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리어스 Curious - 모든 것은 형편없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리처드 도킨스 외 25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이한음 옮김 / 페이지2(page2)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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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를 다 믿을 것은 못 되지만 어느 정도 성향을 나누는 도구라는 것은 맞는 것 같다. 나의 경우는 호기심이 정말 많아서인지 N이 높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책도 타인의 추천이나 좋다는 평보다는 봤을 때 호기심이 강하게 끌리는 것을 선택하는 편이다. 이번 책도 이런 루트로 고른 책이다. 띠지에 "인간은 호기심을 잃는 순간 늙는다"라고 적힌 것, 너무나 이쁜 형광 연두색, 게다가 심지어 제목도 큐리어스이다. 아! 또 하나 25명의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엮은 것인데 평소에 좋아하는 스티븐 핑커, 리처드 도킨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로버트 새폴스키 등이 나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거의 팬심에 선택했다.


글은 25편인데 글의 주제가 동일해서인지 읽는데 화자가 바뀜에 따라 혼란스러움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들이 말하는 자신이 언제부터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5~7장 정도씩 나누어서 담겨 있고 맨 앞에는 이 사람이 뭐 하는 사람이고, 어떤 성과를 냈는지에 대한 설명도 깔끔하게 곁들여져 있어 이해하기에 좋았고, 평소에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책은 유명해서 아는 사람, 성과는 알지만 누가 했는지는 몰랐던 부분 등이 해소되었다. 게다가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저서들 중에 읽고 싶은 목록을 추릴 수 있었던 것도 나에게는 이 책에서 얻은 하나의 전리품이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세계의 석학들의 어린 시절은 우리의 어린 시절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몇 가지가 매우 달랐다. 일단 부모를 대상으로 보자면 이들의 부모는 무엇인가를 하라거나, 왜 그런 쓸 데 없는 짓을 하냐고 뭐라고 하거나, 열심히 하는 것에 찬물을 끼얹는 대신 응원을 해 주었다는 것이다. 아! 그리고 집에 책도 많이 있었던 공통점이 있었다. 이렇게 써 놓으면 대부분의 부모들이 이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책을 접하면 부모의 눈으로 볼 때 속이 뒤집어지게 만드는 자식들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된다.


​수업을 빼 먹는 것은 일상다반사요, 학교를 그만두는 것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게다가 관심사는 어찌나 자주 바뀌는지 뒷바라지하기도 벅찬 과학자도 있었다. 그리고 학교에서의 왕따는 이들의 시기에도 여전함을 보고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이런 아이들에게 공부를 하라거나 학교를 꾸준하게 다니라거나 한 우물만 꾸준하게 파라거나 그런 것을 해서는 밥을 먹고 살기 힘드니 다른 것을 하라거나 하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을 부모는 아마 대한민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부모는 대부분 이렇게 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부모의 경제적 수준이 좋아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하는. 물론 이들 중에는 부모의 직업이 좋아 금전적으로는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학이 아니라 초중고부터 학교 다닐 돈이 없어 전액 장학금을 주는 곳을 찾아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은 사람, 유전적 질병을 앓는 아버지로 인해 심리적 고통을 겪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니까 이들의 삶도 우리의 일상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사실에 관심이 없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무지다. 그들은 그것을 파헤치고 잡아먹고 공격한다. 그리고 당신이 이런 비유를 좋아할지 모르지만, 그들은 그러면서 계속 더 많은 무지를 발견하고 있다."

-큐리어스 P.23


이제 꿈을 키우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자. 이들이 과학자가 된 계기는 대부분 과학자가 되려고 해서 된 것이 아니었다. 그냥 어쩌다 보니가 가장 알맞았는데 공통점은 책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아주 많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것을 볼 때 주의 깊게 보는 성향이 있었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의 경우는 투리틀 박사의 모험을 보고 이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두리틀 박사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동물들과 대화가 가능한 능력. 즉,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사건이 발생하고 두리틀 박사가 동물들과 대화를 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의 연속이다. 이 책을 보고 리처드 도킨스는 종 차별주의라고 하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몰입의 즐거움의 저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조금 더 재미있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십 대 시절 당시 로마에 살고 있었고 사회적 상황으로는 동네에 공산당원이 꽤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친구랑 누구네 동네에 공산당원이 더 많은가를 놓고 논쟁을 펼쳤고, 급기야 신문 가판대의 판매량을 계산해서 확인하고자 했다. 이 논쟁을 통해 둘은 통계학의 토대가 되는 원리를 발견하면서 숫자로 사람을 쉽게 속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당시 사회와 접목하면서 서서히 심리학에 눈을 뜬 케이스이다. 


​"그의(아인슈타인) 사상 중에 내게 깊이 와닿았던 것 하나는 과학자가 됨으로써 일상생활의 고통과 불확실성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연의 법칙들을 이해함으로써 눈앞의 일에만 몰두하는 인간의 삶보다 더 영구적이고 아름다운 세계와 연결된다는 것이다."

