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 지성의 이야기
정아은 지음 / 문예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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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리송한 제목도 한몫했지만 그와 더불어 '정아은'이라는 작가의 소설을 한편도 읽어보지 못했다는 호기심에 동해 잡게 된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는 한국 사회 기저에 깔려있는, 최근 거세게 불고 있는 페미니즘을 다루고 있다.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는 지성은 젊은 시절 운동권에 있었고 그런 전력을 담아 현재는 진보진영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대학에서 시간 강사는 물론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고 라디오 진행을 진행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며 시간강사에서 정직 교수가 될 날이 머지않았음을 자각할 정도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않더라도 여러 매체를 통해 그의 입지를 다져온 인물이지만 소설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여성이 한 침대에서 나체로 잠든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지성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셨고 자신의 인생을 통틀어 술김이나 완력으로 여자를 범할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한 침대에 잠들어있는 나체의 여인 채리는 그가 지금껏 지켜온 지성인에 반하는 혼란을 주었고 당장 집을 나가라는 지성의 말에도 지성의 집에 눌러앉아 함께 동거하게 된 채리와의 이야기는 현실적인 상황에서는 좀체 마주하기 힘든 묘함을 던져준다.

자신의 쌓아온 지성인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인 나채리는 오십 대인 자신보다 한참 어린 30대 중반의 여인이고 남편까지 있지만 집으로는 돌아가지 않으며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는 인물이다. 기괴한 면도 있지만 통통 튀는 발랄함으로 순간 지성의 허를 찔러 유쾌함을 이끌어내는 인물인데 평상시의 그라면 절대 엮이지 않았을 법한 인물인 나채리와의 동거는 다른 남자와의 동거로 일 년 넘게 별거 중인 아내와 최근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대통령 라인에 일침을 가해 실시간 검색을 오르내리며 그간 자신이 기고하던 칼럼이나 교수직 자리에서 위태롭게 된 경위, 더불어 25년간 문단에서 일하며 가까이 지냈던 이민주 시인이 자신을 겨냥한 미투 발언과 죽음으로 연결되며 지성에게 나채리라는 인물이 주는 관점은 다양하게 변화한다.

작가는 한국에 불고 있는 미투를 통해 남성들의 입장을 지성과 여러 캐릭터들을 통해 그들의 대처 방법들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 여지를 보여주고 여성의 인권과 그동안 묵인되었던 성인지 감수성을 놓고 벌이는 토론에서는 진심으로 고민하고 변화하려는 생각에서 저런 발언을 하는 것일까라는, 순수하게만 볼 수 없는 의도의 발언을 보면서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 파장도, 그것을 악용하며 편승하려는 부류도, 미투 고발에 모든 걸 잃고 전락하게 되는 지성도, 왜 작가는 채리라는 인물을 등장시켰을까란 의문에 대해서도, 읽다 보면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임에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는데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가 지성의 이야기라면 이어진 두 번째 소설인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 채리라고 불리었던 화이라는 여자의 이야기가 그려져 두 번째 소설은 어떤 이야기와 의미를 담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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캑터스
사라 헤이우드 지음, 김나연 옮김 / 시월이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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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를 보고 왜 8월부터 3월까지 8개월일까 궁금했더랬다.

소설의 주인공인 수잔이 속이 메스껍고 현기증이 나며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도 워낙에 마른 몸이고 일상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마른 유형답게 많이 먹지 못한 데다 신경 쓰는 일이 많아 그런 줄로만 알았더랬다. 그러다 수잔이 입덧하는 내용이 등장하며 왜 목차가 8개월까지였는지 이해가 갔고 다소 신경질적이며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산을 동생인 에드워드와 아웅다웅하는 장면이 나와 답답함으로 시작하긴 하지만 왜 이 소설을 '리즈 위더스푼'이 주목했고 영화화했는지 읽으며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됐던 것 같다.

마흔다섯 싱글인 수잔, 법학을 전공했지만 그것과 전혀 무관한 건설과 관련된 공무원으로 자신의 시간을 일에 너무 쏟아붓지 않으면서 안정적이고 고정적인 수입을 기대하는 모습에서 수잔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두 살 터울의 남동생 에드워드가 있지만 어릴 때부터 티격태격하며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나마 자라면서는 거의 등한시하며 살아왔지만 어머니 홀로 사는 집에 에드워드가 얹혀살게 되고 두 번의 뇌졸중 증상에 이어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면서 어머니 소유의 집이 동생에게 상속되면서 수잔은 동생이 모종의 계략이 있었을 것이라 의심하기에 이른다.

