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꺼운 책을 출퇴근 버스안에서 약간씩 읽어가고 있다.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생각. 

 마음이란 무엇인가? 이 챕터를 읽으면서 '아 말로만 듣던 하이데거가 이런 얘기를 했군'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조그만 위안을 갖고 읽어 나갔다. 

마음은 무엇일까? 내가 그 대상을 향한 지향성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은 그 대상을 인식하기 시작하는 걸까 아니면 대상을 인식하기 전에 우리의 마음이 그 대상에 지향성을 갖기 위해서는 그 전에 우리의 마음에 무엇인가 작동되었기 때문일까? 

글을 읽다 보면 마음이 객체를 지향하고 그에 따라 그 객체는 실체로서 존재가능하다는 후설의 현상학적인 관점에 수긍이 많이 된다. 그것은 아마도 동양(불교)에서 많이 언급되는 관점에 익숙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관점을 읽으며 '어, 그렇지'하고 동조되는 내 생각은.... 참. 하이데거는 마음의 지향성이 어느 경우에나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경우에만 발생한다고 마음의 지향성을 넘은 다른 것을 얘기한다. 메를로-퐁티는 후설의 현상학적 관점을 따르기는 하나 의식적인 지향 경험 이면에 신체의 활동이 존재하고 그 영향에 의해 지향성이 발휘된다는 신체의 현상학을 주장한다. 

저자는 두사람의 주장이 서로 상이한 것으로 설명하는데 사실, 난 잘 이해할 수 없었다. 하이데거가 현상학을 거부한 것인지. 내가 보기에는 하이데거도 현상학에 한가지 경우를 붙여 놓은 듯 했는데. 

어째든, 마음이 있어 객체가 실체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무엇때문에 실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 내가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난 어떤 객체에 대해 이미 인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마음의 지향성이 나도 모르게 작동한 것일까 아니면 지향성 작동이전에 그 무엇이 작동하였던 것일까? 그래도 결국은 마음의 지향성이 작동해야 난 인식할 수 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료한 날들과 답답함이 교차하는 하루. 

어제까지는 무료하기만 했는데 오늘부터 답답함이 더해진다. 이런. 

내가 가진 것들. 내가 쌓은 것들이 별로라는 기분. 

참내..... 

그래도 난 가족이 있다. 사랑스러운 가족.  

그런데, 내 가족에게 뭘 보여줄까. 웬지 멋지고 안정된 모습을 보여줘야 가장일 것 같은 느낌인데. 지금까지 잘 지내왔는데 갑자기 밀려오는 답답함. 

오늘 읽은 블러그 내용때문일까. 내용은 참 이쁜 가족의 생활이야기인데 난 그 글을 읽고 답답했다. 그 가족의 일상생활을 읽으며. 그 가장은 행복해보이는데 정말 행복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900페이지가 되는 책을 읽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갑자기 철학에 관심이 가면서 이리 저리 책을 기웃거리다 발견한 책이다. 철학에 관한 책이라는 주제의 무거움보다도 책의 두께에 짓눌려 살까 말까를 고민하다. 알기쉽게 잘 정리되어 있다는 덧글에 자신감을 갖고 구입하여 읽기시작했다. 

동서양의 철학을 시대순이 아니라 소주제에 맞춰 두 철학자의 논리를 비교해 나간 글의 구성은 방대한 양의 책을 읽어 나가는데 그나마 도움이 된다. 10페이지이하로 정리된 소주제에 이해되든 안되든 한 챕터씩 끝나는 안도감을 준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게 넘어가지 않는 이 책을 어찌할까. 책의 두께는 웬만한 책 3권분량인데.... 

철학사의 전반적인 이해를 갖고 있는 사람이면 더 쉽게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철학자의 논리를 이해할려만 이해에 한계가 생긴다. 사람들은 이 책의 구성방식이 철학의 이해가 깊지 않아도 쉽게 읽을 수 있다고 추천했는데. 이 난감함은. 그래도, 뚜벅뚜벅 한페이지씩, 앞으로 전진. 이해하지 못해도 일단 잡은 책은 어떻게하든 마지막장까지 다 읽어내는 나으 키특한 장기를 발휘해서. 뚜벅뚜벅 한발씩. 

웬지 다 읽고나서는 책의 내용은 기억 안나고 내가 이 두꺼운 책을 다 앍었다는 기특함만 남을 것 같은 예감. 처음에는 동서양의 철학에 대한 가벼운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거라 기대를 갖고 읽기 시작했는데. 웬지 불안하다. 지금까지 읽은 200페이지의 내용도 기억이 안난다. 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2010년 7월 26일 

이 책의 마지막 챕터는 <논어>이다. 공자. 유학.  

처음 이 책의 순서를 보았을 때 <논어>가 맨 마지막이어서 다소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다 읽고 나니 그 의도을 약간은 알 수 있을 듯 하다. 저자는 유학은 사유의 최종 근거를 역사에 두었다고 인간을 기준으로 삼았다고 소개한다. 유학이라고 하면 고리타분하고 뭔가 구식인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는데 유학에 대해 그리고 그 이외의 동양고전을 접해보면 그것이 현대에 반영하기 힘든 옛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공자는 참다운 정치는 이상과 현실을 일치시키는 것이라고 했고, 공자의 사상은 이상을 세우는 이론전 논의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에 베스트 셀러가 된 <정의란 무엇인가>의 주제를 동양고전 측면에서 풀어내어도 재미 있는 글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치는 '의(義)'를 기준으로 삼고 그 의가 드러난 형태이며 의를 행하는 방식이 '예(禮)'하고 한다. 현대 우리 사회에서 '의(올바름,정의)'는 학교/책에 있고 현실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모습들을 보면 우리가 유학을 비롯한 동양고전을 그저 예전에 조상들이 탁상공론하던 학문이라고 치부하기보다는 현대에 서양철학과 비교하며 재해석해보고 현대세계로 이끌어 내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름도 낯선 데리다/들뢰즈를 끌어다 놓고 형이상학적 평을 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을 현대사회를 해석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데 데리다와 들뢰즈를 들먹이며 얘기하는 사람은 굉장히 고상해 보이며 박식해 보이는데 논어/맹자/순자/이황/이이.... 를 설명하는 사람들은 꼭 한복을 입고, 예의범절을 운운하는 것으로만 상상되는 이 모순은 무엇인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2010년 7월 23일 

폴라니는 1886년에 태어나 1964년에 죽었다. 격변의 현대사를 지켜본 사람이다. 근대에 일어난 사상이 어떻게 사회를 형성시켰고 그리고 이전 역사에서 겪어보지 못한 두번의 세계대전과 파시즘을 보았고 이에 따라 기존 사상의 문제를 짚었다. 

'기계에 의해 생산이 산업사회에서 일어나게 되면 현실에서는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적. 자연적 내용물이 상품의 형상을 뒤집어쓰게 된다. 이는 실로 엄청난 변화이다.' - 폴라니. 거대한 전환 

폴라니는 데카르트적 자아(철저한 개인주의)를 무너뜨리고 인간 본질에 대한 통찰 했다. 그래, 사람은 고귀한 영혼을 지녔고, 사유하는 존재인데 이젠 사람에 대해 통찰할 시기도 된거다. 

폴라니는 묻는다. 자기조정 시장의 최종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 삶을 시장에 통째로 맡길 수 있는 최종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이제 답을 찾아봐야 할 때가 아닐까? 사람이 없는 자유주의는 2000년대를 또 들어치고 있는데..... 

<거대한 전환>은 전년에도 출판이 되었던데, 한번 읽어 봄 직한 책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보관리스트에 찜해놔야 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