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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바침 - 결코 소멸되지 않을 자명한 사물에 바치는 헌사
부르크하르트 슈피넨 지음, 리네 호벤 그림, 김인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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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에 바침>은 책이라는 사물을 다루면서도 결국 사람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책을 숭배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슈피넨은 독서를 어떤 고상한 노릇으로 꾸미지 않는다. 그는 책이 어떻게 인간을 위로하고 확장하는지 말하는 동시에, 그 독서가 어떻게 한 사람을 외롭게 만들고, 자신의 세계 속으로 더 깊이 침잠시키는지 숨기지 않는다. 독서는 그에게 구원이었고, 때로는 고독의 심연을 더 깊게 가르는 칼날이었다. 그 양가감정이 이 책의 산문들을 관통한다.


짧은 글들이 모여 있지만, 그 사이에는 묵은 기억의 결이 흐른다. 오래전의 서가 냄새, 손가락 끝에 남아 있던 종이의 감촉, 글자를 처음 배울 때의 어색한 열망. 슈피넨은 독서를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이 만들어내는 문제들을 낭만화하지 않는다. 책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현실, 곧 읽고 쌓고 버리지 못하는 애증의 관계를 가감 없이 담아낸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찬가가 아니라, 책이라는 존재 앞에서 부끄러움과 기쁨을 동시에 느끼는 애서가들의 마음을 정확히 건드리는 헌사처럼 읽힌다.


그러나 슈피넨의 이야기들이 마치 하나의 사상이나 중심 줄기에 관통되어 있지는 않다. 독서의 본질을 깊게 파고들다가도 곧바로 개인적 회상으로 넘어가고, 책이라는 물건에 대한 감정을 이야기하다가도 다시 독서의 철학으로 튀어 오른다. 그 때문에 이 산문집은 한 축을 따라 전개되는 통일된 사유라기보다는, 그저 책이라는 주제 아래 흩어진 조각들을 모아놓은 인상에 가깝다. 이런 편집적 산만함은 분명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산만함 속에 진짜 독서의 얼굴이 있다. 정리되지 않은 채 쌓여가는 책들처럼, 우리의 독서는 언제나 일정한 체계를 갖추지 않는다. 때로는 사랑이고, 때로는 짐이고, 때로는 도망이고, 때로는 고백이다. <책에 바침>은 그 모순된 감정 모두를 있는 그대로 기록한 책이다. 그래서 애서가라면 누구나 어느 페이지에서든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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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본능 -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개드 사드 지음, 손용수 옮김 / 데이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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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만 보고 가벼운 경제 입문서나 자기계발서로 여겼다. 구매 후 책장에 오래 묵혀두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 당황했다. 표지와 제목이 예고하던 톤과는 전혀 다른, 훨씬 깊고 엄중한 사유의 지층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진화심리학을 기반으로 소비를 탐구하는 개리 사드의 시선은 예상 밖의 방향에서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 낯섦이 오히려 독서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소비 본능>은 단순히 “왜 우리는 소비하는가”라는 질문을 넘어, 소비 행위가 인간의 가장 은밀한 충동과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드러낸다. 경제학·심리학·생물학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사드의 분석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실제로 무엇에 이끌리고, 어떤 욕망에 복종하며 살아가는지를 차갑게 비춘다. 소비를 취향의 문제나 개인 선택의 영역으로 축소하지 않고, 인간 진화의 유산이자 복잡한 사회적 신호 체계로서 읽어내는 시선은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사드는 우리가 물건을 고르는 방식조차 본능의 잔재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생존을 보장하던 옛 전략, 집단 속에서 지위를 확보하려는 무언의 경쟁, 타인에게 보내는 미묘한 신호들. 익숙한 소비의 과정이 사실은 오래된 본능의 무대로 펼쳐지고 있다는 그의 설명은 종종 불편하지만, 그래서 더 설득력이 있다. 그의 분석은 인간의 취향을 해체하고, 그 내면에 숨어 있던 욕망의 지문을 드러낸다.


