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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행위 - 문학 노트 ㅣ 오에 컬렉션 3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상민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4년 6월
평점 :
언제나 블로그에 책을 소개할 때 전체 요약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 이유는 아무리 제대로 요약을 하더라도 저자가 작품에서 말하려고 하는 내용을 모두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요약을 하다가 보면 처음에는 디테일까지 매우 장황하게 하지만 결국은 한 문장으로 정리가 가능하다. 단적인 예로 얼마 전에 소개한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이 7년 동안 바다에서 왜군과 싸워 이기는 동안 쓴 일기 정도로 요약이 가능하다. 물론 조금 더 길게 쓸 수도 있지만, 이런 요약만으로는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나 분노 따위는 절대 느낄 수 없다. 오늘 소개하는 21세기문화원에서 출간한 오에 겐자부로의 쓰는 행위의 첫 챕터도 이런 이야기로 시작한다. 덕분에 조금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사실, 소설의 전략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커서인지 분명 장점이 많은 책이었지만, 실망도 했다. 이유는 작법서인 줄 알았던 나의 착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쓰는 행위는 모든 기대감을 내려놓고 읽기 시작했다. 게다가 소설의 전략에서 문장의 난해함으로 인해 긴장감은 두 배를 가지고서. 그런데 깊이는 크게 차이가 없었지만, 같은 인물이 쓴 책이지만 번역가가 달라져서인지, 이 도서는 저자가 좀 더 쉽게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읽기가 훨씬 수월했다. 꼬인 문장이 적었다는 말이지 내용이 가벼워 술술 읽힌다는 말은 아니다. 이 책도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여 자신의 내면과 작가의 언어와 끊임없이 교류를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서두르는가. 왜 침묵을 지키며 진득이 표현의 때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가. 인생은 단 한 번뿐이거늘."
- p.209
21세기문화원에서 출간한 오에 컬렉션 Ⅲ인 오에 겐자부로의 쓰는 행위는 총 1. 작가가 소설을 쓰려 한다, 2. 말과 문체, 눈과 관조, 3. 표현의 물질화와 표현된 인간의 자립, 4. 작가에게 이의를 제기하다, 5. 표현되는 말의 창세기, 6. 지움으로 쓰다의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은 소제목이 여러 개 존재한다. 매 챕터가 작가라는 길을 꿈으로 여기고 있는 사람이나 이미 그 길을 걷고 있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으며 자신의 글에 깊이를 더해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챕터는 말과 문체에 관한 2장이었다. 예전에는 작가마다 특유의 문체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존경하는 저자의 문체를 배우고 싶어 필사를 하기도 하였는데 이런 생각은 좁은 시야의 생각이며 꽤 위험한 편견이라는 것을 2장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이전에는 크게 인식하지 못했는데 같은 저자의 다른 책을 여러 권 읽다가 보니 묘한 차이점이 느껴졌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말과 문체 파트를 읽으면서 나름의 정의를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얻게 된 문체는 어느 지점에서인가 작가의 의식에 의한 기획을 초월하고 있다. 만약 초월하는 대신 그 기획의 범주 내에 위축되어 있다면 그것은 애당초 소설을 위한 살아 있는 문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 P.52
먼저 오에는 문체에 대하여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물론 두 가지 모두 한 작품을 쓸 때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정반대의 말을 하고 있어 의아했는데 차근차근 읽으니 나름 이해가 되었다. 오에의 문장으로 표현하려면 굉장히 어려워지니 내가 이해한 것을 예시로 표현하겠다. 내가 이해한 것이 100% 맞다는 확신은 없다.) 우리가 흔히 사람의 아들(이문열)은 만연체, 칼의 노래(김훈)는 간결체를 쓰는 대표적인 인물로 꼽는다. 즉, 개인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며 이것은 한 저자가 여러 소설을 쓰더라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나는 이것을 작가가 의식적으로 문체를 바꾸려고 하지만 결코 자신의 의식을 초월할 수 없어 어느새 작품에 녹아 있다고 이해했다.
"작가는 소설이라는 미궁의 입구에서 매복하고 있는 괴물 한 마리를 그 소설에서 작가 자신의 존재감의 행동법, 즉 문체를 파악함으로써 간신히 극복한다. 여기에 더하여 문체의 실체를 매번 새로 선택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전개해 나갈 때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다면, 작가 자신을 단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비약의 순간이 찾아온다."
- P.69
오에가 말하는 두 번째 문체는 한 인물이 여러 작품을 쓰더라고 같은 시간에 쓰는 것이 아닌 이상 문체가 항상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꽤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지만, 글을 쉽게 쓰며 자신의 존재감을 작품에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을 가짜 작가라고 표현하는 설명과 함께 그 작품을 쓸 때 그려지는 이미지와 주인공들의 목소리와 더불어 저자 자신의 시간까지 올려져야만 글쓴이의 존재감이 표현된다고 한다. 나는 이것을 작품을 읽을 때 독자가 소설에서 이질감을 느끼지 않게 만들기 위한 작가의 노력이라고 이해했다. 한 문장을 수십번씩 지우고 다시 쓰는 행위를 반복하며 가장 저자가 느끼는 감각과 상상과 텍스트가 한덩어리가 되도록 만드는 행위라고.
오에 컬렉션 다섯 작품 중 소설의 전략과 쓰는 행위를 읽었다. 쓰는 행위는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정형화된 방법론이 아닌 그 길을 가려는 후배들 가지는 고뇌에 관하여 선배가 이미 느낀 것에 깊은 고찰의 결과에 대한 안내서이다. 그것도 범접할 수 없는 선배가 자신의 새내기 시절의 미흡함까지 꺼내어서 꼭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을 알려주는 안내서. 개인적으로 소설의 전략을 읽고 오에 컬렉션은 나의 수준으로는 아직 이해하기 힘든 책이라는 생각에 나머지 책에 대한 구매 의욕이 완벽히 사라졌다. 하지만, 오늘 쓰는 행위를 읽고 나머지 세 권도 구매할 결심을 했다.
요즘 블로그에서 한 문장을 나아가기가 어렵다는 고충을 자주 본다. 이것을 오에의 말로 하자면 쉽게 쓰는 가짜 작가가 아니라 작품 속에 자신의 시간을 얹어 스스로를 담으려고 노력이다. 즉, 고충을 느끼는 것이 제대로 된 글을 쓰기 위한 기본적인 과정인 것이니 어쩌면 자부심을 느껴도 좋지 않을까 한다. 아마 앞으로 글이라는 것을 계속 쓴다면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21세기문화원에서 출간한 오에 겐자부로의 쓰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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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