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의 역사 - 침묵과 고립에 맞서 빼앗긴 몸을 되찾는 투쟁의 연대기
킴 닐슨 지음, 김승섭 옮김 / 동아시아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애의 역사Neil MarcusDisabled Country라는 시를 인용하면서 펼쳐진다. 우리말로 옮기면 장애라는 나라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다.

 

In my life's journey

I am making myself

At home in my country.

 

내 인생의 여정에서

나는 내 집으로 삼으려 하고 있어

내 나라를.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했을 때는 장애라는 나라가 단순히 장애인의 정체성을 소재로 삼은 시인가보다 싶었는데, 책을 덮을 때가 되어서야 그것은 나의, 우리의, 당신의 집이다.”라는 저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장애의 역사는 북아메리카 대륙에 선주민(*인디언)이 주로 살던 때부터 20세기 말까지의 역사를 장애(disability)에 초점을 두어 서술한다. 기존의 정치·사회·문화적 서술과는 달라서 미국의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도 집중하며 읽을 수 있다.

 

북미 선주민(토착민)들에게는 유럽인들이 세운 장애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다. 자연에서 살아가며 신체적 손상을 입은 사람들은 빈번하게 존재했지만 그들 모두가 손가락질 당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예컨대 나바호족 토착민은 신체적, 인지적 결함을 가지고 있더라도 공동체의 호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면 낙인 없이 잘 살 수 있었다. 태생적 장애의 원인에 대해서는 부모가 금기를 위반하면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금기로 여겨지는 행동이나 장소를 매번 피할 수는 없기 때문에 항상 낙인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런데 유럽인들이 북미로 이주하고 식민지를 건설하면서부터 장애와 관련한 사회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유럽인들은 전염병과 멸시를 가져왔고,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끌고 왔으며,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나라를 세웠다. (청교도적 가치관과 민주주의 위에 미합중국을 세웠다고는 하나, 적어도 내가 보기엔 자본주의가 더 세다.) 돈에 따라 계급을 나누고 인종과 젠더에 따라 위계를 공고히 했다. 그 과정에서 장애는 노동능력의 부재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미국 초기에 참정권을 가진 시민과 참정권을 가질 자격이 없는존재를 나누면서 빈자, 유색인종, 여성은 민주주의에서 배제되었다. 정치에 참여하기엔 부족한, 달리 말하자면 장애를 가진 것으로 취급된 것이다.

 

103

노예제의 근간을 이루는 인종차별 이념에 따르면, 북아메리카로 온 아프리카인은 그 자체로 장애인이었다. 노예 소유자들과 노예제 옹호자들은 노예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아프리카인들이 정신적·신체적으로 열등하게 태어났고 그들의 몸이 비정상적이고 혐오스럽다고 가정했다.

 

페미니즘과 관련해서 여성 참정권 문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고통당한 노예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내 주변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없어서 피부로 와닿지 않았는데, 이 책을 통해 차별의 근원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나는 장애가 없고 너는 장애가 있으니까 나는 너보다 우월하다- 라는 논지의 비장애중심주의는 미국사회의 전면에 스며들어서 교묘하게 차별을 더욱 조장했다. 그 편견 어린 시선을 타파하려는 노력은 많은 발전을 일구어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책에서 기독교가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 기독교 정신 위에 세워진 나라가 저토록 장애인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것에 대해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오늘날에도 종교라는 미명 하에 포용이 아니라 배제를 정당화하는 미국을 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구어주의자들 때문에 수어를 금지당하고 오히려 더 낙인 찍인 농인들의 사례와 「Oralist(구어주의자)」라는 시를 읽으며 그 기분을 직접적으로 느꼈다.


190쪽 (시의 일부만 발췌, Google Scholar에 검색하면 원문을 볼 수 있다)

구어주의자여, 너의 고개를 돌려라, 당신 같은 이들의 죄를 위해 죽어간 가엾은 예수를 알고 있는가

Oralist, O oralist, turn your head aside, Know you not the pitying Christ for sins like yours has died?


