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의 세계 - 보이지 않는 숨, 질병, 그리고 생명의 역사
칼 짐머 지음, 이상훈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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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직접 작성한 서평입니다.



칼 짐머의 『공기의 세계』는 인간이 발견한 보이지 않는 숨, 질병, 그리고 그 과정에서 걸어온 생명의 역사를 따라가는 과학 논픽션이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에 이어 코로나19를 현재에도 겪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공기란 타인의 학문으로만 치부하기 힘든 생활형 과학에 속한다. 그 어떤 생물보다 공기에 민감한 인류이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보다 그 메커니즘을 더 모르고 있다. 이런 점에 착안하여 퓰리처상을 수상한 칼 짐머는 가장 쉬운 언어로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을 전하고 있다.



칼 짐머 작가 소개



예일대학교 분자 생물 물리학 및 생화학 겸임 교수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과학 저술가이다. 분자생물학부터 진화, 감염병까지 폭넓은 분야를 다루며 과학 저술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꼽히는 내셔널 아카데미 과학 커뮤니케이션 상을 비롯해 미국 과학진흥협회 과학 저널리즘 상(3회), 과학 대중화에 기여한 개인에게 수여하는 스티븐 제이 굴드 상, 전미과학 작가협회 사회 저널리즘 과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뉴욕타임스》 탐사 보도팀 일원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심층 보도하여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웃음이 닮았다』, 『생명의 경계』, 『바이러스 행성』, 『진화』, 『기생충 제국』 등이 있다.


줄거리


칼 짐머의 『공기의 세계』는 인간이 공기 속 생명을 발견하고, 질병의 전파 방식을 이해하기까지 거쳐 온 긴 시행착오를 따라가는 과학 논픽션이다. 높은 하늘의 미생물을 좇은 과학자들과 공기 전염을 주장했던 연구자들, 전쟁 속에서 활용된 생물학 연구,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까지 시대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책은 공기가 단순히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과 입자가 이동하는 하나의 세계임을 보여주고, 인간이 왜 그 사실을 오랫동안 받아들이지 못했는지를 추적한다.



나의 생각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심층 보도하여 퓰리처상을 수상한 칼 짐머는 『공기의 세계』에서 그간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지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2020년 코로나19는 국경을 닫고 도시를 멈추게 했다. 각국은 WHO의 권고에 따라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움직였지만, 정작 인간은 그것이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두고 오랫동안 헤맸다. 



질병과 공기에 대한 인간의 고민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이어졌다. 중세 사람들은 나쁜 공기인 미아즈마를 의심했고, 병의 원인을 알지 못하면서도 사람과 물건을 격리했다. 심지어 현대에 우리가 경험한 입국 전, 후 격리 또한 중세 시대에 이미 시행하고 있었다. 즉, 코로나19 당시 전에 없던 통제라고 여겼던 격리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사용된 방어 방식이었다.



이후 과학자들은 공기가 비어 있지 않다는 증거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프레드 마이어는 높은 하늘에서 생명을 채집했고, 웰스 부부는 작은 입자가 공기 중에 머물며 질병을 옮길 가능성을 연구했다. 그러나 이들의 발견은 중세 시대의 미아즈마에 관한 기존의 믿음을 쉽게 바꾸지 못했다. 오히려 배척당했다. 심지어 코로나19가 등장했을 때조차 공기 전파 가능성은 WHO의 초기 지침에서 중심적인 설명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도그마를 넘어서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오랫동안 배척당한 공기 전염 이론은 인간을 보호할 때보다 죽이기 위한 연구에서 적극적으로 이용되었다. 전쟁 속에서 각국은 병원체가 어떤 크기일 때 폐 깊숙이 도달하고 공기를 따라 이동하는지를 연구했다. 인간을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믿지 않았던 이론을, 인간을 죽이는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믿은 셈이다. 인간을 살리기 위해 연구한 이 이론의 밑바탕을 만든 웰스 부부는 죽는 그날까지 배척당했지만 타인을 죽이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사스와 신종플루, 메르스가 차례로 우리를 지나갔다. 수많은 감염과 죽음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공기 전파 이론은 좀처럼 중심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그러다가 우리가 잘 아는 코로나19가 등장했다. 사람들은 WHO나 국가의 권고에 따라 손을 씻고 문 손잡이와 택배 상자를 소독했으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반면 공기 중 작은 입자를 통한 감염 가능성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미 수십 년 동안 증거는 쌓이고 있었지만 인류는 다시 같은 질문 앞에 섰다.


