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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를 수 없는 나라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평점 :

올해 읽은 책 중 단연 가장 강렬한 울림을 준 작품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내면을 파고드는 듯한 침잠의 힘을 지녔다. 짧지만 절대 가벼워지지 않는 문체, 그리고 절제 속에서 번져 나오는 감정의 여운. 여백이 많지만, 그 여백이 공허하지 않다는 점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다. 말해지지 않은 문장들이 오히려 더 큰 울림을 남긴다. 침묵의 결을 손끝으로 더듬어 가게 된다.
처음에는 단지 간결한 서술이라 생각했지만, 곧 그 침묵의 틈새에 무수한 질문들이 숨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끝내 도달할 수 없는 어떤 감정적 지평에 대한 갈망. 크리스토프 바타유는 그 모든 것을, 설명이 아니라 암시와 잔향으로 말한다. 독자가 텍스트의 빈 공간을 스스로 채우게 만든다. 짧은 이 책이 이토록 묵직한 이유가 여기 있다.
김화영 번역가가 이 작품을 읽자마자 직접 번역하고 싶었다는 말이 이해된다. 한국어 문장으로 옮겨져도 흔들림 없는 단단함, 번역을 통과했음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맑은 리듬. 그 문장들은 번역본의 외피를 두르고 있으면서도 바타유의 원문처럼 투명하게 울린다.
출판사가 내세운 “<이방인> 이후 50년 만의 충격적 데뷔작”이라는 문구는 처음엔 과장처럼 보였다. 그러나 책을 덮는 순간 그 평가가 허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이 작품은 독자의 마음속에 잔잔히 스며든다. 어느 날 문득 크게 돌이켜지는 유형의 소설이다. 강렬하기보다는 서서히, 그러나 깊고 오래도록 흔적을 남기는 방식.
결국 나는 이 짧은 소설이 남긴 긴 여운에 붙잡혀 있다. ‘다다를 수 없는 나라’, 안남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며 평생을 걸고 찾아 헤매는 어떤 마음의 장소, 끝내 닿지 못하기에 더 선명해지는 이상향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은 한 번 읽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재독은 필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