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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만세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1월
평점 :

제목부터 독자를 밀어낸다. 지옥 찬양이라니. 그것은 도발이거나 아이러니이거나, 혹은 체념일 것이다. <지옥 만세>는 그 모순 위에 서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지옥’은 종교적 형벌의 공간이 아니다. 인간이 끝내 벗어나지 못하는 기억과 욕망, 그리고 폭력의 구조를 가리킨다. “만세”라는 외침은 그 구조를 부정하지 못한 채 끌어안고 살아가는 태도의 다른 이름처럼 들린다.
바타이유의 <다다를 수 없는 나라>는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작년 읽은 책 중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던 그의 작품은 자연스럽게 그의 세상으로 날 끌어들였다. 작품을 찾던 도중 <지옥 만세>라는 작품이 눈에 들어와 구매하게 되었다. 같은 작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필체의 작품이라 당황했다. 그가 그토록 잘하던 고전적인 문체를 버리다니. 젊은 작가인 그는 벌써 이런 혁신적인 변화를 도전하고 있구나.
나는 앞서 읽은 <다다를 수 없는 나라>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작년 최고의 작품이라 말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그 소설은 고전적 문체와 절제된 감정으로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았고, <지옥 만세>를 집어 들었다. 그러나 이 책은 예상과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같은 작가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가 익숙한 문체를 버리고 다른 가능성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받았다.
이 소설이 겨냥하는 것은 극적인 반전이나 서사의 전환이 아니다. 이미 벌어진 어떤 파국이 인간 내부에 어떻게 침전되는가 하는 문제다. 작품이 집요하게 응시하는 것은 선택의 순간이 아니라 선택 이후의 시간이다. 인물들은 결단을 내리지만, 그 결단은 세계를 바꾸지 못한다. 대신 그들의 내면을 서서히 잠식한다. 바타이유는 이 잠식의 과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무심하고 거의 무표정한 문장으로 따라갈 뿐이다. 그 건조함이 오히려 인물의 고통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여기서 지옥은 외부의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 상태, 용서가 완결되지 않는 상태,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상태. 인물들은 그 지옥에서 탈출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완전히 굴복하지도 않는다. “만세”라는 역설은 패배의 선언이 아니라, 어쩌면 그 상태를 인정한 뒤에야 가능한 생의 지속에 가깝다.
서사적으로 이 소설은 불친절하다. 설명은 최소화되어 있고, 인물의 동기도 명확히 제시되지 않는다. 작가는 독자를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그 상태에 머물 것을 요구한다. 나는 이 작품을 온전히 이해했는지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상당 부분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이해와 별개로 이 세계에 끌렸다는 사실이다. 바타이유가 구축한 이 지옥은 이상하게도 매혹적이다. 고통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고통을 끝까지 응시하게 만든다.
<지옥 만세>는 체념과 집요함 사이 어딘가에서, 끝내 사라지지 않는 감정을 붙들고 서 있는 작품이다. 지옥을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인간의 상태를 받아들이는 순간, 그 아이러니한 제목은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모두가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