책의 말미에는 조금 더 근본적인 역사가 등장한다. 인간의 감염병 가운데 상당수는 동물과 인간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가축을 기르고 한곳에 정착한 농업혁명, 수많은 사람을 도시로 끌어모은 산업혁명, 공장형 축산과 항생제의 사용까지 인간이 생존과 번영을 위해 선택한 방식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감염병이 나타나고 퍼질 조건도 함께 만들었다. 인간은 질병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환경을 바꾸었지만, 미생물 역시 그 변화 속에서 함께 적응하고 진화했다.



『공기의 세계』는 인간이 공기를 전혀 몰랐던 역사가 아니라, 발견하고도 외면했던 시간을 따라가는 책이다. 또한 앞으로 우리가 공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과제를 남긴다. 책의 글자를 따라가다 보면 공기 속을 떠다니는 생명보다 더 오래 남은 것은 어쩌면 인간의 확신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 과연 우리는 코로나19 이후 다시 찾아올 공기 전파 감염병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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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친구
김가지(김예지)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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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김가지의 『서른의 친구』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어른의 허기를 다룬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관계 속에 놓이는 듯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을 나눌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고, 각자의 삶이 바빠지는 동안 친구는 자연스럽게 뒤로 밀려난다. 문제는 그 빈자리가 생각보다 늦게, 그리고 크게 찾아온다는 점이다. 곁에 사람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 마음 한쪽이 비어 있는 듯한 감각. 『서른의 친구』는 바로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김가지의 『서른의 친구』 속 은아는 회사에서 대리로 일한다. 사회적 자리는 조금씩 올라갔지만, 관계는 점점 납작해졌고 마음에는 허기만 남았다. 어린 시절의 친구들은 대학과 취업, 결혼이라는 통과의례 속에서 멀어졌고, 대학 친구와 회사 동료와의 관계도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그렇게 은아는 외로우면서도 선뜻 누군가를 마음에 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그래도 은아는 그 허기 앞에 그대로 주저앉지 않는다. 아주 서툴고 조심스럽게, 다시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쪽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다.



김가지의 『서른의 친구』는 친구가 없어서 외로운 사람이 오히려 친구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를 보여준다. 외로움을 해결해 줄 사람을 찾는 마음은 관계를 더 무겁게 만들기 때문이다. 반대로 혼자도 괜찮은 사람은 상대에게 부담을 덜 주고, 그래서 관계가 자연스럽게 깊어질 가능성도 커진다. 여기에는 원하는 마음이 클수록 오히려 원하는 대상에서 멀어지는 심리학의 역설이 깔려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심리학의 역설이란, 원하는 마음이 클수록 오히려 원하는 대상에서 멀어지는 현상을 뜻한다.


이런 현상은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일이다. 작품 속 은아는 그래서 너무나 쉽게 독자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게 만든다. 이유도 없이 멀어진 어린 시절의 친구, 대학과 사회인 사이에서 만난 이의 이후 상황에 따른 관계의 위계 형성, 직장 내에서의 공적인 상하 관계 및 경쟁 관계에 놓인 눈치 게임 속에서 친구라는 단어는 가장 먼저 힘을 잃어버리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심히 앞을 향해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옆을 돌아봤을 때 느끼는 공허함은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그제야 우리는 친구가 단순히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 한 시절의 나를 함께 살아낸 존재였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한때 당연했던 관계 역시 쉽게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이미 스스로 관계를 되돌리는 방법조차 잊어버린 뒤라는 점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병원을 찾고, 누군가는 의도적인 행동을 시도하며, 또 누군가는 체념에 가까운 받아들임을 선택한다. 『서른의 친구』 속 은아의 선택도 그 갈림길 위에 놓여 있다.


