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잡사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화에 담긴 은밀하고 사적인 15가지 스캔들
김태진 지음 / 오아시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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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영수의 중요성만 강조 받던 우리의 교육에서 대가의 그림의 이면 이야기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전혀 없어서였을까? 삶의 시간이 쌓이면서 점점 누가 그린 작품명 무엇이라는 것을 아는 것을 넘어서 그림이 말하는 내용을 알고 싶은 갈망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백과사전 식의 설명이 담긴 도서가 아닌 더 깊은 것을 알려주는 책이라는 정보를 얻으면 어떻게든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래서 오늘 선택한 도서는 김태진 작가의 명화잡사이다. 우아한 도서명은 아니지만 엘레강스함을 수십 번 덧칠해 놓은 제목의 책보다 훨씬 유익해서 자신 있게 소개한다.



그동안 예술에 문외한으로 지냈기에 김태진 작가가 꽤 생소했다. 처음에 제목과 책 설명을 읽은 후에도 망설일 만큼.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및 인문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서울 시립대 교수이다. 게다가 예술에 관심이 있는 수많은 이들에게는 스타로 알려져 있었다. 바로 유튜브 채널 아트 인문학의 크리에이터이며 누적 조회 수 1,100만에 달한다고 한다. 독서를 하다가 잠시 아트 인문학을 방문했는데 활자로 마주한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이번 명화잡사에 실리지 않은 많은 이야기도 있었으며 영상의 수가 꽤 많았다. 개인적으로 영상보다 책으로 접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편이어서 이곳에 있는 내용을 모두 출간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읽기 전에 도서 내의 특별한 그림 감상법이라면서 책 보는 방법을 9페이지에 걸쳐 설명한 부분이 꽤 마음에 들었다. 여기에 우리가 여행을 가기 전 교과서적인 지식 습득을 위한 노력에 관한 것이 나온다. 가볍에 둘러보는 작품에서는 이 정도의 지식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세월의 흔적이 겹겹이 쌓인 명화를 마주할 때는 본인 스스로도 명백한 한계에 부딛힌다는 것. 이것을 저자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며 이 과정을 독자가 시간을 멈춘 화가의 마법을 푸는 방법이라고 한다. 처음엔 이 말의 수식어들이 멋지다는 생각만으로 시작하였지만, 막상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작가의 말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깊이가 있는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첫 장을 열면 우리는 작가에게 멱살이 잡혀 바로 16세기 초로 날아가 20세기 중반까지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 총 15가지 스캔들이라고 책 표지에 소개하였지만, 사실 직접 읽어보면 각각의 스캔들에 얽힌 인물이 많아 그것보다 훨씬 더 많게 느껴진다. 각 장의 마지막에는 인문학 카페라는 제목으로 작가가 이 작품들을 선정한 이유를 설명한다. 또한 앞에서 우리를 과거로 끌고가 역사적 사건과 각종 스캔들 등 명화의 세부 내용을 파고드는 것과 달리 갑자기 현재로 끌고 오면서 가장 멀리에서 명작을 감사하는 방법까지 알려준다. 모든 페이지가 재미있고 흥미로웠지만, 마지막 인문학 카페에서 큰 그림으로 정리해 주는 것이 개인적으로 꽤 좋았다.



사실 가장 충격을 받았던 것은 첫 챕터였다. 라파엘로나 그의 작품 자체에서 받은 충격보다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교황이라는 존재가 너무 하찮게 느껴진 것이 컸다. 적어도 종교적으로 그 길을 오래 걸었거나, 업적이 있거나, 인물 자체로 훌륭한 사람을 교황으로 추대한 것으로 짐작했었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첫 장부터 박살나는 바람에 충격도 받았지만 기대감아 훨씬 커졌다. 위의 문구처럼 각 가문의 치열한 싸움도 싸움이지만, 종교적으로 존경의 유무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추기경을 매수했느냐가 교황 선출을 좌우했다고 한다. 어쩌면 이런 행태들이 모이고 모여서 천년이나 신들에게 홀려 있던 인간이 마법에서 깨어나는 역할을 했던 것일 수도.