-큐리어스 p.339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과학자는 두 명이었다. 당시 아인슈타인이 얼마나 대단하지 몰라 인사만 하고 지나다녔다는 머리 겔만과 리 스몰린. 당연하게 둘 다 처음 들어보는 과학자이다. 둘 다 물리학 과학자이며 조만간 이들이 쓴 저서도 읽어보려고 한다. 요즘 너무 신나서 빠져있는 양자 물리학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리 스몰린의 경우 수학에는 관심조차 없었지만, 이론 물리학자가 된 케이스여서 더 신기했다. 


"사람의 인생행로란 우연한 사건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내 경우에는 개 광고가 그랬다. 내가 썼던 가장 짧은 글 말이다."

-큐리어스 p.354


​가장 인상 깊게 남았던 과학자는 주디스 리치 해리스이다. 심리학자이자 작가인데 아마 나였다면 이런 성과를 낼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 같다. 주디스는 유전적으로 자가 면역 질환으로 평생 고통을 받은 케이스이다. 유전적이니 당연하게 아버지도 이 병에 걸렸다. 이런 아버지를 위하여 가족은 꽤 자주 이사를 다녔고 덕분에 주디스는 왕따로 지낸 적이 꽤 있었다. 본인도 어느 순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과학자에서 작가로 전업을 하였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언젠가 썼던 개 광고의 문구로 인해 이런저런 제안이 들어온 덕택이었다. 


​이 모든 과정을 침대에서 딸의 도움으로 해냈다. 그러면서 말한다. 자신의 창의성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는 집에 홀로 있을 때였으며 결국 나를 나이게 한 것은 고독이었다고. 요즘 사회적으로 소통의 부재가 심각한 편이다. 이것을 문제로만 보자면 한없이 큰 문제인데 주디스처럼 생각하고 활용을 하자면 꽤 효율적인 환경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아이 때 과학과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었다. 아이처럼 느꼈을 때 사랑에 빠진 것이다. 내가 더 자라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큐리어스 p.104


​이들의 공통점은 돈, 명예, 지위 등을 위하여 과학자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호기심이 가는 것을 따라가다 보니 세계적인 석학이 되어 돈과 명예가 따라온 것이지 반대로 진행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영재였던 케이스보다 오히려 일반인보다 못한 성적을 받는 경우가 더 많았다. 다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이 관심 있는 것, 자신이 잘하는 것에 몰두하였을 뿐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과학자는 몇 명 되지도 않는다. 페이지2북스에서 나온 큐리어스에는 무려 25명의 과학자들이 자신이 세계적인 석학이 어떤 계기로 되었는지 어린 시절부터 말한다. 읽다가 보면 MIT에서만 연락이 왔다고 울상인 아이가 나오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잘해도 MIT는 잘 몰랐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 외에도 웃음이 빵빵 터지는 경우도, 마음이 짠한 경우도 나오는 대단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일상과 같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세상의 모든 부모도, 자식도, 제2의 인생을 계획하는 분도,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려는 분까지 누구나 읽으면 무엇이가 마음에 용기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큐리어스 #페이지2북스 #리처드도킨스 #스티븐핑커 #미하이칙센트미하이 #로버트새폴스키 #폴데이비스 #프리머다이슨 #리스몰린 #주디스리치해리스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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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피로 쓴 7년의 지옥. 진실을 외면하는 순간 치욕은 반복된다, 책 읽어드립니다
류성룡 지음, 장윤철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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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할 징(懲), 삼갈 비(毖). 기록할 록(錄). 지난 역사를 경계하여 미래를 대비한다는 의미의 징비록. 이는 조선 시대 유학자 유성룡이 자신이 겪은 전란을 기록하여 후대에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내며 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유성룡의 뜻을 우리나라보다 일본이 더 잘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TV에서 방송 도서로 나오기 전에는 딱히 빛을 발하지 못한 책이었지만, 일본에서는 베스트셀러로 우리나라에서보다 더 많이 읽힌 책이기 때문이다. 


징비록이라는 말이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들다고 느낄 뿐이지 사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매체를 통하여 당시의 일을 온몸으로 알고 있다. 대표적인 영화는 명량, 한산, 노량이 드라마로는 난중일기, 불멸의 이순신, 징비록이 있으며 책으로는 7년의 전쟁, 칼의 노래, 격류 등이 있다. 한국인이라면 징비록을 읽지는 않았어도 아마 이것들 중 절반 이상은 보았을 것이다. 그러니 만약 아직 징비록을 접하지 못한 분이라면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의 벽을 깨고 그냥 접해 보시길 추천한다.


류성룡은 문인으로서 과거 급제를 통하여 동인으로 활동하다가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나누어지면서 남인을 형성한다. 곁들여 하나 더 말하자면 이들의 반대 당파는 서인으로 이들이 갈라진 것이 노론과 소론이 된다. 남인, 북인, 노론, 소론을 우리는 사색당파라고 부른다.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도체찰사에 임명되어 군무를 총괄했으며 이순신과 권율을 천거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바탕을 마련해 준다. 그러나 전쟁 중에도 당파싸움이 그치질 않아 등용과 파직 그리고 복관을 겪게 되며 이후 낙향하여 조정의 부름을 응하지 않은 채 저서 집필만 하며 여생을 보낸다. 


