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느슨함 - 돈, 일, 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품위 있는 삶의 태도
와다 히데키 지음, 박여원 옮김 / 윌마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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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와다 히데키의 어른의 느슨함 또한 노년의 삶을 다룬다. 이전까지는 자녀의 입장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견뎌내야 할 간병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면 이 책은 오히려 그 어른들 자신이 읽어야 할 책이다. 시선이 조금 다르다. 특히 은퇴를 앞두거나 이미 한 은퇴자들을 위한 책이라는 정의가 더 어울린다. 태어나면서부터 경쟁 사회에서 앞만 보고 달리던 한 인간이 사회에서 배제되기 시작하면서 꽤 많은 문제가 일어나는데 이를 노인 정신과 의사의 시각으로 풀어 의미를 더한다.



윌마에서 출간한 은퇴자들을 위한 책 와다 히데키의 어른의 느슨함은 아직 한창 사회에서 앞을 향해 돌진하는 세대가 읽기에는 밋밋하기도 하고 뻔한 내용처럼 들릴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읽으면서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막상 65세가 넘으신 부모님의 눈에는 공감대가 꽤 형성되는 것을 보고 전문가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점점 길어지는 노년 생활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총 5장으로 구성되었는데 1장에서는 치열한 사회에서 밀리고 신체적 한계를 느끼면서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첫 단계를 조명하고 있다. 이제는 무엇인가를 바꾸고, 성장하는 시기가 아닌 평생을 자식과 회사와 국가를 위하여 일하였으니 스스로에게 눈을 돌리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말한다. 특히, 무엇인가를 못 하게 된 나를 받아들이는 용기 파트는 부모님 세대가 꽤 공감하지 않을까 한다. 사실, 40대부터 사회생활에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못 하게 된 나를 받아들이는 요령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2장으로 넘어가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여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요령을 서술하고 있다. 아마 뉴스에서 목이 말라 롯데리아에 갔다가 키오스크로 바뀐 주문을 보고 어르신이 콜라를 주문하지 못하여 그냥 나와 서글펐다는 기사를 보았을 것이다. 아마 이분이 20대였다면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당당하게 물어보았을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죄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잇값을 하기 위하여, 체면을 차리기 위하여 혼자서 삭히는 게 우리의 어르신들이다. 



세 번째 파트로 넘어가면 법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면 살고 싶은 대로 살라고 말한다. 타인에게 미움을 받을 수도 있으며 무한한 배려가 답은 아니라면서. 특히 좋은 사람 되기는 오히려 노년 생활에 만족도가 현저히 떨어진다고 꼬집는다.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 타인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보다 시선을 자신에게 돌려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은 4장이다. 바로 건강 관리 파트이다. 충격적인 내용은 일본에서 노령으로 돌아가신 분들을 해부한 내용이었다. 85세 이상의 모든 노인에게서 암이 존재했다는 이 결과를 두고 모든 사람은 암에 걸린다고 말한다. 다만, 암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걸린 줄도 모르고 살다가 가신 분도 많다는 것. 심지어 암이 사망 원인이 아닌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 암에 걸리는 것에 대하여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기 보다 그냥 누구나 걸리는 것이라는 마인드를 평소에 가져야 건강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치매 파트이다. 책에서는 눈으로 확연하게 드러나는 결과를 자아낸 두 마을에 대한 연구 결과가 나온다. 한마을은 치매 진단을 받자마자 모든 사회적 업무, 가정적 엄무에서 배제되고 가족에 의한 가택 연금을 시켰다. 반면 다른 마을은 진단 결과와 관계없이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는 있지만 여전히 일을 하고, 손자들을 돌보며 평소와 같이 지냈다. 그 결과 전자는 급격하게 치매가 진행되었지만 후자는 진행이 더뎌 여전히 활동을 이어갔다.



