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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하늘 빨간지구 - 기후변화와 인류세, 지구시스템에 관한 통합적 논의
조천호 지음 / 동아시아 / 2019년 3월
평점 :

첫인상이 상징적이다. 커버는 미세먼지 때문에 뿌옇게 가로막힌 도심을 연상케 하고, 커버를 벗어낸 표지는 모-던한 청록색과 다홍색으로 구성되어있다. 『파란하늘 빨간지구』라는 제목에 직관적으로 걸맞게 환경문제라는 화두를 던지는 셈이다.
『파란하늘 빨간지구』는 현재 우리가 발 딛고 서있는 지구가 얼마나 고약한 상태인지, 그리고 오염원 배출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지를 차근차근 알려준다. 구체적인 데이터와 이해를 돕는 비유도 많이 사용된다. 특히 5~6장은 기후변화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정부와 사회의 역할을 역설한다. 지구과학 지식보다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이 부분으로 건너뛰어 와도 괜찮을 듯하다. 다음은 내가 『파란하늘 빨간지구』에서 가장 신선하고 중요하다고 느낀 글 세 편이다.
1. 「민주주의가 지구 위기를 예방한다」
(p139) 「북한은 왜 지구 위기의 카나리아인가?」 …이 논문에서는 1990년대 북한에서 일어난 기아 사태를 다루었다. 앞으로 지구 위기도 북한과 같은 방식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북한을 카나리아에 비유하다니, 생경한 표현에 흥미가 돋았다. 이 파트의 결론은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전망이다.
(p144) 20세기 말에 기아를 겪은 북한과 아프리카 수단은 모두 독재국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선거도 없고, 야당도 없고, 검열받지 않은 공개적 비판도 없다면, 권력을 쥔 자들은 기근을 막지 못한 실패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민주주의는 이와 달리 …예상되는 기근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민주주의는 사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다.
다소 비약적이지만 일리가 있다.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는 당과 시민단체가 존재하고 앞다투어 아이디어를 내놓는 정치인과 시민이 있는 나라는, 독재국가보다 빠르게 재난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아주 넉넉지 못한 국가는 아니라는 전제에서 도출된 생각이지만…) 기후변화와 정치, 사회, 경제 부문을 결부짓는 저자의 글솜씨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이렇게 기후변화와 재해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나라가 되려면 근시안적인 성과에 집착하는 현재의 관료주의에서 탈피하고 과학자들이 연구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 「무임승차국이 강제승차국보다 돈을 더 내는 게 정의다」
(p201) 자연재해는 우리 세계의 예외적 상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 잠복해 있던 실존적 차원으로 드러난다. 즉, 재해는 우리 세계의 불평등을 보여준다.
3. 「지구 공학이 기후변화를 막아낼 수 있을까」
(p233-234) 대부분의 지구공학은 …본질적으로 자연을 기계로 바라보는 근대적인 대응방법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기계처럼 문제가 된 부분만 수리하면 정상적인 작용을 다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는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된 거대한 자기 조절 시스템이므로 …지구시스템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구공학을 통한 섣부른 인간의 기후 조작이 더 큰 재앙을 몰고 올 수도 있다.
사실 환경문제는 너무 익숙한 이야기라 초반에는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했다. 초중고 공교육을 거치며 지구온난화와 환경보호에 대해서는 다큐도 시청하고 글짓기 대회라거나 포스터 그리기 같은 구색 맞추기식 행사에 질려버린 탓도 있다. 그러나 익숙하다고 해서 환경문제가 인류 존속 자체와 직결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적으로도 기후변화는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요소로 작용한 바 있다. 이처럼 변화하는 기후에서도 계속 살아가려면 지구시스템과 인간 공동체에 대한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자연을 기계나 화수분으로 대상화하는 근대적 인식에서 벗어나고, 환경문제를 모두가 참여하는 75억의 팀프로젝트 과제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파란하늘 빨간지구』를 통해 이런 사유를 경험하길 바란다. 새삼스럽지만, 우리에게 지구는 하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