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잔혹사 - 약탈, 살인, 고문으로 얼룩진 과학과 의학의 역사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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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에 과학계에 핼리혜성처럼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날아온 책인 주기율표에 얽힌 역사 이야기인 '사라진 스푼'이라는 책을 기억하는가? 당시 이 책을 읽고 한동안 학교 다닐 때 그토록 외우기 힘들었던 주기율표를 성인이 되어 줄기차게 외웠던 기억이 있다. 이후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어느 날 굉장히 익숙한 저자의 이름이 들려왔다. 바로 샘 킨. 홀로 전율을 하면서 오늘 읽은 과학 잔혹사의 저자이다. 사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과학과 역사라는 키워드가 붙었을 때 무조건 싫어하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 한다.


얼마 전 뱅하민 라바투트의 매니악에 대하여 소개한 적이 있다. 책의 절반 이상의 비중이 조니 폰 노이만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과학 잔혹사라고 하기에 과학적인 개발로 인하여 인류를 해친 내용이 주를 이룰 줄 알았는데 완벽하게 예상이 빗나갔다. 오히려 과학이라는 것에 함몰되어 인간성을 버려 끝이 비참한 과학자들의 생애와 그 피해자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당연하게 이들의 발견, 비인간적 선택, 검증은 베이스로 깔려 있지만, 그것보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한 그 이면의 스토리가 훨씬 재밌었다. 그럼 몇 가지만 소개해 볼까 한다.


노예 무역의 참상에 치를 떨었지만, 연구비 충당을 위하여 결국은 노예 무역에 손을 댄 18세기 영국의 헨리 스미스먼의 이야기가 나온다. 박물학 학자였고, 흰개미집 연구로 명성을 쌓은 사람이다. 이 사람에 대하여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실질적 책의 내용은 이렇게 요약을 한다고 제대로 알 수가 없으니 직접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스미스먼이 흰개미집을 연구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 너무 놀라워 공유하고 싶어서 소개한다. 이 책에는 매 챕터마다 이렇게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반짝이게 만드는 에피소드들이 여러 개 나오는데 오늘은 딱 세 개만 소개하려고 한다.


먼저 우리는 농업 혁명이 사피엔스의 전유물처럼 여긴다. 게다가 이 농업 혁명은 인간에게 더 많이 일하고 덜 건강하고 더 불행하게 하는 지상 최대의 사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사실 이 농업이 사피엔스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한다면 믿겠는가? 그렇다. 스미스먼이 흰개미집을 연구하다가 개미가 6천만 년 전부터 농사를 지어왔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심지어 개미들이 작물을 기른 이유도 인간처럼 식량을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 아마 호기심이 조금만 있는 사람이라면 이 부분을 읽으면서 '과학 잔혹사'라는 책에 손이 근질거릴 것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로 눈을 반짝이면서 읽었던 부분도 소개한다. 과거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의과대학에 해부용 시신이 많이 부족했다고 한다. 대안으로 도굴꾼들이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고, 나중에는 더 심한 범죄로 이를 충당했다고 한다. 좀 웃겼던 것은 남의 무덤을 파헤치는 것보다 시신에 있는 수의나 보석을 훔치는 것이 더 중죄로 인정되어 사형 선고를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몇 푼을 받기 위하여 밤새 타인의 무덤은 파헤쳐도 그 안에서 나오는 물건은 모두 놓고 갔다고. 심지어 당시 한 건당 금액도 그리 높지 않아 저 물건들이 더 가치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나중에 이것이 문제가 되면서 결국은 구빈원과 무연고자 시신만 의과대학으로 보내기로 하였는데 삶에 의한 생물학적인 변화로 인하여 장기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결국은 기증으로 흘러간다. 자! 그럼 역사상 최초로 자신의 시신을 기증한 사람이 누구일까?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공리주의를 주창한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다. 인류를 위하여 자신의 사후까지 기증한 철학자라니 생전의 모습을 사후에도 실천하려는 것 같아 인상 깊었다. 정말 공리주의가 무엇인지 철저하게 실천으로 증명한 사람이지 않을까 한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에피소드는 우리에게 CSI, NCIS, FBI, SUV 등등 온갖 알파벳이 난무하는 범죄과학 드라마를 연상케하는 스토리이다. 심지어 그 배경은 하버드 대학교 의과대학이었으며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하버드대 의학과 출신이었다. 둘 사이가 그렇게 좋은 사이는 아니었는데 어느 날 피해자가 가해자를 만나고 난 후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아무리 찾아도 없는데 어이없게 이곳의 수위가 억울하게 의심을 받게 되어 이를 벗어나기 위하여 가해자의 사무실을 뒤지다가 머리가 없는 시신을 발견한다.