저자는 말한다. 치매에는 경증과 중증이 있는데 이를 잘 구별하여 대해야 나의 부모가 그리고 내가 좀 더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한 채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결과는 부모가 가야 할 길이자 언젠가 내가 가게 될 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흔히 치매라고 하면 요양원부터 생각하는데 그것만이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오해하면 안 된다. 중증일 때 자식의 도리를 한다고 집에서 모시는 것은 둘 다 나락으로 가는 길이라고 꽤 여러 곳에서 명시하고 있으니까.



마지막 5장에 가면 진정으로 느슨하게 사는 방법에 관하여 논하고 있다. 여기에도 우리가 아는 상식과 다른 부분이 나온다. 무조건 저염식을 해야 하고, 당분은 자제해야 한다는 내용은 노인들에게 해당하는 말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이렇게 극단적인 식단은 뇌 손상, 경련, 의식장애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오히려 이 나이가 되면 무엇이든 잘 먹는 것이 중요하며 다이어트 등은 신체와 정신에 스트레스를 유발하여 노인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 꽤 유의해야 한다고 한다.



주변에서 보면 어르신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푸념이다. 그러나 와다 히데키는 어른의 느슨함에서 오히려 이 나이이기에 더 많은 것을 해야 한다고 한다. 법에 저촉되는 것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개인적으로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키우느라 하고 싶은 것을 많이 참아야 했던 어머니가 떠올랐다. 사실, 어린 시절에는 원래 어른은 참아야 하며, 먹고 싶은 것도 별로 없고,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별로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직접 나이를 먹고 보니 오히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이 많음을 깨달았다. 그 이후 신기하거나 새로운 것, 처음 보는 음식이 보이면 언제나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찾는다. 처음에는 어색함만 감돌았는데 어느 순간 새로운 것을 마주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자신감을 가지는 모습에 태어나서 가장 잘하고 있는 습관이 아닐까 하는 자부심을 가졌다. 마지막 5장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행복해지기 위하여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는 스스로의 설계.



윌마에서 출간한 은퇴자들을 위한 책 와다 히데키의 어른의 느슨함의 카테고리는 자기 계발이다. 더 발전하고 더 나아지기 위한 자기 계발이 아닌 온전하게 스스로를 지키고 보듬으며 인생의 황혼을 아름답게 만들 자기 계발이다. 앞으로의 나를 위해서, 현재 이 시기를 넘어가고 있는 부모님을 위해서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한다. 30년간 노인 정신의학 분야에 종사하면서 연구한 의사가 썼기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 많을 것이다.



#어른의느슨함 #와다히데키 #윌마 #은퇴자를위한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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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초대륙 - 지구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판구조론 히스토리
로스 미첼 지음, 이현숙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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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히말라야산맥이 해마다 수 밀리미터씩 솟아오르고, 아프리카 대륙의 동부가 서서히 갈라지고 있으며, 지구의 평균 기온은 태양 복사량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불의 고리라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 주변에서는 연쇄적인 지진과 화산 활동이 관측되며, 그 여파는 동해를 포함한 한반도 인근에서도 빈번하게 감지된다는 기사들을 자주 접한다. 이는 인간이 발 딛고 있는 대륙이 얼마나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기반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단단한 땅 위에 서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매일 항해 중인 인류에 가깝다. 이런 궁금증을 해결해 줄 로스 미첼의 다가올 초대륙을 살펴보자.


인류가 살고 있는 이 대륙들은 과연 영원할까? 지금의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유럽은 과연 고정된 형태일까? 지질학자 로스 미첼은 다가올 초대륙에서 이러한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대륙들이 다시 하나로 뭉칠 것이고, 바다였던 곳이 육지가 되며, 육지였던 곳이 바다로 가라앉을 수도 있다는 사실. 이 책은 우리가 지구라고 부르는 이 별이 얼마나 거대한 움직임 속에 있는지를, 그리고 그 변화의 상상력이 얼마나 드라마틱 하고 아름다운지를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이는 작품이다.