은아의 행동에서 우리가 더욱 공감하게 되는 이유는 가장 먼저 체념하기 때문이다. 혼자는 무섭지만, 무엇인가를 시도하는 행위는 더 무섭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아는 나이이기에.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런 시기에 그녀가 가장 쉬운 길을 버리고 무엇인가를 시도하기 위하여 조언을 구하는 장면이다. 과거와 달리 그녀의 조언자는 바로 AI였다. AI는 일반적인 내용을 안내해 주지만 그 내용은 생각보다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AI의 조언을 기계적으로 넘기지 않고 마음에 새기고 하나씩 시도하기 시작한다.


아마 이후 은아가 AI의 조언에 따라 행동하자마자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이 책은 그저 그런 자기 계발서 같은 만화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부분을 매우 사실적으로 다룬다. 첫 시도부터 은아의 기대를 무참히 어긋나게 만든다.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와는 가치관의 차이가 너무 컸고, 취미 모임조차 첫 시도만으로는 다음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처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외로움에 사무친 그녀는 다음 시도를 한다. 행동은 적극적이지만,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소극적인 자세로.



이번에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독서와 관련된 취미 모임에 참여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또 다른 복병을 만나 모임 참여를 고민한다. 그러나 이 시기 모임원들에게 혼자만의 여행을 추천받고, 그녀는 복잡한 마음을 이끈 채 그야말로 계획도 없이 나 홀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의 문제점, 곧 심리학에서 말하는 역설을 깨닫고 조심스럽게 다음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이 부분은 이론적으로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은아가 체험을 통해 다음 첫걸음을 떼어낸다는 점에서 흔하면서도 식상하지 않게 마음을 흔든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이 책이 말하는 마음의 허기를 달래는 방법이 단순히 관계를 만드는 데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더 근본적인 것은 자기 안의 기준점이다. 자기 안에 설자리가 없는 상태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형성하더라도 결국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작품은 은아의 심리적 갈등을 통해 보여준다. 관계가 끝난 이유를 악인 하나로 돌리지 않으면서, 앞에서 말한 심리학의 역설은 이 지점에서 완성된다. 스무 살의 우정은 시간이 많아서 만들어지고, 서른의 우정은 혼자 설 수 있는 사람끼리 만들어진다는 듯이.


평범한 내용으로 식상해질 수 있는 이 만화가 자기 계발서식의 일반화로 전락하지 않는 이유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과장하지 않고 끝까지 현실적으로 끌고 가는 데 있다. 극적인 친구 만들기나 ‘이런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는 식의 쉬운 탈출구를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친구를 만드는 방법론적 만화라기보다, 관계를 잃어버린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에게 건네는 작은 제안처럼 다가온다. 마음의 허기는 하루아침에 채워지지 않지만, 적어도 다시 사람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딜 수는 있다는 제안 말이다.



김가지의 『서른의 친구』는 특별한 사건보다 익숙한 마음을 따라가는 작품이다. 그래서 아주 새롭지는 않지만, 서른 이후의 관계 앞에서 한 번쯤 멈칫했던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은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어른의 허기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 책은 그 허기를 외면하지 않고, 아주 작은 시도부터 다시 시작해 볼 수 있다고 조용히 말해준다. 관계의 고통에서 물러나 고독 속에 오래 머물러본 사람이라면, 오히려 이런 일상적인 만화에서 작은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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랠리
박민경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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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쓴 서평입니다.



박민경의 『랠리』는 관계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관계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 방향에서 보여주는 소설집에 가깝다. 가족과 연인, 이웃과 타인,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까지 작품 속 인물들은 끊임없이 누군가와 연결된다. 그리고 그 연결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삶에 흔적을 남긴다. 다정한 돌봄도, 상실도, 불안도, 원치 않는 응답도 모두 관계의 한 형태로 되돌아온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묻는다. 당신은 온전히 혼자라고 생각하는가.