수잔이 그런 의심을 하게 된 까닭엔 마흔이 넘은 남동생은 의지가 약한 데다 뚜렷한 직업도 없으며 나태하기 짝이 없는 알코올중독자이기 때문이고 뭐든 강박증이 있는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똑 부러지는 수잔과는 대조적인 인물이라 어렸을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를 알고 남음직했다. 어쨌든 수잔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못 미더운 동생이기에 어머니의 유산 상속에 동생이 개입되었을 거라 생각하게 되었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시기에 맞물려 서로의 사생활을 침범하지 않는 관계를 12년간 이어오던 남자친구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리처드와의 사이에 뜻하지 않게 임신을 하게 됐고 아이를 혼자 키우려면 남동생에게 돌아갈 재산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야 하는, 이해타산 등의 이유로 소설의 시작은 답답하고 복잡하게 전개된다.

하지만 아이를 혼자 낳을 결심을 하면서 수잔이 맞이할 변화들과 지금까지 몰랐던 자신의 가정사 앞에서 인간으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마주하게 되는 수잔, 찔리면 핏물이 고일 것 같이 단단한 가시를 품은 선인장의 모습은 주인공인 수잔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평소에 선인장을 좋아해서 그런지 단단해 보이고 찔리면 아플 것 같은 겉모습과 함께 왠지 쓸쓸해 보이는 감상을 품게 하는 선인장은 의외로 따뜻한 것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볼 때 수잔을 비유하는 선인장의 제목은 탁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됐다.

다소 답답하게 시작되며 고구마를 한 움큼 집어먹은 듯한 느낌이었지만 읽을수록 어떻게 전개될지 매료되었던 소설이라 넷플릭스로 선보일 영화는 원작의 느낌을 잘 실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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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를 보는 식물학자 - 식물의 사계에 새겨진 살인의 마지막 순간
마크 스펜서 지음, 김성훈 옮김 / 더퀘스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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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랫동안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프로의 열혈 시청자였던 나는 미국 CSI 드라마보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법의학자에 매료되었었다. 범죄를 일으킨 범죄자들의 심리를 분석하는 프로프일러나 현장에서 발견된 시체가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 시체에 남겨진 상처를 추적해가는 법의학자들의 논리정연한 화투는 냉정하게 비치긴 했지만 그 자체로 굉장한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드라마나 TV에서 비치는 사건을 쫓는 그들의 모습이 현실의 그것과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 법의학자나 프로프일러가 쓴 책들을 보고 알게 되면서 겉으로만 보이는 멋진 직업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이 책을 보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드는데 책을 쓴 '마크 스펜서'는 런던 자연사박물관 식물 큐레이터란 직업을 가졌고 어릴 적부터 식물을 좋아해 일반인들이 가지지 않는 관점과 꿈을 가진 인물이다.

어릴 적부터 워낙 식물을 좋아해 원예 쪽으로 꿈을 펼칠 생각을 하였지만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쳤고 결국은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큐레이터로 활동하게 되었지만 그런 그에게 뜻밖에 범죄 사건이 발생한 현장의 식물을 관찰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서 그와의 삶도 바뀌기 시작한다.

이 책은 범죄심리학자나 법의학자가 이미 발생한 여러 사건들을 풀어놓는 형식과는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사건을 다루는 것 자체가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주리란 사실과 아직까지 진행되거나 앞으로 진행될지도 모르는 사건이 외부로 세어 나가는 일을 막고 싶어 그가 다루었던 사건들을 세세하게 묘사하지는 않고 있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 식물에 매력을 느꼈던 기억들, 자란 후 큐레이터로서의 삶과 법의식물학자가 범죄 현장에서 실제로 하는 일들, 생각보다 어려운 현장의 험난함, 시신과 함께했던 다양한 식물들의 생성주기를 통해 시신이 얼마나 현장에 방치되었으며 시신이 놓인 현장까지의 이동경로 등을 보여주는 사례들을 접하게 된다. 이야기 속에서 식물들이 가진 고유의 특징이나 토착종이 아닌 침입종이라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식물로 인해 어떻게 지역이 황폐해지게 되는지, 그것들을 바로잡기 위해 균이 도입된다는 사실은 식물에 대해 1도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는 흥미롭게 다가온다.

<시체를 보는 식물학자>는 법의식물학자의 직업만을 다루지만은 않는다. 시체를 발견하며 그와 함께하는 식물들이 그곳에 자리 잡고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불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기는 등 애초부터 식물에게 잘못이 있기보다 그렇게 만든 것이 인간이라는 본질적인 반성도 함께 지적하고 있어 여러 생각이 들게끔 하는 책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이런 책을 접할 기회가 없어 법의식물학자란 직업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몰랐지만 다양한 직업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이고 식물이나 법의학에 관심이 있는 아이라면 저자가 쓴 글이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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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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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준 데뷔작인 <죄의 여백>이란 소설이 꽤나 기억에 남았었는데 사실 작가의 이름까지는 기억하지 못한 채 흥미로움에 펼쳐본 책이 이 책이었고 들어가기에 앞서 소개된 작가 소개를 통해 같은 작가임을 알게 되었다. 펼쳐보고선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는데도 작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어 미안한 마음과 반가운 마음이 교차했던 '아시자와 요'의 <나의 신>은 초등학생이 주인공인 소설이다.

