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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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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료 배송비를 맞추기 위해 덤으로 얹은 책은, 단순히 표지와 제목만 보고 고른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이었다. 그러나 독서가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책에 관한 책은 언제나 유혹적이라는 것을. 이 책은 독서가이자 ‘장서가’로 살아가는 이들의 잡문을 모은 에세이다. 작가 자신과 책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단순한 애정에서 시작된 책에 대한 감정이 어느새 집착과 결핍, 불안이라는 병증으로 변질되는 과정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작가는 책 없이 살 수 없다. 애서가와 수집광 사이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걷다 결국 수집병으로 떨어진 사람이다. <장서의 괴로움>이 특별한 이유는, 책에 대한 사랑을 찬양하거나 독서의 미덕을 역설하는 교양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이 책은 넘치는 책의 탑에 압도되어 결국 읽지 못하는 자신을 풍자한다. 자신이 잘 공간도 침범할 정도로 책의 요람 속에 싸여서 괴로워하면서도 또 다시 책을 사지 않으면 미쳐버리는 자신의 체질을 고백한다. 이 책에는 ‘독서’를 위한 수집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수집에 가까운 장서가들의 진실한 고백이 담겨 있다.


목적이 반전된 ‘책을 사는 행위’는 결국 존재의 방식이 된다. 이 책 속 인물들은 책 때문에 집이 무너지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안락해야 할 공간마저 책에게 점령당한 삶을 살아간다. 그럼에도 그들은 책 속에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 (여기서 말하는 ‘책 속’은 말 그대로 책탑에 둘러싸인 삶을 뜻한다.)


<장서의 괴로움>은 책을 사랑하는 이들의 부끄러움을 껴안는다. 완성되지 않을 독서의 꿈을 다정하게 감싸는 고해성사다. 인간의 끝없는 소유욕과 불완전함을 유쾌하게 품는 문학적 자화상이다. 해결되지 않는 욕망을 자백하며 그 욕망과 웃으며 마주선다. 실용서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본질은 책에 대한 왜곡된 사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열정에 대한 자전적 고백이다. 남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잘못된 건 아니다. 그들의 사랑이 다소 뒤틀려 보일지언정, 결코 틀린 사랑이라 할 수는 없기에.


오늘도 우리는 읽지도 못할 책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바쁜 하루의 틈에서 괜히 서점에 들러 책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한다. 장서가의 기질을 가진 애서가들은 자신이 가진 책의 수보다, 죽기 전까지 읽을 수 있는 책의 수가 훨씬 적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또 책을 고른다. 그런 이들이 바로 이 책의 잠재적 공범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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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4
카밀로 호세 셀라 지음, 정동섭 옮김 / 민음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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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고의로 장난을 치듯, 불행이 평생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파스쿠알 두아르테가 그랬다. ‘불행’이라는 단어 하나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의 삶을 뒤덮은 어둠은 감히 언어로 다 닿을 수 없는 깊이다. 그의 서사는 마치 삶 자체가 형벌인 사람의 기록처럼, 읽는 이의 마음을 서서히 찢어놓는다. 그림자처럼 붙은 악마의 손은 끝내 그를 단 한 번도 놓아주지 않았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은 1942년 프랑코 정권의 검열 아래 출간되었다. 억압의 공기를 피해 가지 않고, 오히려 그 공기를 더 짙게 들이마신 이 소설은 격리된 농촌의 피폐함과 왜곡된 신앙, 가족 내부의 기형적인 사랑과 증오, 육체와 본능이 충돌하는 장면들을 거칠고도 정교하게 직조한다.


소설의 독특한 점은 파스쿠알의 언어가 놀라울 만큼 문학적이고 격조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고백은 격정 대신 차분과 담담으로 점철되어 있다. 마치 고해성사처럼 자신의 죄를 하나씩 나열하고 조용히 해명한 뒤 받아들인다. 그 차분함이 오히려 이 소설의 비극을 더 깊고 오래 아프게 만든다. 그는 자신의 죄를 나열하고 해명하고 끝내 받아들인다. 바로 그 차분함과 냉정한 어조가 오히려 이 소설의 비극을 더 깊고 오래 아프게 만든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은 문학이 얼마나 위험하고, 불편하며, 그만큼 정직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감정적으로는 격렬하고 문체적으로는 절제되어 있다. 철학적으로는 불쾌할 만큼 진실하다. 그 불편한 진실은 독자의 가슴에 깊이 남는다.