이 책의 가장 큰 힘은 분석의 예리함을 넘어,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존재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는 데 있다. 우리는 종종 광고나 SNS가 우리를 흔든다고 말하지만, 사드는 정반대의 사실을 조용히 제시한다. 외부 자극이 강해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 어딘가에서 이미 흔들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그렇기에 그의 문장은 때로 잔혹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사드는 인간의 욕망을 교정해야 할 결함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을 정확히 이해할 때 비로소 자유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소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비를 통해 흔들리는 자신을 정확히 바라보기 위한 통찰이 담겨 있는 책. 그 점에서 <소비 본능>은 단순한 소비 심리 분석서가 아니라, 인간 이해의 또 다른 창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세상의 광고가 새로 보이고, 매장에서 무심코 집어 들었던 물건들마저 더 이상 단순한 ‘물건’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이 책은 소비의 본능보다, 인간이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더 근원적인 본능에 가까운 책인지도 모른다. 나의 첫 진화심리학 독서는 꽤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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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를 수 없는 나라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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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은 책 중 단연 가장 강렬한 울림을 준 작품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내면을 파고드는 듯한 침잠의 힘을 지녔다. 짧지만 절대 가벼워지지 않는 문체, 그리고 절제 속에서 번져 나오는 감정의 여운. 여백이 많지만, 그 여백이 공허하지 않다는 점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다. 말해지지 않은 문장들이 오히려 더 큰 울림을 남긴다. 침묵의 결을 손끝으로 더듬어 가게 된다.


처음에는 단지 간결한 서술이라 생각했지만, 곧 그 침묵의 틈새에 무수한 질문들이 숨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끝내 도달할 수 없는 어떤 감정적 지평에 대한 갈망. 크리스토프 바타유는 그 모든 것을, 설명이 아니라 암시와 잔향으로 말한다. 독자가 텍스트의 빈 공간을 스스로 채우게 만든다. 짧은 이 책이 이토록 묵직한 이유가 여기 있다.


김화영 번역가가 이 작품을 읽자마자 직접 번역하고 싶었다는 말이 이해된다. 한국어 문장으로 옮겨져도 흔들림 없는 단단함, 번역을 통과했음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맑은 리듬. 그 문장들은 번역본의 외피를 두르고 있으면서도 바타유의 원문처럼 투명하게 울린다.


출판사가 내세운 “<이방인> 이후 50년 만의 충격적 데뷔작”이라는 문구는 처음엔 과장처럼 보였다. 그러나 책을 덮는 순간 그 평가가 허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이 작품은 독자의 마음속에 잔잔히 스며든다. 어느 날 문득 크게 돌이켜지는 유형의 소설이다. 강렬하기보다는 서서히, 그러나 깊고 오래도록 흔적을 남기는 방식.


결국 나는 이 짧은 소설이 남긴 긴 여운에 붙잡혀 있다. ‘다다를 수 없는 나라’, 안남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며 평생을 걸고 찾아 헤매는 어떤 마음의 장소, 끝내 닿지 못하기에 더 선명해지는 이상향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은 한 번 읽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재독은 필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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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츠바랑! 16
아즈마 키요히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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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시절, 만화방의 좁은 골목에서 ‘아즈망가 대왕 작가의 신작’이라는 이유로 무심히 집어 든 책. 그 선택이 23년이라는 시간을 가로질러 지금까지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어른이 되었고, 서툴게 사회를 배웠다. 어느새 삼십 대가 되었다. 그러나 요츠바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눈을 반짝인다. 변하지 않는 초록 머리, 끝없이 평화로운 세계, 그리고 천천히 흐르는 하루.


요츠바의 세계는 마치 시간의 수면 아래 조용히 잠긴 어항 같다. 세월은 분명 흐르는데, 파문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는 곧 학교에 갈 나이지만, 그 순간조차 영원히 다가오지 않을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이 만화를 찾는다. 여기서는 기억이 낡지 않고, 추억이 닳지 않으며, 마음속 어린 시절이 멈추어 있기 때문이다.