장애의 역사를 읽으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낀 점은 장애 개념이 시대의 이념에 따라 변화한다라는 것이었다. 과거에는 당연시했던 수용소와 단종수술 등이 폭력임을 깨닫고 장애인을 연민과 혐오로만 대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라는 나라우리 모두의 집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분명 우리나라도 미국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이식 받으면서 장애에 대한 편견도 함께 수입했을 것이다. 내 나라를 장애라는 렌즈로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아직은 나도 비장애중심주의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공동체를 위해 계속해서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의 여정에서
나는 내 집으로 삼으려 하고 있어
내 나라를. - P3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배리어 열도의 기원 - 김가경 소설집
김가경 지음 / 강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음은 <배리어 열도의 기원> 중 3부 연작소설 <다소 기이한 입장의 C>, <미에 가깝고 솔에 다가가는 파>, <야자수 나라>를 읽은 소감이다.

"고갱의 그림 속에서 막 걸어 나온 타히티 여자처럼" 보이는, 유난히 튀는 옷차림새로 다니며, 사시가 있어서 타인과 시선이 잘 맞지 않는 여자가 있다. 창작촌의 작가들은 웃음을 자주 흘리고 계속해서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여자를 경계한다. 아이처럼 행동하는 여자는 단단히 사회화된 사람들 사이에서 도드라져 보인다.

여자의 이름은 '정숙', 자기 올케 '미란'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고 다닌다. 정숙은 미란의 하나뿐인 선생님을 언급하며 자신에게도 선생님이 있다고 주장한다. 시인 '그'와 'C'의 작업실에 방문한 날, 정숙의 상상 속 선생은 곧 C로 대체된다. C가 정숙의 세계를 인정해주었기 때문이다.

🔖51-52쪽
"이 세상은 공처럼 둥글고 보이지 않는 막대기에 꽂혀서 돌아간대요. 이 세상은 거북이 등을 타고, 떨어지는 별을 피해다닌대요. 파란색은 바다, 빨간색은 시암, 초록색은 버마."
(...)
"아름다운 이야기군요."
(...)
"저도 거북이 등을 타고 다니다 돌아오는 길입니다."

🔖56쪽
"천사가 다녀간 거 같지 않아?"
그는 열린 미닫이문 밖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녀의 방문에 대해 정리가 될 만한, 더할 나위 없이 근사한 마무리 문장이었다.

'그'는 정숙의 방문을 불편하게 여기면서도 '천사'라는 단어를 수식한다. C는 정숙의 말에 공감해주지만 '그'의 평가에는 동조하지 않는다. 위선과 솔직함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장면이다. 이후 '그'가 매끄럽게 재단된 시집을 출간한다는 점에서 위선을 버리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정숙의 이야기는 <미에 가깝고 솔에 다가가는 파>에서 이어진다. '그'와 C가 떠난 자리에 '수경'이 새로 입주하지만 정숙은 자신의 선생님을 찾아 계속해서 창작동에 찾아온다. 수경은 앞선 단편에서의 '그'와 C의 중간에 가까운 인물이다. 적극적으로 호응하지는 않지만 정숙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정숙은 그런 수경에게 역시 선생님 호칭을 붙이며 뱃고동 소리와 잡채라는 단어로 수식한다.

한편 창작촌 작가들은 정숙의 방문을 불편해 한다. 쫓아내고 쫓아내도 정숙이 계속해서 C 선생을 찾으러 오자 작가들은 수경에게 책임을 묻는다. 그들의 불쾌감을 이기지 못한 수경은 결국 재입주 심사에서 탈락하고 이사하는데 그 동네에 미란이 살고 있었다.

<야자수 나라>에서 사라진 정숙을 찾으러 다니는 미란은 무례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정숙과 마찬가지로 꾸밈이 없다. 수경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예술가로서의 진정성을 고민한다. 과거 명왕성을 떠올리며 공연했을 때와, 겉보기에 멋지기만 한 현재의 공연 사이에서 '내 안에서 나오는 소리'에 집중한다.

🔖70쪽
'너무 작고 왜소해서 주변의 천체를 위성으로 만들거나 밀어내는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인간이 자의적으로 영구 제명시킴. 그래도 명왕성은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다.'
(...)
조명도 비추지 않는 어두운 무대 귀퉁이에 앉아 내는 소리였지만 명왕성은 그 소리를 들을 것만 같았다.

