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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기억력 천재가 된 남자 - 전 세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기억의 위대한 힘
조슈아 포어 지음, 류현 옮김 / 갤리온 / 2016년 4월
평점 :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일들을 잊으며 살아가고 이를 잊지 않기 위해서 메모하거나 알람을 맞추는 등 갖은 노력들을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스마트폰 하나면 이 안에 많은 것들을 기록할 수 있어 편리하다. 이렇게 발전된 사회를 살아가며 굳이 기억력이 좋아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쏟아지는 정보들에 한 번만 듣고 혹은 한 번만 읽고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수도 없이 한다.
그러던 중 만나게 된 이 책은 가뭄에 단비와도 같이 반가웠다. 절대 잊지 않는 방법이라던지 무작정 단기간에 기억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하는 책들보다 1년이란 긴 시간을 두고 연습하면 누구나 기억력이 좋아질 수 있다고 말하는 조금 더 현실적인 이 책이 궁금했다. '1년간 꾸준히 연습하면 나도?' 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읽어나간 책이다.
많은 책들에서 시간에 따라 기억력이 감소하는 에빙하우스의 기억의 망각곡선을 인용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을 알기에 필요한 정보를 단기기억 저장소에서 장기기억 저장소로 옮기려면 반복을 통해 이 정보가 중요하단 사실을 알려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억력의 감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매일 망각과 소리없는 전투를 벌인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생각보다 기억력이 좋다? 과거 한 연구에서는 우리가 학습하는 모든 것이 뇌에 ‘영구히’ 저장되지만 간혹 접근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럼 뇌 속 그 어딘가에 접근하는 방법만 터득한다면 영원히 모든 것을 잊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매 순간 모든 것이 머릿속에 저장되어 다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닐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우리의 뇌가 기억하는 방식은 우리가 예상보다 훨씬 더 놀라운 수준이라는 사실에 감사하다.
이 책은 메모리 챔피언쉽 대회를 취재하는 기자였던 저자가 기억력 훈련 방법을 통해 어떻게 전미 메모리 챔피언쉽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는지를 그려나간다. 읽으면서도 반신반의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학창시절 혹은 각종 시험 대비를 하면서 그렇게나 암기하려고 애썼던 것들은 쉽게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모리 챔피언쉽의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평범한 뇌를 가진 사람들도 하루에 한 시간씩 꾸준한 연습이면 기억력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말 50행이나 되는 미발표 시 암송하기, 사람들의 사진을 보고 이름 암기하기, 무작위 숫자들을 정해진 시간내에 암기하기 등 불가능해 보이기만 하는 대회 종목들을 저자는 훈련을 통해 해냈다. 그리고 훈련을 하면서 터득한 청킹기법, 기억의 궁전, 메이저 시스템, 베이커의 역설, PAO 시스템 등 여러 기법들을 소개한다.
그 중에서도 '기억의 궁전'은 어떻게든 배워보고 싶었던 방법이다. 활자의 발명 이전 고대 그리스에서는 '기억의 궁전'이라는 기억법이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에겐 정보를 저장할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기억하는 것 이외에는 딱히 대안이 없었다. 기억의 궁전은 고대 그리스 시모니데스의 기억술로도 잘 알려져있는데 머릿속에 자신이 익숙한 하나의 장소를 두어 거기에 정보를 입력하는 방법이다. 궁전 속에 있는 물건들과 자신이 기억하고자 하는 것을 연관시켜 이미지를 떠올리고 이러한 것들을 계속적으로 연결시키면서 저장소를 넓혀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유명한 살라미스 해전의 테미스토클레스도 이 방법을 통해 2만명의 로마시민의 이름을 모두 외웠다고한다. 그러나 점차 저장법들이 발달하며 기억술은 자취를 감추고야 말았다. 발전을 계속하며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한편으론 저런 훌륭한 기억술이 전해지지 못한채 역사속으로 사라진 것이 안타깝기도 했다.
또한 읽으면서 접한 여러 사례들은 천재적으로 타고난 기억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흔히 자폐아들 중에는 일반 사람들 보다 뛰어난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도 알려져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한 의심으로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불가사의한 기억력 천재를 찾아 나서기도 한다. 그를 만나고 나서도 그가 진짜 서번트 증후군 환자인지 노력을 통해 기억력을 발달시켰는지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다만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존재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저자는 그렇게 끝없는 훈련을 통해 마침내 전미 메모리 챔피언쉽 우승자가 된다. 그러면서 그는 뛰어난 기술 발달에도 왜 우리에게 기억력은 여전히 중요한지를 피력했다. 정보의 시대라고 불리우는 요즘 웬만한 아이디어는 검색 한 번, 클릭 한 번에 찾을 수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활발한 SNS 활동을 해 나가면서 자신들의 일상을 기록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도 한다. 이런 세상에 기억력이란 게 반드시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교육계도 예외는 아니다. 창의적인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명목하에 무조건적인 암기를 요구하는 교육 방식은 개선되어야 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기억과 지혜는 근육과 운동의 관계처럼 상호 보완적이다." 라는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있다고 느꼈다. 우리가 어떤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다른 정보와 연결시켜 받아들이는게 수월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해 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기억력은 정보의 수용체임과 동시에 창조의 근간이 될 수 있다. 기억력을 높여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배우는 재미도 있었지만 인간의 한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뇌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작동했다. 어쩌면 뇌와 기억력에 대한 편견과 오해 등 우리를 가로막고 있었던 건 아닐까. 뇌가 움직이는 방식이나 기억력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