[원하옵건대 우리나라는 일본과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하소서]

-징비록 p.79 신숙주의 유언


책은 신숙주의 유언으로 시작한다. 역사적 배경을 지니지 않고 읽으면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조선과 일본의 관계는 태조부터 시작하여 이후 성종까지 약 100년 간과 이후 연산군과 선조까지의 100년으로 나누어 비교할 수 있다. 첫 100년은 강력한 왕권으로 문화의 꽃을 피우던 시기였으나 일본에 대한 자료 조사가 매우 활발하였다. 일본에 파견된 사신의 횟수로 따지면 60회 정도. 그러나 이후 100년은 200년간의 평화로움 덕분인지 느슨하게 운영되는 조정이 일본에 파견된 사신단의 횟수가 겨우 5회에 불과했다. 신숙주는 조선시대 중 가장 태평성대를 이루었다는 세종대왕 때의 인물이다. 이 인물이 가장 힘 있고 안정적인 시대에 일본과 평화롭게 지내라는 유언을 남긴 것은 이후 임진왜란을 덧씌워보면 꽤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임진왜란 일본의 침략이 수월했던 이유 세 가지>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것은 이런 상황에서 조선이 사라지지 않고 이후로 300년의 명맥을 더 이어온 것의 신기함이었다. 아마 이 책을 접하시는 분이라면 다 느끼겠지만, 처음엔 당쟁만 일삼고 무능한 관리들에게 화가 나지만 나중엔 그냥 체념하여 당연하게 받아질 정도로 어이가 없어진다. 세 가지만 소개하면 바로 공감이 될 것이다.


그 첫 번째는 임진왜란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 베스트 10을 꼽으라면 절대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조령이라는 험난한 요새를 버리고 평원인 충주로 옮겨 패배한 장수 신립. 이것만으로도 무능력의 상징이 되었는데 본문에는 더한 내용이 나온다. 


[신립이 가까이하는 군관이 와서 적군이 이미 조령을 넘었다고 넌지시 알려 주었다. 이때는 4월 27일 초저녁이었다. 이 말을 들은 신립이 갑자기 성 밖으로 뛰어나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니 군대 안은 따라서 소란스러웠다. 신립은 밤이 깊어서야 가만히 객사로 돌아왔다. 

그 이튿날 아침에 신립은 전날 밀고한 군관을 불러냈다.

"네 어찌 망령된 보고를 하여 군심을 소란케 하느냐."

신립은 그를 끌어내어 목 베어 죽이고 나서 임금에게 장계를 올렸다.

'왜적은 아직 상주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징비록 p.123


사실 이때 적병은 이미 10리 바깥에 와 있었다. 도대체 정보를 준 그것도 평소에 가까이하는 군관이 전하는 첩보 사항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부족하여 굳이 죽여야 했을까? 심지어 임진왜란 당시 군인의 수도 굉장히 부족한 상태였다. 결국 신립은 이들과 싸우다가 죽은 것이 아니라 강물로 뛰어들어 자살하는 것으로 충주 전투를 마무리했다. 


두 번째는 임금 선조가 피란 길에 올라 개성에 묵을 때의 일이었다. 이 부분을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현재 우리나라에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한국의 국회의원들도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꽤 우울했다. 절대 안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단 하나도 들지 않았다는 것이 더 놀라울 정도였다.


[저녁때 개성부에 이르러 남문 밖 관아에 임금께서 거동하셨다. 

그러자 대간들이 글을 연이어 올렸다. 

'수상(이산해)이 궁중 측근들과 결탁하여 나랏일을 그르쳤으니 탄핵하옵소서.'

그러나 임금께서는 윤허하시지 않았다.

5월 2일에도 대간들이 계속 글을 올리자 수상은 파직되었고, 내가(류성룡) 수상으로 임명되었다.]

-징비록 p.132


이런 일은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파직과 임명이 이어지고 급기야 첫 번째 승리를 거둔 장군을 모함하여 참수하였으며 우리의 영웅 이순신을 백의종군하게 만드는 일까지 벌어진다. 평소에 당파싸움을 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라가 사라질 위기이다. 조선이 없어지면 관직이라는 것도, 양반이라는 신분도 사라지는데 이런 상황에 당파싸움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때 세 순찰사는 모두 문인이라 군사 일에 익숙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군사의 수효는 많았지만 훈련이 통일되지 않았고, 험한 요지를 찾아 지킬 준비도 하지 않았다. 참으로 옛사람들이 "군사 일을 봄 놀이하듯 하니 어찌 패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한 바와 같았다.]