🔖107쪽
나는 행렬을 따라가려다 걸음을 멈추었다.
(...)
이상한 것은 내 안에서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는 거였다.
(...)
그가 올라오라고 손짓을 했지만 올라갈 수가 없었다.

명왕성은 겉보기에 투박하고 어둠 속에 가려진 인물을 상징한다. 수경이 끊임없이 '내 안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귀기울이는 것은 명왕성의 처지에 공감하기 위해서라고 여겨진다. 정숙과 미란의 말을 흘려듣지 않는 수경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다.

수경이 정숙에게 C선생을 찾아주지 못하고, 미란에게 정숙을 찾아주지 못하고, 여전히 그들 밖의 세상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진정성을 고민하는 예술가로서의 삶, 명왕성과 태양계 행성들의 중간자적 삶의 의미를 독자에게 일깨워준다. 연작소설은 여기에서 끝나지만 좀 더 곱씹어봐야겠다. 내 안의 값싼 연민이나 혐오의 감정을 비워내는 촉매제가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 개의 파랑 -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천 개의 파랑을 달리 말하자면 파랑으로 세상을 느끼는 콜리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인간 대신 휴머노이드가 기수로 뛰면서, 한국은 2035년까지도 경마가 성행한다. ‘C-27’은 경마를 위해 만들어진 단순한 휴머노이드지만, 우연한 실수로 인지학습기능을 탑재하게 된 별종이다. C-27투데이라는 말을 만나 함께 달리는 훈련을 받는다. 이 로봇은 하늘 바라보기를 좋아하며 후에 콜리라고 불리게 된다. 콜리는 인간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말을 타고 달리는 경기를 열게 됐나요?

인간이 재미있는데 왜 말이 달리나요?

말이 재미있어 하는 걸 어떻게 알죠?

 

관리자 민주는 투데이가 달릴 때 즐거워한다고 콜리에게 알려주었다. 콜리는 그 말을 듣고 투데이에게서 전해지는 생()의 진동을 감지하고는, 메모리에 기쁨이라고 저장해두었다. 그러나 경마에서 잘 이긴다는 이유로 투데이가 혹사당하게 되자 기쁨의 떨림이 사라진다. 콜리는 투데이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처럼 여겼고, 투데이가 아프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콜리는 어느 여름날, 투데이를 위해 스스로 낙마했다.

 

산산이 부서진 콜리는 연재를 만나 망가진 몸을 수리 받고 인생(?) 2막을 맞이한다. ‘인간처럼학습하고 행복을 느끼는 (그렇다고 주장하는) 로봇 콜리와, 감정표현을 자제하고 살갑지 못한 로봇 같은인간 연재는 특별하다. 소설이 깊이 진행될수록 콜리는 점점 인간처럼 말하고 인간처럼 취급받고, 연재는 지수, 연재, 보경, 그리고 전에 일했던 편의점의 점장까지, 그들과의 관계를 점차 배워나간다.

 

(콜리)

저에게 투데이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투데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거예요. 행복만이 유일하게 과거를 이길 수 있어요. (231, 233)

행복만이 그리움을 이길 수 있다고 했잖아요. 아주 느리게 하루의 행복을 쌓아가다 보면 현재의 시간이, 언젠가 멈춘 시간을 아주 천천히 흐르게 할 거예요. (286)

살아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에요. 살아 있다는 건 호흡을 한다는 건데, 호흡은 진동으로 느낄 수 있어요. 그 진동이 큰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에요. (302)

 

연재, 은혜, 보경 일가족의 오래 침체된 갈등은 콜리와 투데이를 통해 회복된다. 휠체어를 탄 언니를 돕기 위해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연재, 한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원하지만 장애를 연민하는 사람들 때문에 남몰래 분노하는 은혜, 영화배우로서의 꿈을 포기하고 가족을 위해 식당을 차린 보경. 셋 중 누구도 악인이 아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받고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투데이를 살리자는 콜리의 말은 모두에게 변화를 야기했다.

