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을 때까지 기다려
오한기 외 지음 / 비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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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을때까지기다려 #오한기 #한유주 #박소희 #장희원 #이지 #디저트앤솔러지 #비채 #비채2기서포터즈 #서평단

한손에 쏙 들의오는 귀여운 그림의 책이다. 이야기도 귀여울지 책속으로 들어가보겠다.

민트초코 브라우니_오한기
김영사에서 디저트 앤솔러지를 출간할 계획이라며 청탁한 초콜릿 테마 단편을 덜컥 수락한다. 그러나 막상 마감이 다가오자 후회가 된다. 초콜릿에 대해 뭘 쓰더라도 유의미한 소설이라 잠깐 초코릿은 제쳐두고 요새 격변기를 맞은 인생에 대해 보따리를 푼다.

작은 원룸까지 얻어 운영하기 시작한 공부방이 문전성시를 이뤘기 때문이다. 국어 전문 학원 장 원장에게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 오지만 조율 차이로 거절한다. 사업을 확장하고 장 원장과 같은 층에 들어가게 되는데...초콜릿 보면 똥 생각 날듯. 아무튼 장 원장이 승리한 이야기다.

세계의 절반_한유주
2046년 봄 이제는 과거의 공휴일이 된 식목일에 나무를 심는 사람들과 함께 한 정민은 일행들과 한탄강 트레킹에 나선다.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한 곳에서 구체를 발견한다. 그날 저녁 회식자리에서 망설이다 안구를 주웠다며 보여 준다.

순간 정교하고 예리한 빛이 이내 민형의 이마에 새로 자리한 그것은 검은 홍채에 은색 동공의 눈이다. 민형의 세 번째 눈이 재현하는 장면들이 펼쳐지고 누구의 전생인지 펼쳐지는데...눈이 세 개면 괴물인가. 치과 의자가 문명의 첨단일 거란 생각은 못해봤다.

모든 당신의 젤리_박소희
조조 영화관은 한산하고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린다. 무심결에 들여다 본 젤리 봉지 안 젤리와 눈이 마주친다. 주황색 곰 젤리가 눈앞에서 바들바들 떤다. 그러니까 젤리는 원래 사람이었다. 췌장암 말기 환자
죽기 전에 젤리가 되길 선택한 덕에 새해를 맞았고 삼백구십구 개가 더 있다는데...그 사람은 또다시 젤리를 기다린다. 녹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젤리였다니 의외다.

박하사탕_장희원
추모 공원 아래 야트막한 산의 중턱 있는 호수. 선영은 허옇게 살비듬이 일어난 얼굴로 걷고 싶다 말한다. 선영과 나는 오래전에 절교한 사이다. 지방에서 올라와 혼자 지낸다는 공통점으로 선영과 나, 연주 늘 셋이서 친하게 지냈다. 연주의 발인이 아니면 만날 일도 없었을 터였는데...추모공원을 다녀온 아줌마들처럼 웃을수 있을까. 식후엔 박하사탕이지.

라이프 피버_이지
나는 류블랴나에 살고 있다. 한국을 떠난온 후 어머니 집에 단 한 번 방문했다. 떠난 김에 돌아가지 않을 뿐이라 그 마음이 불가피한 이유라면 그런 셈이다. 그날 나는 슈톨렌을 사가지고 갔다. 나는 십 년 전 조카에게 애인을 빼앗았다. 이 모든 일의 근원에는 어머니가 있다고 생각했는데...참 성의없이 가족 관계다.

초콜릿, 이스파한, 젤리, 박하사탕, 슈톨렌을 소재로 디저트를 테마로한 앤솔러지다. 민트초코 브라우니는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처럼 실감나는 글이었다. 절박한데 웃긴. 세계의 절반의 이스파한은 디저트가 생소하면서 가장 궁금증을 유발한다. 모든 당신의 젤리는 하리보가 떠오르면서 말랑말랑한 젤리가 400개 동시에 쳐다보면 오싹한 느낌이 들 것만 같다. 박하사탕은 어떤 걸 먹어도 후식으로 제공되는 박하사탕처럼 뒷끝은 깔끔하게 끝내버리는 관계가 떠오르고, 라이프 피버는 장애를 가진 딸에게 미안한 감정은 커녕 참으로 모순덩어리로 일관하는 어머니에게 집 앞에서 사 온 디저트도 과분하단 생각이 든다.