1장의 대부분은 종교적 갈등에 관련된 내용이다. 그래서인지 이 시대를 말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유명 인사도 출연을 했다. 그 이름도 유명한 헨리 8세와 그의 아내들. 개인적으로 그동안 역사, 과학, 예술 관련 도서를 통하여 너무 자주 만났던 인물이어서인지(너무 자주 나와서 혼자 책 이외의 자료로도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들의 행적보다 앤 불린이 경고의 의미를 담아 프랑스 대사들에게 선물한 한 편의 그림에 더 눈이 갔다. 바로 다음에 소개할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이라는 작품이다.



이 그림의 원래 제목은 대사들이 아닌 장 드 댕트빌(Jean de Dinteville)과 조르주 드 셀브(Georges de Selves)였다고 한다. 그리고 별칭이 붙어 있기도 하다. 바로 세상에서 가장 치밀하게 설계된 그림. 가로, 세로 2미터로 그려졌으며 실물 크기에 입각하였으며 작품 속에는 어느 것 하나 계산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바닥의 해골은 당시의 작품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왜상 원리가 적용되어 있어 정면에서 보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오른쪽 측면에서 보면 해골로 보인다. 지금은 내셔널 갤러리에 있지만, 실제 주인은 이런 원리를 알아서인지 작품을 계단에 전시해 놓았다고 알려져 있다.



독서가 진행됨에 따라 "우와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이런 사랑도 있을 수 있구나.", "사람이라는 것이 참 여러 가지 종류구나.", "시대에 따라 이런 생각을 하며 살 수도 있구나.", "작품을 이런 식으로도 표현할 수 있구나.", "그 동안 내가 알고 있던 것은 정말 티끌에 불과했구나." 하는 등등의 생각을 하였다. 역사, 경제, 정치, 종교, 사랑, 욕심 등등 책 한 권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엄청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책이었다. 게다가 학교 다닐 때 지루하기 짝이 없던 내용들을 너무나도 즐겁게. 그 이유는 아마도 현대에서 머나먼 옛날의 사람들이 한 행태를 본 것이 아니라 직접 그 시대로 날아간 것 같은 느낌으로 볼 수 있도록 이끌어준 작가의 역량이지 않을까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 중에 타임 슬립에 대하여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가벼운 타임 슬립을 말하는 웹소설이나 드라마부터 타임머신을 통한 진정한 시간 여행을 보여주는 SF 영화까지 실생활에서 매일 접하고 있으니까. 이런 상상 속의 타임 슬립은 쉽게 여기면서 명화를 이용하여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어려워하는 것이 실정이다. 이번 기회에 김태진 작가의 명화잡사를 통하여 확실하게 화가가 심혈을 기울여 부린 마법으로 붙들어 놓은 시간을 직접 풀어보시길 추천한다.


#명화잡사 #김태진 #카시오페아출판사 #오아시스 #유럽여행추천서적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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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행위 - 문학 노트 오에 컬렉션 3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상민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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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블로그에 책을 소개할 때 전체 요약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 이유는 아무리 제대로 요약을 하더라도 저자가 작품에서 말하려고 하는 내용을 모두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요약을 하다가 보면 처음에는 디테일까지 매우 장황하게 하지만 결국은 한 문장으로 정리가 가능하다. 단적인 예로 얼마 전에 소개한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이 7년 동안 바다에서 왜군과 싸워 이기는 동안 쓴 일기 정도로 요약이 가능하다. 물론 조금 더 길게 쓸 수도 있지만, 이런 요약만으로는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나 분노 따위는  절대 느낄 수 없다. 오늘 소개하는 21세기문화원에서 출간한 오에 겐자부로의 쓰는 행위의 첫 챕터도 이런 이야기로 시작한다. 덕분에 조금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사실, 소설의 전략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커서인지 분명 장점이 많은 책이었지만, 실망도 했다. 이유는 작법서인 줄 알았던 나의 착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쓰는 행위는 모든 기대감을 내려놓고 읽기 시작했다. 게다가 소설의 전략에서 문장의 난해함으로 인해 긴장감은 두 배를 가지고서. 그런데 깊이는 크게 차이가 없었지만, 같은 인물이 쓴 책이지만 번역가가 달라져서인지, 이 도서는 저자가 좀 더 쉽게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읽기가 훨씬 수월했다. 꼬인 문장이 적었다는 말이지 내용이 가벼워 술술 읽힌다는 말은 아니다. 이 책도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여 자신의 내면과 작가의 언어와 끊임없이 교류를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서두르는가. 왜 침묵을 지키며 진득이 표현의 때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가. 인생은 단 한 번뿐이거늘."