 

로봇이 인간관계의 엉킨 매듭을 푸는 열쇠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천 개의 파랑은 다분히 SF적이면서도 지극히 문학적이다. 콜리가 인간들 사이에 마치 섬유유연제처럼 섞여 들어갈 수 있었던 건, 민주와 연재가 그를 인간처럼 취급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서로의 행복을 바란다는 점에서 콜리는 과연 인격체로 존중받을만했다. 결말에 이르러서는 콜리가 부서지는 장면이 사람의 죽음처럼 비극적이고 장엄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천 개의 파랑을 통해 모처럼 인간, 동물, 로봇의 존재를 동시에 고민할 수 있었다. 콜리가 하늘과 사람들을 파랑으로 느끼듯이, 나에게 파랑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았다. 파랑은 곧 사랑이다. 연재가 은혜를 생각하며 구상한 로봇에서 나는 파랑을 보았다. 사람들을 움직이는 요소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파랑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 문지아이들 163
김려령 지음, 최민호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은 주인공 장우와 현성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의 제목이다. 태평한 제목과는 달리 장우와 현성이 처한 상황은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에게는 꽤 충격적인 것이다.

'나'로 대변되는 현성은 지난 겨울 비닐하우스 꽃집으로 이사를 왔다. 삼촌(아빠의 동생)이 현성의 부모님을 속여서 전세금을 들고 튀었기 때문에 가세는 한순간에 기울어버린다. 시청에서는 현성의 가족이 불법으로 꽃집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어서 나가지 않으면 수도와 전기를 끊겠다고 통보한다. 설상가상으로 부모님이 싸운 뒤에 아빠가 집을 나가고 형편은 더 어려워진다.

장우는 부모님이 이혼한 후 각각 재혼한 상태에서 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 새엄마는 원래 다른집에 살고 있었지만 갑자기 장우의 집에 들어와서 새로 태어날 아기 때문에 방을 정리한다. 장우는 함부로 자신의 물건을 버리는 새엄마가 불편하다. 그래서 학교와 학원을 마친 뒤에도 곧바로 귀가하지 않는다. 장우는 현성에 비해 물질적으로 나은 상황이긴 하지만 두 아이가 느끼는 불안감은 어느 것이 더 중하다고 비교할 수 없다.

안정적인 가족이 붕괴하면 아이들을 지켜줄 울타리가 사라진다. 불안하고 속상한 상황에서 장우와 현성은 서로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친해진다. 둘은 현성의 집 옆에 늘어서 있는 꽃집들 뒤 고물더미에서 빨간 플라스틱 의자, 스티로폼 방석, 고무 화분, 판자 따위를 주워와서 아지트를 꾸민다. 그리고 외부세계와 잠시라도 단절되어 비밀스럽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호해주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은 놀면서 영상을 찍고 한참을 웃을 줄 안다. 자못 대견하다.

현성은 이후 <아무 것도 안 하는 녀석들> 영상의 조회수가 1000회를 넘긴 걸 보고 놀란다. 댓글들을 보면서 웃기도 한다. 계속해서 불안한 사건과 분위기가 조성되지만 생활통지표에 적힌대로 '늘 긍정적인 마음으로 어려운 난관을 잘 극복해 나가는 아이'라는 모습을 잃지 않길 바랄 뿐이다.

현성과 엄마는 마침내 꽃집을 떠나 어느 주택가 근처 지하로 이사를 가게 된다. 가제본(~89쪽)은 현성이 아빠에게 문자를 보내는 것으로 끝난다. 삼촌을 찾기 위해 집을 나갔던 아빠는 그동안 엄마와 연락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현성은 아빠가 밉지만 한편으로는 보고싶어서 "내일 아침에 얼른 와. 기회야."라고 문자를 보낸다. 나머지 부분(~152쪽)은 정식 출간된 책에 실려있는데 아빠가 돌아오고, 영상과 관련된 이야기도 어떻게 풀릴지 궁금해졌다.

