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쿠데타 - 글로벌 기업 제국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가
클레어 프로보스트 외 지음, 윤종은 옮김 / 소소의책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쓴 서평입니다.



당신이 오늘 마주한 모든 것 중 진실이 얼마나 있을까? 진실과 거짓, 자유민주주의의 기준은 더 이상 명확하지 않다. #그림자권력쿠데타의실체고발 을 내용으로 쓴 #소소의책 에서 출간한 #클레어프로보스트 , #매트켄나드 의 #소리없는쿠데타 는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진실 찾기가 어려운 이유를 찾을 수 있는 키를 마련해 준다. 책을 읽고 나면 타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이익에 따른 권력 구조를 통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림자 권력 쿠데타의 실체 고발을 내용으로 쓴 소소의책 출간 도서 클레어 프로보스트와 매트 켄나드의 소리 없는 쿠데타는 초반엔 에세이 다큐 형식으로 다가와 친화적이지만 전문성이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곧 소름 끼치는 사례들이 등장하고 멀게 느껴졌던 사건이 독자의 발밑 현실로 다가온다. 첫 장은 글로벌 기업과 개발도상국 간 분쟁에서 시작된다.



첫 데이터는 엘살바도르의 채굴권에 관한 이야기이다. 엘살바도르에서는 수질 오염, 자국민의 생명 위협 등을 이유고 채굴권에 대한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를 담당하고 있던 캐나다 기업 퍼시픽 림에서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소를 한다. 수십 년을 싸운 이후 어렵게 엘살바도르는 세계 최초로 채굴권을 전면 금지하는 성과를 쟁취했으나 이런 결과는 매우 희귀한 경우에 속했다.



저자들은 개발 도상국가 국민의 안전성을 위협하며 이들 국가의 자율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통치하지 못하게 하는 국제투자분쟁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역사적인 사건을 바탕으로 꼼꼼하게 살펴본다. 이것을 처음에 만든 세력은 각국의 주요 은행들이었으며 초반 회의 때 아르헨티나, 인도, 태국 등 수많은 국가에서 이 제도가 식민지의 또 다른 이름으로 작동될 것을 우려하여 반대하였다. 그러나 힘 있는 선진국들의 찬성에 의하여 실시된다.



결과적으로 이 제도는 글로벌 기업들이 계약을 맺은 국가들의 자율적 통치에 칼날을 들이대는 도구로 전락했다. 예를 들자면 수질 오염을 방지하기 위하여 일정 농도 이상, 일정 온도 이상이 되면 하천으로 공장의 물을 방류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 제정되었다면 해당 기업은 자신들의 이익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 제소한다. 이 과정은 외부로 공개되지도 않으며 이를 판단하는 중재자는 딱 세 명이다. 이 세명이 중진국 이하의 손을 들어줄 확률이 얼마나 될지는 개인의 판단에 맡긴다.



국제투자분쟁 전문 로펌, 자금을 대출하는 캐피털까지 소송에 얽히며 기업의 운용 자본을 당겨쓸 수 있는 구조로 변질된다. 이후로 넘어가면 드물지만 중진국의 손을 들어준 재판이 나온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재판에선 이겼어도 이익은 기업이 챙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문제가 왜 지금까지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는데 갑자기 외부로 알려지게 되었을까? 바로 국가로 겨냥한 화살이 선진국으로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독일, 심지어 미국까지. 물론 그 이전에도 저자들과 같이 외부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생명의 위협을 받거나 실제로 고문을 당하여 죽은 이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공공연하게 책으로 많은 이들을 찾을 수 있었던 것에는 이런 점도 적용하였으리라 생각한다.



2장으로 넘어가면 국제 원조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이 파트에선 트럼프가 WHO, UNHRC, UNRWA, 파리협정, ILO를 탈퇴하고 USAID를 축소한 배경이 드러난다. 또한 이 과정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딥 스테이트의 존재도 어렴풋하게 독자가 그릴 수 있다. 법으로 제정된 국제 원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내용이 완벽하게 달랐다.



