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적 공격이라는 용어는 외집단에 대한 고의적이지 않은 차별을 낳는 말과(또는) 행동을 뜻한다. 미시적 폭행과 더불어 미시적 공격은 미시적 모욕micro-insult과 미시적 무효micro-invalidation를 포함할 수 있다. 미시적 모욕은 무례하고 무분별하지만 명시적이지는 않은 단어, 대화 또는 (종종 무의식적인 행위이다. 예를 들어, 장애인에게 어떻게 비장애인과의 경쟁에서 직업을 구했는지 묻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미시적 무효화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배제를 일삼는 단어, 대화 또는 행위이다. 예를들어, 백인이 영국 태생 아시아인에게 ‘진짜‘ 출신이 어디냐고 묻거나, 백인이 흑인에게 흑인의 정체성과 유산이 지닌 중요성을 부정하면서 ‘나는 피부색을 보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 P36

공유된 혐오를 표현하려 함께 모이는 행위는 집단 내의 개인을 최소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탈개인화deindividuation라고 한다. 혐오집단에서는 나쁜 행동에 제동을 거는 데 필요한 개인의 책임감이 군중심리에 의해 사라지고 만다. 개인과 집단은 ‘융합‘된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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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에 관한 새 관점
제임스 D.G. 던 지음, 김선용 옮김 / 감은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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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D.G. 던은 신약학자로 케임브리지에서 C. F. D. Moule 지도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습니다. 노팅엄 대학과 더럼 대학에서 신약학을 가르쳤습니다. 한국에는 바울의 새관점 학파(?)의 대표 학자 중 한 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흔히 새관점 학파라고 하면 N. T. 라이트 주교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학문적인 업적 면에서 라이트은 던에 비교할 바가 못됩니다. 역자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소위 ‘바울에 대한 새관점‘이란 논의의 장으로 학자들을 끌어들이면서 학문적인 논의를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바울에 대한 새관점 논의가 시작되었던 1980년대 초의 논문입니다. 이 논문에서는 던의 새관점에 대한 주요 논점과 기존 바울신학과의 차별점을 대략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주로 언급되는 내용은, 유대교 혹은 유대주의에 대한 기독교 내의 인식의 전환을 시도한 E. P. 샌더스의 ‘언약적 율법주의‘에 대한 던의 평가와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 언급된 ‘율법의 행위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던의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주로 율법의 행위들에 대한 해석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던은 이것이 할례와, 음식법 등을 의미하며, 결국 이것들이 당시 유대인들의 민족적 표식으로 작용했고, 이방인 선교에 집중했던 바울이 이러한 민족적 배타성을 비판했다는 식으로 해석을 합니다. 이런식으로 샌더스의 언약적 율법주의를 보완하고, 바울의 율법에 대한 태도를 보다 정합적으로 설명하는 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언악적 율법주의, 은혜의 종교, 하나님의 의, 의롭게 됨, 루터주의적 관점, 율법의 행위들과 율법의 차이 등등 복잡한 신학적 개념이 특별한 부연설명 없이 사용되고, 기존 논의에 대한 던의 비판과, 던에 대한 다른 학자들의 비판이 간단하지만 밀도있게 다뤄지는 통에 짧은 책이지만 꽤 공을 들여 읽을 필요가 있는 책입니다. 게다가 초기 논의이다보니 다듬어지지 않은 표현도 다수 등장합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바울에 대한 새관점 논의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이 논의에 뛰어든 학자들이 누구며 각자가 어떤 입장인지 대략적으로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얻는 게 많은 것 같습니다. 다만 바울에 대한 새관점의 개론서는 아니니 관련서적을 먼저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한 때 톰라이트 열풍이 분 적이 있어서 새관점 관련된 책은 그나마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독일학자들의 책은 대부분 번역이 안되어 있으니 전반적인 논의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은 있습니다.

책 좀 읽는 개신교인들이 무슨 볼드모트처럼 대하는 자유주의의 화신인 불트만이 사실 새관점의 입장에서는 고전적이고 보수적인 입장이라는게 재밌습니다. 그냥 다 믿는 새관점의 톰 라이트도 무슨 빌런 취급당하고 있는 한국 현실에서꾸준히 이렇게 읽을 만한 책이 번역된다는 게 기적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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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회고록 - 꿈이 모여 역사가 되다
이해찬 지음 / 돌베개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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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이해찬이야말로 회고록을 쓸 자격이 있고, 또 써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 말에 공감합니다. 사적인 삶만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저로서는, 이렇게까지 ‘퍼블릭 마인드‘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점에 놀랐습니다. 그래서 이 회고록을 읽으면 박정희 때부터 현재까지 한국 정치사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좋은 책이고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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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너머 - 얽힘·고통·타자에 대한 열 개의 물음
전의령 지음 / 돌베개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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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류학을 전공한 전의령이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보완하고 수정한 것입니다. 신문 연재글이라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본적으로 포스트 휴머니즘과 페미니즘 그리고 행위자-연결망 이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으면 읽기가 쉽지 않은 책인 것 같습니다. 개념을 잘 몰라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습니다.