디저트 가게가 만연하고 거의 가격과 칼로리가 한끼 식사와 맞먹는 요즘. 내가 가장 많이 찾는 설빙은 과체중을 유발한다. 그리고 절때 녹을 때까지 기다릴수 없다. 제목이 녹을 때까지 기다려가 된 이유가 뭘까. 입안에서 녹을 때까지 기다리는 각 단편의 주인공들은 삶을, 고통을, 상실을, 후회를 입안에서 녹아들 때까지 음미하고 되짚어보고 감정을 다스린다.
다섯 편 모두 색다른 맛이 나는 소설이었다. 책표지 만큼 귀여운 얘기는 없었던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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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의 밤 안 된다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청미래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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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의밤 #미치오슈스케 #청미래 #이벤트당첨

청미래 출판사에서 나의 여름 독서 취향 이벤트가 있었다. 사실 사계절 모두 공포 장르를 좋아하긴 하지만 역시 여름엔 특히나 뼈속까지 시원하게 해줄 오싹한 공포물이 최고다. <폭포의 밤> 보내주셔서 감사드리며 책속으로 들어가보겠다.

모모카는 우편함에 들어있는 연하장 두 장을 들고 들어온다. 하나는 부모님, 다른 하나는 언니 히리카 앞으로 왔다. 1년 동안 돌아오지 않을지언정. 언니는 분명 살아있다.오늘로 딱 1년이다.

실종당시 언니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언니의 자전거가 등산로 입구에서 발견되고 집 밖으로 들고 나간 적이 없는 인형이 고코강 물가에 떨어져 있었다.
모모카는 언니의 비밀 SNS 계정을 발견한다.

게시물은 세 개. 언니가 사라진 날 오후다. 언니는 테리베아 선생님을 데리고 가쿠레이 산에 뭘 하러 간 걸까. 묘진 폭포에 간 것 아닐까. 언니는 묘진 폭포의 전설을 믿었다. 신이 소원을 이루어주길 바랐다.

모모카는 목에 카메라를 건 오쓰키를 만난다. 묘진 폭포에 있는 건 저승의 신이라 한다. 폭포의 신이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목숨을 빼앗는다 말한다. 오쓰기의 카메라에 히리카의 사진이 저장되어 있다.

산장지기 오쓰키가 괜히 의심스러워지는 대목이다. 그런데 오쓰키의 어머니도 오래전에 행방불명되었다. 모모카는 언니의 1년 전 행동을 재연하다 위기를 맞고 도움을 받으러 산장을 찾는다.

모모카는 손전등을 빌려 떠난다. 오쓰키는 냉동고 설명서를 찾고 있었다. 수명을 다한 냉동고 속에는 시체가 있다. 이럴줄 알았다니까. 모모카는 오쓰키가 떠난 산장에 다시 들어간다.

커다란 냉동고에서 벌려진 한쪽 눈을 본다. 아슬아슬하게 도망친 모모카는 폭포 관람대에서 오쓰키를 만난다. 오쓰키를 속여 무사히 벗어난다. 오쓰키는 여고생 옆에 언 자신의 어머니 시체를 발견한 게 누굴까 생각한다.

1장 묘진 폭포에서 소원을 빌어서는 안 된다는 이렇게 두 개의 사건을 보여주며 끝난다. 2장 머리 없는 남자를 구해서는 안된다는 대피소에서 여자 시체가 두 구가 발견된 이후의 연장선이다. 목매달린 남자 인형이 있는 삼촌을 둔 신의 이야기다.

3장 그 영상을 조사해서는 안 된다는 은둔형 외톨이의 자살과 폐륜 아들을 부모가 죽인 사건이 연이어 연결된다. 4장 소원 비는 목소리를 연결해서는 안 된다는 히리카가 실종된지 3년 전 그로부터 1년 후에모모카는 시체로 발견된 사건이다.

연작으로 모두 독립된 이야기같지만 연결되어 있다. 가쿠레이 산, 묘진 폭포, 고코 강, 무쿠로 다리.. 지명 모두가 죽음을 가리킨다. 그리고 얽히고 설킨 등장인물들이 재등장한다.

읽을수록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마지막 반전으로 모든 실마리가 풀린다. 어쨌거나 폭포에서 소원을 빈 사람들의 소원은 이루어진 셈이다. 모두 값비싼 희생을 치렀지만.

