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은 2,000년 동안 모든 정치적 행위를 회피한 결과 다른 어떤 민족보다도 역사의 우연 요소에 더 취약했다. 따라서 세상사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태도가 결국 치명적인 역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유대인만을 향한 것은 아니다. 정치적 판단력을 잘 갖추지 못한 시민들의 국가가 경험하게 될 운명이다. - P234
인간다운 삶이 정치에 달렸다면, 그것은 정치 공간을 열어내는 인간의 능력에 의존한다. 아렌트의 정치적 행위의 핵심은 정치공간을 열고, 유지하며, 그 안에서 정치적 자유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아렌트에게 정치적 용서는 복잡하게 얽힌 인간 세상에서 정치 공간을 여는 열쇠인 셈이다. - P177
전쟁은 폭력행위인 반면, 정치는 말로 설득하는데 기반을 둔다. 정치와 정치가 아닌 것은 말을 중심으로 구분된다. 폭력에는 말의 능력이 없다. 폭력은 그 자체로 말 없음을 특징으로 한다. 따라서 전쟁과 같은 폭력행위가 정치의 연장인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정치 영역의 주변적 현상일 뿐이다. - P88
독일의 나치즘이 만든 죽음의 수용소나 소련의 스탈린주의가 만든 시베리아 수용소는 단지 우연한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시민들에게 자기 삶 가운데서 근원적인 공포를 체험하도록 함으로써 전체주의가 기능하도록 만든 필수적 장치였다. 전체주의 정부가 형성하는 공포는 개인들 간의 자유로운 소통과 협력을 불가능하게 한다. 이 공포는 사람들 간에 형성될 수 있는 소통공간을 철저히 파괴함으로써 정치공간이 만들어질 수 없게 한다. 정치 공간을 통해 올바른 의견을 형성할 수 없게 된 군중은 국가가 제공하는 이데올로기를 자신의 신념과 행위의 내용으로 내면화하도록 강요받는다. 이러한 장치 때문에 인간은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주체에서 주어진 자극에 반응하는 수동적 집단의 일원으로 변모한다. - P59
리더는 독단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독단에 사로잡힌 리더는 자기 조직을 관료주의에 물들게 만든다. 독단적 리더가 추구하는 대화는 일방적 지시일 뿐이며, 기껏해야 자기주장을 반복적으로 설명하는 친절일 뿐이다. - P67
아렌트는 가장 무서운 것은 관료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했다. 거기에는 책임을 지는 자가 아무도 없가 때문이다. 관료주의는 조직 구성원이 자기가 하는 일이 옳은지 판단하지 않고 일하는 문화를 말한다. 주어진 임무에 생각없이 충실한 사람은 자칫 성실한 악행자가 될 수 있다. - P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