박민경의 『랠리』는 아홉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괴력 문정과 다마고치」에서는 아버지와 딸이 돌봄의 관계를 주고받고, 「스위트 홈」에서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병든 어머니를 돌보는 문영의 삶이 흔들린다. 「별개의 문제」에서는 피자집을 운영하는 부부가 악성 리뷰와 임신, 비 오는 밤의 사건 속으로 밀려가고, 「살아 있는 당신의 밤」에서는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연인의 흔적이 현재의 삶으로 되돌아온다. 각각의 이야기는 다른 사건을 다루지만, 모두 누군가와 이어지고 다시 반응을 받는 순간을 향해 간다.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는 단절이다. 불편한 관계보다는 생산적인 혼자가 낫다는 말은 이미 자기 계발 관련 매체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박민경은 『랠리』의 아홉 편의 단편에서 정반대의 말을 한다. 혼자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시대에 그녀는 삶이란 애초에 혼자 치를 수 없는 경기라고 말한다. 인간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군가에게 공을 보내고, 또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날아온 공을 받아내며 살아간다. 이를 위해 그녀는 ‘랠리’라는 단어를 여러 방향과 언어로 반복해 보여준다.


그녀가 말하는 랠리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탁구나 테니스처럼 서로 주고받는 운동에서 나온 단어인 랠리는 누군가와 무언가를 주고받는 행위를 뜻한다. 그러나 삶에서의 랠리는 스포츠 경기와 목적도 결론도 다르다. 경기에서는 점수와 승패를 향해 가지만, 인생에 랠리는 살아 있는 한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계속된다. 이때 돌아오는 응답은 반드시 다정하거나 올바른 형태만은 아니다. 돌봄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상실이나 불안, 책임, 공포의 형태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그 목적은 더 나은 삶이고, 끝은 승리가 아니라 죽음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짧고 날카로워진 현대에서 제대로 된 타인과의 주고받음은 과연 가능할까. 박민경은 이에 대한 답을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아홉 편의 단편 속 인물들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어서, 어렵게만 느껴지던 관계의 주고받음도 조금 더 가까운 문제로 다가온다. 그들은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흔들리고 버티며 하루를 통과하는 사람들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 소설집은 어떤 방식으로 관계의 랠리를 보여주고 있을까.


이 소설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두 작품은 「괴력 문정과 다마고치」와 「스위트 홈」이었다. 두 작품은 모두 가족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관계를 바라보는 방향은 전혀 다르다. 「괴력 문정과 다마고치」가 돌봄과 애정을 통해 이어지는 가족의 랠리를 보여준다면, 「스위트 홈」은 쉽게 끊어낼 수 없는 가족이라는 연결의 무게와 공포를 보여준다. 같은 가족을 말하면서도 한쪽은 살아가게 만드는 힘을, 다른 한쪽은 버티게 만드는 무게를 드러낸다. 먼저 「괴력 문정과 다마고치」를 살펴보자.


「괴력문정 다마고치」에서 문정은 사회에 녹아들기 위해 어린 시절 자신의 자랑이었던 검은 띠와 힘을 스스로 봉인한다.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그녀는 꾸준히 무언가를 포기하며 사회에 자신을 맞춘다. 작품은 외부와 연결되기 위해 우리는 대체 무엇을 잃어야 하는가라는 씁쓸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그 질문이 무겁게 내려앉을 무렵, 문정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그는 특별히 잘난 사람도, 삶을 그럴듯하게 꾸려낸 사람도 아니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관계 속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무엇을 주고받는지를 일상 속에서 보여준다.


문정과 아버지 장원의 관계는 얼핏 보면 집을 나갔던 아버지가 돌아오며 이루어지는 가족의 화해로 읽히기 쉽다. 그러나 작가는 이들을 눈물겨운 재회의 장면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대신 문정의 검은 띠와 장원의 기라는 서로 다른 힘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서로를 관찰하고 견디는 일상을 보여준다. 그들은 서로를 먹이고, 감시하고, 귀찮아하면서도 결국 상대의 삶이 조금 더 윤택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든다. 그래서 이 관계는 강해진다는 것이 혼자 버티는 일인지, 아니면 누군가를 돌볼 수 있게 되는 일인지 묻게 만든다.