초등학생인 주인공 '나'와 주인공과 동급생이지만 초등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의젓하고 깊은 통찰력을 지닌 '미즈타니'가 중심이 되어 학교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들이 단편으로 이어진다.

처음 시작되는 소설은 주인공이 할아버지 집에서 버려진 새끼 고양이에게 줄 우유를 찾다가 할머니가 생전 마지막으로 만들었던 벚꽃절임차를 깨는 소동으로 시작한다. 할머니는 매년 벚꽃절임차를 만들었지만 할아버지는 맛있다기보다 봄을 맞는 기분으로 그것을 마셨고 할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며 마지막으로 담근 벚꽃차를 주인공이 실수를 깨는 바람에 할아버지에게는 더없이 소중할 추억까지 깨버린 것 같아 전전긍긍해하고 할아버지 몰래 주인공이 다시 만들 생각을 하면서 이야기는 전개되는데 친구들의 고민을 시원하게 해결해 주어 '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미즈타니의 활약이 돋보인다.

이후 두 아이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학교 이야기에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는 친구, 친구들에게 말 못 할 고민을 하던 친구 등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미즈타니는 남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관찰력과 추리로 친구들의 고민을 해결해 준다. 단편마다 빠지지 않는 미즈타니의 통찰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되어 시리즈로 나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데뷔작이었던 '죄의 여백' 또한 학교를 중심으로 벌어졌던 왕따 사건과 사춘기 소녀들의 미묘한 심리를 잘 표현했던 작품이었던 만큼 이번 소설의 무대 또한 학교라는 사실은 낯설지 않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이번에 출간되는 신간과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품 또한 함께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흡입력 있는 소설을 잘 써내는 작가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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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이 기도할 때
고바야시 유카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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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으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절규를 그린 소설 <죄인이 기도할 때>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방황하는 칼날>을 읽었을 때처럼 한없이 무겁고 슬프다. 슬프다는 표현으로는 그 깊이를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절망을 가슴 절절하게 그려내고 있어 자식을 둔 부모라면 주인공인 페니의 절절함을 그냥 지나치지 못할 듯싶다.

속이 깊었던 아들을 학교 폭력으로 잃은 아버지, 끔찍한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부모님에게 걱정 끼치는 게 죄송해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했던 아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아들이 선택한 자살로 인해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단 사실을 안 부모님은 아들이 누구에게 괴롭힘을 당했는지 파헤치려 하지만 피로 얼룩져버린 노트에 남은 글자는 단서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고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녀석들의 교활함에 누구 하나 선뜻 그들의 괴롭힘을 고발하지 못했고 부부는 힘겨운 시간을 버티며 아들이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 밝혀보려 하지만 아들이 자살한 다음 해 아내는 아들의 뒤를 따라 자살했고 그렇게 주인공은 혼자 남겨진다.

왜 그때 아들의 고통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학교 따위 그만두면 되었을 텐데, 괴롭히는 친구들 때문에 힘겨워할 바에야 전학을 가든 학교를 그만두든 목숨을 끊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매일 밤 주인공은 악몽을 꾸며 아들의 괴롭힘을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과 아들의 뒤를 따르고만 아내의 죽음을 막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빈 껍데기만 남은 육신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녀석들은 또 다른 아이들을 재물로 삼아 괴롭히며 반성은커녕 점점 교활해져가는 모습을 목격한 주인공은 참고 있던 양심의 끈을 놓아버리게 되는데....

소중한 가족이 원치 않는 괴롭힘으로 붕괴되어버린다면.... 한없이 소중한 가정이, 더없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이제 더 이상 곁에 없다는 사실은, 인간의 탈을 쓴 악마 같은 녀석들로 인해 평범한 일상이 지옥이 되어버렸다면... <죄인이 기도할 때>는 학교 폭력으로 사랑하는 자식과 아내를 잃은 아버지의 극단적인 선택을 담아내고 있지만 그저 소설로 치부하며 간과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이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이고 그로 인해 목숨을 끊는 아이들은 없어지지 않고 있으며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가해자들은 아무런 반성 없이 너무도 태연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반성조차 하지 않는 가해자를 응징한 주인공에게 사회가 정해놓은 법 적용이 과연 얼마나 타당한 것인지에 소설을 읽는 내내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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