오히려 실정은 많은 이가 손가락질하는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과 결이 비슷하달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국제 원조는 식량, 의약품, 기타 환경 부족으로 인한 교육의 부재를 해결하기 위하여 경제적인 원조를 생각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해당 국가에 이자와 함께 갚아야 하는 대출 형태를 띠거나 채무 감면을 해 준다거나, 상환 일정을 연기한다거나 하는 등의 원조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기타 원조 자금은 국제기구, NGO, 영리 목적의 계약 업체와 하청 업체를 통과하여 빈곤국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이마저도 선진국 기업의 물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쪽으로 이용되었다고 하니 이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이익을 본 것이 누구인지는 자명하다. 이런 행위의 최전선에는 기업이 있으며 이들을 지원사격하는 이들은 정치인이었다. 찬사를 받는 마거릿 대처조차 예시가 되니, 그렇지 못한 인물들은 어땠을까?



그럼 딥 스테이트로 명명된 집단에 대한 정의가 성립된다. 바로 세계은행과 이들과 손잡고 그림자 권력을 키워온 글로벌 기업들이다. 자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정책을 수립하면 국가가 파산할 정도의 소송을 걸고 내용은 비밀에 부친다. 세계 어떤 언론에서도 다루지 않으며 그 결과는 자국의 정치인과 국민이 고스란히 입는다. 이 과정이 무서운 국가는 글로벌 기업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둔다. 지금까지 이런 행태는 중진국 이하에서만 일어났었는데 이제는 선진국을 향하고 있다. 자국을 위험에 빠뜨리게 만드는 것이다.



3~4장에서는 자국 통치자의 능력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쿠데타의 실체를 고발한다. 책 속에는 그동안 우리가 오른쪽 눈으로만 알고 있던 국제적 사안을 왼쪽 눈으로도 볼 수 있게 해 준다. 이런 상황에 자유민주주의는 점차 힘을 잃게 되고, 언론과 경제를 장악한 세력들에 의하여 세계의 시민은 불 피워 놓은 솥에 들어간 개구리가 되어가고 있다. 온몸이 익어서 죽는 줄도 모르고.



그림자 권력 쿠데타의 실체 고발을 내용으로 쓴 소소의책에서 출간한 클레어 프로보스트, 매트 켄나드의 소리 없는 쿠데타는 어느 하나의 진영을 비판하거나 옹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오래도록 믿어온 국제 질서의 틀을 의심하게 만들며 세계를 움직이는 진짜 동력이 무엇인지 묻는다. 진짜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지, 우리는 과연 그 틀 안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있는지, 책을 덮은 지금 그 질문은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바움가트너의 의미는 독일어로 나무를 가꾸는 사람, 정원사를 뜻한다. 폴 오스터의 유작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살아 있는 이의 기억을 돌보고, 사라진 이의 자리를 가꾸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상실의 아픔보다는 희망을 느끼게 하는 상징으로 읽힌다. 이 소설은 죽은 자와 산 자의 위치를 바꿈으로써 남겨질 아내를 위한 다정한 이별 지침서로 다가온다. 평생 존재론적 질문과 정체성, 우연, 언어의 구조 같은 걸 다룬 작가의 마지막으로 남긴 투박스럽지만 사려 깊은 사랑 고백을 따라가보자.






시모어 바움가트너는 일흔이 넘은 철학자이자 교수이다. 아내 애나는 활동적이고 고집스러운 인물로 궂은 날씨에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핑을 나갔다가 세상을 떠난다. 그녀를 잃은 지 9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여전히 그녀를 그리워하며 그녀가 남긴 시를 정리하여 출판 준비를 하면서 보낸다. 그 과정에서 어린 시절은 물론 그보다 더 이전의 부모의 어린 시절부터 회고하며 아내와의 추억 전반을 돌아본다. 아픔뿐인 이별이 전화 통화 한 번으로 인하여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





어느 날 밤 이상한 소리가 나 애나의 서재로 내려간 그. 갑자기 연결도 되지 않은 전화기가 울려 받으니 거기에서는 애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는 죽음 후 자신이 도달한 곳과 그가 자신을 기억하는 한 그곳에서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을 전하며 전화는 끊어진다. 이후 그의 일상은 달라진다. 연애도 하고, 자신의 글도 써서 출판하고 애나의 책도 출판한다. 그녀를 잊는 것이 아닌 온전히 살아 있는 상태로 자신을 만들면서. 그러다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정체불명의 편지가 한 통 도착하는데...