전의령은, 동물에 관한 문제에서 동물이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동물‘을 넘어서기도하고, 또한 동물담론이 그 너머에 있는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동물에 관한 책을 쓰면서 제목을 ‘동물 너머‘로 했다고 말합니다. 즉 인간-동물 관계는 비선형적이고 예측불가능한 방식으로 얽혀 있고, 인간-동물의 관계가 결국 인간-인간의 관계이기도 하다는 점을 전의령은 강조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에서 반려동물, 길고양이, 식용개, 동물싸움, 동물원에서 탈출한 퓨마의 죽음, 축산산업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룹니다. 우리가 대개는 미디어에서 접했던 내용들이었는데, 저자의 시각으로 동물권 담론이나,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해석합니다. 둔촌 주공 아파트 재개발과 그 지역의 길고양이 구조 사건을 연관짓는다거나 동물을 도살하는 축산산업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위치를 다루며, 개고기를 둘러싼 담론을 새로운 인종적 담론으로 다루는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기도 합니다. 저는 동물이 계급적•인종적 타자성을 매개하며 이는 포스트인종 포스트식민 시대의 특징이라고 하는 주장이 흥미로웠습니다.

개인적으로 보는 프로그램이 동물농장을 포함해서 딱 2개 뿟입이다. 그런데 동물농장을 보면서 뭔가 이 부분은 시선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점이 자주 있었고, 이 책을 통해서 어떤 부분은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언어를 발견한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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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 핵심 주제어인 책의 제목을 아이러니하게도 ‘동물 너머‘로 지은 이유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동물이 종종 동물권의 ‘동물‘을‘넘어’서기도 하지만 동시에 관련 담론의 지형 ‘너머‘ 산적한사회적 문제를 드러내고 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물 너머‘의 ‘너머‘로 강조하고자 한것은 어떤 거창한 윤리적 전환이라기보다는 시선의 이동이다. 동물과 관련해 우리의 시선이 집중돼 있었던 그곳 너머에 다른 많은 문제가 존재하며 이것들은 다른 방식의 질문과 사유를 요구한다. - P8

지배와 소유에서 애정, 친밀감, 돌봄을 강조하는 것은 펫과의 관계에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책임을 만든다. 그리고 이 책임은 자본주의 사회의 많은 것이 그렇듯, 관련시장이 형성되는 일과 밀접히 맞물려 있다. 바로 이 맥락에서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돌볼 것인가‘는 윤리적 질문인 동시에 경제적 질문이 된다. 펫과 우리의 관계는 다른 무수한 관계와 마찬가지로 사회문화적·윤리적·의료기술적 실천인 만큼이나 경제적 실천인 것이다. - P25

그리고 그 일상의 경험은 이렇게 두서없이 산만한 대화처럼 일어나며, 그 속에는 자본과 비자본이 어지럽게 교차한다. - P37

여기서 우리는 동물에 대한 돌봄 문제를 넘어 시야를 조금 더 확장할 필요가 있다. 둔촌 주공에 남겨진 길고양이들을 돌보기 위해 사람들을 모이게 한 더 큰 맥락은 바로 1990년대 이후 도시의 일상 풍경이 되어 버린 재개발·재건축이다. 둔촌 주공과 같은 대단지 아파트는 현대 한국의 경제성장과 도시화, 중산층의 형성 그리고 그들의 계급적 욕망을 상징적으로 재현하는 공간으로, 1970년대 강남에서 시작한 신도시 개발 속에서 서울 밖의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 P61

축산 현장에서 개별 노동자가 감수하는고통은 신체적·정신적·도덕적 차원에서 복잡하게 얽혀 생산 및 재생산된다. 여기서 고통은 작업 자체의 고된 성격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동물복지의 차원에서 개별 동물들을 감정을가진 존재인 동시에 결국은 몇 킬로그램의 고기로 접근해야하는 모순된 상황으로부터 기인하기도 한다. 특히 도살 행위를 통해 동물들에게 고통을 가함으로써 느끼는 정서적 고통은 노동자들을 압도한다. 하지만 이 같은 차원의 고통, 즉 노동자와 동물을 묶는 복잡한 행위와 관계로서의 고통은 축산동물의개별화된 고통이나 신체적 통증을 감소시키는 데 초점을 두는동물복지 제도에서는 온전히 파악될 수 없다. - P74

따라서 인간동물 관계는 동시에 인간-인간 관계를 뜻하기도 한다. 순수하게 동물만의 문제, 순수하게 인간만의 문제란 없다. 하지만 분리의 관점에서 인간-동물 관계를 바라보고그 사이를 조정하려는 노력은 불가피하게 다양한 인간 집단들사이의 역사적 얽힘을 배제할 뿐 아니라 동물에 대한 배려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사회적 통제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 P89

HSI의 캠페인은 복날이라는 ‘잘못된 문화’에 대한 분노와 혐오 그리고 그 속에서 희생양이 된개들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자극하고, 이 문화를 시급히 중단시켜야 한다는 서구의 식민주의 후) 식민주의적 감수성에 호소한다. 그럼으로써 마치 이 상황은 억압적인 유색인종 남성으로부터 희생되는 유색인종 여성을 구해야 한다는 19세기 서구의 식민주의·제국주의적 권력 담론을 전 지구화된 현세상의 인간-동물 종간inter-species 관계 안에서 재재생한다. 다시 말해 이 맥락에서 비서구의 동물은 식민주의적 구원의 대상인 유색인종 여성으로 인종화된다. - P122

인간 가족과 달리 동물 가족은 분리되면 안 된다고 주장하며 야생동물을 위한 생태 통로의 설치에 큰 역할을 했던 이스라엘의 생태학자들에게 고향을 잃은 팔레스타인인의 사회적 고통은 왜 불가피하다고 여겨지는가? 터키 해안가에서 발견된 세 살짜리 시리아 난민 알란 쿠르디의 모습은 세계 시민의 심금을 울리지만 매일 세계곳곳에서 국경을 넘다가 부상당하거나 죽는 수많은 난민과 이주민의 존재는 왜 동정은커녕 혐오의 대상이 되는가?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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