당시에는 계급론이 있어 같은 계급끼리는 어지간하면 건드리지 않는 계급 동맹이 관례라고 하였다. 배심원을 제외한 모두가 하버드대 졸업생이었던 것. 심지어 판사는 우리에게 꽤 친숙한 사람과 관련이 있었다. 바로 모비딕의 저자 허먼 멜빌의 장인이었던 것. 모든 사람들은 당연하게 수위가 억울하게 누명을 쓸 줄 알았다. 계급도 낮고 그들만의 리그였으니까. 게다가 시체에 머리가 없고 심하게 타서 신원확인이 어려워 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여기서 치과 의사와 해부학자들의 활약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치아가 틀니였는데 이 틀니에 열을 가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깔끔하게 설명하는 법의 치과학의 진면목으로 법정은 시작이 된다. 게다가 해부학에 도가 튼 학자들은 난도질한 사람이 누구이든 의학과 해부학에 능통한 자라는 것을 증명하였고, 수위는 이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결국은 계급 동맹이 깨지면서 가해자인 교수가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에 처해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법의학의 초기 역사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것은 과학자들과 의학자들이 윤리 의식을 잃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아마 눈치가 빠른 분이라면 작가가 이야기를 굉장히 매끄럽고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게 썼다는 것을 알 것이다. 즉, 지루하기 짝이 없는 역사적, 전문적 용어가 아니라 어느 누가 보더라도 이해하기 쉽고 빠져들기 쉽게 내용이 전개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앞으로 더 먼 미래에 인류에게 어떤 범죄가 발생할 수 있을지에 대한 예시를 들면서 책은 마무리된다. 이것이 단순 공상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성을 대입하여 든 예시여서 굉장히 신빙성 있게 느껴졌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문장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많은 사람은 훌륭한 과학자를 만드는 것이 지성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훌륭한 과학자를 만드는 것은 인성이다."

샘 킨의 과학 잔혹사 중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 인용문 p. 436


이 말은 프롤로그를 들어가기 전에도 나오며 12개의 에피소드가 끝난 후 결론에서 또 한 번 나온다. 즉, 작가가 이 책을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말을 가장 잘 축약해 놓은 인용문인 것이다. 책의 과학자들은 의외로 돈이나 명성보다 지식 욕구에 의해 범죄를 저지르는 경향이 있었다. 범죄의 내용도 굉장히 다양했는데 앞서 소개한 것과 같이 노예 무역부터 시작하여 도둑질, 모함, 동물 고문 및 살해, 비인간적 실험, 성별 교체, 각종 말도 안 되는 수술, 사기, 세뇌, 살인 등등 그 유형도 굉장히 다양했다.


얼음송곳으로 정신적으로 아픈 환자에게 뇌 수술을 너무나 가볍게 진행한 의사 얘기를 보면서 수재나 캐헐런의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가 떠올랐다. 딱히 병명과 증세를 확실하게 설명하지도 못하면서 일단 가두고 약을 먹이고 뇌엽 절제술을 시행하던 것을 직접 침투하여 실험한 로젠한의 이야기가 거짓이라는 것을 고발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오늘 과학 잔혹사를 보면 로젠한이 직접 들어가서 실험한 것은 아닐지언정 그와 같은 치료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명성을 위하여 하루에 수십 명씩 의사 한 사람이 집도를 했다니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도 뭔가 비윤리적인 행동을 저질렀을 것이다. 이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경계 태세이다. 카를 융이 말했듯이, 악인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으며, 그 사실을 인정할 때에만 그 악인을 길들일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샘 킨 과학 잔혹사 p.435


샘 킨은 과학자와 의학자들이 자신의 잘못을 못 본체 하면서 잠시 스스로의 잘못을 정당할 때 그 연구의 결과 또한 매우 좋지 않다고 책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말한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었던 것 같다. 그 대상이 꼭 과학자와 의학자만이 아니라는 것! 바로 당신일 수도 있다는 것! 그때 스스로의 잘못에 대하여 정당화를 한다면 이 책에 나오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인간처럼 될 수 있으며 그 결말은 결단코 본인이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경고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샘 킨의 과학 잔혹사는 단순하게 과학에 관심이 있거나, 인류의 숨겨진 역사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도 참 좋은 책이지만, 글을 쓰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는 책이다. 너무나도 다양한 인간 군상과 미래에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범죄까지 예시를 잔뜩 들어놨으니 말이다. 500페이지가 넘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아마 아이디어가 필요하면 언제든 다시 펴서 볼 도서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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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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