세계적인 초대륙 순환 이론 전문가인 로스 미첼은는 초대륙이 형성되고 분열되는 메커니즘을 토대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지구를 입체적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륙은 그 자체로 완성형이 아니라 거대한 순환 속 한 시점에 불과하다. 과거엔 판게아가 그 이전에는 로디니아와 컬럼비아가 있었고, 미래에는 아마시아가 등장할 것이라 예측한다.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과거의 흔적에서 미래를 읽어낸다는 점이다. 지질학자는 대륙 이동 속도, 해양 지각의 자성, 암석의 연대 등을 바탕으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예측한다. SF 작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논리는 과학적 데이터에 충실하다. 2억 년 후 대륙이 하나로 합쳐질 가능성과 그 다양한 경로에 대한 가설은 독자로 하여금 수억 년의 스케일을 감각적으로 상상하게 만든다. 지질학이 이토록 상상력과 친한 학문이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이 단순한 미래 예측 시나리오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저자는 현재 우리가 서 있는 땅이 과연 얼마나 안정적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뿌리내리고 살아간다고 믿는 대지는 사실, 평균 시속 수 센티미터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거대한 플레이트의 일부다. 집도 도시도 문명도 이 거대한 움직임 위에 놓인 임시 구조물이다. 그야말로 외부적으로는 공전과 자전으로, 내부적으로는 우리가 서 있는 아니 타고 있는 육지를 움직여 매일 항해를 시킨다.


저자는 한 챕터를 할애해 판 구조론의 기본 원리를 쉽게 설명한다. 어린 시절 과학 교과서에서 스쳐 지나갔던 내용이지만 책에서는 이를 최신 연구 사례와 함께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해령과 섭입대, 조산대의 역할, 마그마 활동이 대륙 이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지질학이라는 복잡한 분야와 친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게다가 우리에게 생소한 이론이 아닌 어린 시절부터 시험 문제 단골인 베게너의 이론으로 출발하여 심리적 접근성 또한 좋은 편이다.


다가올 초대륙에서는 미래 지구의 초대륙 형성 가능성을 여러 가지 시나리오로 풀어낸다. 아시아와 아메리카가 북쪽에서 충돌해 형성되는 아마시아, 태평양이 닫히면서 남극 부근에 형성되는 노보판게아 등이다. 각각의 경로는 지질학적 데이터에 기반해 제안되며 그 설명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생생하고 흥미롭다. 실험 과학이라기보다는 이론과학에 가까워 과학서라기보다 과학을 품은 서사처럼 읽힌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의 목소리는 다소 철학적으로 변모한다. 그는 묻는다. 지구는 왜 이렇게 움직이는가? 그리고 그 움직임 속에 인간은 어떤 위치에 있는가? 우리는 지각판위에서 살아가며 생존과 문명을 쌓아 올리지만 결국 자연의 거대한 주기 앞에서는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즉, 현재 우리의 선택이 미래 세대가 항해할 육지를 만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덧없음이 곧 인간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다. 움직이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더 단단해지려는 의지를 가지고 살아간다.


이 책은 과학을 통해 겸허함을 배우게 한다. 우리는 흔히 변하지 않는 존재를 설명할 때 땅이나 암석을 대상으로 비유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오히려 우리 주변에서 가장 뚜렷하게 변하는 것이 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변화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대륙조차 움직인다면 우리 삶의 고정불변이란 얼마나 덧없는가. 고층 빌딩, 인공섬, 국경선, 심지어 문명 그 자체까지도 결국은 흘러가는 지구의 리듬 앞에서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이 리듬을 인지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되짚게 만든다. 


과학 교양서지만 이 책은 감정의 진폭도 크다. 나, 내 가족, 내 나라를 위해서 갖은 힘을 쓰고 사는 우리이지만 결국 지구라는 배 위에서는 모두 우리가 될 수밖에 없음을 저자는 강조한다. 수억 년 후의 세계를 상상하는 일은 근원적인 외로움과 경외감을 불러온다. 그러나 로스 미첼은 거기서 끝내지 않는다. 그는 지구의 순환이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판이 갈라지고, 충돌하고, 또다시 합쳐지듯, 인류의 역사는 계속 이어질 것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말이다. 