- p.209


21세기문화원에서 출간한 오에 컬렉션 Ⅲ인 오에 겐자부로의 쓰는 행위는 총 1. 작가가 소설을 쓰려 한다, 2. 말과 문체, 눈과 관조, 3. 표현의 물질화와 표현된 인간의 자립, 4. 작가에게 이의를 제기하다, 5. 표현되는 말의 창세기, 6. 지움으로 쓰다의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은 소제목이 여러 개 존재한다. 매 챕터가 작가라는 길을 꿈으로 여기고 있는 사람이나 이미 그 길을 걷고 있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으며 자신의 글에 깊이를 더해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챕터는 말과 문체에 관한 2장이었다. 예전에는 작가마다 특유의 문체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존경하는 저자의 문체를 배우고 싶어 필사를 하기도 하였는데 이런 생각은 좁은 시야의 생각이며 꽤 위험한 편견이라는 것을 2장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이전에는 크게 인식하지 못했는데 같은 저자의 다른 책을 여러 권 읽다가 보니 묘한 차이점이 느껴졌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말과 문체 파트를 읽으면서 나름의 정의를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얻게 된 문체는 어느 지점에서인가 작가의 의식에 의한 기획을 초월하고 있다. 만약 초월하는 대신 그 기획의 범주 내에 위축되어 있다면 그것은 애당초 소설을 위한 살아 있는 문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 P.52



​먼저 오에는 문체에 대하여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물론 두 가지 모두 한 작품을 쓸 때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정반대의 말을 하고 있어 의아했는데 차근차근 읽으니 나름 이해가 되었다. 오에의 문장으로 표현하려면 굉장히 어려워지니 내가 이해한 것을 예시로 표현하겠다. 내가 이해한 것이 100% 맞다는 확신은 없다.) 우리가 흔히 사람의 아들(이문열)은 만연체, 칼의 노래(김훈)는 간결체를 쓰는 대표적인 인물로 꼽는다. 즉, 개인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며 이것은 한 저자가 여러 소설을 쓰더라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나는 이것을 작가가 의식적으로 문체를 바꾸려고 하지만 결코 자신의 의식을 초월할 수 없어 어느새 작품에 녹아 있다고 이해했다.


"작가는 소설이라는 미궁의 입구에서 매복하고 있는 괴물 한 마리를 그 소설에서 작가 자신의 존재감의 행동법, 즉 문체를 파악함으로써 간신히 극복한다. 여기에 더하여 문체의 실체를 매번 새로 선택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전개해 나갈 때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다면, 작가 자신을 단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비약의 순간이 찾아온다."

- P.69


오에가 말하는 두 번째 문체는 한 인물이 여러 작품을 쓰더라고 같은 시간에 쓰는 것이 아닌 이상 문체가 항상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꽤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지만, 글을 쉽게 쓰며 자신의 존재감을 작품에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을 가짜 작가라고 표현하는 설명과 함께 그 작품을 쓸 때 그려지는 이미지와 주인공들의 목소리와 더불어 저자 자신의 시간까지 올려져야만 글쓴이의 존재감이 표현된다고 한다. 나는 이것을 작품을 읽을 때 독자가 소설에서 이질감을 느끼지 않게 만들기 위한 작가의 노력이라고 이해했다. 한 문장을 수십번씩 지우고 다시 쓰는 행위를 반복하며 가장 저자가 느끼는 감각과 상상과 텍스트가 한덩어리가 되도록 만드는 행위라고.


