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극한 생존 - 지구상 가장 혹독한 환경에서 피어난 생명의 경이로움
알렉스 라일리 지음, 엄성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12월
평점 :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알렉스 라일리의 『극한 생존』은 지구상 가장 혹독한 환경에서 피어난 생명의 경이로움에 현미경을 들이댄 작품이다. 물·산소·빛이 전무한 환경, 생명체가 견디기 어려운 고압과 고온, 그리고 치명적인 방사능 속에서도 버티며 살아가는 존재들까지 다양한 동식물이 예로 제시된다. 라일리는 단순히 이런 기이한 생물들이 지구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이제 각 사례가 드러내는 층위와, 그 뒤에 숨은 그의 메시지를 살펴보자.
생명의 경이로움을 글자로 옮긴 알렉스 라일리의 『극한 생존』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는 물이나 산소, 먹이가 거의 없는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생명체들과 그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다룬다. 2부는 극저온, 극고압, 극저압, 극고온 같은 물리적 한계를 버티는 동물들의 세계로 이어지고, 마지막 3부에서는 빛이 완전히 차단된 공간이나 강한 방사선 환경, 체르노빌 같은 오염 지역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을 소개한다. 이 기묘한 존재들은, 생명이란 말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다시 묻게 된다.
알렉스 라일리의 『극한 생존』은 매 페이지마다 신비한 생명체를 불러내 독자의 시선을 붙잡아 둔다. 이 책은 단순한 소개를 넘어서, 그 존재들을 발견하고 연구하는 과정과 그들이 어떤 진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까지 차근히 짚는다. 그 생존 메커니즘은 인간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가능성까지 품고 있고, 생김새와 습성은 흔히 떠올리는 ‘외계인 도감’과 닮아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가볍게 빠져들 수 있는 이 흥미로운 여정 속으로 천천히 들어가 보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존재는 물 없이 살아가는 물곰, 그러니까 완보동물이다. 이름은 낯설지만 지구 어디에나 있고, 심지어 우리가 사는 베란다에도 조용히 붙어 있다. 너무 작고 사람에게 해가 없어서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이 생물은 물이 없어도, 먹이가 없어도 버틴다. 방사선에 노출되어도 멀쩡히 돌아온다. 그래서 현미경으로만 보이는 이 작은 동물이 지구상에서 가장 강인한 생명체로 인정받았고, 실제로 우주까지 다녀온 고대 무척추동물이 되었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 우주여행.
이들은 물기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살아가지만, 극한의 열과 추위(남극), 강한 방사선, 높은 압력(해저)에서도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다. 물이 사라지면 휴면에 들어가 체내 수분의 98퍼센트까지 밀어내고 단단한 껍질 같은 툰 상태로 변한다. 이렇게 몇 달, 몇 년을 버티다가 물 한 방울만 주어지면 다시 살아난다. 이 과정은 잠에서 깨는 것보다 ‘부활’에 가까워서, 18세기 이후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둘러싼 논쟁의 한가운데에 이 작은 동물이 천천히 고개를 내밀게 되었다.
이렇게 물이 없어도 버티는 존재가 완보동물만은 아니다. 남서아프리카 나미브사막의 웰위치아 미라빌리스, 그 사막에 사는 일부 딱정벌레, 가시도마뱀 역시 비슷한 능력을 지녔다. 특히 딱정벌레와 가시도마뱀은 안개를 모아 몸으로 물을 끌어들이는데, 이는 인간이 안개를 모으기 훨씬 전부터 이어져 온 생존 기술이다. 미국 남서부의 메리엄캥거루쥐나 킬리피시도 장시간 물 없이 살아남는다. 이들의 존재 자체도 기이하지만, 그 몸이 작동하는 방식은 더더욱 신비로워 독자를 책 속으로 고스란히 끌어당긴다.
2장으로 넘어오면 더 기묘한 생명들이 등장한다. 바로 산소 없이도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멋쟁이거북, 코끼리물범, 피놀로리쿠스 친치아이, 유공충, 붕어 종의 일부, 벌거숭이두더지쥐까지 생각보다 긴 목록이 나온다. 이들을 연구한 과학자들은 흥미로운 사실에 주목했다. 몇몇 종은 암에 대한 강한 내성을 지니고, 어떤 종은 손상된 신경 세포를 다시 자라나게 한다. 이들의 메커니즘을 정확히 밝힌다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해온 여러 질병과 맞서는 새로운 치료법이 나올지도 모른다.
책에 등장하는 생명체들은 일상에서 쉽게 볼 수는 없지만, 한 번쯤은 접한 적이 있다. 바로 우리가 상상 속에서 그려온 외계인이다. 형태를 가늠하기 어려워 상상으로만 만들어낸 기묘한 신체들. 그러나 리사 칼테네커의 『에일리언 어스』에 따르면, 실제 외계 생명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떠올리는 거대한 몸집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미세하고 조용한 존재일 가능성이 높다. 『극한 생존』에 등장하는 동물들과 닮아 있는 것이다. 저자가 이 연상을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는 내내 상상의 영역이 겹쳐지며 꽤 흥미로운 지점이 된다.
『극한 생존』은 등장하는 동식물이 워낙 다양해, 이들의 종류와 특성만 따라가도 지식에 대한 갈증이 충분히 채워진다. 그러나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은 단순한 소개에 머물지 않는다. 그가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다. 지구가 생겨난 뒤, 남세포 같은 미생물들이 산소를 만들어내며 수많은 생명체가 모습을 갖추었고, 그들이 이미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견뎌냈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기온 상승이 계속되는 가운데, 결국 찾아올 여섯 번째 대멸종의 문턱에 서 있다.
매번 대멸종 때마다 95퍼센트 이상의 종이 사라졌지만, 그 틈에서 살아남은 일부는 다시 진화했고, 새로운 생명들이 모습을 틔우며 오늘의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저자는 이 과정이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순간 인간은 당연히 사라질 것이다. 앞에서 보아온 생명체들과 달리 인간에게는 극한의 환경을 견딜 방어막이 거의 없다. 산소가 끊기고, 물과 먹이가 사라지고, 우주에 흐르는 방사선이 지표 위로 내려앉기 시작하면 인간은 그저 우아하게 멸종을 향해 걸어갈 뿐이다.
알렉스 라일리의 『극한 생존』은 이처럼 상상을 넘어서는 생명체들의 목록을 늘어놓으며 묻는다. 생명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가, 그리고 인간은 그 경계 바깥에 선 예외는 아닌가. 이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존재들은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 몸으로 살아가는지를 드러내는 동시에, 생명의 경이로움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이 책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기적에 가까운지, 그리고 그 기적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조용히 일깨운다.
#극한생존
#과학책
#알렉스라일리
#도서협찬
#최재천_교수_추천작
#동식물
#생존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