다가올 초대륙은 정지된 듯 보이는 세계가 사실은 얼마나 거대한 움직임 속에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은 사실 떠다니는 배와 같으며 그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매일 항해 중인 인류이다. 모든 것이 고정된 것처럼 보이는 일상 속에서, 이 책은 지구적 시야와 겸손함, 그리고 다시금 움직이는 삶에 대한 감각을 되살려준다. 이는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이고 조용한 진동으로 다가온다. 

#다가올초대륙 #로스미첼 #흐름출판 #교양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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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용의자
찬호께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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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블로그 이웃분들 덕분에 알게 된 찬호께이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기에 읽어보았다. 읽고 나서 인터넷 서점을 들어가 보았는데 작품에 대한 신뢰도와 기대감이 높아서인지 베스트셀러에 등극해 있었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도 스토리 전체를 파악할 수 없을 만큼 흑막에 흑막을 드리운 작가의 필력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럼 위즈덤 하우스에서 출간하여 베스트셀러에 초단기간에 등극한 찬호께이의 고독한 용의자를 만나러 가보자.


위즈덤 하우스에서 출간한 찬호께이의 베스트셀러 고독한 용의자는 셰바이천의 가족의 신고로 시작된다. 누가 봐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이기에 특별한 수사를 하지 않고 경찰은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그런 찰나, 파트너가 옷장에서 수십 개의 유리병에 담긴 인체 조각을 찾아낸다. 언뜻 보면 남자 하나, 여자 하나. 게다가 기괴한 포즈까지 잡고 있어 경찰조차 말을 잇지 못한다. 그러나 아무리 수사를 해도 단서는 없고 셰바이천이 이 모든 것을 저지른 후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생각한다.



이때 등장한 옆집 남자이자 인기 많은 작가인 칸즈위안이 등장하여 셰바이천은 절대로 살인을 할 사람이 아니라며 강력하게 주장한다. 하지만 경찰은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며 이런 칸즈위안이 의심스러워 미행을 시작한다. 이유는 그가 쓴 작품 속 범행 수법과 매우 흡사한 상황으로 시체가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미행을 하면 할수록 더욱 의심스러운 행동만 일삼는 칸즈위안으로 인해 경찰들이 수사의 혼선을 겪는다. 그를 미행하던 도중 피해 여성과 비슷하게 생긴 여자와 만나는 것을 보고 경찰은 이 여성에게 관심을 돌린다.



눈치 빠른 분은 이미 아시겠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칸즈위안이며 경찰은 매번 헛다리를 짚는 약간은 모자란 존재로 나온다. 드디어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던 순간 등장한 또 다른 단서. 결국 경찰은 칸즈위안과 공조를 하게 되고 범인을 잡는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수사팀장이 여기에서 이상함을 느끼고 계속 혼자서 수사를 이어가던 중 범인을 잘못 잡은 것을 알게 되는데.... 과연 누가 이 두 피해자를 죽였으며 왜 경찰의 수사는 이렇게까지 혼선을 빚게 되었을까?



위즈덤 하우스에서 출간한 찬호께이의 베스트셀러 고독한 용의자는 하나의 작품 내에 세 개의 선율이 흐른다. 하나는 작가가 쓰려고 한 주요 미스터리 줄거리이며, 다른 하나는 첫 장면에 굉장한 충격을 주면서 출현한 셰바이천의 목소리이고, 마지막 하나는 끝까지 베일에 가려져 독자들을 경악하게 만든 또 다른 주인공의 목소리이자 작중 저자인 칸즈위안을 소설 내용이다. 이것이 주요 줄거리-셰바이천, 주요 줄거리-칸즈위안의 소설 내용이 번갈아가면서 나오는 구성이다.