오에 컬렉션 다섯 작품 중 소설의 전략과 쓰는 행위를 읽었다. 쓰는 행위는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정형화된 방법론이 아닌 그 길을 가려는 후배들 가지는 고뇌에 관하여 선배가 이미 느낀 것에  깊은 고찰의 결과에 대한  안내서이다. 그것도 범접할 수 없는 선배가 자신의 새내기 시절의 미흡함까지 꺼내어서 꼭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을 알려주는 안내서. 개인적으로 소설의 전략을 읽고 오에 컬렉션은 나의 수준으로는 아직 이해하기 힘든 책이라는 생각에 나머지 책에 대한 구매 의욕이 완벽히 사라졌다. 하지만, 오늘 쓰는 행위를 읽고 나머지 세 권도 구매할 결심을 했다. 


요즘 블로그에서 한 문장을 나아가기가 어렵다는 고충을 자주 본다. 이것을 오에의 말로 하자면 쉽게 쓰는 가짜 작가가 아니라 작품 속에 자신의 시간을 얹어 스스로를 담으려고 노력이다. 즉, 고충을 느끼는 것이 제대로 된 글을 쓰기 위한 기본적인 과정인 것이니 어쩌면 자부심을 느껴도 좋지 않을까 한다. 아마 앞으로 글이라는 것을 계속 쓴다면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21세기문화원에서 출간한 오에 겐자부로의 쓰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읽을 것이다. 


#쓰는 행위 #오에겐자부로 #21세기문화원 #오에컬렉션3 #노벨문학상수상작가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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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전략 - 소설의 기초부터 완성까지 오에 컬렉션 4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성혜숙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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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일본 문학에 그다지 끌리지 않는 편이다. 이유는 사건에 초점을 두고 쓴 책은 흔히 말하는 갑툭튀가 많아서 싫어하고, 심리에 중점을 두고 쓴 책은 나의 정서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비문학은 예외이다. 그래서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작가이지만 나에게 오에 겐자부로는 낯선 사람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번 책을 접하기 전에는 이런 사람이 존재했었는지조차 몰랐다. 그러나 일단 비문학이라는 점, 제목에서 소설을 쓰는 작법서 같은 느낌이 난다는 점에 끌려서 읽게 되었다. 소설을 잘 쓰고 싶은 욕구와 함께 이번 기회에 일본 문학을 이해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는 점도 작용했다.



생소한 작가이기에 이력부터 살펴보았다. 1935년 일본 출생이며 1959년 도쿄대 문학부 불문학과를 졸업했다.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작년에 타계했다. 작품으로는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만엔 원년의 풋볼을 비롯하여 외치는 소리, 개인적인 체험,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 등이 있다. 오에는 아들이 자폐증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이후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태평양 전쟁에서 사망한 이력 때문인지 전후 민주주의자이며 반전 운동을 했다.



대표적인 친한파 명사로 알려져 있으며 방한도 꽤 여러 번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좌파 성향이 강하며 사회운동가로서 활동도 활발히 했다. 일본에 원자 폭탄 투하 시기에 생존한 사람이어서인지 원폭과 원전 반대자이다. 그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후 일본인들의 집에는 오에의 책이 거의 한 권씩 있었는데 문장의 복잡성과 난해함으로 인해 제대로 읽은 사람은 적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소설의 전략을 읽으면서 문장의 꼬임이 작가 자체의 문제인지 번역자의 문제인지 궁금했는데 작가에 대하여 공부하면서 원래 그렇게 쓰는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총 다섯 권으로 구성된 오에 컬렉션 중 네 번째인 소설의 전략은 얼핏 보면 소설 작법서로 보이기 쉽다. 하지만, 이런 생각으로 읽기 시작한다면 반드시 중간에 포기하게 될 책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글을 쓰는 요령을 알려주는 책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작품들을 비평하면서 오에 자신이 어떤 영향을 받았으며 그를 통하여 자신의 작품에 어떻게 녹여냈는지를 설명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즉, 한 작가의 인풋 과정과 아웃풋 과정을 섬세하고 느리고 묵직하게 표현한 도서라고 할 수 있다.