-징비록 p.137



마지막으로 소개할 것은 당시의 조선의 군사들의 실태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라가 위태로우면 문인이든 무인이든 전장에 나갈 수야 있겠다. 그러나 대장이라니! 결국 이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잡혀 죽거나 모두 달아나버렸다. 아마도 사대부 정신이 투철하여 문인을 우월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했음을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었다. 이외에도 군사들 중에는 제대로 된 군사는 없었으며 칼 한 번 잡아보지 못한 농민이나 노비들이 태반이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을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 세 가지>


​이런 상황에 드디어 이순신이 등장한다. 우리는 단순하게 각각의 해전에서 마스코트인 거북선을 이끌고 싸워서 이겼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순신의 전쟁은 이렇게 단순하게 볼 문제는 아니었다. 당시 상황은 단 며칠 만에 왜군이 한반도의 절반 이상을 넘어 개성까지 쳐들어 온 상황이다. 즉, 육지에 일본군의  태반이 상륙해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때 이순신의 싸움은 단순히 왜군을 물리친 것이 아니라 육지로 보급할 물품을 끊어 이들의 손에서 무기를 없애고, 싸움의 의지를 꺾어버리는 전투였던 것이다. 즉, 바다 싸움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임진왜란 승리의 절대적 역할이었다는 것.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알던 이순신 장군의 위엄이 훨씬 크게 다가온다.


여기에 보급로 차단 역할을 한 또 하나의 무리가 있다. 바로 의병. 이순신이 새롭게 바다를 통하여 들어오는 것을 끊었다고 한다면 이미 들어와 있는 것, 그리고 미처 막지 못하여 보급된 물품을 의병들이 여기저기에서 나서서 끊어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혈관을 난도질하여 각종 기관의 움직임을 멈추게 한 전략으로 당시 군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우리나라에 맞춤형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임진왜란 승리의 요인에 꼽히는 의병의 활동. 임금 옆에서 피란만 다니며 당파싸움을 하는 이들과 의병들이 비교되는 것은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 요인은 어이없게 무능한 대신과 임금이 만들어주었다. 바로 너무 빠르게 피란을 다닌 것이 일본의 힘을 빼버린 것이다. 당시 일본은 빠르게 한양으로 돌진하여 왕을 사로잡은 뒤 조선을 속국으로 만드는 속전속결의 전술을 가지고 전쟁에 임했다. 한양에 도착할 때까지는 이 전술이 잘 먹혔으나 막상 한양에 도착하고 나니 왕이 사라져 오히려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후 개성까지 왕을 사로잡으러 가지만 이미 왕은 다른 곳으로. 그 외에 임진왜란 발발 7개월 만에 명나라가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4월에 발생한 전쟁이니 한국은 11월이다. 보급품이 끊긴 겨울, 새롭게 투입된 명나라 군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왕의 꼬리는 일본군들로 하여금 전의를 상실하게 하기에 무리가 없었다. 


"바야흐로 싸움이 급한 때이니 내가 죽은 사실을 알리지 말라."

-징비록 p.277


징비록의 처음은 신숙주의 말로 시작한다면 마지막은 이순신의 말로 마무리가 된다. 싸움이 끝난 뒤 명나라 장수 진린의 통곡을 보면서 무뚝뚝하게만 그려지던 이순신이 정쟁을 제외하면 꽤 사교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비록 그 방법이 사근사근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론>

사실 이것을 유성룡이 있는 그대로 썼다는 자체가 이미 자신의 허물을 그대로 내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로 쓴 7년의 지옥을 미래의 후손을 위하여 썼다는 것은 당시의 상황이 매우 어려웠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약 삼백 년 후 다시 일본의 침략에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게 된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단순하게 일제 침략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 상황에 대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총칼 없이 소리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징비록이 책 읽어드립니다에 방송 도서로 선정되어 방영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고전으로 불리는 과거의 책들이 다 그렇듯이 이 책도 옛말과 한자어 그리고 역사적 배경의 부족으로 인하여 쉽게 접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스타북스에서 출간한 징비록은 도입부에 70페이지 정도를 할애하여 저자와 책에 관하여 세세하게 미리 알려주는 부분을 첨부하였다. 그리고 각 페이지 하단에 주석이 꽤 많이 적혀 있어 따로 자료를 찾지 않고도 이해하기가 쉬웠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베스트셀러로 알려진 징비록. 우리 선조가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남긴 글이니 이제 우리의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징비록 #스타북스 #유성룡 #베스트셀러 #역사 #책읽어드립니다 #방송도서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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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X의 비밀 - 인류 최후의 개척지와 일론 머스크의 마스터플랜
브래드 버건 지음, 김민경 옮김 / 미디어숲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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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푸른 점에 사는 작은 생명체는 밤하늘의 반짝이는 것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을 동시에 가지고 살아왔다. 하지만 무수한 세월이 흐른 지금 그 동경은  별과 그들의 세상에 대한 궁금증으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은 인류 자체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미지의 세계 탐험에 대지의 자원과 생명까지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투자하고 있다. 스페이스X의 비밀은 이들의 발자취를 되짚어 앞으로의 행보를 예측, 그리고 당면할 과제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주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한 번씩은 관심을 가져본 공간이다. 상상력의 섹터든지 과학적 영역이든지 경제학적 관점에서든지 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이유들은 서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영역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최근에 이쪽으로 관심을 가진 이유는 투자 목적이었다. 우주항공과 투자가 무슨 관계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쪽에 관련된 회사가 의외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곳이 많다. 가장 단적인 예로 우주항공에 민간 기업이 처음 투자한 곳이 페이팔이 있으니 말이다.