이처럼 가족이 서로의 삶을 조금 더 윤택하게 만드는 관계로 그려지는 작품이 있는 반면, 철저히 마이너스적인 가족 관계를 보여주는 작품도 있다. 바로 제목과는 지독할 만큼 동떨어진 작품, 「스위트홈」이다. 「스위트홈」에서 주원은 알코올중독자인 엄마와 일찍 성에 눈뜬 여동생과 함께 지옥 같은 집에서 살다 어느 날 몰래 집을 나와 호텔 베이커리에 취업한다. 그곳에서 담백한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그녀는 언제나 집안의 어둠이 끈적이는 손이 자신의 머리채를 끌고 갈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린다.


어느 날 동생이 찾아오면서 그녀의 가족은 다시 주원의 삶에 침입한다. 이미 집을 떠났음에도 주원은 가족으로부터 해방된 것이 아니라, 잠시 거리를 확보했을 뿐이었다. 「스위트홈」의 가족은 서로를 윤택하게 만드는 관계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계속 끌어내리는 부채의 형태로 작동한다. 주원의 마지막 선택은 그래서 단순한 결정이 아니라, 더는 빼앗기지 않으려는 마지막 발버둥에 가깝다. 「괴력문정 다마고치」의 가족이 서로를 회복시키는 긍정의 관계라면, 「스위트홈」의 가족은 한 사람의 삶을 끝없이 갉아먹는 부정의 관계이다.


박민경의 『랠리』 아홉 편에서 중요한 것은 관계의 유무가 아니라 응답의 방식이다. 누군가에게 건넨 말과 행동은 언제나 예상한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돌봄은 부담이 되고, 사랑은 기억으로 남으며, 사소한 반응 하나가 누군가의 삶을 흔들기도 한다. 이 어긋난 응답들 속에서 인물들은 서로를 밀어내고 붙잡고, 외면하면서도 끝내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러므로 『랠리』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당신은 온전히 혼자라고 생각하는가. 이 책은 그 질문 앞에서 인간이 관계 밖으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조용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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랠리
박민경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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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쓴 서평입니다.



박민경의 『랠리』는 관계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관계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 방향에서 보여주는 소설집에 가깝다. 가족과 연인, 이웃과 타인,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까지 작품 속 인물들은 끊임없이 누군가와 연결된다. 그리고 그 연결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삶에 흔적을 남긴다. 다정한 돌봄도, 상실도, 불안도, 원치 않는 응답도 모두 관계의 한 형태로 되돌아온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묻는다. 당신은 온전히 혼자라고 생각하는가.


박민경의 『랠리』는 아홉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괴력 문정과 다마고치」에서는 아버지와 딸이 돌봄의 관계를 주고받고, 「스위트 홈」에서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병든 어머니를 돌보는 문영의 삶이 흔들린다. 「별개의 문제」에서는 피자집을 운영하는 부부가 악성 리뷰와 임신, 비 오는 밤의 사건 속으로 밀려가고, 「살아 있는 당신의 밤」에서는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연인의 흔적이 현재의 삶으로 되돌아온다. 각각의 이야기는 다른 사건을 다루지만, 모두 누군가와 이어지고 다시 반응을 받는 순간을 향해 간다.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는 단절이다. 불편한 관계보다는 생산적인 혼자가 낫다는 말은 이미 자기 계발 관련 매체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박민경은 『랠리』의 아홉 편의 단편에서 정반대의 말을 한다. 혼자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시대에 그녀는 삶이란 애초에 혼자 치를 수 없는 경기라고 말한다. 인간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군가에게 공을 보내고, 또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날아온 공을 받아내며 살아간다. 이를 위해 그녀는 ‘랠리’라는 단어를 여러 방향과 언어로 반복해 보여준다.