"'낯설게 하기'라는 방법론은 단어의 단계에서 소설이라는 장르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일관성 있게 적용할 수 있는 소설의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 p.29


21세기문화원에서 출간한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의 전략에는 굉장히 많은 작품이 나온다. 아는 작품보다 모르는 작품이 더 많아서인지 작가의 설명을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본인이 직접 말한 것처럼 꽤 문장이 꼬여 있고 난해함도 독자에게 독서의 어려움을 선사했달까. 첫 시작은 낯설게 하기라는 방법론으로 쉽게 시작한다. 이후 소설의 리얼리티를 말하는데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의미와 소설 속의 의미가 다르다고 말한다.



"리얼리티가 있는지 없는지? 그것은 소설의 단어·문장·이미지, 모든 단계에서 작품 속에서는 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의 문제이다." - p.31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2,3년 주기로 한 작가나 사상가를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읽는 것을 일상생활의 축으로 해 놨다는 말이다. 올해 시도한 것이 한 작가의 작품 여러 권 읽기였다. 물론 오에처럼 긴 시간을 주기로 읽을 생각은 아니었다. 연초에는 그냥 특징적 문체를 알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한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간 어렴풋하게 깨달은 것의 실체를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랄까?



다만, 문체가 쉽지 않다. 그동안 읽었던 어떤 글보다 줄표가 많다. 거기에 괄호까지. 게다가 문장이 아주 길다. 즉, 꽤 집중력을 가지고 읽어야 저자의 의도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다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 이 도서는 예시로 든 작품을 다 읽고 나의 견해를 가진 후 저자의 텍스트와 나눌 수 있을 때 비로소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흥미가 돋는 작품이 예시로 많이 나오기에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하늘의 별이 된 작가와 한바탕 논쟁을 벌이는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21세기문화원에서 출간한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의 전략은 문학을 접하는 모든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흔히들 문학보다는 비문학을 지성을 위한 도서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문학을 깊이 있게 이해하면 비문학 못지않게 문학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좋은 것은 쉽게 가질 수 없는 법이다. 시간을 들여 이 도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나면 누구나 문학을 보는 눈이 수직으로 상승할 것이다.



#소설의전략 #오에겐자부로 #21세기문화원 #오에컬렉션4 #노벨문학상수상작가

***출판사에서 도서를 협찬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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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제텔카스텐 - 스쳐 지나가는 아이디어를 붙잡는 가장 확실한 방법
데이비드 카다비 지음, 김수진 옮김 / 데이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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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발달하면서 점점 무엇인가를 기억하는 부분이 적어졌다. 어릴 때는 지인들의 생일이나 전화번호 등을 거의 외우고 살았는데 지금은 스마트폰에서 검색하기가 급급하다. 그 결과 삶에서 선택과 집중에 문제가 생기고 신이 주신 망각이라는 축복이 온전한 축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 제목은 생소하지만 부제가 마음에 들어서 선택한 책 디지털 제텔카스텐을 살펴보려고 한다.



디지털 제텔카스텐의 저자는 데이비드 카다비이다. 나에겐 생소한 인물이지만 『시간 관리 대신 마음 관리 : 창의력이 중요한 경우의 생산성』과 『출발을 위한 마음가짐 : 미루는 것을 멈추고 창작을 시작하라』라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타임풀에서 디자인 어드바이저로 일했으며 이후 2015년에 구글이 타임풀을 인수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가 마음 관리 원칙을 생산성 기능에 적용한 것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내게 이 작가가 더욱 생소한 것은 비선호 카테고리인 자기 계발서 베스트셀러 작가여서인 듯하다.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카테고리임에도 이 책을 손에 잡은 이유는 부제인 스쳐 지나가는 아이디어를 붙잡는 가장 확실한 방법 때문이었다. 독서를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그 방법을 알고 싶어 할 것이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너무나도 생소한 제텔카스텐이 무슨 의미인지부터 살펴보자. 이것은 메모 상자라는 뜻의 독일어이다. 아날로그로 보자면 메모지로 가득 찬 상자, 디지털로 보자면 앱 등을 이용하여 모아 놓은 자료를 말한다. 용어가 낯설어서 그렇지 알고 보면 우리가 다 아는 내용인 것이다.