+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에는 우리나라 특유의 풍경이 곳곳에 담겨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손선풍기를 쓰고, 학원을 몇 군데씩 다니며 밤늦게 귀가한다. 현성과 엄마가 게르마늄 불가마가 있는 찜질방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도 한다. 중간중간에 이런 감초같은 장면들이 있어서 소설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하늘 빨간지구 - 기후변화와 인류세, 지구시스템에 관한 통합적 논의
조천호 지음 / 동아시아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첫인상이 상징적이다. 커버는 미세먼지 때문에 뿌옇게 가로막힌 도심을 연상케 하고, 커버를 벗어낸 표지는 모-던한 청록색과 다홍색으로 구성되어있다. 『파란하늘 빨간지구』라는 제목에 직관적으로 걸맞게 환경문제라는 화두를 던지는 셈이다.


『파란하늘 빨간지구』는 현재 우리가 발 딛고 서있는 지구가 얼마나 고약한 상태인지, 그리고 오염원 배출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지를 차근차근 알려준다. 구체적인 데이터와 이해를 돕는 비유도 많이 사용된다. 특히 5~6장은 기후변화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정부와 사회의 역할을 역설한다. 지구과학 지식보다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이 부분으로 건너뛰어 와도 괜찮을 듯하다. 다음은 내가 『파란하늘 빨간지구』에서 가장 신선하고 중요하다고 느낀 글 세 편이다.


1. 「민주주의가 지구 위기를 예방한다」

(p139) 「북한은 왜 지구 위기의 카나리아인가?」 …이 논문에서는 1990년대 북한에서 일어난 기아 사태를 다루었다. 앞으로 지구 위기도 북한과 같은 방식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북한을 카나리아에 비유하다니, 생경한 표현에 흥미가 돋았다. 이 파트의 결론은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전망이다.


(p144) 20세기 말에 기아를 겪은 북한과 아프리카 수단은 모두 독재국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선거도 없고, 야당도 없고, 검열받지 않은 공개적 비판도 없다면, 권력을 쥔 자들은 기근을 막지 못한 실패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민주주의는 이와 달리 …예상되는 기근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민주주의는 사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다.


다소 비약적이지만 일리가 있다.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는 당과 시민단체가 존재하고 앞다투어 아이디어를 내놓는 정치인과 시민이 있는 나라는, 독재국가보다 빠르게 재난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아주 넉넉지 못한 국가는 아니라는 전제에서 도출된 생각이지만…) 기후변화와 정치, 사회, 경제 부문을 결부짓는 저자의 글솜씨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이렇게 기후변화와 재해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나라가 되려면 근시안적인 성과에 집착하는 현재의 관료주의에서 탈피하고 과학자들이 연구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 「무임승차국이 강제승차국보다 돈을 더 내는 게 정의다」

(p201) 자연재해는 우리 세계의 예외적 상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 잠복해 있던 실존적 차원으로 드러난다. 즉, 재해는 우리 세계의 불평등을 보여준다.


3. 「지구 공학이 기후변화를 막아낼 수 있을까」

(p233-234) 대부분의 지구공학은 …본질적으로 자연을 기계로 바라보는 근대적인 대응방법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기계처럼 문제가 된 부분만 수리하면 정상적인 작용을 다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는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된 거대한 자기 조절 시스템이므로 …지구시스템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구공학을 통한 섣부른 인간의 기후 조작이 더 큰 재앙을 몰고 올 수도 있다.


사실 환경문제는 너무 익숙한 이야기라 초반에는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했다. 초중고 공교육을 거치며 지구온난화와 환경보호에 대해서는 다큐도 시청하고 글짓기 대회라거나 포스터 그리기 같은 구색 맞추기식 행사에 질려버린 탓도 있다. 그러나 익숙하다고 해서 환경문제가 인류 존속 자체와 직결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적으로도 기후변화는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요소로 작용한 바 있다. 이처럼 변화하는 기후에서도 계속 살아가려면 지구시스템과 인간 공동체에 대한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자연을 기계나 화수분으로 대상화하는 근대적 인식에서 벗어나고, 환경문제를 모두가 참여하는 75억의 팀프로젝트 과제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파란하늘 빨간지구』를 통해 이런 사유를 경험하길 바란다. 새삼스럽지만, 우리에게 지구는 하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