그녀가 말하는 랠리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탁구나 테니스처럼 서로 주고받는 운동에서 나온 단어인 랠리는 누군가와 무언가를 주고받는 행위를 뜻한다. 그러나 삶에서의 랠리는 스포츠 경기와 목적도 결론도 다르다. 경기에서는 점수와 승패를 향해 가지만, 인생에 랠리는 살아 있는 한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계속된다. 이때 돌아오는 응답은 반드시 다정하거나 올바른 형태만은 아니다. 돌봄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상실이나 불안, 책임, 공포의 형태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그 목적은 더 나은 삶이고, 끝은 승리가 아니라 죽음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짧고 날카로워진 현대에서 제대로 된 타인과의 주고받음은 과연 가능할까. 박민경은 이에 대한 답을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아홉 편의 단편 속 인물들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어서, 어렵게만 느껴지던 관계의 주고받음도 조금 더 가까운 문제로 다가온다. 그들은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흔들리고 버티며 하루를 통과하는 사람들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 소설집은 어떤 방식으로 관계의 랠리를 보여주고 있을까.


이 소설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두 작품은 「괴력 문정과 다마고치」와 「스위트 홈」이었다. 두 작품은 모두 가족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관계를 바라보는 방향은 전혀 다르다. 「괴력 문정과 다마고치」가 돌봄과 애정을 통해 이어지는 가족의 랠리를 보여준다면, 「스위트 홈」은 쉽게 끊어낼 수 없는 가족이라는 연결의 무게와 공포를 보여준다. 같은 가족을 말하면서도 한쪽은 살아가게 만드는 힘을, 다른 한쪽은 버티게 만드는 무게를 드러낸다. 먼저 「괴력 문정과 다마고치」를 살펴보자.


「괴력문정 다마고치」에서 문정은 사회에 녹아들기 위해 어린 시절 자신의 자랑이었던 검은 띠와 힘을 스스로 봉인한다.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그녀는 꾸준히 무언가를 포기하며 사회에 자신을 맞춘다. 작품은 외부와 연결되기 위해 우리는 대체 무엇을 잃어야 하는가라는 씁쓸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그 질문이 무겁게 내려앉을 무렵, 문정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그는 특별히 잘난 사람도, 삶을 그럴듯하게 꾸려낸 사람도 아니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관계 속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무엇을 주고받는지를 일상 속에서 보여준다.


문정과 아버지 장원의 관계는 얼핏 보면 집을 나갔던 아버지가 돌아오며 이루어지는 가족의 화해로 읽히기 쉽다. 그러나 작가는 이들을 눈물겨운 재회의 장면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대신 문정의 검은 띠와 장원의 기라는 서로 다른 힘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서로를 관찰하고 견디는 일상을 보여준다. 그들은 서로를 먹이고, 감시하고, 귀찮아하면서도 결국 상대의 삶이 조금 더 윤택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든다. 그래서 이 관계는 강해진다는 것이 혼자 버티는 일인지, 아니면 누군가를 돌볼 수 있게 되는 일인지 묻게 만든다.


이처럼 가족이 서로의 삶을 조금 더 윤택하게 만드는 관계로 그려지는 작품이 있는 반면, 철저히 마이너스적인 가족 관계를 보여주는 작품도 있다. 바로 제목과는 지독할 만큼 동떨어진 작품, 「스위트홈」이다. 「스위트홈」에서 주원은 알코올중독자인 엄마와 일찍 성에 눈뜬 여동생과 함께 지옥 같은 집에서 살다 어느 날 몰래 집을 나와 호텔 베이커리에 취업한다. 그곳에서 담백한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그녀는 언제나 집안의 어둠이 끈적이는 손이 자신의 머리채를 끌고 갈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린다.


어느 날 동생이 찾아오면서 그녀의 가족은 다시 주원의 삶에 침입한다. 이미 집을 떠났음에도 주원은 가족으로부터 해방된 것이 아니라, 잠시 거리를 확보했을 뿐이었다. 「스위트홈」의 가족은 서로를 윤택하게 만드는 관계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계속 끌어내리는 부채의 형태로 작동한다. 주원의 마지막 선택은 그래서 단순한 결정이 아니라, 더는 빼앗기지 않으려는 마지막 발버둥에 가깝다. 「괴력문정 다마고치」의 가족이 서로를 회복시키는 긍정의 관계라면, 「스위트홈」의 가족은 한 사람의 삶을 끝없이 갉아먹는 부정의 관계이다.