처음 우주항공은 냉전체제의 경쟁에서 시작하였다. 미국과 러시아의 경쟁이었고 닐 암스트롱과 유리 가가린의 대결이었던 달 탐험. 즉, 국가 주도산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금액을 세금으로만 충당하기 어려워 결국은 민간 우주항공 기업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 첫걸음이 페이팔이며 현재 주도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기업이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이다. 그 외에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이끄는 블루 오리진, 방위 산업체인 록히트 마틴, 지금은 한걸음 물러났지만 한때 주식 시장을 뒤흔들었던 버진갤럭틴까지.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제목과 같이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딱히 이 기업을 찬양하려는 의도보다는 미국의 항공 우주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온 곳이기에 이들의 발자취가 많기 때문이다. 이 산업의 첫걸음은 달이며 중간 단계는 화성으로의 이주이며 마지막 단계는 인류의 다행성 종족화이다. 이것을 위하여 매일 지치지도 않고 20년 가까이를 달려온 일론 머스크. 그리고 눈치가 빠른 분은 벌써 아시겠지만, 성공 사례보다 실패 사례가 훨씬 많다. 사례들 중에는 무인 로켓이어서 금전적 손실만 있을 때도 있었지만, 유인선이어서 인명 피해로 이어진 때도 여러 차례 소개되고 있어 읽는 동안 이들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든다. 


우리가 직접 촉감을 이용하여 경험할 수 없는 공간, 물리학, 재료공학, 우주공학 등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어려운 학문의 집결체인 영역은 읽으면서 안개 속을 걷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브래드 버건은 이런 점을 잘 알았을까? 책이 풀 컬러 이미지로 우리가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해 놓았다. 실제 사진부터 상상도까지 200장이 넘는 사진 덕분에 읽는 내도록 눈이 즐거운 책이었다. 



사실,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일론 머스크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그러나 페이지가 넘어가면서 단순한 기업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만일 개발에 더욱 속도를 내지 않는다면, 화성에 인류가 당도하기 전에 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겁니다. 최초의 인간을 궤도에 보낼 준비를 하는 데만 18년이 걸렸다면, 우리는 앞으로 혁신에 더욱 속도를 내야만 합니다."

스페이스X의 비밀 브래드 버건 p.296 


​물론 이 산업에는 현실적인 큰 이익과 더불어 가능성의 이익까지 경제적인 요소가 당연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수십 차례의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계속 시도하는 모습은 어지간한 신념으로는 어렵지 않을까? 게다가 본인은 밟아 보지도 못할 공간에 대한 개발이라니. 하나의 냉정한 기업가에게 인간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개발 과정과 결과에 따른 문제점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이미 우리의 머리 위에는 이들이 쏘아 올린 엄청나게 많은 위성이 떠 있으며 앞으로 지금 띄운 것의 몇 배는 더 하늘의 별로 만들 것이라고 한다. 단순하게 정보성 목적이 아닌 인류의 다행성 종족화를 위하여 말이다. 그러나 이 위성들이 반사하는 빛과 수명이 다 했을 때의 처리 곤란이 문제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더 나아가 인류가 화성을 정복하고 이주했을 때의 이념적인 부분과 법률적 문제까지 다루고 있어 여러모로 생각의 확장을 시도할 수 있는 책이었다.


그러면 인류의 화성 이주선은 현재 어디까지 와 있을까? 그리고 매번 뉴스를 장식하는 로켓에는 과연 몇 명의 인간과 어느 정도의 물품을 실을 수 있을까? 브래드 버건의 스페이스X의 비밀은 현재 인류의 위치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길잡이 책이다. 단순하게 우주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이 산업의 현주소와 전망을 알고 싶은 투자자가 보면 좋을 것이다. 즉, 경계가 없는 책이라는 뜻. 심지어 자신의 꿈을 위해 도전하면서 좌절하는 사람이 읽었을 때는 자기 계발서 같은 느낌도 받을 수 있다. 



#스페이스X의비밀 #브래드버건 #미디어숲 #과학도서 #우주탐험역사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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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 권력자편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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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험의 압박이 없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역사책이 벌거벗은 세계사 시리즈가 아닐까 한다.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해서 전 시리즈를 다 소장하고 있다. 이 시리즈의 최대 장점은 독자의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역사에 관하여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접했을 때는 인류의 발자취에 큰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역할을 하며, 이미 세계사를 조각조각으로 많이 알고 있는 성인이 볼 때에는 흩어진 조각을 하나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이번에 새롭게 나온 벌거벗은 세계사 권력자 편에 함께 빠져보자.