제목이 왜 폭포의 밤인가 했더니 첫 장에서 벌어진 사건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가수는 노래제목 따라간다는 속설이 있는데 지명따라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는 경우는 처음본다. 함부로 소원을 빌어서도 안된다는 느낌도 들고.

오해의 소지를 남기며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만 바로 수수께끼를 풀 필요도 없이 모든 감춰진 진실을 드러낸다. 하지만 바로 숨겨진 비밀을 슬쩍 던지며 뭐가 진실일까 게임을 하게 만든다.

미치오 슈스케는 각 단편을 쓸 때마다 3길로그램은 빠졌을 정도로 <폭포의 밤> 집필 작업이 힘들었다고 한다. <절벽의 밤>을 잇는 고난도 추리소설이니 당연하다. '안 된다' 시리즈 3편을 기대해 보면서 여름에 볼만할 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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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거당한 집 - 제4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최수진 지음 / 사계절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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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거당한집 #최수진 #박지리문학상 #사계절

제4회 박지리 문학상 수상작품이다. 앞선 작품들과 달리 경장편이 아닌 단편 3편이 한 편으로 엮인 연작소설이다. 세 편의 이야기속으로 들어가보겠다.

길위의 희망ㅡ광주 편
시위대로 잠입한지 보름 만에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쫓겨난다. 취재기자로서는 초조한데 전당에 머무는 입장으로는 묘하게 느긋해진 내가 만난 찬란 씨는 시카고 출신 한인 2세로 스트리트 댄서다. 대사관을 통해 귀국하는 대신 28인치 트렁크를 끌고 시위대에 합류했다. 어리벙벙한 나의 취재 배낭도 정작 새벽에 기습적으로 진압이 이루어져 둘 다 짐을 챙기지 못한다.

진압대는 효율적으로 제압되어야 할 물건 더미처럼 다룬다. 대외적 리더인 눈 씨, 최초 점거자 하마 씨와 딱새 씨 남매. 쌍둥이 자매 빵 씨와 장미 씨 모두를. 눈 씨는 광주 시민들의 억울한 역사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되리라 희망을 품었다. 취재기자인 나는 재난을 고발해야 했으나 전당에 머무는 그 고발이 세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잃는다.

돌아갈 마땅한 집이 없는 시위대 동료들과의 짧은 만남이다. 1980년대를 떠올리는 2031년 원전 사고 이후 이야기는 어째 아이러니하게도 미래에서 보낸 과거의 이야기같다. 2036년에도 BTS는 영원하길..

점거당한 집ㅡ용인 편
누나가 전화를 받지 않자 어머니가 가보라고 시킨다. 누나는 며칠 전까지 백남준아트센터에서의 전시를 마무리한 차였다. 2033년 6월 한낮 최고기온이 43도에 달하는데 한일은 하니의 집을 찾는다. 경찰은 어제까지 백남준아트센터 내 카페에서 카드와 핸드폰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하니는 2031년 5월 광주비엔날레에 신진작가로 초청받아 전시할 예정이었다가 월성원전사고로 중지되었다.

난장판이 된 집을 치우며 한일은 누나를 떠올린다. 이 집은 비밀이 무성하게 방치된 집이다. 한일은 숨겨진 위장카메라를 보물찾기 하듯 찾아내 닦아서 식탁위에 올려 놓는다. 자신의 집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전시공간에 숨어든 누나는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에게 줄 특별한 선물을 준비한다. 하니는 무엇을 준비했을까? 미술관에 칩거한 누나를 만난다. <점거당한 집-2044>는 한일이 하니의 전시를 재해석한 전시공간이 된다.

금일의 경주ㅡ경주 편
작가 금일의 첫 성공작 집필은 경주에 들어가서 시작됐다. 금일은 글을 잘 쓰는 작가가 아니라 산만하고 장황해서 오히려 빈약해 보이는 글쓰기를 한참 고수했다. 경주 근현대사박물관 3층 구석의 열람실에 전시된 낡은 일기가 그 이유다. 일기에서 전해지는 것은 우울이다. 복잡한 연애사와 약물중독 문제도 겹쳐 금일은 자신이 줄곧 어루만지던 소설적 주제를 파악하는 데 꽤나 오래 걸렸다.

2034년 경주는 파괴된 역사 도시가 아닌 역사가 파괴된 폐허였다. 이주 지원 비용으로 받은 돈의 반은 식비로, 반은 책을 구입하는데 썼다. 결국 경주 생활은 금일에게 날개나 밧줄이 아닌 두 발만 지닌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재인식시켰다. 어떤 이들은 이때부터 죽음이라는 주제에 끌렸으리라 추론한다.

