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문득,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이 낯설었다. 주름진 얼굴과 조금씩 느려지는 몸짓은 내가 살아온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이렇게 늙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 인생은 이제 무의미해진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은 조용히 나를 잠식하며, 온몸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불안하게 잠이 들어서 그런가 계속 잠을 설쳤다. 문득 차학경이 떠올랐다. 나는 그녀의 『딕테』를 펼쳤다. 책장 위로 뿜어져 나오는 그녀의 언어는 여전히 생생했다. 그 안에는 그녀가 겪은 역사, 그녀가 싸워온 사회적 구조, 그녀가 느꼈을 개인적 상처들이 뒤엉켜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모든 고통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여성의 목소리가 있었다.그녀의 강렬한 글과 삶의 단편들이 내 기억 저편에서 살아 움직였다. 차학경, 나보다 훨씬 짧은 삶을 살다 간 그녀. 하지만 그녀의 이름은 지금도 이 책을 펼치는 이들에게 하나의 불꽃처럼 빛나고 있다. 그녀는 무엇을 남겼기에 이렇게 선명한 흔적을 남길 수 있었을까?
차학경의 글을 읽으며, 나는 리디아 유크나비치의 The Chronology of Water가 떠올랐다. 두 작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냈지만, 작품 속에는 공통적으로 상실과 고통을 마주하는 용기가 담겨 있었다. 리디아는 자신의 고통을 물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풀어낸다. 그녀는 물이 가진 유동성과 침투성을 언어에 녹여내며, 상실과 재생을 끊임없이 순환하는 흐름으로 표현한다. 반면, 차학경의 언어는 단단하다. 그녀는 조각난 언어와 파편화된 서사를 통해 고통을 직면하고, 해체하며, 마침내 그것을 새롭게 구성한다. 리디아는 자신의 가족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회고하며, 고통을 이야기로 다시 짜 맞춘다. 그녀의 언어는 때로는 부드럽고 유려하게, 때로는 거칠고 날카롭게 움직인다. 반대로, 차학경은 그녀의 『딕테』에서 언어 자체를 하나의 실험으로 다룬다. 그녀는 단순히 상실을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언어와 형식의 해체를 통해 억압적 구조를 붕괴시키고, 그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한다. 두 작품 모두 고통을 이야기 속에서 흘려보내는 과정이자,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을 다시 쓰는 여정을 보여준다. 나는 두 작가의 언어와 방식을 통해 나 자신을 새롭게 바라볼 용기를 얻는다.
첫눈이 내린 날, 크리스마스 다음 날로 수술 일정이 잡혔다. 골다공증을 일으킨 부갑상선 제거 수술이다. 진료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겨울 풍경은 평화로웠다. 세상은 하얗게 변하며 새로운 계절을 알리는 듯했지만, 내 마음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수술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한 내 마음처럼 답답했다. 모두가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연말을 맞이하는 흥분 속에 있을 때, 나는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워 있을 것이다. 그 생각만으로도 눈앞이 아득해지고 두렵다. 수술 날짜가 다가올수록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간다. 올해가 가기 전에 누군가 내 몸을 열어 고치려고 한다니,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수술이 잘 될까? 혹시 더 나빠지지는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며 밤잠을 설치게 했다. 수술은 단순히 몸을 고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부서진 몸과 마음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스스로를 다시 발견해 나가는 여정일 것이다. 물론 수술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니, 사실은 무엇보다도 두렵다. 의사는 수술 중 작은 실수로 목소리가 변하거나, 내가 알던 나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그런 가능성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조여 온다. 의사는 나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수술이라는 단어에는 언제나 어떤 예측할 수 없는 무게가 따라다니는 듯하다.
그러나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단순히 이번 수술의 결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면서 언젠가 내 몸이 나를 배신하고, 그로 인해 내 의지와는 달리 다른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 그것이야말로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가장 두려운 그림자로 자리 잡고 있다. 만약 내가 점점 더 약해져 결국 나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짐이 된다면, 그때의 나는 어떤 마음일까? 이 두려움은 내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만든다. 그러나 차학경의 글과 리디아 유크나비치의 물은 나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도, 그것이 나를 가로막도록 두지 않는 것. 두려움을 흘려보내고, 그것을 넘어서는 법을 배우는 것.
차학경은 그녀의 언어를 통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두려움을 느끼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대신 그것을 마주하고, 다시 쓰고, 마침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요." 차학경의 글을 읽으며, 문득 내가 겪고 있는 이 모든 과정 또한 나만의 '딕테'를 쓰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언어는 내게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었다. 이 수술은 나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것은 내 몸과 마음의 균형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이며, 내 안의 목소리를 더 깊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상처가 치유되는 동안, 나는 그 고요 속에서 내 안의 연약함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것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두려움 속에서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마치 물이 흘러가며 길을 찾아내듯, 나 또한 나만의 길을 계속 찾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