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와 떠나는 상실의 시대로의 여행
이카와 타츠로 지음, 박경민 옮김 / 이손(구 아세아미디어)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다른 나라에서 물 건너온 책을 읽으면서 가장 경계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난잡한 번역이다. 내용이 난해한 것과는 또 다른 의미로 독자를 힘들게 하고 본래 책의 질까지 의심하게 만든다. 이 책은 그런 난해한 번역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썩 잘 됐다고 하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궁극의 파편이라고도 할 만한 장면이 의식할 수 없는 어딘가에 보존되어 있다. 하나의 영상은 초영상(영상의 죽음)에 대해 상대적으로 저차원 해상에 불과한 이상, 영상의 내부에 회수되지 않는 시선이 보류되어 있어야 한다.」 바로 이런 문장들, 말 그대로 문장을 주물러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하는 듯한 이런 문장들을 난 싫어한다.

하루키 비평서, 라고 해서 꽤 기대를 했지만 미치지 못했다. '하루키와 떠나는 상실의 시대로의 여행'이라는 비평서치고는 서정적인 제목이 말해주듯 이것은 비평이라기보단 찬가라고 말하는 게 나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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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한 영어
김선영 지음 / 그린비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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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의 저자는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세 가지를 공개한다.

1. 문법적 기반을 닦아라. 미국에 정착한 한국인들이 십수년이 지나도 단어 나열식의 콩글리쉬밖에 구사하지 못하는 것은 문법적 기반이 없기 때문이다. 문법이 제대로 닦이지 않은 영어는 무너지기도 쉽다.

2. 말을 해라. 어색해도 능숙치 않아도 자꾸 말을 하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3. CNN 뉴스를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정작 미국 영화를 볼 때는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그것은 그들이 미국 생활 영어의 2,30%를 차지하는 슬랭 - 즉 속어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펄떡펄떡 살아있는 영어를 하고 싶다면 슬랭을 익혀라.

여기서 1,2번은 얼마전 본 이보영의 책(미국에서 살다 오셨나요?)에서 소개한 방법과 같다. 그러나 3번은 정반대이다. 이보영은 슬랭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되고 변화하는 것이므로 익힐려면 끝이 없다며 슬랭에 집착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누구 말을 듣는 것이 옳은 것일까-.

여하튼 그런 복잡한 문제는 생각하지 말고 재미난 이야기와 함께 슬랭을 익히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권한다. 이 책은 문법같은 건 조금도 언급하지 않고 그저 재밌게 매끄럽게 웃기는 예문과 함께 수많은 슬랭들을 소개한다. 단순히 소개에 그치지 않고 읽는 사람의 머리에 넣어주려는 수고도 아끼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인생을 Hand-to-Mouth life라 한다. 손으로 번 것(Hand)을 바로 입으로 가져가는(Mouth) 인생이다.」 이렇게 풀어서 설명하는 것을 듣다보면 애쓰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이 정도에 그치지 않고 예문도 덧붙인다. 「I'm getting tired of this hand-to-mouth life! But I can't help it.」

깔끔한 디자인에 재밌는 설명이 곁들어진 이 책을 슬랭을 익히려는 학생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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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설공주 이야기 흑설공주
바바라 G.워커 지음, 박혜란 옮김 / 뜨인돌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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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자와 남자가 평등한 페미니즘 동화'라는 부제를 보고, 동화적인 재미-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한-는 거의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앙징맞은 재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읽을만 했다.