폴 오스터의 유작 바움가트너는 읽기에 따라 철학적인 요소로도, 감정 윤리적인 요소로도 읽힌다. 에브리맨, 제5도살장, 선셋 리미티드를 번역하신 정영목 님은 마지막 옮긴이의 말에 그동안 작가의 성향 그대로 분석, 철학적으로 해석을 하셨다. 그러나 몸이 아프기 시작한 2022년부터 집필을 하였으며 그해 말에는 폐암 4기 진단을 받았고 2023년 3월에 영문판으로 작품이 출간된 것을 바탕으로 개인적으로 이 작품만큼은 감정·윤리적인 해석을 해본다.






#열린책들 에서 출간한 #폴오스터 의 바움가트너는 58세의 아내를 사고로 떠나보내고 상실의 아픔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70대 노년 남성의 이야기다. 이제 곧 죽음을 앞둔 그는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정리하는 동시에 자신이 떠난 뒤 혼자 남겨질 아내를 위해 마지막 인사를 준비한다. 그래서 이 작품의 선율은 두 갈래로 흐른다. 하나는 자신의 삶을 되짚는 회고록의 선율이고, 다른 하나는 이별을 미리 연습하는 사랑의 선율이다. 전자에 방점을 두면 철학적인 작품이 되고, 후자에 초점을 맞추면 다정한 이별 지침서가 된다. 






처음 아내가 죽고 난 후 바움가트너는 살아 있지만 산 것 같지 않은 존재로 지낸다. 두뇌는 죽음을 이해하지만 심장은 용납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어느 날 밤 연결도 되지 않은 전화가 울리며 그 안에서 애나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곳은 천국도 지옥도 아닌 공허한 공간이며 살아 있는 사람이 자신을 기억하는 한 그곳에서 존재할 수 있다고. 물론 이 작품이 판타지물이 아니기에 이것은 주인공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하지 못한 꿈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 사건 이후 자신이 온전하게 살아 있어야 애나도 사라지지 않고 존재할 수 있다고 믿어 최대한 건강한 삶을 유지한다. 그녀를 더 기억하기 위해 과거 그녀의 시를 찾아 읽어보고 그녀와의 연애 시간도 회상한다. 그들의 일대기를 읽어보면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부부로 평생을 지낼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성격이 달랐다. 외향적이고 활동적이며 감정형에 가까운 애나, 내향적이며 이성적 사고형에 가까운 바움가트너. 둘은 의외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영위한다.







과거를 떠올리며, 그녀의 시를 보며 그는 아내가 사라진 세계에서 아내가 다시 사라지지 않고 그녀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전화 한 통으로 인하여 자신의 존재 이유를 깨달은 그는 점차 심장도 그녀의 죽음을 인정하며 살아 있는 시체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삶으로. 이런 과정만을 뽑아 그 감정선을 따라가다가 보면 그 삶의 방식 자체가 폴 오스터가 남겨질 아내에게 건네는 가장 조용한 작별의 언어가 된다. 나의 육체는 사라지지만 언제까지나 당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무언의 포옹이랄까?