이미 많은 분이 아는 것처럼 이 시리즈는 tvN <벌거벗은 세계사> 제작팀과 교보문고의 합작품이다. 붙여진 타이틀의 명성만 보더라도 별다른 의심 없이 책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세계사라고 하면 서양의 중세 시대를 상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책은 독특하게도 중세 말기부터 아주 최근의 일까지 다루고 있어 역사적인 부분 이외에 거시 경제의 흐름을 머릿속에 그리기에 최적의 책이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특정 국가의 사람만이 아니라 세계를 주름잡는 힘 있는 국가들의 인물과 그 인물이 살던 당시의 굵직한 사건들이 얽혀 있어 시공간을 초월한 지구 전체를 그리기에 좋았던 것이었다.


첫 장은 우리가 중세 배경 TV 드라마에서 가장 단골로 나오던 여성 편력의 대가 헨리 8세와 여섯 명의 아내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마 가장 친근한 것이 두 번째 아내의 이야기인 천일의 스캔들의 주인공 앤 불린이 아닐까? 이쪽으로 포인트를 두면 남녀의 사랑 이야기일 뿐이지만, 그 내면은 종교 개혁과 연관이 있다. 덕분에 어렵고 복잡한 내용을 로맨스 소설 보듯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효과를 주는 장점이 있다. 결말이 언제나 슬픈 결혼 생활이라니 상상만 해도 가슴 한 쪽이 시린 느낌이다. 게다가 의외로 헨리 8세가 지금의 영국을 존재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영국 해군의 아버지로 각인된 왕이라니! 사생활의 복잡성과 달리 정치적으로는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양면성을 띤 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번째는 러시아 제국에서 대제라는 호칭을 받은 두 대제의 이야기가 나온다. 표트르 대제와 예카트리나 대제인데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수업 시간에 반드시 듣고 이름과 업적을 달달 외웠던 기억이 날 것이다. 이 표트르 대제가 블라디미르 푸틴의 롤 모델이라고 한다. 냉정하게 보이지만 누구보다도 러시아를 사랑하고 지구상에 최고의 국가를 만들기 위하여 스스로가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모든 것을 배워왔던 표트르 대제. 긍정적인 요소만으로 평가를 한다면 아주 희미하게 표트르 대제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오버랩 되는 부분이 있긴 하다. 그렇다고 현재의 상황을 옹호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오해 마시길!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 바로 세 번째 에피소드인 서태후였다. 서태후를 중국 역사와 연결하게 아주 자세하게 알게 된 것이 작년 말에 읽었던 '효기심의 권력으로 읽는 세계사 한중일 편'이었다. 희대의 악녀로만 알고 있었던 서태후였는데 작년에 읽었던 도서로 인하여 꽤 긍정적인 측면을 찾았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의 에피소드에서는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서태후의 악행이 전부 사실은 아닐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하게 알 수 있는 설명들이 있어 한 명의 인간을 정말 제목 그대로 벌거벗긴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완벽하게 악한 사람도, 완벽하게 선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달까? 인간의 욕망과 시대의 불운이 겹쳐 만들어진 서태후를 꽤 옆에서 본 것 같아 꽤 만족스러웠다.


이후 불운의 아이콘인 케네디 가문, 처칠, 스탈린, 엘리자베스 2세, 도널드 트럼프, 푸틴, 빈 살만이 이어서 나온다. 이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만 들어도 소속된 나라와 연계된 국가가 그려지면서 현재의 무기로 하는 생명이 오가는 전쟁과 총칼 없는 무역 전쟁에서 서로의 스탠스를 이해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그려질 것이다. 경제 공부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 것이 중동의 종교와 역사를 공부한 것이었다. 이들은 우리와 달리 이들은 종교가 신념이고, 코란이 법이며, 무함마드 알리가 생명을 걸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이미 공기 중의 먼지가 되어 버린 이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 있음을 전혀 공감할 수 없겠지만 공부를 하면서 이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책을 완독하고 나면 시공간을 초월하여 여행을 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책이 굉장히 객관적으로 쓰여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단적인 예로 서태후의 사치와 권력 욕심을 말하면서도 현재 전해오는 서태후에 관하여 나왔던 수많은 설들은 반대편의 권력 욕망과 미움 그리고 특정 집단의 목적을 위하여 부풀어진 것일 수도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그리고 굉장히 스마트하기만 할 것 같던 윈스턴 처칠의 성적표와 전쟁에서의 실패도 함께 나란히 보여줘서 책을 읽고 편견을 가지지 않도록 굉장히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즉,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사실을 독자가 간과하지 않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신경을 썼다.