총 16 챕터로 구성되었으며 약 130여 페이지이다. 따라서 관심만 있다면 긴 시간 들이지 않고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저자는 제텔카스텐이 인간의 정신을 위한 자전거라고 한다. 즉, 효율적인 생산성을 가져다준다는 말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스티브 잡스의 말을 인용해서 소개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있었던 챕터는 독서법이었다. 나름대로 독서 노트도 써보고, 필사도 해봤지만 묘하게 어긋남이 느껴져서이다. 독서법 챕터에서는 종이 책의 경우와 E-Book으로 읽을 때를 각각 설명하며 하이라이트를 한 번 줄 긋는 것이 아닌 완벽히 내 것이 되도록 이용하는 방법도 알려준다. 우수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의 독서법을 연구한 결과를 말하는데 같은 책을 읽고도 의미의 이해와 습득량이 달라지는 이유를 알려준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두려움이 느껴졌다. 과연 나는 책을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텍스트가 제시하는 문제와 주장을 틀 그래도 수용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는가? 하는 생각 때문에.


저자가 말하는 스쳐 지나가는 아이디어를 붙잡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결국은 메모였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하는 수준이 아니라 굉장히 체계적인 규칙에 따라 하는 메모이다. 제텔카스텐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것들을 이용하여 완성된 글이나 기타 등등의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이다. 본문에서 디지털 앱을 여러 가지 소개하지만 이렇게 글자로만 적혀 있어 헤맬 독자를 위하여 마지막에 친절하게도 자신의 웹사이트 주소를 알려주고 다른 사람들이 어떤 툴을 사용하는지 볼 수 있는 팁까지 제공한다.


책을 다 읽고 스스로 그동안 남겨 놓은 독서 노트를 펼쳐 보았다. 그야말로 커다란 상자에 온갖 메모지를 던져 넣은 것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필요한 코멘트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인풋은 하지만 아웃풋은 되지 않는 상태였던 것. 처음부터 바로 완벽한 제텔카스텐을 할 수는 없겠지만, 글 쓰는 것을 꿈으로 가지고 있는 미래의 나를 위하여 차근차근 메모 방법을 바꿔보려고 한다. 업무가 너무 정신이 없으신 분, 책은 읽었는데 내용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는 분들이라면 데이비드 카다비의 디지털 제텔카스텐, 스쳐 지나가는 아이디어를 붙잡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도움이 될 것이다.



#디지털제텔카스텐 #데이비드카다비 #데이원 #아이디어관리법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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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 뮤지컬 《순신》, 영화 《한산》 《명량》 《노량》의 감동을 『난중일기』와 함께
이순신 지음, 장윤철 옮김 / 스타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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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렇게 늦게 글을 올린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꽤 늦은 시간에 올린다. 이유는 감정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이다. 난중일기는 징비록과 함께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읽어야 할 필독서로 지정이 되어 있어서 이번에 도전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던 임진왜란에 대한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감정적으로 크게 다가왔다. 분노도, 슬픔도, 아픔도, 안타까움도....... 읽으면서 한 인간으로서의 이순신 장군은 당시에 이런 참상들을 어떻게 견디고 앞으로 나아갔을까 하는 마음에 다른 시대에서 단순히 글을 읽으면서도 너무 힘이 들어 꽤 오랫동안 책을 잡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난중일기의 기본 스토리는 갖가지 영상물과 역사서를 통하여 그리고 학교 교육을 통하여 알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감동은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이런 안일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처음에는 조금은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어쩌면 일기라는 개념은 잊고 이순신이라는 세 자에 영상물처럼 전쟁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 같은 소설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페이지가 넘어감에 따라 임금이나 위인에게 초점이 맞춰진 임진왜란보다 나라를 진정으로 위하는 충무공의 눈으로 본 백성과 인간의 감정이나 생활을 깊이 있게 느낄 수 있어서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가깝고 깊게 다가왔다고나 할까? 몇 가지 큰 얼개로 나누어서 보자.



