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되었네
성석제 지음 / 강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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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내가 참 좋아하는 작품이 몇 편 있다. 일단 '첫사랑'이 그렇다. 이상 문학전집이었던가? 잘 기억은 나지 않는 어느 수상문학집에서 이 작품을 처음 접하고는 난 입을 딱 벌렸다. 수상 작품 품평란에서 이 작품에 대한 언급이 적은 걸 보고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과장되지 않고 잔잔하게, 그러면서도 주인공이 '지옥'이라고 표현하는 주위의 분위기가 읽는 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읽어 나가노라면, 아- 이 아이는 왜 '너'의 마음을 몰라주는 건가. 괜시리 내가 다 안타까워진다. 사실 두 아이 모두 남자아인데 말이다. 그게 아무렇지 않게 느끼게 해준다. 멋지다. 그러면서 재미가 있다.

'이른 봄', 주인공은 9년동안 살아온 할아버지 꿩이다. 이미 노년기를 맞아 웬만한 일엔 초탈했고 이렇게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속세와의 모든 인연을 끊고 살아남는 데만 전념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자족하는 꿩씨에게, 어느날 이변이 닥친다. 앙증맞은 부리, 부드럽게 물결쳐 올라간 머리 모양, 풍만한 가슴살에 큼직스런 엉덩이까지 갖춘 예쁜 어린 꿩이 나타난 것인데-...재밌을 것 같지 않은가? 실제로 굉장히 흥미롭다. 작가는 은연 중에 환경 보호의 메시지를 담았던 걸까?(써 놓고 보니 그다지 '은연'중에 드러낸 것 같지도 않지만) 성석제가 그렇게 촌스러운 일을 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여하튼 보기에는 그렇게 보인다.

'스승들'도 유쾌하다. 작가 스스로의 얘기가 아닐까 슬쩍 의심이 가는 괴짜 독서광 소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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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놀란, 창희의 유학작전
허창희 지음 / 산성미디어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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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몇 페이지를 읽고는 책을 집어든 것을 후회했다. '난 수영도 잘 했고 테니스도 선수 수준이었고 중국어, 영어는 탁월했고 게임도 수준급이었고 친구들 사이에 인기도 좋았으며 악기도 몇 개 연주할 줄 알았었다-' 등의 자기 자랑이 몇 페이지고 계속 되는 것을 보면서, 자화자찬하려고 자서전을 펴낸 건 아닐텐데 하고 짜증이 났었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왜 그런 무지막지한 자기 추켜세우기가 필요했었는지 잘 이해가 가질 않는다. 창희처럼 모든 면에 탁월한 학생은 획일적인 교육 방식을 강요하는 한국 교육과는 맞지 않았다, 그런 뜻이려나?

여하튼 융통성없는 학교 교육에 실망한 창희가 미국 유학을 결심하고, 노력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역시 꽤 재밌었다. 재밌었다, 라고 말하면 좀 이상하려나. 하지만 난 어차피 미국 유학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고, 심심풀이로 이 책을 봤기 때문에 재밌으면 그저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미국 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겨냥한 듯 (당연하겠지) 미국 10대 명문고에 대해 비교적 자세한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 책에 언급된 '7막 7장' 역시 읽은 기억이 있다. 저자가 자신의 모교이자 케네디가 거쳐간 학교인 초트를 얘기하는 걸 보고, 어허- 그런가 하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 소개된 것을 보니 미국 명문고의 역사는 깊고,...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대단했다. 한국 고등학교와 자꾸 비교하게 되지만, 얼마전 읽은 '부자 교육 가난한 교육'을 떠올려보면 그런 사립 명문고가 마냥 좋은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하지만 역시 부러웠다, 그런 좋은 교육 환경은.

나는 창희가 미국 명문고에 입학한 다음의 생활도 책에 나와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아무튼 창희군이 좋은 성적을 거둬 아이비 리그에 입학했으면 좋겠다. 학비 걱정 없이 무사히 학교 마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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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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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도 있고, 그야말로 얼굴 뒤에 후광이 비치는 것처럼 대단해서, 항상 존경하던 어른이 내 옆에 앉아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조근조근 얘기해주는 기분이다. 하지만 역시 반쯤 엄숙한 태도는 버리지 않고 말이다. 읽는 재미도 새록새록했고, 몇 번씩 밑줄을 긋고 싶은 부분까지 있었지만 꾹 참았다. (책에는 원칙적으로 낙서하지 않는 주의라서.)