무엇인가를 배우거나, 어떤 것을 보거나, 어딘가를 여행하거나, 누군가를 만나거나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책 한 권으로 자신의 시야를 몇 배로 넓힐 수 있는데 굳이 포기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개인적인 호불호를 제외하면 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아 쉽게 접할 수 있으면서 기존의 알던 것과 얽혀 스스로 상상의 문을 열어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아! 그리고 페이지 터너다. 소설책 읽는 것처럼 진짜 재밌다. 로맨스, 스릴러, 서스펜스가 범벅이 된 영화를 몇 편 본 기분이다. 게다가 자극적인 표현이나 묘사가 없어 자녀와 읽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벌거벗은세계사권력자편 #벌거벗은세계사시리즈 #tvN벌거벗은세계사제작팀 #교보문고 #재미있는세계사 #쉬운세계사 #베스트셀러 #역사서 #세계사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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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잔혹사 - 약탈, 살인, 고문으로 얼룩진 과학과 의학의 역사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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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에 과학계에 핼리혜성처럼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날아온 책인 주기율표에 얽힌 역사 이야기인 '사라진 스푼'이라는 책을 기억하는가? 당시 이 책을 읽고 한동안 학교 다닐 때 그토록 외우기 힘들었던 주기율표를 성인이 되어 줄기차게 외웠던 기억이 있다. 이후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어느 날 굉장히 익숙한 저자의 이름이 들려왔다. 바로 샘 킨. 홀로 전율을 하면서 오늘 읽은 과학 잔혹사의 저자이다. 사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과학과 역사라는 키워드가 붙었을 때 무조건 싫어하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 한다.


얼마 전 뱅하민 라바투트의 매니악에 대하여 소개한 적이 있다. 책의 절반 이상의 비중이 조니 폰 노이만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과학 잔혹사라고 하기에 과학적인 개발로 인하여 인류를 해친 내용이 주를 이룰 줄 알았는데 완벽하게 예상이 빗나갔다. 오히려 과학이라는 것에 함몰되어 인간성을 버려 끝이 비참한 과학자들의 생애와 그 피해자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당연하게 이들의 발견, 비인간적 선택, 검증은 베이스로 깔려 있지만, 그것보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한 그 이면의 스토리가 훨씬 재밌었다. 그럼 몇 가지만 소개해 볼까 한다.


노예 무역의 참상에 치를 떨었지만, 연구비 충당을 위하여 결국은 노예 무역에 손을 댄 18세기 영국의 헨리 스미스먼의 이야기가 나온다. 박물학 학자였고, 흰개미집 연구로 명성을 쌓은 사람이다. 이 사람에 대하여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실질적 책의 내용은 이렇게 요약을 한다고 제대로 알 수가 없으니 직접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스미스먼이 흰개미집을 연구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 너무 놀라워 공유하고 싶어서 소개한다. 이 책에는 매 챕터마다 이렇게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반짝이게 만드는 에피소드들이 여러 개 나오는데 오늘은 딱 세 개만 소개하려고 한다.


먼저 우리는 농업 혁명이 사피엔스의 전유물처럼 여긴다. 게다가 이 농업 혁명은 인간에게 더 많이 일하고 덜 건강하고 더 불행하게 하는 지상 최대의 사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사실 이 농업이 사피엔스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한다면 믿겠는가? 그렇다. 스미스먼이 흰개미집을 연구하다가 개미가 6천만 년 전부터 농사를 지어왔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심지어 개미들이 작물을 기른 이유도 인간처럼 식량을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 아마 호기심이 조금만 있는 사람이라면 이 부분을 읽으면서 '과학 잔혹사'라는 책에 손이 근질거릴 것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로 눈을 반짝이면서 읽었던 부분도 소개한다. 과거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의과대학에 해부용 시신이 많이 부족했다고 한다. 대안으로 도굴꾼들이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고, 나중에는 더 심한 범죄로 이를 충당했다고 한다. 좀 웃겼던 것은 남의 무덤을 파헤치는 것보다 시신에 있는 수의나 보석을 훔치는 것이 더 중죄로 인정되어 사형 선고를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몇 푼을 받기 위하여 밤새 타인의 무덤은 파헤쳐도 그 안에서 나오는 물건은 모두 놓고 갔다고. 심지어 당시 한 건당 금액도 그리 높지 않아 저 물건들이 더 가치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나중에 이것이 문제가 되면서 결국은 구빈원과 무연고자 시신만 의과대학으로 보내기로 하였는데 삶에 의한 생물학적인 변화로 인하여 장기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결국은 기증으로 흘러간다. 자! 그럼 역사상 최초로 자신의 시신을 기증한 사람이 누구일까?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공리주의를 주창한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다. 인류를 위하여 자신의 사후까지 기증한 철학자라니 생전의 모습을 사후에도 실천하려는 것 같아 인상 깊었다. 정말 공리주의가 무엇인지 철저하게 실천으로 증명한 사람이지 않을까 한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에피소드는 우리에게 CSI, NCIS, FBI, SUV 등등 온갖 알파벳이 난무하는 범죄과학 드라마를 연상케하는 스토리이다. 심지어 그 배경은 하버드 대학교 의과대학이었으며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하버드대 의학과 출신이었다. 둘 사이가 그렇게 좋은 사이는 아니었는데 어느 날 피해자가 가해자를 만나고 난 후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아무리 찾아도 없는데 어이없게 이곳의 수위가 억울하게 의심을 받게 되어 이를 벗어나기 위하여 가해자의 사무실을 뒤지다가 머리가 없는 시신을 발견한다.


