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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여름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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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도착하지 못한 관계에 대한 기록. 역광 속에 선 두 형제의 사진처럼,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늘 무엇인가에 가려진 채 서로를 바라본다. 혈연이라는 확실한 근거가 없어도, 혹은 그 때문에 더더욱, 이들은 닮았다. 닮았다는 사실은 친밀함의 증거이자, 동시에 끝내 넘지 못할 경계가 된다.


<두고 온 여름> 속에서 인물들은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같은 계절을 통과하지만, 그 관계는 명확한 이름을 얻지 못한 채 유예된다. 이 책이 반복해서 묻는 것은 관계의 가능성에 가깝다. 가능성으로만 존재했던 감정, 선택되지 않았기에 더욱 선명해지는 관계가 이 소설의 중심을 이룬다.


성해나는 감정을 과잉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한 문장 속에 미세한 균열을 남겨두는 쪽을 택한다. 인물들이 주고받는 말들은 종종 비어 있고, 중요한 감정은 묵인된다. 그 공백을 독자가 읽게 만드는 힘이 이 작품의 미덕이다. 여름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여름을 이해하게 되는 것처럼, 관계 역시 이미 멀어진 뒤에야 그 의미가 또렷해진다.


<두고 온 여름>에서 ‘두고 온’ 것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다. 그것은 말하지 않았던 마음이고, 끝내 선택하지 않았던 삶의 방향이며, 그때는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또 하나의 나 자신이다. 그 가능성을 미화하지 않는다. 왜 끝내 실현되지 못했는지를 조용히 응시한다. 그 시선에는 애틋함과 체념이 동시에 담겨 있다.


해가 짧아진 저녁, 이미 식어버린 온기, 그리고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는 마음. <두고 온 여름>은 바로 그 순간에 머무는 소설이다. 관계가 끝난 뒤에도 오래 남아 있는 사진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는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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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일기 - 코로나19로 봉쇄된 도시의 기록
팡팡 지음, 조유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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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팡의 <우한일기>는 한 도시의 봉쇄를 기록한 에세이라기보다, 재난 앞에서 인간과 국가, 그리고 언어가 어떤 얼굴을 드러내는지를 집요하게 관찰한 증언에 가깝다.


초반부의 흡입력은 상당하다. 작가는 봉쇄된 일상에서 발생하는 작은 균열들을 차분히 기록한다.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 엇갈리는 행정 지침, 공포보다 먼저 번지는 소문과 침묵. 이러한 장면들이 축적되며 왜 이 재난이 우한에서 시작되어 세계로 확산할 수밖에 없었는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우리가 모두 직접 겪은 사건을 바탕으로 한 기록이라는 점은 이 책에 설명 이상의 설득력을 부여한다.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팡팡의 태도다. 그는 중국 정부와 공무원들의 무능과 책임 회피를 노골적으로 지적하고, 그로 인해 쏟아지는 악플과 살해 협박 앞에서도 한발 물러서지 않는다. “칼을 들고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두렵지만, 글로 싸우는 것은 두렵지 않다”는 그의 말은 단순한 용기 선언이 아니라, 작가로서 언어를 선택한 사람의 각오에 가깝다. 침묵이 강요되는 상황에서 기록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선택임을 그는 몸으로 보여준다.


다만 이 책이 완성도 면에서 완벽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작가가 직접 언급했지만, 인터넷에 올렸던 글들을 묶은 형식인 만큼, 충분한 퇴고나 구조적 정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 이야기의 흐름이 다소 중구난방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고, 유사한 감정과 상황이 반복되며 독서의 리듬이 느슨해지는 순간도 있다. 일기와 책으로서의 밀도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한 인상 역시 남는다.


