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거당한 집 - 제4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최수진 지음 / 사계절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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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박지리 문학상 수상작품이다. 앞선 작품들과 달리 경장편이 아닌 단편 3편이 한 편으로 엮인 연작소설이다. 세 편의 이야기속으로 들어가보겠다.

길위의 희망ㅡ광주 편
시위대로 잠입한지 보름 만에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쫓겨난다. 취재기자로서는 초조한데 전당에 머무는 입장으로는 묘하게 느긋해진 내가 만난 찬란 씨는 시카고 출신 한인 2세로 스트리트 댄서다. 대사관을 통해 귀국하는 대신 28인치 트렁크를 끌고 시위대에 합류했다. 어리벙벙한 나의 취재 배낭도 정작 새벽에 기습적으로 진압이 이루어져 둘 다 짐을 챙기지 못한다.

진압대는 효율적으로 제압되어야 할 물건 더미처럼 다룬다. 대외적 리더인 눈 씨, 최초 점거자 하마 씨와 딱새 씨 남매. 쌍둥이 자매 빵 씨와 장미 씨 모두를. 눈 씨는 광주 시민들의 억울한 역사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되리라 희망을 품었다. 취재기자인 나는 재난을 고발해야 했으나 전당에 머무는 그 고발이 세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잃는다.

돌아갈 마땅한 집이 없는 시위대 동료들과의 짧은 만남이다. 1980년대를 떠올리는 2031년 원전 사고 이후 이야기는 어째 아이러니하게도 미래에서 보낸 과거의 이야기같다. 2036년에도 BTS는 영원하길..

점거당한 집ㅡ용인 편
누나가 전화를 받지 않자 어머니가 가보라고 시킨다. 누나는 며칠 전까지 백남준아트센터에서의 전시를 마무리한 차였다. 2033년 6월 한낮 최고기온이 43도에 달하는데 한일은 하니의 집을 찾는다. 경찰은 어제까지 백남준아트센터 내 카페에서 카드와 핸드폰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하니는 2031년 5월 광주비엔날레에 신진작가로 초청받아 전시할 예정이었다가 월성원전사고로 중지되었다.

난장판이 된 집을 치우며 한일은 누나를 떠올린다. 이 집은 비밀이 무성하게 방치된 집이다. 한일은 숨겨진 위장카메라를 보물찾기 하듯 찾아내 닦아서 식탁위에 올려 놓는다. 자신의 집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전시공간에 숨어든 누나는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에게 줄 특별한 선물을 준비한다. 하니는 무엇을 준비했을까? 미술관에 칩거한 누나를 만난다. <점거당한 집-2044>는 한일이 하니의 전시를 재해석한 전시공간이 된다.

금일의 경주ㅡ경주 편
작가 금일의 첫 성공작 집필은 경주에 들어가서 시작됐다. 금일은 글을 잘 쓰는 작가가 아니라 산만하고 장황해서 오히려 빈약해 보이는 글쓰기를 한참 고수했다. 경주 근현대사박물관 3층 구석의 열람실에 전시된 낡은 일기가 그 이유다. 일기에서 전해지는 것은 우울이다. 복잡한 연애사와 약물중독 문제도 겹쳐 금일은 자신이 줄곧 어루만지던 소설적 주제를 파악하는 데 꽤나 오래 걸렸다.

2034년 경주는 파괴된 역사 도시가 아닌 역사가 파괴된 폐허였다. 이주 지원 비용으로 받은 돈의 반은 식비로, 반은 책을 구입하는데 썼다. 결국 경주 생활은 금일에게 날개나 밧줄이 아닌 두 발만 지닌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재인식시켰다. 어떤 이들은 이때부터 죽음이라는 주제에 끌렸으리라 추론한다.

내가 2044년 근현대사박물관을 찾아 '작가의 방'에 남은 금일의 흔적을 보려한다. 경주시를 대표하는 작가라지만 금일의 방은 넓지 않다. 문화예술전시관을 나눠 써야 해서 그렇다. 그래도 터무니없는 소품에 유난히 생경하다. 청년 작가로 박물관에 전시된 건 관계자들 중 아무도 금일의 소설을 읽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소설처럼 실제로 읽지 않고서도 아는 척하기 쉬운 매체도 드무니까.

천년의 도시 경주가 폐허가 되고 금일은 경주시의 재개발로 쫓겨난 이들을 조직해 항의시위를 계획했다. 금일을 비롯해 두 명의 여성을 더 살해한 남자는 그냥 아무 동기도 없었다고 한다. 금일이 나를 위한 글을 썼다. 나는 금일을 위해 글을 쓰지 않았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점거 시위로 노숙의 장이 되고, 집은 영상 포퍼먼스 작업의 무대가 된 반면 미술관은 생활의 장이 된다. 박물관의 작가의 방은 생전의 금일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방이다.

소설이란 근본적으로 난잡한 장소인 것이다. 소설과 장소가 동종의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데 맞나? 작가가 그렇다면 그렇겠지. 세 편의 주인공들이 예술가라는 점과 미래 시점에서 쓰인 소설로 과거를 애도하는 점이 특이하다.

박지리문학상 수장작품의 면모가 확실한 작품이다. 속되게 지리다는 표현을 쓰고 싶은 책이다. 최수진 작가의 색깔이 드러난 또 다른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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