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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신
리즈 무어 지음, 소슬기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9월
평점 :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리즈 무어의 『숲의 신』은 현대적 의미의 디오니소스적 응보를 그린 스릴러 소설이다. 이 작품은 펜테우스의 신화를 현대적으로 옮겨와, 스스로 대자연의 신이 되고자 한 피터 반라 가문에 내린 대자연의 응징을 다룬다. 겉으로는 실종과 추적의 스릴러처럼 흘러가지만, 그 긴장감 속에는 여성의 삶을 옭아맨 시대의 폭력이 숨겨져 있다. 리즈 무어는 장르의 외피를 빌려 직접적인 페미니즘의 목소리를 감추면서, 오히려 더 깊은 자리에서 인간의 오만과 여성의 상처를 드러낸다.
리즈 무어의 『숲의 신』은 피터 반라 가문의 딸 바버라의 사라짐으로 시작된다. 이 가문은 피터 반라 1세가 숲을 매입해 꼭대기에 집을 짓고 ‘에머슨 캠프’라 이름 붙인 곳에서 자신들만의 성을 세우며 역사를 시작했다. 현재는 3세가 그곳에 살고 있으며, 4세였던 베어는 어린 시절 숲속에서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아들을 대신하듯 태어난 딸이 바로 바버라다. 첫아이를 잃은 앨리스에게 다시 닥친 두 번째 상실, 과연 이 아이들을 사라지게 한 것은 누구이며, 왜 10년의 시간 간격을 두고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된 것일까?
현대적 의미의 디오니소스적 응보를 그린 스릴러 소설 리즈 무어의 『숲의 신』은 큰 틀에서 세 가지 축으로 나누어 읽을 수 있다. 첫째, 그리스 신화 펜테우스의 서사 구조를 따라 드러나는 인간의 오만과 그에 대한 대자연의 응보. 둘째, 오로지 절대자에게 복종하도록 길들여진 여성들의 상처와 침묵 속에 깃든 페미니즘의 목소리. 셋째, ‘에머슨 캠프’라는 이름의 아이러니, 즉 자기 신뢰를 말한 철학자의 이름 아래 정반대의 삶을 이어가는 왕국의 사람들이다. 이제 각각의 이야기를 조금 더 세세하게 들여다보자.
먼저 신화적 서사를 따라 드러나는 인간의 오만과 그에 대한 대자연의 응보부터 살펴보자. 작품의 원제에는 숲을 뜻하는 단어 뒤에 복수형 S가 붙어 있다. 이는 한 구역의 그것이 아니라, 모든 숲, 즉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아우르는 대자연 전체를 가리킨다. 저자는 그 단 한 글자 S로 숲의 규모를 확장하며, 제목 속에 이미 세계의 스케일을 담아두었다. 따라서 이 작품의 숲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진정한 숲의 신과 스스로 신이 되려는 인간이라는 두 힘이 대립하는 신화적 무대로 기능한다.
작품 속 신은 스피노자의 『에티카』에서 말하는 존재처럼 대자연 그 자체를 뜻한다. 그 대척점에는 반라 가문이 있다. 피터 반라 1세는 스스로 신이 되기 위해 모두의 숲을 돈으로 사들여 자신만의 영역으로 바꾸고, 그 위에 성전을 세운다. 길도 차도 없는 깊은 숲속에 세운 그 집은 마치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연상시켜, 그의 오만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이후 반라 2세와 3세는 이곳에 살던 사람들을 사실상 자신의 노예로 삼으며, 지배와 징벌만이 존재하는 테바이로 완성한다.
이 가문에서 눈에 띄는 점은 이름이다. 단 한 명의 남자 후손만 낳는 룰을 암묵적으로 수행하며, 그 남자 후손의 이름은 모두 피터 반라이다. 1세, 2세, 3세, 4세. 이 장치는 이들을 모두 한 인물, 즉 펜테우스로 묶는다. 이들은 외부에서 돈을 벌어와 그들의 성전에서 권위를 세운다. 그들의 집에서 일하지만 단 한 번도 현관을 통과해 본 적 없는 일꾼들, 자신의 목적을 위해 파티에 초대해 이용한 뒤 존재를 지우는 일, 존재의 지움을 당하는 아내까지, 그 모든 행위가 그들이 세운 신전의 윤리를 드러낸다.
다음으로 신에게 오로지 복종하는 존재로 재창조되는 그의 아내 앨리스는 무려 열두 살이나 많은 남자인 피터 반라 3세와 결혼한다. 앨리스에게 그는 가슴 두근거림이었지만, 그에게 앨리스는 외부의 명성을 위해 옆구리에 걸기 좋은 장식품에 불과했다. 집안에 큰 피해를 주고 아들을 잃은 뒤 무너진 아내와의 이혼 대신 바람을 택하는 피터. 그에게 이혼은 신문 1면을 장식할 만한 수치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인간적인 신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처음부터 관계가 아주 나빴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신혼의 달콤함이 아니었다. 가스라이팅을 위한 초반의 러브 밤(love bombing)에 불과했다. 약 2년간 이어진 그의 러브 밤은 아들에게 열렬한 사랑을 퍼붓던 데메테르를 오직 피터만 바라보는 메데이아로 바꾸어 놓는다. 이후 남편은 폭군으로 변하지만, 그녀는 이미 자신을 잃고 복종만 할 뿐이다. 모든 윤리를 저버린 남편의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하고도 시선만 돌린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앨리스와 목소리를 잃은 다른 여성들은 당시(1950~70년대) 미국 사회에서 여성의 인권이 얼마나 참담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단순히 성인 여성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피터 반라 4세인 베어의 실종 이후 대용품으로 태어난 바버라. 그리고 반라 가문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에게 입이 막힌 테시 조까지. 그러나 이들은 이미 메데이아로 변한 앨리스처럼 지내지 않는다.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사투를 벌인다. 이들의 모습은 숲의 신의 비호를 받으며 신인 척하는 인간들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 결과, 바버라는 오빠 베어처럼 또다시 사라지고 경찰이 투입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저자가 깔아 놓은 블랙 코미디이다. 바로 피터 반라가 가장 좋아하는 에머슨의 『독립독행(자기 확신)』이라는 책에서 이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에머슨의 『자기 확신』은 “신은 외부가 아니라 자기 안에 있다"라는 사상이다. 그런데 피터 반라 가문은 이를 “내가 곧 신이다”로 뒤집어 숲을 사유화하고, 그 위에 독립독행과 에머슨 캠프를 세운다. 본래 인간의 내면을 해방시키려던 철학이 권력과 소유의 언어로 변한 셈이다. 이 뒤틀린 신앙심이야말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블랙코미디이다다.
현대적 의미의 디오니소스적 응보를 그린 스릴러 소설 리즈 무어의 『숲의 신』은 인간이 신의 자리를 탐한 끝에 스스로의 피로 제단을 쌓는 이야기다. 저자는 숲이라는 원초적 공간 안에서 오만과 폭력, 구원과 희생을 교차시키며 인간 문명이 감히 넘지 말아야 할 경계를 그어 둔다. 그 경계선을 짓밟는 순간, 신은 더 이상 외부의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서 가장 잔혹한 얼굴로 되살아난다. 이 책은 스릴러물이지만 오히려 묵직한 철학적 메시지가 강한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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