각자의 시점에서 말을 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모여 하나의 사건을 조립할 수 있다. 마치 수많은 퍼즐 조각의 각 부분을 모아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처럼. 게다가 이들의 목소리가 바뀔 때마다 프린팅 기법이 달라지는 점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 덕분에 하나의 이야기가 해결되었다 싶었을 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작중 등장인물보다 독자가 먼저 알게 되어 심장 쫄깃함을 두 배로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작품의 스토리는 미스터리이지만 작가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것은 제목에 다 녹아 있다. 바로 셰바이천이 20년 동안 집 밖을 나오지 않은 은둔형 외톨이라는 것. 그리고 지금 그가 용의자로 의심받고 있다. 초반에는 도대체 집 밖에 있는 피해자들을 어떻게 집안으로 끌어들였을까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독자들은 사건보다 셰바이천 자체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20년 동안 자신의 방 안에 갇혀서 살아야만 했을까?



스토리 전말을 다 알고 나면 그가 무슨 짓을 했든지 간에 독자는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너무 안타까워 비록 2D 속 인물이지만 온 맘을 다해 끌어안아 주고 싶어진다. 작품 내에는 단순하게 은둔형 외톨이 문제만 다루고 있지 않다. 가정 내 폭력 및 성폭행, 편부모 가정 내 아이들의 심리, 남아 선호 사상이 아직 남아 있는 지역에서의 여성의 심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족보다 돈만 최고로 아는 이, 어린 시절 친구들 간의 우정, 화려한 도심 속에서 목소리가 사라진 이들 그리고 홍콩의 현재 상태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찬호께이의 작품을 처음 읽어보는데 작품에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이 짙게 깔려 있어 사회파 추리소설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 마지막 페이지를 닫을 때쯤 범인은 잡히고 사건의 전말도 드러나지만 책장을 덮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과연 등장인물 중 진짜 피해자는 누구이며, 진짜 가해자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이 가장 많이 남는다. 과연 당신은 그들 중 하나의 얇은 숨통 중 하나를 끊어 놓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위즈덤 하우스에서 출간한 찬호께이의 베스트셀러 고독한 용의자는 사회파 추리소설답게 가볍게 소비되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문제들을 묵직하게 다루고 있다. 중학교 시절 친구들이 서로의 가슴 시린 시간을 메워주며 싹튼 우정은 우리가 끝까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결말을 전혀 예상하지 못할 만큼. 무거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수반되어 독자의 마음을 절묘하게 잡아주는 효과를 낸 작품이다.



#고독한용의자 #찬호께이 #위즈덤하우스 #미스터리스릴러 #베스트셀러 #사회파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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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쿠데타 - 글로벌 기업 제국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가
클레어 프로보스트 외 지음, 윤종은 옮김 / 소소의책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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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쓴 서평입니다.



당신이 오늘 마주한 모든 것 중 진실이 얼마나 있을까? 진실과 거짓, 자유민주주의의 기준은 더 이상 명확하지 않다. #그림자권력쿠데타의실체고발 을 내용으로 쓴 #소소의책 에서 출간한 #클레어프로보스트 , #매트켄나드 의 #소리없는쿠데타 는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진실 찾기가 어려운 이유를 찾을 수 있는 키를 마련해 준다. 책을 읽고 나면 타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이익에 따른 권력 구조를 통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림자 권력 쿠데타의 실체 고발을 내용으로 쓴 소소의책 출간 도서 클레어 프로보스트와 매트 켄나드의 소리 없는 쿠데타는 초반엔 에세이 다큐 형식으로 다가와 친화적이지만 전문성이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곧 소름 끼치는 사례들이 등장하고 멀게 느껴졌던 사건이 독자의 발밑 현실로 다가온다. 첫 장은 글로벌 기업과 개발도상국 간 분쟁에서 시작된다.



첫 데이터는 엘살바도르의 채굴권에 관한 이야기이다. 엘살바도르에서는 수질 오염, 자국민의 생명 위협 등을 이유고 채굴권에 대한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를 담당하고 있던 캐나다 기업 퍼시픽 림에서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소를 한다. 수십 년을 싸운 이후 어렵게 엘살바도르는 세계 최초로 채굴권을 전면 금지하는 성과를 쟁취했으나 이런 결과는 매우 희귀한 경우에 속했다.



