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비전통에서 하나님의 의로움은 일부 사람들을 구속하고 일부 사람들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의 마음속을 구분 짓는선(line)으로 묘사된다. 한 인간 안에 충돌하는 두 개의 충동, 즉선한 충동(‘예쩨르 토브‘, yetser tob)과 악한 충동(‘예쩨르 하라‘, yetser ha-rá)이 있다. 개인 안에 두 가지 충돌하는 충동 혹은 경향이 있다는 사고는 상당히 복잡한 발전사를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것이라든지, 또는 일부는 구원받고 나머지는 구원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소 피상적 이해이다. 두 가지 충동을 구분 짓는 경계선은 각 개인의 마음 안에 있다고 보는 것이 성숙한 가르침이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을 최초로 전파하고 가르친 사람들은 그와 같은 높은 수준의 신학 교육을 받지 못했다. 쿰란의 에세세파와 마찬가지로 원시 기독교에서도 공동체와 공동체의 지도자에게 충성하는 이들이 바로 구원을 받을 사람이라는 인식을 볼 수 있다. - P94
그러므로 이신칭의 교리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그교리는 피조물을 위한 하나님의 총체적 계획의 일부인 "바울의 이방인 선교"라는 더 넓은 맥락 아래 위치해야 한다. 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칭의에 관한 바울의 생각은 일차적으로 개인의 영혼과 양심의 내적 갈등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다원적이며 찢겨진 세상 속의 분열과 정체성 문제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바울의 시선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인류와 피조세계 전체의 다양성, 그리고 일치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 P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