박민경의 『랠리』 아홉 편에서 중요한 것은 관계의 유무가 아니라 응답의 방식이다. 누군가에게 건넨 말과 행동은 언제나 예상한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돌봄은 부담이 되고, 사랑은 기억으로 남으며, 사소한 반응 하나가 누군가의 삶을 흔들기도 한다. 이 어긋난 응답들 속에서 인물들은 서로를 밀어내고 붙잡고, 외면하면서도 끝내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러므로 『랠리』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당신은 온전히 혼자라고 생각하는가. 이 책은 그 질문 앞에서 인간이 관계 밖으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조용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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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마니아 : 유럽의 뿌리 현대지성 클래식 75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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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 유럽의 뿌리』는 가장 흥미롭고도 위험한 고전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였던 타키투스는 로마 제국이 끝내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북방 세계를 기록하면서, 동시에 로마의 타락과 냉랭함, 약해진 시민 정신을 비추려 했다. 그러나 이 책은 후대에 독일 민족주의자들, 특히 나치에 의해 게르만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오용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고대 로마인의 눈에 비친 게르마니아는 과연 어떤 땅이었고, 어떤 사람들의 세계였을까?



『게르마니아: 유럽의 뿌리』는 고대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가 남긴 북방 세계의 기록이다. 그는 게르만족의 기원과 거주지, 정치와 종교, 전쟁 방식, 혼인과 가족, 음식과 장례 풍습을 차례로 살핀다. 이어 라인강과 다뉴브강 너머에 흩어진 여러 부족들을 따라가며, 로마가 알고 있던 게르마니아의 경계를 넓혀 간다. 이 책은 한 민족의 단순한 기원담이 아니라, 로마인의 눈에 비친 낯선 세계의 지도이자 후대 유럽이 자신을 상상하게 만든 위험한 고전이다.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 유럽의 뿌리』는 역사서로 분류되지만, 시대적 배경과 기록의 한계 때문에 모든 내용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오히려 이 책은 고대 로마인의 시선에 잡힌 게르마니아인들의 기록이며, 진실 그 자체라기보다 로마인의 눈에 비친 북방 세계의 거울에 가깝다. 따라서 책을 읽을 때는 그 모든 서술이 철저히 로마인의 사고와 감각을 거쳐 그려졌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를 의식하듯 이 책은 프롤로그에서 지도와 명화를 통해 게르마니아를 먼저 보여준다.



이는 지도 속 바깥 땅에서 시작해 로마의 패배 기억, 아름다운 전사, 순수한 가족과 풍속, 자유로운 민회, 독일이라는 여성 상징, 그리고 근대 의회로 이어진다. 이 순서로 명화를 나열한 판본은 처음부터 말하고 있다.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는 게르만족의 설명서가 아니라, 게르마니아라는 이미지가 유럽 역사 속에서 어떻게 다시 만들어졌는지를 보는 책이라고. 따라서 이 명화들은 본문 해석의 지도로 작용하는 중요한 나열이며, 로마인의 눈에 비친 게르만족과 후대 민족주의자들이 오용한 지점을 함께 엿보게 하는 자료가 된다.



