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Richter - On the Nature of Daylight
병원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의사는 간결하고 명확하게 말했다. “골다공증입니다. T-점수가 -2.99로 나왔어요.” 순간, 마치 깊은 바닷속으로 끌려들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내 몸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던가. “약물 치료와 생활 습관 개선이 필요합니다.” 의사의 말은 귓가에 맴돌았지만,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2.99. 그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 몸, 내 삶, 내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막막함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착잡한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칼슘, 비타민 D, 골다공증 약, 운동..." 의사가 말한 생활 습관 개선 목록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막상 실천하려니 막막했다. 칼슘이 풍부한 음식을 챙겨 먹는 것도,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약까지 먹어야 한다니... 일상생활에 큰 변화가 불가피했다.
의문은 점차 내 사고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병원에서의 진단과 숫자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들은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 이때 문득 떠오른 것이 미셸 푸코였다. 그의 ‘규율 권력’에 관한 이야기는 병원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했다. 푸코는 권력이 단순히 억압하는 힘이 아니라, 개인을 특정한 방식으로 형성하고 규율하는 메커니즘이라고 주장했다. 병원은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곳이 아니라, 의료 지식과 기술을 통해 사람들을 특정 방식으로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힘의 장(場)이라는 것이다. 진단, 검사, 치료, 그리고 생활 습관 개선에 이르기까지, 병원의 모든 과정은 개인의 몸과 행동을 규율하고 통제하는 섬세한 권력 작용의 그물망을 형성한다.
병원의 진단은 내 몸을 숫자로 번역했다. 뼈의 밀도를 수치로 보고, 그 숫자가 나를 규정하기 시작했다. -2.99. 단순한 숫자 하나가 내 몸의 상태를, 아니 어쩌면 내 존재 자체를 정의하는 듯했다. 나는 건강한가? 나는 평균에 도달해 있는가? 끊임없이 다른 숫자들과 비교되고 평가되었다. 푸코는 말했다. “권력은 억압하지 않고, 행동을 유도하며, 스스로를 규율하게 만든다.” 그의 말처럼, 병원은 내게 직접적인 강제를 가하지 않았다. 의사의 말과 진단서는 내게 더 나은 선택을 하라고 조언했지만, 동시에 내 몸에 대한 새로운 기준과 불안을 심어주었다. 건강에 대한 불안감, '정상'에서 벗어났다는 초조함, 그리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압박감. 나는 더 이상 내 몸을 이전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내 몸은 의료 권력에 의해 끊임없이 감시되고 규율되는 대상이 되었다.
골다공증이라는 진단을 받은 10월 내내 나는 우울감 속에 갇혀 있었다. 마치 몸속에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듯, 언제 부러질지 모르는 뼈에 대한 불안감이 나를 짓눌렀다. 이 숫자와 진단이 나를 옭아매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나는 이제 '-2.99'라는 숫자로 규정되는 존재인가?" "내 삶은 이제 골다공증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것인가?" 하지만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걷기 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처음엔 의사의 권고대로 걷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걸으며 느낀 것은 내 몸과의 새로운 대화였다. 발이 땅에 닿는 감각,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 햇살의 따스함, 그리고 내 몸에서 울려 퍼지는 숨소리와 심장 박동. 이 단순한 움직임 속에서, 나는 의사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리듬을 찾아가고 있었다. 걷는 것은 단순한 치료 행위를 넘어,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었다.
걷는 동안, 나는 또 다른 질문과 마주했다. 이 숫자들은 내 몸을 규정할 수 있지만, 나의 존재까지 정의할 수 있을까? 나는 단지 '-2.99'라는 숫자, 골다공증 환자일 뿐인가? 나는 내 몸의 상태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 나의 삶을 구성하고 싶었다. 숫자에 매몰되지 않고, 나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골다공증이라는 진단은 내게 새로운 약속처럼 느껴졌다. '나약해진 몸'이라는 현실에 좌절하는 대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계기처럼. 내 몸을 새롭게 이해하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고민할 기회였다. 이제부터라도 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 몸과 진정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2.99라는 숫자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 몸의 '현재'를 가장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며, 동시에 나를 불안과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낙인과도 같다. 그러나 나는 이 숫자를 단순히 약점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나는 '-2.99'라는 숫자에 갇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매일 걷는 발걸음과 함께 나의 몸과 삶의 경계를 다시 정의하고 있다. 매 걸음마다 나는 내 몸의 한계를 넘어서고,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나아간다. 이 숫자가 내게 던진 질문은 어쩌면 내 남은 삶을 탐구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 될 것이다.
길 위에서 나는 여전히 묻는다. "나의 몸은 어디까지 나의 것인가?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바람을 가르며 걷는 동안에도, 그 질문은 끊임없이 나를 따라온다. 마치 내게 달라붙은 꼬리처럼. 그리고 나는 매일 그 답을 찾아간다. 걸음걸음마다 내 몸의 감각에 집중하며, 몸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내 몸의 이야기와 함께, 그 질문을 더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두 권의 책을 집어 들었다. 마치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의 지도처럼.
『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다니엘 페나크는 몸이라는 존재를 단순히 생물학적 구조가 아니라, 우리의 기억과 감정, 삶의 궤적을 담아내는 매개체로 바라본다. 이 책은 몸을 중심으로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몸과 마음이 서로 연결되어 변화하고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탐구한다. 골다공증이라는 진단 이후, 내 몸과 새롭게 마주하며 느꼈던 생각들, 내 몸은 내 것이면서도 외부의 힘과 시간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깨달음, 이 이 책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페나크는 독자에게 몸의 이야기와 삶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내는 기쁨과 슬픔을 전하며, 나로 하여금 내 몸에 대해 보다 부드럽고 열린 시선으로 대하게 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골다공증 진단 후, 내 삶은 단순히 건강을 관리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어떻게 나다운 삶을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되었다.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나에게 이러한 고민을 철저히 되돌아보게 한 책이었다. 가완디는 현대 의학이 생명 연장에는 탁월하지만,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질문에는 여전히 답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특히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우리는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존엄하게 살다 존엄하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이는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을 때 내가 처음 느꼈던 당혹감과도 연결된다. 단순히 '수치'로 규정된 나의 몸을 넘어서, '내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나만의 선택과 주체적인 삶의 태도에서 시작될 것이다. 이처럼, 가완디의 책이 제안하는 의료적·철학적 관점은 골다공증이라는 나의 현재 경험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내 몸의 변화를 수용하며, 어떻게 나다운 삶을 지속할 것인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