또한 우크라이나 땅에 전해 내려오는 스타니슬라프의 이리들이라는 이야기를 그곳의 시인에게 들었을 때 그는 역사적 근거가 전혀 없음에도 무작정 믿는다고 선언한다. 물론, 이것을 역사적 사건에 대입하자면 단순하게 역사적 기록물은 없지만 나타난 현상이 있으므로 신뢰한다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을 애니에게로 대입하면 조금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녀의 목소리가 울린 전화기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고 그녀가 말한 세계에 대한 증언 또한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럼에도 그는 그 전화를 믿기로 한다. 그것은 현실을 증명하려는 태도라기보다 상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믿음의 방식이다. 마치 누군가는 사라진 이리 떼를 믿고 누군가는 존재하지 않는 전화 한 통을 믿는 것처럼. 아내가 이 글을 믿어준다면 이별의 아픔 속에서도 헤매지 않고 조금은 다르게 나와 연결된 채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다정한 당부가 아닐까?






#폴오스터유작 바움가트너에서 등장하는 작품인 운전대의 신비는 언뜻 보면 육체와 영혼, 실체가 없는 어떤 것과 실체를 다룬 것처럼 보인다. 물론 철학적으로는 이런 해석이 맞다. 그러나 이 또한 아내를 겨냥한다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그는 이 작품에서 실체인 몸을 자동차로, 실체가 없는 영혼을 운전자로 비유하였다. 조금 더 독자가 쉽게 이해하게 하기 위하여 오토라는 뜻 안에 자기라는 의미가 있으며 모터라는 말에 운동 근육이나 신경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모터는 자율주행을 하다가 큰 사고를 내고 차 안에 탄 가족이 모두 죽는다. 이때 #바움가트너 는 곧 발표될 경찰 공식 보고서가 참사의 원인을 인간(영혼)의 과실로 명시하리라 생각한다. 여기서 인간은 영혼이다. 그는 다정하게 협박한다. 자율주행의 실패는 결국 영혼의 실수로 기록될 것이라는 것을. 그러니 그녀가 흔들리면 그의 존재 역시 그 어디쯤에서 참사를 맞게 된다며 너무 상실의 아픔에 휩쓸리지 말라며 평소에 그답지 않은 남겨질 아내를 위한 다정한 이별 지침서를 남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결국 부모를 떠나보낸다 - 부모의 마지막을 함께하며 깨달은 삶의 철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박진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변함이 없던 부모님이 만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끼는 나이 대의 자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거동이 불편하시거나 치매에 관한 걱정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오늘 소개할 #인플루엔셜 에서 출간한 #기시미이치로 의 실제 치매 부모 간병기를 통하여 배운 것을 나누는 #우리는결국부모를떠나보낸다 를 보며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기시미 이치로 작가는 우리에게 미움받을 용기로 꽤 유명한 작가이다.





인플루엔셜에서 출간한 기시미 이치로의 실제 치매 부모 간병기를 통하여 배운 것을 나누는 우리는 결국 부모를 떠나보낸다는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마흔아홉 살에 뇌경색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 이야기, 2부부터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의 일상이 중심이다. 특별한 사건 없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상과 기본적인 간병의 현실을 담아 같은 경험을 한 독자에겐 위안을, 아직 겪지 않은 독자에겐 통찰을 건넨다.






특히, 철학을 하는 작가의 특성상 미리 치매에 걸린 부모를 대하는 것에 능숙하리라는 예상을 깨고 스스로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상황도, 권력 구도 안에서 치매에 걸린 부모와 대치 관계를 벌이는 일도, 매번 같은 것을 묻고 억지소리를 하는 상황에 대한 울분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덕분에 독자는 이 글을 유명한 작가의 글로 받아들이기보다 바로 옆에서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는 지인의 말처럼 거리감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누군가는 그저 옆에 있어 등을 토닥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고, 지금 이 순간 치매 부모를 돌보고 있는 이에게는 내가 왜 힘든지를 비로소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아직 그런 상황을 겪지 않은 자녀에겐 언젠가 맞닥뜨릴 시간을 준비하게 만드는 지혜로 다가온다. 이 작품은 상황을 바꾸기 위한 특별한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마음가짐 하나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음을 조용히 일러주는 심리적 지침이 되기에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닿을 수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과거의 부모님을 지우고 현재의 부모님을 받아들이라는 조언이었다. 많은 자녀들이 이 괴리로 인해 연로한 부모와 충돌을 겪는다. 나 역시 이 부분에 대해 부모님과 자주 대화해왔기에 더 깊이 공감했다. 어릴 적 히어로 같았던 부모의 모습이 나이 들어 한 조각씩 무너질 때 자녀는 설명하기 어려운 혼란을 겪게 된다.