이 책의 시작은 “그들은 누구인가”가 아니라 “그들은 로마와 어디에서 끊어지는가”에 가깝다. 그래서 『게르마니아』는 표면 정보만 따라가면 금방 마른 기록처럼 보인다. 게르만족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회의하고, 어떤 방식으로 결혼했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타키투스가 그 장면을 왜 골랐는가이다. 로마와의 비교, 정치적 의도, 후대 민족주의가 가져가기 쉬운 지점을 함께 짚을 때 비로소 이 책의 위험함이 보인다. 특히 이 책의 게르마니아는 현대 독일이 아니라, 로마가 북쪽에서 마주한 낯선 변경 세계에 가깝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혼인 풍습이다. 타키투스는 게르만족의 결혼을 사치 없는 결속으로 그리며, 재산과 욕망에 흔들리는 로마의 결혼 문화를 거꾸로 비춘다. 그러나 이 장면을 순수한 가정 윤리로만 읽으면 곤란하다. 그 안에는 여성의 몸을 공동체 명예의 담보로 삼는 시선도 함께 놓여 있다. 이 책에서 칭찬처럼 보이는 대목은 대부분 로마 비판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폭력의 기록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장면은 게르만족의 미덕이면서 동시에 로마인의 불안이 투사된 장면으로 읽힌다.



1부는 게르만족의 생활 전체를 훑는다. 민회, 전쟁, 가족, 술, 도박, 노예, 농사, 장례까지 이어지는 기록 속에서 그들은 단순하고 강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도시의 사치와 법의 복잡함에 물든 로마와 달리, 게르만족은 자연과 공동체에 가까운 사람들처럼 제시된다. 그러나 술과 도박, 여성 통제, 폭력, 인간 제의도 함께 등장한다.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는 이상향이 아니라, 로마가 잃은 것과 두려워한 것이 함께 비친 거울이다. 그 단순함은 아름답지만, 결코 순진하지 않다.



2부로 넘어가면 책은 부족들의 지도로 바뀐다. 라인강과 다뉴브강 주변의 친로마 부족, 숲속의 전사 부족, 바다 끝의 낯선 부족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우비이족은 강을 건너고, 바타비족은 로마에 병력을 제공하며, 어떤 부족은 로마의 시장과 군사 질서 안으로 들어온다. 중요한 것은 이름을 외우는 일이 아니다. 로마의 시선이 어디까지는 행정과 전쟁의 언어로 붙잡고, 어디서부터는 소문과 상상으로 흐려지는지를 보는 일이다. 이때 게르마니아는 하나의 민족 이름이 아니라, 강과 숲과 바다를 따라 흔들리는 여러 경계의 이름이 된다.



가장 인상 깊은 부족은 케루스키족과 킴브리족이었다. 케루스키족은 바루스의 군단을 무너뜨린 기억과 이어지고, 킴브리족은 로마 공화정 말기에 한니발급 공포를 불러온 이름이다. 타키투스는 이들을 긴 영웅담으로 풀지 않는다. 오히려 건조하게 이름을 지나가듯 놓는다. 그러나 그 짧은 이름 뒤에는 로마가 북방을 두려워해온 오랜 시간이 숨어 있다. 이 책에서 공포는 비명보다 목록의 형태로 남는다. 타키투스의 짧은 기록은 그래서 오히려 더 차갑게 오래 남는다.



그러나 이 공포의 기록도 결국 로마인의 눈에 비친 모습이다. 게르만족은 때로 강한 전사로, 때로 순수한 가족으로, 때로 숲속의 제의와 바다 끝의 소문으로 나타난다. 수에비족의 머리, 네르투스 여신의 수레, 바다에서 밀려오는 호박, 여자가 지배한다는 시토네스족까지 이어지면 기록은 점점 낯설어진다. 책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분류는 흐려지고, 인간과 전설의 경계까지 무너진다. 이 용두사미가 오히려 이 책의 정직한 결말처럼 보인다. 



『게르마니아: 유럽의 뿌리』는 게르만족을 선명하게 설명한 책이 아니다. 처음에는 야만과 순수함을 통해 로마를 비추는 듯하지만, 끝까지 읽으면 로마조차 다 알지 못한 북방 세계의 흐릿한 지도가 남는다. 그래서 이 책은 유럽의 뿌리를 단정하는 기록이라기보다, 그 뿌리를 바라보고 상상하고 이용해온 시선까지 함께 보여준다. 위험한 것은 게르만족 자체가 아니라, 불완전한 기록을 완전한 기원으로 바꾸려는 후대의 욕망이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얇지만, 읽고 난 뒤의 그림자는 꽤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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