하지만 비교적 담담하게 써 내려간 문장들조차 팡팡 특유의 결을 지니고 있고, 혼란과 공포의 한복판에서도 그는 언어를 놓지 않는다. 재난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무력해지고, 동시에 얼마나 집요하게 살아남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코로나를 통과한 세대라면 이 책은 더 이상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이미 지나온 시간을 다시 한번 언어로 마주하게 만드는 경험에 가깝다. 두 달간 우한에서 겪은 일을 일기로 기록한 팡팡은, 기록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얼마나 큰 파급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증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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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이라도 제대로 쓰는 법 - 비문을 쓰고도 모르는 당신을 위한 최소한의 글쓰기 법칙
이연정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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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일은 늘 어렵다. 우리는 종종 기본기를 다졌다고 믿지만, 막상 문장을 세 줄만 있어도 금세 흔들리고 만다. 이연정 작가의 <한 문장이라도 제대로 쓰는 법>은 바로 그 기본기라는 단어의 무게를 다시 알게 하는 책이다. 나름 맞춤법에 자신이 있었던 나에게도 이 책은 묵직한 뒤통수를 한 번 제대로 날렸다. 책 곳곳에 정갈하게 배치된 팁들은 단순한 요령이 아니라, 실제 글쓰기의 골조를 이루는 뼈와 살에 가까웠다.


이 책의 미덕은 화려한 장식 없이 핵심만을 정확히 짚어낸다는 점이다. 부담 없이 빠르게 읽히지만, 그 속에는 글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가야 할 기본 원칙들이 촘촘히 자리하고 있다. 입문자에게는 특히 알맞은 길잡이지만, 어느 정도 글을 써온 사람에게도 “아, 내가 이걸 놓치고 있었구나”하는 깨달음이 따라온다.


다만, 구성의 특성상 깊이 있는 탐구를 기대하기에는 살짝 가벼운 부분도 있다. 글쓰기의 철학까지 깊게 파고들기보다는 실전적인 조언을 간단한 예시와 함께 제시하는 방식이어서, 전반적으로 ‘기본 연습서’의 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마저도 이 책의 역할을 생각하면 아쉬움이라기보다 선택에 가까운 부분이다. 처음 쓰는 문장을 단단히 세우게 만드는 데에는 이 정도의 밀도가 오히려 적절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쓰는 순간조차 괜히 긴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문장 하나, 쉼표 하나에도 누군가의 눈이 더해지는 느낌. 글쓰기 교수의 책을 읽고 난 뒤라 그런지 내 문장에 엄격함을 들이밀게 된다. 하지만, 이 긴장감은 책이 남긴 좋은 영향의 증거이기도 하다. 읽고 난 뒤, 나는 조금 더 자신 있게 첫 문장을 쓰게 되었고, 이전보다 문장에 대한 감각이 한 단계 교정된 듯한 느낌을 얻었다.


<한 문장이라도 제대로 쓰는 법>은 거창한 비법을 제시하는 책은 아니다. 대신 우리가 너무 쉽게 놓쳐버리는, 그러나 결국 문장을 지탱하는 기초를 조심스럽게 되짚는다. 책을 덮고 나면 묘하게 든든해진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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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바침 - 결코 소멸되지 않을 자명한 사물에 바치는 헌사
부르크하르트 슈피넨 지음, 리네 호벤 그림, 김인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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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바침>은 책이라는 사물을 다루면서도 결국 사람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책을 숭배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슈피넨은 독서를 어떤 고상한 노릇으로 꾸미지 않는다. 그는 책이 어떻게 인간을 위로하고 확장하는지 말하는 동시에, 그 독서가 어떻게 한 사람을 외롭게 만들고, 자신의 세계 속으로 더 깊이 침잠시키는지 숨기지 않는다. 독서는 그에게 구원이었고, 때로는 고독의 심연을 더 깊게 가르는 칼날이었다. 그 양가감정이 이 책의 산문들을 관통한다.