저자들은 개발 도상국가 국민의 안전성을 위협하며 이들 국가의 자율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통치하지 못하게 하는 국제투자분쟁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역사적인 사건을 바탕으로 꼼꼼하게 살펴본다. 이것을 처음에 만든 세력은 각국의 주요 은행들이었으며 초반 회의 때 아르헨티나, 인도, 태국 등 수많은 국가에서 이 제도가 식민지의 또 다른 이름으로 작동될 것을 우려하여 반대하였다. 그러나 힘 있는 선진국들의 찬성에 의하여 실시된다.



결과적으로 이 제도는 글로벌 기업들이 계약을 맺은 국가들의 자율적 통치에 칼날을 들이대는 도구로 전락했다. 예를 들자면 수질 오염을 방지하기 위하여 일정 농도 이상, 일정 온도 이상이 되면 하천으로 공장의 물을 방류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 제정되었다면 해당 기업은 자신들의 이익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 제소한다. 이 과정은 외부로 공개되지도 않으며 이를 판단하는 중재자는 딱 세 명이다. 이 세명이 중진국 이하의 손을 들어줄 확률이 얼마나 될지는 개인의 판단에 맡긴다.



국제투자분쟁 전문 로펌, 자금을 대출하는 캐피털까지 소송에 얽히며 기업의 운용 자본을 당겨쓸 수 있는 구조로 변질된다. 이후로 넘어가면 드물지만 중진국의 손을 들어준 재판이 나온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재판에선 이겼어도 이익은 기업이 챙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문제가 왜 지금까지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는데 갑자기 외부로 알려지게 되었을까? 바로 국가로 겨냥한 화살이 선진국으로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독일, 심지어 미국까지. 물론 그 이전에도 저자들과 같이 외부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생명의 위협을 받거나 실제로 고문을 당하여 죽은 이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공공연하게 책으로 많은 이들을 찾을 수 있었던 것에는 이런 점도 적용하였으리라 생각한다.



2장으로 넘어가면 국제 원조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이 파트에선 트럼프가 WHO, UNHRC, UNRWA, 파리협정, ILO를 탈퇴하고 USAID를 축소한 배경이 드러난다. 또한 이 과정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딥 스테이트의 존재도 어렴풋하게 독자가 그릴 수 있다. 법으로 제정된 국제 원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내용이 완벽하게 달랐다.



오히려 실정은 많은 이가 손가락질하는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과 결이 비슷하달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국제 원조는 식량, 의약품, 기타 환경 부족으로 인한 교육의 부재를 해결하기 위하여 경제적인 원조를 생각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해당 국가에 이자와 함께 갚아야 하는 대출 형태를 띠거나 채무 감면을 해 준다거나, 상환 일정을 연기한다거나 하는 등의 원조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기타 원조 자금은 국제기구, NGO, 영리 목적의 계약 업체와 하청 업체를 통과하여 빈곤국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이마저도 선진국 기업의 물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쪽으로 이용되었다고 하니 이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이익을 본 것이 누구인지는 자명하다. 이런 행위의 최전선에는 기업이 있으며 이들을 지원사격하는 이들은 정치인이었다. 찬사를 받는 마거릿 대처조차 예시가 되니, 그렇지 못한 인물들은 어땠을까?



그럼 딥 스테이트로 명명된 집단에 대한 정의가 성립된다. 바로 세계은행과 이들과 손잡고 그림자 권력을 키워온 글로벌 기업들이다. 자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정책을 수립하면 국가가 파산할 정도의 소송을 걸고 내용은 비밀에 부친다. 세계 어떤 언론에서도 다루지 않으며 그 결과는 자국의 정치인과 국민이 고스란히 입는다. 이 과정이 무서운 국가는 글로벌 기업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둔다. 지금까지 이런 행태는 중진국 이하에서만 일어났었는데 이제는 선진국을 향하고 있다. 자국을 위험에 빠뜨리게 만드는 것이다.