본문에는 본인의 생각으로 쓰인 원균의 모습도 많았지만 주변의 알만한 사람들이 전하는 원균의 모습도 꽤 많이 나왔다. 대부분은 겁이 많고, 거짓말을 잘하고, 시기 질투심도 많고, 욕심도 많고, 사악하다는 평이었다. 아주 조금은 이런 부분 정도는 마음에 든다고 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표현이 나올까 하여 읽었지만, 나중에는 일기에 쓰는 것을 거부할 정도였다. 그러나 원균의 농간으로 옥에 갇혔다가 백의종군하는 모습을 보며 전쟁 중인데 굳이 이렇게까지 하여야 할까 하는 마음에 울분이 넘쳤다. 게다가 적과의 싸움에서 도망쳤다는 말에는 화가 나기보다 어이가 없어 세상에는 이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구나 하는 느낌만 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책 전반에 걸쳐 너무 독자의 마음에 화를 심어 놓아 최종적으로 이런 감정을 가지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둔전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바로 군인들이 경작하여 국고로 환수하여 쓰던 토지를 말한다. 아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은 평온한 나날이었다면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단어인데 전란이 일어났는데도 군인이 경작을 하는 모습은 당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럼에도 본문에 군량미가 부족함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전란 중에도 당파싸움을 하는 윗전들이 얼마나 안일했는지를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집도 배도 직접 수리하고 만드는 모습, 사냥까지 해오는 모습도 나온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전투를 해야 하는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름도 모를 그들이 존경스럽기 그지없었다.



과연 명은 임진왜란에서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순신 장군은 수군이었기에 직접적인 부분만 명시했을 수도 있지만 난중일기에서는 전쟁의 마지막 해에 명나라의 수군 이야기가 등장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로는 지상군 5만 명에 엄청난 물자를 지원해 준 것으로 알고 있다. 덕분에 우리 백성이 굶어죽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전쟁 난 나라에서 은으로 생필품을 바꾸기 쉽지 않아 결국은 약탈자가 되고 만 그들로 기록되어 있다. 여하튼 본문에서는 수군이 임진왜란 마지막 1년 즈음에 등장한다. 그들의 업적이 엄청났다는 기록보다는 피해가 컸다는 기록이 있었다. 사선은 100척의(약 1500석) 큰 배이니까.



본문에 몸이 좋았던 날이 별로 없었던 충무공 이순신이다. 항상 배앓이를 하고, 식은땀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거의 매일 일기에 쓰여있다. 이런 몸으로 전장을 누비고, 남해 지역의 민군관을 다스리고, 옥고를 치르고, 백의종군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를 여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막내아들의 사망 소식까지 들어야 했던 남자. 마음 놓고 가족의 잃은 슬픔을 제대로 드러내지도 못하다가 전장의 이슬이 되어 버린 인간. 우리는 위인으로서의 그는 잘 알고 있지만, 한 인간으로서 겪어야만 했던 일들과 그의 감정은 얼마나 공감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이런 때에 나라를 위하여 모든 것을 뒤로하고 나라의 부름에 따라 목숨이 오가는 곳으로 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러면서 계급과 업적을 모두 떼어낸 인간 이순신을 조금 더 적나라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지나간 역사이고 지나간 전쟁이며 이미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알고 있는 위인이어서 큰 감흥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매우 달랐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무술년 11월 19일(음력)에 전장에서 스러졌다.(물론 본문에는 나오지 않는다. 저승에서 일기를 쓸 수는 없으니) 그의 정신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지만. 마지막 2년의 기록을 보면서 저절로 책에 눈물이 떨어졌다. 같은 모양을 하고 태어나도 짐승 같은 인간이 있음에 치가 떨렸고,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음에도 거인으로 느껴지는 인물이 있어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개인적으로 피로 쓴 임진왜란의 참상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는 징비록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원본 그대로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입으로만 위인, 훌륭한 장군, 우리나라를 빛낸 충무공이 아니라 그가 왜 위인인지 남이 알려주는 역사가 아닌 본인의 마음이 담긴 글을 통하여 그 이유를 피부로 느꼈으면 하기 때문이다. 보통은 책을 덮고 후기를 쓰면 마음이 줄어들기 마련인데 필사가 밀려 다시 한번 이 진한 감정을, 벅찬 마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남아서 기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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