이 소설을 통해 나는 한 인간의 파괴를 본다. 그 안에 담긴 체념과 슬픔을 넘어 문학이 사회적 유전자를 어떻게 기입하고 복사해내는지 보았다. 소름 돋는 경험이었다. 사이코패스에게서조차 설득력을 느끼게 만든 이 작품이다. 그 ‘설득의 침묵’이야말로, 이 소설을 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내내 불편하고, 다 읽고 나서도 내내 머릿속에 남는다. 마치 죄처럼.


<돈키호테> 다음으로 많이 팔린 스페인 소설이고 작가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그리고 스페인에는 작가의 동상까지 세워졌다.


스페인 문학은 이 작품 전과 후로 나눠진다던데 그만큼 영향력이 강했던 소설이다. 인간 내면의 폭력성과 비극을 이토록 강렬하게 그려낼 수 있구나... 하고 감탄하게 만든 소설이었다. 읽는 내내 불편함과 몰입이 공존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여운이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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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없는 불행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5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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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한트케의 <소망 없는 불행>은 너무도 가까운 죽음에 대한 기록이면서도, 죽음을 둘러싼 침묵을 어떻게든 언어로 옮겨보려는 시도다. 어머니의 자살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작가는 담담하면서도 서늘한 문체로 사건을 응시한다. 하지만 그 담담함 속엔 무너지는 감정의 파편들이 숨어 있다. 문장은 짧고 건조하지만, 그 사이엔 말로 다하지 못한 비통함과 죄책감이 배어 있다.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다. 오히려 작가 자신이 가진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라는 불완전한 조각들을 모아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이자, 불행을 기록함으로써 그것을 이해해보려는 시도다. 작가는 어머니의 삶을 되짚으며 그녀가 겪어야 했던 시대적 억압과 내면의 고독을 묘사한다. 결혼과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스스로를 갉아먹어야 했던 한 여인의 삶. 결국 그 삶을 감당할 수 없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글은 감상적이지 않다. 오히려 철저히 절제되어 있으며,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더 큰 울림을 남긴다.


민음사의 <소망 없는 불행>은 작가의 두 저서로 이루어져 있다. 두 번째 책 <아이 이야기> 역시 비슷한 결을 따라가는 작가 자신이 아이를 키우며 느낀 점들을 서술한 에세이다. 두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의 강인한 정신력에 감탄했다. 그의 문장은 평범한 일상조차 다시 곱씹게 만드는 마법 같은 힘을 지니고 있다. 아이의 작은 걸음마저도 그에게는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영감이자 원동력이 된다.


책장을 덮고 나면,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그가 지나온 시간이 남는다. 그리고 그 시간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남는다. 한트케는 어머니를 기억하고, 그 기억을 언어로 붙잡아두려 하지만, 결국 끝까지 다다르지 못한다. 그것이 이 책이 주는 가장 깊은 슬픔이다. 소망 없는 불행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 그리고 말로는 닿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소망 없는 삶의 불행을 담아낸 회고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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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뇌과학 - 당신의 뇌를 재설계하는 책 읽기의 힘 쓸모 많은 뇌과학 5
가와시마 류타 지음, 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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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설명하기 위해 뇌과학의 관점에서 접근한 책이다. 저자는 독서가 뇌를 자극하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강조한다. 하지만 책의 내용이 지나치게 단순화되거나 상업적 의도로 구성되어 있어 큰 실망이었다.


이 책은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있어 지나치게 뇌과학적 데이터를 강조하며 독서의 다차원적 가치를 간과한다. 독서란 단순히 뇌를 활성화하거나 학습 효과를 높이는 행위를 넘어서 인간의 정서적 성장과 공감 능력을 키우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활동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은 독서를 마치 '뇌 건강을 위한 운동'으로 단순화하여 소개한다. 과학적 접근을 통해 독서의 효과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독서를 지나치게 생리학적 측면에서만 다루는 이러한 태도는 독서라는 행위의 본질적이고 심미적인 가치를 축소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책의 내용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다고 하지만, 정작 독자를 설득하기에는 구체적이지 않고 과도하게 피상적이다. 저자는 독서가 뇌의 특정 부분을 활성화한다고 주장하며 몇 가지 실험 결과를 제시하지만 해당 데이터가 어떤 맥락에서 도출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거의 없고, 독서의 뇌 과학적 효과를 다루는 부분이 대부분 일반적인 주장에 머무르고 있어 깊이 있는 통찰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물음표만 남긴다. 책의 과학적 근거는 독자를 납득시키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고 쉽게 단언하는 식의 비약이 많다. 뇌과학 이론을 다룬 책이 아니라 자기계발서의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독서 행위를 지나치게 도구화하는 경향이 있다. 저자는 독서를 '뇌를 훈련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표현한다. 이를 통해 뇌의 노화를 예방하고 인지 기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접근 방식은 독서 행위를 순수한 즐거움이나 지적 탐구로서가 아니라 단순히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하게 만든다. 이는 독서를 단순히 '성과 지향적 활동'으로 격하시킬 위험이 있다. 독자가 책을 읽는 본질적인 즐거움이나 흥미를 간과하게 만들 수 있다.


