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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6
위수정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10월
평점 :
#fin #위수정 #현대문학 #이벤트당첨
위수정 작가님의 <fin> 출간기념 이벤트로 요즘 가장 몰입하고 싶은 배역은 무엇인가? 댓글 이벤트가 있었다. 내가 뽑힐 줄은 사실 몰랐다. 그럼 내 배역에 몰입해서 책 속으로 들어가 보겠다.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 마지막 공연이 끝났다. 잠시 후 배우들의 커튼콜이 시작되고 기옥과 태인만이 남는다. 주인공 기옥의 눈에 눈물이 차오른다. 기옥은 연영과를 졸업한 후 연극판에서 경력을 쌓은 케이스다. 학과 선배이자 사실혼 관계였던 M과 함께.
기옥이 연기파 배우로 성장하는 동안 M은 아이가 생겼다고 결혼 소식을 알렸다. M과의 이별 후에도 승승장구하는 기옥에게 스캔들이 터진다. 몇 년 간의 휴식기를 보내던 중 연극계에서 주목받는 연출가에게 연락이 와서 무대에 오르게 된 기옥이다.
그 마지막 공연 후 술자리는 3차로 이어지고, 주사가 심하기로 유명한 태인이 기옥에게 꽂혀 시비를 건다. 헤프닝으로 끝난 다음날 오후, 태인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태인의 장례식에 다녀온 후 어두운 방 홀로 누운 기옥은 잠 못 든다.
소설은 배우 기옥을 시작으로 그녀의 매니저 윤주, 태인의 매니저 상호, 그리고 태인의 이야기로 마무리 한다. 한 편의 영화, 아니 연극을 본 느낌이다. 소설속 두 주인공이 무대에 오른 작품 <밤으로의 긴 여로> 유진 오닐의 작품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유진 오닐이 자기 가족들을 무대위로 불러낸 작품으로 비극적 인간의 내면을 다루고 있다. 찰리 채플린의 장인이기도 한 유진 오닐은 네 가족의 불행을 담은 이 작품을 본인 사후 25년이 지난 후로 출간을 유언했다고 한다.
'fin'은 프랑스어에서 '끝'을 의미하지만, '아니라면(if n)'의 어법이 끝나지 않는 원환을 이루는 어떤 시작의 끝. 암전은 그렇게 하나의 연극을 끝내지만, 그 어둠은 그러한 끝이 '아니라면' 없었을 시작의 막을 열어 삶의 조명을 비춘다.
우리는 연극처럼 끝나는 삶이란 없는 듯이 그렇게 살고, 연극처럼 시작되는 죽음이란 없는 듯이 그렇게 죽는다. 그 시작과 끝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삶은 실패가 예정된 연극, 죽음마저도 그 끝이 될 수 없는 지난한 삶의 장막들이다.
무대가 아닌 삶 속에서의 인간 관계에서 보여지는 민낯과 진실은 불편하고 불쾌한 의식을 동반한다. 그래서 태인의 죽음은 공허하다. 상호가 주어진 역할에 만족하기로 한 이상 세상은 그를 의심하지 않는다. 단지 의문을 남긴다.
배우와 매니저, 네 남녀의 치열한 삶과 더불어 가면속에 숨겨진 내면은 애증관계다. 마냥 불편하다고 할 수 없는 게 이게 진실이기 때문이다. 무대에 선 사람만 몰입하는 게 아니다. 보는 사람은 더 더 몰입한다. 몰입해서 읽었던 <fin>은 긴 여운을 남긴다.
책표지는 '쓰레기 줍는 여인'이라는데 크림트의 '키스'의 여인이 떠오른다. 고개를 들면 어떨까? 170페이지의 손 안에 들어오는 예쁜 책이다. 이제 내 역할에 몰입하러 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