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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본능 -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개드 사드 지음, 손용수 옮김 / 데이원 / 2024년 5월
평점 :

표지와 제목만 보고 가벼운 경제 입문서나 자기계발서로 여겼다. 구매 후 책장에 오래 묵혀두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 당황했다. 표지와 제목이 예고하던 톤과는 전혀 다른, 훨씬 깊고 엄중한 사유의 지층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진화심리학을 기반으로 소비를 탐구하는 개리 사드의 시선은 예상 밖의 방향에서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 낯섦이 오히려 독서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소비 본능>은 단순히 “왜 우리는 소비하는가”라는 질문을 넘어, 소비 행위가 인간의 가장 은밀한 충동과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드러낸다. 경제학·심리학·생물학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사드의 분석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실제로 무엇에 이끌리고, 어떤 욕망에 복종하며 살아가는지를 차갑게 비춘다. 소비를 취향의 문제나 개인 선택의 영역으로 축소하지 않고, 인간 진화의 유산이자 복잡한 사회적 신호 체계로서 읽어내는 시선은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사드는 우리가 물건을 고르는 방식조차 본능의 잔재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생존을 보장하던 옛 전략, 집단 속에서 지위를 확보하려는 무언의 경쟁, 타인에게 보내는 미묘한 신호들. 익숙한 소비의 과정이 사실은 오래된 본능의 무대로 펼쳐지고 있다는 그의 설명은 종종 불편하지만, 그래서 더 설득력이 있다. 그의 분석은 인간의 취향을 해체하고, 그 내면에 숨어 있던 욕망의 지문을 드러낸다.
이 책의 가장 큰 힘은 분석의 예리함을 넘어,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존재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는 데 있다. 우리는 종종 광고나 SNS가 우리를 흔든다고 말하지만, 사드는 정반대의 사실을 조용히 제시한다. 외부 자극이 강해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 어딘가에서 이미 흔들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그렇기에 그의 문장은 때로 잔혹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사드는 인간의 욕망을 교정해야 할 결함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을 정확히 이해할 때 비로소 자유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소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비를 통해 흔들리는 자신을 정확히 바라보기 위한 통찰이 담겨 있는 책. 그 점에서 <소비 본능>은 단순한 소비 심리 분석서가 아니라, 인간 이해의 또 다른 창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세상의 광고가 새로 보이고, 매장에서 무심코 집어 들었던 물건들마저 더 이상 단순한 ‘물건’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이 책은 소비의 본능보다, 인간이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더 근원적인 본능에 가까운 책인지도 모른다. 나의 첫 진화심리학 독서는 꽤 강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