야기가 단지 그녀만의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다를지라도, 모두가 저마다의 자리에서 각자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세상이 흔들릴 때, 부엌을 정리하거나, 아이들을 챙기거나, 빨래를 개거나,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는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삶의 근간인지도 모른다.


『예언자의 노래』는 거창한 결단이나 영웅적인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흔들림 없이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임을 일깨운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중요한 것은 늘 거대하거나 눈에 띄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간과했던 평범함 속에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다시금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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