자녀는 왜 평소에 잘하던 것을 못하는지 갑갑해 하고, 양친은 우리도 많이 늙었으니 이제는 어린 시절 너희를 키울 때 이해해 주듯 너희가 우리를 이해해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게 된다. 그 이유는 바로 어린 시절 자신도 모르게 각인되어 있던 슈퍼 히어로인 엄마, 아빠의 이미지가 너무 굳건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말한다. 과거의 이상적인 부모의 이미지를 지우지 않고 현실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서로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우리는 자녀와는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키려 노력하지만 나이 든 부모에겐 과거의 이미지를 그대로 덮어씌운 채 별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간병하는 이와 받는 이 모두에게 매 순간 생지옥이 될 수 있다.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라면 마음에서 먼저 포기해야 할 것을 내려놓는 편이 낫다고 그는 조언한다.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부분은 과거를 깡그리 잊어버리는 병에 걸린 이들도 멀쩡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존재의 이유 즉, 가치를 인정받길 원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것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회적 의미의 가치는 아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환자 스스로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느낄수록 고통을 받으며 잊히는 것이 두려워 더 고통스러운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프다고 쓸모없는 존재로 낙인을 찍는 행위는 자신의 지옥문을 최대한 빠르고 넓게 여는 행위라고 한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1분 전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존재의 가치를 타인이 인정한다고 느끼게 만들 수 있을까?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 가장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효율을 따지지 않고 행위가 아닌 존재 자체에 감사를 전하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 무 쓸모가 아니라 존재하기에 가족의 결속을 이어주는 쓸모가 있다는 사실을 자녀 스스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마지막으로 치매 환자를 둔 가정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인 기억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미 우리는 이와 같은 상황을 영화로 많이 마주하였다. 치매 환자를 둔 부부 이야기인 노트북, 사고 이후 어떠한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와이프를 둔 서약, 매일이 새로운 연인을 둔 첫 키스만 50 번째 등등으로. 이렇게 영화로 마주할 때는 낭만으로 다가오지만 직접 겪게 되면 낭만적인 상황은 찾아볼 수 없다. 






언제나 시간이 과거-현재-미래로 흐르는 자녀와 현재-현재-현재로만 흐르는 부모님. 이 관계에서 승자는 절대적으로 자녀가 될 수 없다. 그러니 언제든 오늘부터 1일이라는 연애의 설렘을 적용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시간대가 생소할 수도 있는데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시간이 현재-현재-현재로 흐른다고 설교한다. 그래서 나의 시간대를 하나님께 들이대면 깨지는 것은 자신이라고. 이제 이것을 우리는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분께 허용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치매 환자를 대하는 태도나 시스템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개인주의가 팽배한 국가에서 사는 작가가 이런 말을 하니 더욱 심각하게 다가왔다. 인플루엔셜에서 출간한 기시미 이치로의 실제 치매 부모 간병기를 통하여 배운 것을 나누는 우리는 결국 부모를 떠나보낸다는 가장 일상적인 언어로 쓰여 마치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 같지만 가슴 깊숙이 박히는 것처럼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릴 적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은
고정욱 지음 / 샘터사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어린 시절 옆집에 소아마비에 걸려 중증 장애인이 된 삼촌이 살았었다. 세상을 잘 모르던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되기도 하고, 어른들은 자신들보다 모자란다고 깔끔하게 무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에 살던 우리 가족은 다 안다. 그 삼촌이 당시 우리가 알던 그 어떤 사람보다 머리가 비상하고 똑똑했다는 것을. 오늘의 책인 #샘터 에서 출간한 #에세이 #고정욱 작가의 #어릴적내가되고싶었던것은 을 읽으며 그 삼촌과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샘터에서 출간한 따뜻한 신간 고정욱의 『어릴 적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은』에서는 총 다섯 가지 카테고리로 작가가 평소에 겪은 일들과 생각을 바탕으로 쓰인 생활 에세이이다. 키워드에 따라 나, 사랑, 책, 용기, 소명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총 46개의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제목만 보면 꽤 동화적인 느낌이 나지만 내용은 확실하게 어른을 위한 책이다. 모진 세상의 바람에 길을 잃은 어른, 자식을 키우는 데 옳다고 믿었던 것에 흔들림이 생긴 부모, 꿈은 있지만 용기가 없어 포기하는 성인들을 위한 내용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책의 처음은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장애인을 언급하며 시작한다. 나는 장애인이 아닌 데라는 마음이 자리 잡기도 전에 작가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다가 보면 급변하는 세상에서 누구나 안고 살아가는 동일한 공포를 마주하게 된다. 바로 쓸모없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저자의 경우는 자신이 소아마비를 겪으며 가진 중증 장애에 대한 허들에 걸려 느낀 케이스이지만 이는 중력에 의해 지면에 발을 붙이고 사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느끼고 있는 공포감이다.