디지털 시대의 독서 문제를 다루는 방식도 지나치게 편협하다. 저자는 디지털 매체가 인간의 사고력을 약화시키고 독서를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어느 정도는 동의하는 의견이다. 하지만 마치 디지털 매체, 특히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를 혐오하는 수준의 발언들이 불편했다. 저자가 얼마나 나이가 많은지 알 수 있는 편협한 시각의 대목들이 많았다. 이러한 논의는 디지털 매체와 전통적인 독서의 관계를 보다 복합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매커니즘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정설인 것처럼 단언하는 내용이 매우 불편했다. 디지털 기술이 반드시 독서를 저해하는 요소로만 작용한다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독서의 형태를 다양화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책은 이러한 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디지털 매체를 단순히 부정적으로만 평가하고 있어 설득력이 부족하다.


독서가 뇌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다는 흥미로운 주제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 깊이나 설득력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독서의 가치와 효용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자 한 노력은 높이 평가할 수 있으나 독서를 지나치게 도구화하거나 일차원적으로 접근한 점은 이 책의 한계로 보인다. 지나치게 단순한 책이고 심도 깊은 이론이나 철학적인 내용을 원한다면 이 책은 거르는 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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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게이머, 플레이 - 인문학으로 읽는 게임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10
이상우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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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게임, 인생을 플레이할 수 있도록 허락해준 부모님께 고맙다.”


저자는 인생을 게임에 빗대어 본다. 게임에서도 인생을 본다. 언어와 게임, 현실과 가상이 교차하는 지점에 선 이 책은 그야말로 ‘하이브리드’라는 단어가 절묘하게 어울리는 시도다. 짧지만 밀도 높은 게임의 역사 속에서 예술성과 현실성의 균형을 조율하며, 독자에게 게임이라는 텍스트의 확장 가능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게임, 게이머, 플레이>는 단순히 게임을 분석하거나 찬양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게임을 하나의 문화이자 언어로 바라본다. 그것이 어떻게 인간의 욕망과 사회 구조, 정체성, 서사, 규칙, 공동체를 함축하는지를 사유한다. 학술적인 밀도를 유지하면서도 저자 특유의 유연하고 쉽게 읽히는 문장이 빛을 발한다. 말하자면 이 책은 ‘게이머를 위한 철학 에세이’이자, ‘철학자를 위한 게임 입문서’로 읽힌다.


눈에 띄는 지점은 게임을 둘러싼 오래된 편견과 경계를 넘어서려는 저자의 시선이다. 게임은 더 이상 ‘현실 도피의 유희’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게임을 사회학, 미학, 언어학의 경계에 끊임없이 접속시키고, 문학과 철학의 문맥 안으로 불러들인다.


이 책은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보여주고, 그 낯섦 속에서 다시금 게임을 성찰하게 만든다. 다층적인 게임이라는 행위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향해 플레이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아바타의 뒤편에서 조용히 손을 움직이는 플레이어의 정체는 결국 자기 자신이다.


문학과 게임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게임에 관한 책이 더 많이 출간되기를 오래전부터 바래왔다. 여러 게임 서적들을 찾아 읽었지만 이만큼의 깊이를 지닌 인문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얼마나 수준 낮은 책들이 많은지... 게임 관련 서적은 늘 도서관에서 먼저 검토해본 뒤에야 겨우 구입을 결심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손에 들게 된 것은 큰 다행이었다. 아직도 게임을 통해 깊이 사유하려는 사람이 남아 있다는 사실, 그 한 권의 책에서 작지만 확실한 희망의 불씨를 보았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오늘도 어떤 게임 안에 있고, 누군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규칙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중요한 것은 승패나 점수가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떻게 플레이하느냐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사유는 게임을 넘어, 삶에 대한 가장 깊은 통찰이 되기도 한다.


<게임, 게이머, 플레이>는 게임에 관한 책이지만, 동시에 인간에 관한 책이다. 이상우 작가는 게임이라는 미로를 통해 인간 존재의 방향을 더듬는다. 나는 이 책을 덮는다. 그리고 다시 게임을 켠다. 이번에는 조금 더 사유하는 플레이어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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