3~4장에서는 자국 통치자의 능력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쿠데타의 실체를 고발한다. 책 속에는 그동안 우리가 오른쪽 눈으로만 알고 있던 국제적 사안을 왼쪽 눈으로도 볼 수 있게 해 준다. 이런 상황에 자유민주주의는 점차 힘을 잃게 되고, 언론과 경제를 장악한 세력들에 의하여 세계의 시민은 불 피워 놓은 솥에 들어간 개구리가 되어가고 있다. 온몸이 익어서 죽는 줄도 모르고.



그림자 권력 쿠데타의 실체 고발을 내용으로 쓴 소소의책에서 출간한 클레어 프로보스트, 매트 켄나드의 소리 없는 쿠데타는 어느 하나의 진영을 비판하거나 옹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오래도록 믿어온 국제 질서의 틀을 의심하게 만들며 세계를 움직이는 진짜 동력이 무엇인지 묻는다. 진짜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지, 우리는 과연 그 틀 안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있는지, 책을 덮은 지금 그 질문은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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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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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바움가트너의 의미는 독일어로 나무를 가꾸는 사람, 정원사를 뜻한다. 폴 오스터의 유작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살아 있는 이의 기억을 돌보고, 사라진 이의 자리를 가꾸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상실의 아픔보다는 희망을 느끼게 하는 상징으로 읽힌다. 이 소설은 죽은 자와 산 자의 위치를 바꿈으로써 남겨질 아내를 위한 다정한 이별 지침서로 다가온다. 평생 존재론적 질문과 정체성, 우연, 언어의 구조 같은 걸 다룬 작가의 마지막으로 남긴 투박스럽지만 사려 깊은 사랑 고백을 따라가보자.






시모어 바움가트너는 일흔이 넘은 철학자이자 교수이다. 아내 애나는 활동적이고 고집스러운 인물로 궂은 날씨에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핑을 나갔다가 세상을 떠난다. 그녀를 잃은 지 9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여전히 그녀를 그리워하며 그녀가 남긴 시를 정리하여 출판 준비를 하면서 보낸다. 그 과정에서 어린 시절은 물론 그보다 더 이전의 부모의 어린 시절부터 회고하며 아내와의 추억 전반을 돌아본다. 아픔뿐인 이별이 전화 통화 한 번으로 인하여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





어느 날 밤 이상한 소리가 나 애나의 서재로 내려간 그. 갑자기 연결도 되지 않은 전화기가 울려 받으니 거기에서는 애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는 죽음 후 자신이 도달한 곳과 그가 자신을 기억하는 한 그곳에서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을 전하며 전화는 끊어진다. 이후 그의 일상은 달라진다. 연애도 하고, 자신의 글도 써서 출판하고 애나의 책도 출판한다. 그녀를 잊는 것이 아닌 온전히 살아 있는 상태로 자신을 만들면서. 그러다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정체불명의 편지가 한 통 도착하는데...






폴 오스터의 유작 바움가트너는 읽기에 따라 철학적인 요소로도, 감정 윤리적인 요소로도 읽힌다. 에브리맨, 제5도살장, 선셋 리미티드를 번역하신 정영목 님은 마지막 옮긴이의 말에 그동안 작가의 성향 그대로 분석, 철학적으로 해석을 하셨다. 그러나 몸이 아프기 시작한 2022년부터 집필을 하였으며 그해 말에는 폐암 4기 진단을 받았고 2023년 3월에 영문판으로 작품이 출간된 것을 바탕으로 개인적으로 이 작품만큼은 감정·윤리적인 해석을 해본다.






#열린책들 에서 출간한 #폴오스터 의 바움가트너는 58세의 아내를 사고로 떠나보내고 상실의 아픔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70대 노년 남성의 이야기다. 이제 곧 죽음을 앞둔 그는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정리하는 동시에 자신이 떠난 뒤 혼자 남겨질 아내를 위해 마지막 인사를 준비한다. 그래서 이 작품의 선율은 두 갈래로 흐른다. 하나는 자신의 삶을 되짚는 회고록의 선율이고, 다른 하나는 이별을 미리 연습하는 사랑의 선율이다. 전자에 방점을 두면 철학적인 작품이 되고, 후자에 초점을 맞추면 다정한 이별 지침서가 된다. 