보통 이런 경우 꼭 쓸모가 있어야 존재의 이유가 될까?라는 질문으로 결론을 내며 듣기 좋은 말로 다독이며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작가는 오히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타인이 정해 놓은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을 맞춰야 한다고. 그 첫 번째 방법으로는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을 남의 것과 혼동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좋은 대학, 대기업이 아닌 나만의 것. 그러나 보통 성인이 되고 나면 스스로 이런 기준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잘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쩌겠는가? 사회가 센티미터 자를 들고 들이대는데 나 혼자 부피를 재는 저울을 들고 설치는 게 옳지 않아 보이는 것을.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가 보면 스스로의 존재 가치에 의심을 품게 되고, 삶의 경로를 잃어버리게 된다. 내가 가야 할 곳은 제주도인데 사회는 내비게이션을 일괄적으로 서울이라고 규정해 놓았으니 말이다. 이때 작가는 작은 방법을 알려 준다. 가장 순수했던 마음으로 가졌던 어릴 적 내가 되고 싶었던 것에 중점을 맞추라고. 그러면 이런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그는 이미 현재 활동하는 작가 중에서 가장 많은 책을 펴냈고, 가장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고, 연간 300회의 강연을 다니며 2025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말괄량이 삐삐 작가) 추모상 후보에 올랐으니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사실, 그가 길지 않은 지면에 소개한 그의 일생은 결과만 가지고 재단하기에 미안할 정도로 난관이 많았다. 다만 그는 갖은 힘을 다해 그것을 넘었기에 현재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을 책장이 넘어가면서 독자 스스로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에 목차를 보고 가장 인상 깊을 것 같은 파트가 책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마지막 장을 읽고 책을 덮고 나니 의외로 네 번째 파트인 용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아마 이 파트가 직업에 관련된 이야기였고, 또한 꿈은 가졌지만 선뜻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자신을 투영할 수 있기에 더 기억에 남은 듯하다. 처음에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애초에 의대에 진학조차 하지 못한 저자는 국문학과를 나와 대학 강단에 섰으며 이후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소설가가 되었다.


점차 문학작품의 자리가 좁아지면서 어쩌다 한 번 써 본 동화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제는 까칠한 재석이라는 책 제목을 온 국민이 알 정도로 유명한 동화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리얼리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가가 트렌드에 맞춰 판타지로 넘어가야만 했던 시기에 심리적 벽을 허물면서 했던 고심을 활자로 보고 있었지만 바로 옆에서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환영이 보일 정도로 생생하게 독자에게 다가온다.