씨네21은 가끔씩 보았지만 편집장이 여성인 줄은 미처 몰랐는데 말이다. 여하튼 대단하다. 그야말로 똑똑하고 능력있고 사교성까지 겸비한 멋진 하이에나씨를 만난 기분이다. 씨네21이 흑자 가도에 올라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시점에서 은퇴한 것도 멋지다. 그것도 자신의 오랜 꿈이었다는, 소설 쓰는 일을 위해.

직장에서의 그녀의 모습도 찬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녀는 여자들에게 좀 더 자매애를 가질 것을 요구하고, 사람 관리를 제대로 하라고 충고하고, 권력욕을 가지라고 말한다. 그녀 자신도 그렇게 했고, 일중독증이라고 불릴 만큼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엄마, 나 다섯살때까지 엄마 싫어했어' 라고 얘기하는 여섯살짜리 딸을 얻기도 했지만. 참, 그러고 보면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이제는 회사에서 설거지냄새 풍기는 여자를 이해한다는 저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여하튼 정신없이 몰두하면서 읽었는데, 입에서 나오는 말은 '아- 대단했어, 멋졌어' 밖에 없는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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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마지막 잔디밭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한양출판 / 199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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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연의 일치일까. 나도 다른 분이 쓰신 것처럼 '시드니의 그린 스트리트'가 가장 맘에 들었다. 하루키 소설에는 굉장한 갑부 따위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하루키가 묘사하는 아메리칸 사이코의 주인공은 어떨까 생각하면 두근두근하지만(구찌 핸드백을 사면서 뭐라고 중얼거릴까? 하루키가 창조한 그런 캐릭터는?) 아쉽게도 역시나, 이 단편의 주인공은 귀찮은 건 딱 질색인 타입이다. 그래서 돈 불어나는 걸 보고 끔찍하고 지겹다 말하고, 전혀 그린스럽지 않은 그린 스트리트에서 잘 팔리지도 않는 사설 탐정으로 근무하고 있다.

중구난방 상상력이랄까, 여기에도 '논리적으로 설명해보라'고 하면 입 꼭 다물 수 밖에 없는 그런 줄거리가 펼쳐져 있다. 양 사나이, 양 박사(양이야 툭하면 등장하지만)도 웃기거니와, 프로이트 한 마디로 간단히 해결되는 양 박사의 심술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런 앞뒤없음이 머리를 비워주고, 그야말로 깨끗하게 책장을 덮을 수 있게 해준다.

'캥거루 통신'도 독특한 느낌의 단편이다. 당신이 어떤 레코드에 불만이 있어서 백화점으로 항의 편지를 띄웠다고 하자. 그런데 그 편지를 읽은 사원이 당신에게 녹음 테잎을 보냈다. 참, 어느 누가 이런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을까? 왠지 좀 기묘하다고 할까, 그런 분위기가 없지 않지만 그 비일상성이 마음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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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공지영 지음 / 김영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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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교이기 때문에 어떤 유명한 여류 작가가 신에게로 회귀하건 말건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다만 재미가 있다면, 감동을 준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서점에서 슬쩍 들쳐본 페이지에서는 공지영이 젊은 목사님에게 마구 울며 고해성사를 하고 있었고, 난 그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결국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화려한 장정과 예쁜 사진들도 나를 부추겼다.

그런데 다 읽고나니, 조금 허탈하다. 내게 이 책이 남겨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한 여자가 자신의 감정을 격하게 쏟아내고, 내가 일방적으로 그것을 들어준 것 같다. 수도원에 대한 감상도 마찬가다. '아, 수녀님들이 참 밝으시구나. 건물이 참 멋지구나. 음식이 맛있는데?' 이 정도에 그친다. 고작 한 달간의 여행이라서 그랬다고 쳐도 겉핥기도 이런 겉핥기가 없다. 하는 수 없다, 그러면 이 작가의 내밀한 심경이나 한 번 훔쳐볼까, 해서 들여다보면 그다지 대단한 얘기를 하지도 않았다. 작가 자신에 관한 것은 모두 슬쩍 가려둔 느낌이다. 그녀는 왜 그렇게 슬퍼해야 했고 왜 18년만에 다시 돌아와야 했나? 왜 유럽을 여행하며 수도원을 전전해야 했나? 하지만 역시 단편적인 감정의 편린만 엿보일 뿐, 정확한 것은 하나도 짚을 수 없다.

이렇게 열심히 읽었는데도, 기억 나는 것은 '샘터'같은 잡지에서나 나올 법한 뻔하고 뻔한 말들이라니, 종이의 예쁜 무늬 뿐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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