처음 아내가 죽고 난 후 바움가트너는 살아 있지만 산 것 같지 않은 존재로 지낸다. 두뇌는 죽음을 이해하지만 심장은 용납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어느 날 밤 연결도 되지 않은 전화가 울리며 그 안에서 애나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곳은 천국도 지옥도 아닌 공허한 공간이며 살아 있는 사람이 자신을 기억하는 한 그곳에서 존재할 수 있다고. 물론 이 작품이 판타지물이 아니기에 이것은 주인공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하지 못한 꿈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 사건 이후 자신이 온전하게 살아 있어야 애나도 사라지지 않고 존재할 수 있다고 믿어 최대한 건강한 삶을 유지한다. 그녀를 더 기억하기 위해 과거 그녀의 시를 찾아 읽어보고 그녀와의 연애 시간도 회상한다. 그들의 일대기를 읽어보면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부부로 평생을 지낼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성격이 달랐다. 외향적이고 활동적이며 감정형에 가까운 애나, 내향적이며 이성적 사고형에 가까운 바움가트너. 둘은 의외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영위한다.







과거를 떠올리며, 그녀의 시를 보며 그는 아내가 사라진 세계에서 아내가 다시 사라지지 않고 그녀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전화 한 통으로 인하여 자신의 존재 이유를 깨달은 그는 점차 심장도 그녀의 죽음을 인정하며 살아 있는 시체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삶으로. 이런 과정만을 뽑아 그 감정선을 따라가다가 보면 그 삶의 방식 자체가 폴 오스터가 남겨질 아내에게 건네는 가장 조용한 작별의 언어가 된다. 나의 육체는 사라지지만 언제까지나 당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무언의 포옹이랄까?






또한 우크라이나 땅에 전해 내려오는 스타니슬라프의 이리들이라는 이야기를 그곳의 시인에게 들었을 때 그는 역사적 근거가 전혀 없음에도 무작정 믿는다고 선언한다. 물론, 이것을 역사적 사건에 대입하자면 단순하게 역사적 기록물은 없지만 나타난 현상이 있으므로 신뢰한다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을 애니에게로 대입하면 조금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녀의 목소리가 울린 전화기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고 그녀가 말한 세계에 대한 증언 또한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럼에도 그는 그 전화를 믿기로 한다. 그것은 현실을 증명하려는 태도라기보다 상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믿음의 방식이다. 마치 누군가는 사라진 이리 떼를 믿고 누군가는 존재하지 않는 전화 한 통을 믿는 것처럼. 아내가 이 글을 믿어준다면 이별의 아픔 속에서도 헤매지 않고 조금은 다르게 나와 연결된 채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다정한 당부가 아닐까?






#폴오스터유작 바움가트너에서 등장하는 작품인 운전대의 신비는 언뜻 보면 육체와 영혼, 실체가 없는 어떤 것과 실체를 다룬 것처럼 보인다. 물론 철학적으로는 이런 해석이 맞다. 그러나 이 또한 아내를 겨냥한다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그는 이 작품에서 실체인 몸을 자동차로, 실체가 없는 영혼을 운전자로 비유하였다. 조금 더 독자가 쉽게 이해하게 하기 위하여 오토라는 뜻 안에 자기라는 의미가 있으며 모터라는 말에 운동 근육이나 신경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모터는 자율주행을 하다가 큰 사고를 내고 차 안에 탄 가족이 모두 죽는다. 이때 #바움가트너 는 곧 발표될 경찰 공식 보고서가 참사의 원인을 인간(영혼)의 과실로 명시하리라 생각한다. 여기서 인간은 영혼이다. 그는 다정하게 협박한다. 자율주행의 실패는 결국 영혼의 실수로 기록될 것이라는 것을. 그러니 그녀가 흔들리면 그의 존재 역시 그 어디쯤에서 참사를 맞게 된다며 너무 상실의 아픔에 휩쓸리지 말라며 평소에 그답지 않은 남겨질 아내를 위한 다정한 이별 지침서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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