당시에는 계급론이 있어 같은 계급끼리는 어지간하면 건드리지 않는 계급 동맹이 관례라고 하였다. 배심원을 제외한 모두가 하버드대 졸업생이었던 것. 심지어 판사는 우리에게 꽤 친숙한 사람과 관련이 있었다. 바로 모비딕의 저자 허먼 멜빌의 장인이었던 것. 모든 사람들은 당연하게 수위가 억울하게 누명을 쓸 줄 알았다. 계급도 낮고 그들만의 리그였으니까. 게다가 시체에 머리가 없고 심하게 타서 신원확인이 어려워 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여기서 치과 의사와 해부학자들의 활약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치아가 틀니였는데 이 틀니에 열을 가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깔끔하게 설명하는 법의 치과학의 진면목으로 법정은 시작이 된다. 게다가 해부학에 도가 튼 학자들은 난도질한 사람이 누구이든 의학과 해부학에 능통한 자라는 것을 증명하였고, 수위는 이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결국은 계급 동맹이 깨지면서 가해자인 교수가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에 처해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법의학의 초기 역사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것은 과학자들과 의학자들이 윤리 의식을 잃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아마 눈치가 빠른 분이라면 작가가 이야기를 굉장히 매끄럽고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게 썼다는 것을 알 것이다. 즉, 지루하기 짝이 없는 역사적, 전문적 용어가 아니라 어느 누가 보더라도 이해하기 쉽고 빠져들기 쉽게 내용이 전개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앞으로 더 먼 미래에 인류에게 어떤 범죄가 발생할 수 있을지에 대한 예시를 들면서 책은 마무리된다. 이것이 단순 공상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성을 대입하여 든 예시여서 굉장히 신빙성 있게 느껴졌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문장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많은 사람은 훌륭한 과학자를 만드는 것이 지성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훌륭한 과학자를 만드는 것은 인성이다."

샘 킨의 과학 잔혹사 중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 인용문 p. 436


이 말은 프롤로그를 들어가기 전에도 나오며 12개의 에피소드가 끝난 후 결론에서 또 한 번 나온다. 즉, 작가가 이 책을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말을 가장 잘 축약해 놓은 인용문인 것이다. 책의 과학자들은 의외로 돈이나 명성보다 지식 욕구에 의해 범죄를 저지르는 경향이 있었다. 범죄의 내용도 굉장히 다양했는데 앞서 소개한 것과 같이 노예 무역부터 시작하여 도둑질, 모함, 동물 고문 및 살해, 비인간적 실험, 성별 교체, 각종 말도 안 되는 수술, 사기, 세뇌, 살인 등등 그 유형도 굉장히 다양했다.


얼음송곳으로 정신적으로 아픈 환자에게 뇌 수술을 너무나 가볍게 진행한 의사 얘기를 보면서 수재나 캐헐런의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가 떠올랐다. 딱히 병명과 증세를 확실하게 설명하지도 못하면서 일단 가두고 약을 먹이고 뇌엽 절제술을 시행하던 것을 직접 침투하여 실험한 로젠한의 이야기가 거짓이라는 것을 고발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오늘 과학 잔혹사를 보면 로젠한이 직접 들어가서 실험한 것은 아닐지언정 그와 같은 치료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명성을 위하여 하루에 수십 명씩 의사 한 사람이 집도를 했다니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도 뭔가 비윤리적인 행동을 저질렀을 것이다. 이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경계 태세이다. 카를 융이 말했듯이, 악인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으며, 그 사실을 인정할 때에만 그 악인을 길들일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샘 킨 과학 잔혹사 p.435


샘 킨은 과학자와 의학자들이 자신의 잘못을 못 본체 하면서 잠시 스스로의 잘못을 정당할 때 그 연구의 결과 또한 매우 좋지 않다고 책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말한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었던 것 같다. 그 대상이 꼭 과학자와 의학자만이 아니라는 것! 바로 당신일 수도 있다는 것! 그때 스스로의 잘못에 대하여 정당화를 한다면 이 책에 나오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인간처럼 될 수 있으며 그 결말은 결단코 본인이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경고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샘 킨의 과학 잔혹사는 단순하게 과학에 관심이 있거나, 인류의 숨겨진 역사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도 참 좋은 책이지만, 글을 쓰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는 책이다. 너무나도 다양한 인간 군상과 미래에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범죄까지 예시를 잔뜩 들어놨으니 말이다. 500페이지가 넘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아마 아이디어가 필요하면 언제든 다시 펴서 볼 도서로 기억될 것이다.



#샘킨 #과학잔혹사 #해나무 #영감도서 #과학의이면그림자 #서평단 #과학도서 #역사도서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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