내가 2044년 근현대사박물관을 찾아 '작가의 방'에 남은 금일의 흔적을 보려한다. 경주시를 대표하는 작가라지만 금일의 방은 넓지 않다. 문화예술전시관을 나눠 써야 해서 그렇다. 그래도 터무니없는 소품에 유난히 생경하다. 청년 작가로 박물관에 전시된 건 관계자들 중 아무도 금일의 소설을 읽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소설처럼 실제로 읽지 않고서도 아는 척하기 쉬운 매체도 드무니까.

천년의 도시 경주가 폐허가 되고 금일은 경주시의 재개발로 쫓겨난 이들을 조직해 항의시위를 계획했다. 금일을 비롯해 두 명의 여성을 더 살해한 남자는 그냥 아무 동기도 없었다고 한다. 금일이 나를 위한 글을 썼다. 나는 금일을 위해 글을 쓰지 않았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점거 시위로 노숙의 장이 되고, 집은 영상 포퍼먼스 작업의 무대가 된 반면 미술관은 생활의 장이 된다. 박물관의 작가의 방은 생전의 금일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방이다.

소설이란 근본적으로 난잡한 장소인 것이다. 소설과 장소가 동종의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데 맞나? 작가가 그렇다면 그렇겠지. 세 편의 주인공들이 예술가라는 점과 미래 시점에서 쓰인 소설로 과거를 애도하는 점이 특이하다.

박지리문학상 수장작품의 면모가 확실한 작품이다. 속되게 지리다는 표현을 쓰고 싶은 책이다. 최수진 작가의 색깔이 드러난 또 다른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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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특별한 놀이공원
양선 지음 / 창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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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특별한놀이공원 #양선 #미디어창비
#그림책 #실화 #놀이공원 #그림책추천 #양선그림책 #창비서포터즈

<할아버지의 특별한 놀이공원>
할아버지가 가져온 낡은 우체통, 고장 난 시계, 이가 나간 그릇들이 빈터에 하나둘 쌓여 간다.

할아버지는 밤낮없이 버려진 물건들을 자르고, 붙이고, 색칠한다. 한편에 작은 앵두나무도 심는다.

어느새 빈터가 알록달록 예쁜 옷을 입고 새롭게 태어난다. 그래도 어딘가 허전한 할아버지.

마침내 작은 호수와 구름다리까지 완성되자 할아버지는 뿌듯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던 어느 날, 네 마리 동물이 놀이공원을 찾아온다. 너구리, 공작새, 원숭이, 강아지다.

할아버지는 너구리의 가족이 되어 주고, 공작새에게는 화려한 깃털을 펼치는 법을 가르쳐 준다.

원숭이가 마음껏 뛰어놀게 해 주고, 강아지에게는 편히 쉴 작은 집을 선물한다.

할아버지의 놀이공원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어 마을 아이들도, 숲속 동물들도 이곳으로 모여든다.

몇번의 계절이 지나자 놀이공원 옆에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놀이공원이 생긴다.

할아버지의 놀이공원은 어떻게 되었을까?
함께 살던 동물들이 놀이공원을 떠난다. 한 마리만 빼고. 시간이 흐르면서 놀이공원도 할아버지처럼 나이가 들어간다.

어느 추운 겨울날, 밤새도록 눈이 내리고 할아버지의 기타 소리까지 덮어 버린다. 이윽고 동물들 앞으로 편지가 도착한다. 앵두꽃 향기가 나는 편지에는 뭐라고 쓰여 있을까?

작가말을 빌리자면 할아버지가 만든 '노로공원'이 있었고, 매일같이 아이들이 찾아오고, 동물들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폐허가 된 놀이공원을 떠올리자 서글펐다고 한다. 그림책의 이야기는 양선 작가님의 어릴적 경험이다.

사진에 보이는 할아버지 너무 멋지고 훌륭하시다. 동화같은 이야기가 실제 있었다니 특별난 그림책이다.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향기로운 이야기로 다시 피어나기를 바라며 이 책을 쓰고 그렸다는데 그 마음이 전해진다.

그림도 예쁘고 할아버지의 추억이 만든 그림책이라
각자의 추억을 더듬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내게는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 그저 사진속에만 존재한다. 한복에 갓까지 쓰고 계셨으니 그야말로 옛날고리짝 역사에서나 볼 이야기다.

