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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설공주 이야기 ㅣ 흑설공주
바바라 G.워커 지음, 박혜란 옮김 / 뜨인돌 / 199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여자와 남자가 평등한 페미니즘 동화'라는 부제를 보고, 동화적인 재미-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한-는 거의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앙징맞은 재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읽을만 했다.
흑설공주의 계모, 새 왕비는 원본에서처럼 표독스러운 독부는 아니다. 그러나 새롭게 각색된 계모를 지혜롭다고 칭찬하기 전에 흑설공주의 태도는 본받을 만한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헌터 경의 심성이 어떠한지, 괜찮은 사람인지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단지 그가 못생겼단 이유로 퇴짜를 놓는 흑설공주는 평범한 동화에 묘사되는 남자들과 무엇이 다른가? 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흑설공주 역시 잘생긴 외모를 가진 왕자에게 매혹되고 헌터 경을 모욕한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잠시 의문에 잠겼다. 혹시 이 책의 작가는 여자가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다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개구리 공주'도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진취적으로 꿈을 실현해 나가지만 그 꿈이란 것 역시 왕자비가 되는 것에 불과하다. 정작 왕자비가 된 후에는, 자신 앞에 놓인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작은 연못가의 개구리로 되돌아가는 쪽을 택한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무엇인가?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라는 것?
'하얀모자 소녀'의 줄거리는 무섭기까지 했다. 주인공이 사랑하는 숲 속의 야생동물들을 해치려고 한다는 이유로 사냥꾼들은 몸이 잘린 채 늑대들의 먹이가 된다. 이것이 해피앤딩인가? 이게 동화인가? 움베르트 에코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서 패러디한 빨간 모자 소녀는 바로 이것을 비꼬는 게 아니었나 싶다.
여러모로 실망스러운 페미니즘 동화였다. '열명의 작가가 만들어야 할 평생의 역작'이라는 것은 역시 과장된 칭찬이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