우리는 인공지능이 앞으로 인간의 직업을 모두 대체하여 설자리가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항상 그림자처럼 달고 산다. 이런 점에 대하여 6.25가 끝나고 폐허가 된 도시에서 태어나 최첨단의 시대를 걸어온 작가는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인간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며 탄력성과 유연성은 두 발로 걷는 지능인에게 가장 절대적인 무기라고. 과거에 있던 연탄장수가 사라질 때 우리는 그들의 밥그릇을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남았고, 그의 자식들도 사회에 무사히 정착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면서.


그가 겪은 수많은 일 속에서 스스로 느낀 점을 독자에게 들려주는데 그 과정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막연함을 느끼게 하는 부분도 있다. 바로 장애인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인데 개인적으로 딱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어 생각지 않고 살아서인지 몰랐던 부분을 상당히 많이 알 수 있었다. 제일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은 장애인 주차 공간에 차를 대는 사람이었다. 누구나 주차 공간이 없을 때 비어있는 이곳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은 사람은 없었겠지만 기본 에티켓은 지키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샘터에서 출간한 신간 에세이 고정욱 작가의 『어릴 적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은』은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돕는 내용도 있지만 핵심은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스스로의 심연을 투영하는 과정에서 내 안에 있는 나만의 무게추와 타인의 것이 아닌 진정한 나만의 기준을 찾아 사람마다 기준이 다른 행복을 찾는 이야기이다. 모든 공기가 정체됨을 느끼는 순간에 작가는작은 바람이 되어줄 그의 목소리를 지금 전한다. 이제 정체된 당신의 공기를 살짝 움직여볼 시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데란 미래의 문학 11
데이비드 R. 번치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모데란은 철과 플라스틱, 규율과 반복의 세계에서 인간성이란 무엇인지 묻는 작품이다. 약 40편의 단편이 느슨하게 연결된 연작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이야기 사이를 잇는 것은 감정과 기억의 흔적이다. 겉으로는 기계화된 미래 사회의 풍경을 담고 있지만 결국 우리가 사는 지금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인간이 스스로를 통제 가능한 기계로 바꾸려는 그 환상을 조용히 조롱하며 결국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남긴다. THE? or A?







#폴라북스 에서 출간한 #데이비드R번치의 #모데란은 인간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주인공이 스스로 모데란이라는 도시국가에 들어오며 시작된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데 실패했기에 감정을 제거한 채 강철로 이루어진 기계 인간들의 세계에 자신을 맞춰보려 한다. 처음에는 관찰자로 머물던 그는 점차 성체화 과정을 거쳐 인간성을 하나씩 잘라내고 시스템에 동화된다. 그 변화는 한순간이 아니라 점진적인 삭제의 연속이다. 시스템은 그에게 M을 부여하며, 그는 감정과 기억, 자율성을 하나씩 포기하고 모데란의 일부가 된다. 







모데란 속에는 M이 정확히 무엇의 약자인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M을 받을수록 인간성을 잘라낸다는 점에서 M이 MEN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즉 M이 많다는 것은 곧 사람다움을 많이 포기했다는 뜻이고 결국 존재하는 대상의 정의가 사람에서 기능으로 옮겨간다는 의미다. 작가는 사람이라는 개념이 잘려나갈 때 어떤 파편이 남고 무엇이 마지막까지 저항하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알파벳 하나로 인간성 제거를 단계화하는 발상 자체가 이미 섬뜩했다.







이 작품의 핵심 질문은 테세우스 배의 역설과 연결된다. 이는 배의 모든 부품을 하나씩 교체한 후에도 여전히 같은 배인지 묻는 고대 철학의 문제다. 주인공은 감정, 신체, 기억까지 모두 교체된다. 이때 그는 여전히 동일한 그인가? 아니면 시스템만 남은 껍데기인가? 결국 작가는 테세우스 배의 역설의 정답을 독자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시스템에 잡아먹힌 당신은 아직 the human 인가, 아니면 a something 인가? 이 배는 어디까지가 '그'이며, 어디부터가 시스템인가?