이제는 내가 할머니가 되고, 할아버지의 추억을 만들어줄 차례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그림책 하나에 많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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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는 알고 있다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엄지영 옮김 / 비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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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는알고있다 #비채

정보라 작가님이 추천한 세계가 주목하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선봉 작가님 책이다. 엘레나가 뭘 알고 있는지 책속으로 들어가보겠다.

발이 올라가지 않자 부엌에서 기다린다. 오전 10시에 떠나는 기차를 타야 한다. 9시에 약을 이미 먹었기 때문에 10시 기차를 놓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아직 발이 떨어지지 않아 걸어 다닐 수 없지만 거리이름을 조용히 외운다.

박사가 파키슨병을 처음 설명했을 때 리타도 자리에 함께 있었다.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리타. 오늘 누가 딸을 죽였는지 알아내기 위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도와주게끔 설득하려는 사람이 이사벨이다. 리타는 비가 온 저녁에 세상을 떠났다.

그걸 잊지 않기 위해 날씨를 알아맞히는 바다사자 인형을 주방 선반 맢쪽에 올려놓았다. 엘레나는 목이 뻣뻣해 땅만 내려다보며 걷는다. 누군가 인사를 건네고 지나간다. 그녀의 눈에는 오로지 바닥과 구두를 신은 무릎까지만 보인다.

리타가 늘 남자친구라 부르던 로베르토가 인사를 건넨다. 미용실을 하는 엄마가 안부를 전한다고 한다. 이렇게 여유 부리다간 기차를 놓친다. 로베르토는 딸을 죽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누가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밝혀 내기가 쉽지 않다.

오로지 살인만 존재하는 터라 서둘러야 한다. 이제 두 블록만 가면 매표소에 도착한다. 지치고 구부정한 몸으로 10시 기차가 오길 기다릴 것이다. 리타는 성당 종탑에 목을 맨 채로 발견되었다. 모두 자살이라고 하지만 그날 내린 비는 절대로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리타는 어릴 때부터 번개를 무서워해서 피뢰침이 있는 성당에 가까이 갈리가 없다. 비 오는 날 십자가 근처에 가지 않을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가리지 않고 했을 리타다. 신부는 리타의 죽음 앞에서도 제례만큼은 중단없이 치른다.

목빗근이 뻣뻣해지고 시도 때도 없이 침이 줄줄 흐르고 소매에 팔을 끼울 수도 없는 처지지만 그래도 계속 살고자 하는 엘레나로서는 딸이 죽고 싶어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자살로 종결짓고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는다.

판사도, 경감도, 신부님도 모두 남의 말에 귀를 닫고 사는 인간이라는 것을 엘레나는 알고 있다. 자신보다 딸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 자주 다투었고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에 낸 적이 없을 뿐이다.

엘레나는 알고 있다. 딸이 살해당했다는 것을. 하지만 혼자 힘으로 증명할 수 없다. 자신을 대신해 조사를 하고, 물어보고 걷고, 엘레나의 명령에 움직여 줄 육체를 찾아 기차에 오른 것이다.

엘레나가 이사벨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과거가 교차되어 나온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의 죄를 운운하는 후안 신부가 제일 의심스럽다. 범인이 아니더라도 비호감이다.

이야기는 하루 동안 벌어진 일이다. 오전, 정오, 오후로 나눠서 알약을 먹는 시점으로 되어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불편한 몸으로 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쫓는 어머니. 과연 엘레나는 그 끝에서 무엇을 마주하게 될 것인가?

이사벨 만시야는 엘레나의 바람되로 움직여 줄 것인가? 엘레나가 알고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엘레나는 알약 하나 삼키기도 힘겨워 녹여 먹을수밖에 없다. 총체적 난국에서 엘레나가 감당해야 할 진실이 더 이상 바닥이 아니길 바라본다.

이제 엘레나가 알고 있는 것을 나도 알게 되었다. 작가의 사실주의적 묘사로 더 가슴을 후벼 파고 든다.
이사벨이 밝힌 뜻밖의 진실로 엘레나는 눈을 뜬다. 리타를 이제야 이해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계속 살기로 한 엘레나. 이제 엘레나의 시간 만이 남아있다.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작가가 던진 무거운 질문에 답을 찾아보기 바란다.

이 책은 비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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