아즈망가 대왕보다 더 잔잔한 일상. 특별한 사건 없이 흘러가는 하루들. 하지만 그 조각난 순간들이 모여 어느새 독자는 요츠바의 이웃이 된다. 꾸밈도, 과장도 없이 그저 살아가는 모습인데도 기묘하게 마음이 채워진다. 그것은 웃음이든, 따뜻함이든, 혹은 잊었던 감정의 미세한 떨림이든... 분명 무언가가 우리 안에서 다시 깨어난다.


나는 2~3년마다 불현듯 이 만화를 떠올렸다. 그리고 만화방으로 향했다. 오랜 친구의 집을 두드리듯,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안부를 묻듯, 그저 다시 보고 싶어서.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건 더 이상 ‘빌려 읽는 만화’가 아니라 ‘곁에 두어야 할 추억’이라는 것을. 그래서 작년에 15권을 전부 사서 책장에 두었다. 그것은 마치 세월과 함께 쌓아온 우정을 정식으로 받아들이는 의식 같았다. 단연코 소장하기 제일 잘 한 책이다.


지난주, 서점에서 낯익은 얼굴을 다시 만났다. 교보문고에서 나를 향해 환하게 웃는 요츠바. 16권. 무려 4년 만에 돌아온 친구였다. 나는 그것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고, 새벽 세 시까지 내일 출근도 잊은 채 만화책에 파묻혔다. 그 순간 나는 다시 어린 시절의 공기 속에 있었다. 작은 우산 아래 뛰놀던 초록 머리 아이와 같은 속도로, 같은 높이의 시선으로.


세상은 변하고, 나는 늙고, 하루는 무겁게 흘러가지만

요츠바는 같다. 늘 지금이고, 늘 해맑고, 늘 처음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다음 권이 나오기까지 또 기다릴 것이다.

이런 작품은 아마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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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테의 수기 펭귄클래식 97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김재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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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의 <말테의 수기>를 읽는 일은 어쩌면 ‘이해’보다 ‘체험’에 가까운 독서였다. 문장을 따라가며 의미를 붙잡으려 할수록, 오히려 그 언어는 손가락 사이로 흩어졌다. 시인이자 사상가로서 릴케는 문장을 ‘설명’의 도구로 쓰지 않는 듯하다. 그는 문장을 통해 내면의 혼돈을 시각화한다. 그 결과 독자는 뜻을 해석하기보다, 문장의 파동을 견디며 서서히 감정의 심층으로 내려가게 된다.


나는 이 책을 완독하기까지 두 달이 넘는 시간을 들였다.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아 다른 책들로 도피하기도 했고, 이해할 수 없는 단락들 앞에서는 인터넷의 도움도 빌렸다. 그러나 그 모든 지체조차도 이 책의 독서 경험 속 일부처럼 느껴졌다. 릴케의 언어는 즉각적인 감흥이 아닌 지연된 울림을 남긴다. 읽을 당시엔 막막하지만, 며칠 후 문득 떠오르는 문장 하나가 다시 마음을 울리는 식이다.


펭귄클래식 버전으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것은 김재혁 번역가의 언어 감각이었다. 시인이 시인을 옮긴다는 표현이 이렇게 실감 난 적은 드물다. 번역은 단순한 전달이 아니라 재창조의 행위임을 보여준다. 릴케 특유의 고요하고 내면적인 리듬이 한국어 문장 속에서도 유려하게 숨 쉰다. ‘한국의 릴케’라 불릴 만하다는 찬사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말테의 수기>는 결코 친절한 책이 아니다. 독자를 시험하고, 때로는 좌절시킨다. 끝에선 미묘한 위안을 건넨다. 결국 이 책은 ‘읽히는 책’이 아니라 ‘견뎌야 하는 책’이다. 그러나 그 고된 독서 끝에 남는 것은 피로가 아니라 경이감이다. 문장의 한 줄, 한 문단이 인간의 내면을 얼마나 깊이 투시할 수 있는가를 증명하는 책. 릴케는 독자를 이해시키지 않고, 그의 고독 속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독자는 결국, 그 초대를 거절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책이야말로 내가 읽어냈다고, 견뎌냈다고 자랑할 만한 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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