책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성체다. 성체란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완전히 기능화된 존재를 뜻한다. 주인공은 열 번의 M을 통해 그렇게 성체가 된다. 그는 완전한 소멸 직전 스스로 그 길을 멈추고 다시 내려온다. 죽음 혹은 융합이라는 선택지 앞에서 마음을 바꾼 것이다. 이 장면은 마치 작가가 마지막으로 던지는 질문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너는 아직 사람이니? 그가 남기로 한 그 순간 시스템은 완성되지 못하고 균열은 침묵 속에서 자라난다.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이 시스템이 처음부터 인류를 없애려는 것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작가는 단순히 기계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실제 사람을 깎아 기계로 만드는 길을 택했다. 왜 굳이 그렇게 어렵고 먼 길을 돌아서 가는 것일까? 이 지점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모데란은 외부의 억압이 아니라 인류 내부의 욕망에서 시작된 것을. 완벽함, 통제, 고통 없는 질서를 추구한 결과가 인간성 제거라는 모순된 결론으로 이어졌다는 것. 사람은 스스로를 없애기 위해 스스로를 설계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모데란의 세계는 결코 낯설지 않다. 플라스틱으로 덮인 땅, 증식되는 요새, 플러기 플라기 버튼 같은 귀여운 이름의 통제 장치. 특히 이 버튼의 이름은 아이 장난감 같은 어감으로 사람들의 경계를 무디게 한다. 감정을 억제하는 장치에 유치한 명칭을 붙여 통제받는 기분을 없애는 방식은 현대 사회의 기술 문명과도 연결된다. 우리는 종종 편리함과 익숙함이라는 이름으로 자율성과 감정을 시스템에 위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체제는 이미 부드러운 언어로 포장된 명령을 내린다. 핵무기에 선샤인이라는 이름을 붙이듯.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살아 있다. 그러나 살아 있다는 것이 곧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는 말을 하지 않고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며 시스템의 일부로서만 존재한다. 완전한 기계 인간이 되지는 않았지만 다시 온전한 사람이 되지도 못한다. 이 어정쩡한 간극이 모데란의 가장 잔인한 결말이다. 감정을 선택하지 않은 자에게 인류라는 말은 더 이상 붙지 않는다. 그는 살아 있는 껍데기로 남는다. 기능만 있고 의도도 없다. 독자는 그 침묵 속 떨림을 감지하게 된다. 인간은 과연 무엇인가?








그러나 그는 융합 직전 마음을 바꾼다. 죽으러 갔다가 돌아온다는 이 장면은 단순한 생존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모데란과 완전히 합쳐지는 것을 거부하고 아주 조용히 한발 물러선다. 이유도 설명되지 않지만 그것이야말로 감정의 증거다. 시스템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계산되지 않은 감정의 개입이다. 완전한 기계가 되지 않겠다는 이 미세한 거절이야말로 인류라는 증거이며 동시에 이 소설 전체의 결론이자 출발점이 된다. 거절은 의지이며, 의지는 감정이다.







결국 모데란은 하나의 거대한 실험실이다. 인간이 만든 시스템이 인간을 다시 정의하고 감정과 기억은 제거해야 할 에러로 취급된다. 하지만 작가는 끝까지 그 에러가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세상에서도 감정을 기억하는 독자만이 이 소설을 끝까지 읽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아직 인간이라고. 이 문장은 선언이 아니라 생존자만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절규이다. 사라지지 않는 감정은 결국 살아 있음의 증거다. 그리고 불안을 야기하는 확고한 흔들림이다.​






책을 덮고 나면 인간성은 한 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천천히, 단계적으로, 기능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씩 잘려나간다. 두려움과 불안을 가진 고유의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 사회가 원하는 보편적인 시스템 속의 인간으로 살 것인가가 작가가 마지막으로 던지는 질문이다. 당신은 인간성을 유지하고 있는 The human 인가, 아니면 기능 하나만 남은 A something 인가? 기능 하나만 남은 A something의 목소리가 궁금하다면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