짧은 글들이 모여 있지만, 그 사이에는 묵은 기억의 결이 흐른다. 오래전의 서가 냄새, 손가락 끝에 남아 있던 종이의 감촉, 글자를 처음 배울 때의 어색한 열망. 슈피넨은 독서를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이 만들어내는 문제들을 낭만화하지 않는다. 책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현실, 곧 읽고 쌓고 버리지 못하는 애증의 관계를 가감 없이 담아낸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찬가가 아니라, 책이라는 존재 앞에서 부끄러움과 기쁨을 동시에 느끼는 애서가들의 마음을 정확히 건드리는 헌사처럼 읽힌다.


그러나 슈피넨의 이야기들이 마치 하나의 사상이나 중심 줄기에 관통되어 있지는 않다. 독서의 본질을 깊게 파고들다가도 곧바로 개인적 회상으로 넘어가고, 책이라는 물건에 대한 감정을 이야기하다가도 다시 독서의 철학으로 튀어 오른다. 그 때문에 이 산문집은 한 축을 따라 전개되는 통일된 사유라기보다는, 그저 책이라는 주제 아래 흩어진 조각들을 모아놓은 인상에 가깝다. 이런 편집적 산만함은 분명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산만함 속에 진짜 독서의 얼굴이 있다. 정리되지 않은 채 쌓여가는 책들처럼, 우리의 독서는 언제나 일정한 체계를 갖추지 않는다. 때로는 사랑이고, 때로는 짐이고, 때로는 도망이고, 때로는 고백이다. <책에 바침>은 그 모순된 감정 모두를 있는 그대로 기록한 책이다. 그래서 애서가라면 누구나 어느 페이지에서든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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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본능 -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개드 사드 지음, 손용수 옮김 / 데이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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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만 보고 가벼운 경제 입문서나 자기계발서로 여겼다. 구매 후 책장에 오래 묵혀두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 당황했다. 표지와 제목이 예고하던 톤과는 전혀 다른, 훨씬 깊고 엄중한 사유의 지층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진화심리학을 기반으로 소비를 탐구하는 개리 사드의 시선은 예상 밖의 방향에서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 낯섦이 오히려 독서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소비 본능>은 단순히 “왜 우리는 소비하는가”라는 질문을 넘어, 소비 행위가 인간의 가장 은밀한 충동과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드러낸다. 경제학·심리학·생물학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사드의 분석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실제로 무엇에 이끌리고, 어떤 욕망에 복종하며 살아가는지를 차갑게 비춘다. 소비를 취향의 문제나 개인 선택의 영역으로 축소하지 않고, 인간 진화의 유산이자 복잡한 사회적 신호 체계로서 읽어내는 시선은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사드는 우리가 물건을 고르는 방식조차 본능의 잔재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생존을 보장하던 옛 전략, 집단 속에서 지위를 확보하려는 무언의 경쟁, 타인에게 보내는 미묘한 신호들. 익숙한 소비의 과정이 사실은 오래된 본능의 무대로 펼쳐지고 있다는 그의 설명은 종종 불편하지만, 그래서 더 설득력이 있다. 그의 분석은 인간의 취향을 해체하고, 그 내면에 숨어 있던 욕망의 지문을 드러낸다.


이 책의 가장 큰 힘은 분석의 예리함을 넘어,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존재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는 데 있다. 우리는 종종 광고나 SNS가 우리를 흔든다고 말하지만, 사드는 정반대의 사실을 조용히 제시한다. 외부 자극이 강해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 어딘가에서 이미 흔들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그렇기에 그의 문장은 때로 잔혹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사드는 인간의 욕망을 교정해야 할 결함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을 정확히 이해할 때 비로소 자유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소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비를 통해 흔들리는 자신을 정확히 바라보기 위한 통찰이 담겨 있는 책. 그 점에서 <소비 본능>은 단순한 소비 심리 분석서가 아니라, 인간 이해의 또 다른 창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세상의 광고가 새로 보이고, 매장에서 무심코 집어 들었던 물건들마저 더 이상 단순한 ‘물건’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이 책은 소비의 본능보다, 인간이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더 근원적인 본능에 가까운 책인지도 모른다. 나의 첫 진화심리학 독서는 꽤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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