흑설공주의 계모, 새 왕비는 원본에서처럼 표독스러운 독부는 아니다. 그러나 새롭게 각색된 계모를 지혜롭다고 칭찬하기 전에 흑설공주의 태도는 본받을 만한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헌터 경의 심성이 어떠한지, 괜찮은 사람인지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단지 그가 못생겼단 이유로 퇴짜를 놓는 흑설공주는 평범한 동화에 묘사되는 남자들과 무엇이 다른가? 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흑설공주 역시 잘생긴 외모를 가진 왕자에게 매혹되고 헌터 경을 모욕한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잠시 의문에 잠겼다. 혹시 이 책의 작가는 여자가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다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개구리 공주'도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진취적으로 꿈을 실현해 나가지만 그 꿈이란 것 역시 왕자비가 되는 것에 불과하다. 정작 왕자비가 된 후에는, 자신 앞에 놓인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작은 연못가의 개구리로 되돌아가는 쪽을 택한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무엇인가?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라는 것?

'하얀모자 소녀'의 줄거리는 무섭기까지 했다. 주인공이 사랑하는 숲 속의 야생동물들을 해치려고 한다는 이유로 사냥꾼들은 몸이 잘린 채 늑대들의 먹이가 된다. 이것이 해피앤딩인가? 이게 동화인가? 움베르트 에코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서 패러디한 빨간 모자 소녀는 바로 이것을 비꼬는 게 아니었나 싶다.

여러모로 실망스러운 페미니즘 동화였다. '열명의 작가가 만들어야 할 평생의 역작'이라는 것은 역시 과장된 칭찬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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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잔혹한 이야기들
키류 미사오 지음, 이정환 옮김 / 이야기(자음과모음)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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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믿거나 말거나'류의 책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던 때가 있었다. 뭐 몇십년간 식물인간으로 살아오던 여자가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번쩍 눈을 떠서 일어났는데 옛 미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느니, 몇십키로그램을 다이어트 하고 나자 가죽이 늘어졌다느니, 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다. 읽는 쪽에서도 별다른 긴장을 하지 않고, 허어? 그래? 과연 그럴까? 하며 슬슬 읽어나가는 책인 것이다.(아마도 쓰는 쪽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프랑스의 잔혹한 이야기들'이라는 꽤 구미를 끄는 제목의 이 책 역시 마찬가지 계열에 넣을 수 있을 것 같다. 잔 다르크는 사실 화형당한 것이 아니라 살아 남아 가족들과 함께 여생을 보냈다는 둥, 프랑스의 생 제르망 백작이란 사람은 몇백년간 살아있어 모르는 것이 없었다는 둥, 씨도 안 먹힐 얘기들이 마구마구 늘어져 있다.

뭐 이것도 '믿거나 말거나'의 중세풍 연장이려니- 새로운 경험이려니- 하고 읽어나가면 마음 편하겠지만 역시 '영양분 없는 독서'의 범주에 들어갈 것 같아 기분이 개운치는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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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요리를 먹는 여자 - 개정판 생각의나무 우리소설 7
송혜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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챙이 달린 모자를 비스듬히 기울여 쓰고, 색이 약간 바랜듯한 레이스 치마를 입고, 호숫가에 우아하게 앉아있는 중년의 여성 -이것의 이 소설집의 전체적인 이미지이다. 어느 때에는 한없이 무너지는 초라한 현실 앞에서도 그 '우아함'은 변함없이 유지되는 모습에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골동품도 골동품이라 부르지 않고 앤틱이라 높여 부르고, 사소한 찻잔 하나에도 금쪽같은 의미를 부여해 소중히 여기며, 일상적인 일은 소홀히 할 망정 산뜻하게 차려입는 일에는 최선을 다한다. 이것이 사랑을 잃은 여자들이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인가.

허브와 고급 요리들과 복고풍 핸드북들이 동동 떠다니는 것 같은 이 소설집 속에서 그나마 그 호사스러운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고 어울리는 느낌을 주는 소설은 '거울이 놓인 방'이었다. 스토리의 독특함과 소재의 적절함이 잘 어우러져 읽고 나서 만족할 수 있었다. '차려입는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의 모자를 써보고 조언을 받는, 아름답게 차려입고 마음에 드는 레스토랑 주인을 유혹할 궁리를 하는 딸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그것이 옳은가 아닌가를 제외하고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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