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소설은 의외성을 기반으로 한다. 일명 반전이라고도 부른다. 이 의외성이 없다면 매일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는 일상을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꺼내어 내려 마시고, 옷을 옷장에서 꺼내어 입고, 출근을 위해 문을 연다. 하지만 여기서 무언가 의외성이 발생하면 그 정도에 따라 놀라움이 커진다. 아침인줄 알았는데 저녁이었다든지, 커피를 내려 마셨는데 호흡곤란으로 쓰러진다든지, 옷장을 열었는데 옷이 없던가, 문을 열었는데 바닥이 없던가.그런 면에서 가장 높은 의외성을 가지는 단편은 ‘개가 물어온 것‘이라 생각한다. 혼자 사는 여인이 죽은 남편의 불태운 물건을 물고 온다. 왜? 여기서 이 단편은 스릴러가 될 수도 있고, 공포물이 되거나, 심지어 로맨스까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짧고 간단한 단편은 굳이 자체적인 완결을 가질 필요없이 독자의 상상력을 무한대로 증폭시켜 그 뒷이야기나 배경을 머리 속에 심어놓아야 한다. 이 단편집에서 추천작을 꼽으라면 소설의 엣센스인 흡입력, 상상력, 군더더기 없는 표현과 깔끔한 마무리가 가장 돋보이는 ‘개가 물어온 것‘이다.작가는 단편 이후를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 또 상상을 해본다.
잭슨 부인은 허리를 굽혀 그것을 집어들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갑자기 숲 너머에서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차디찬 기운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책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느끼게 한다. 울게 하고 웃게 한다. 더 나은 삶과 더 나은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더 나은 환경과 더 나은 사회를 꿈꾸게 한다. 그러나 책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그다음, 그 모든 것들을 실천해서 한 걸음 내딛게 하는 건 책이 아니라 ‘책을 읽은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 P40
그나저나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짝사랑을 시작할 때, 그 상대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 P44
책은 세상에서 나를 격리하는, 아니 보호해주는 벽이다. 책 속의 추함이 현실의 추함을 따라잡는 법은 거의 없다. 책 속의 비참함이 현실의 비참함을 넘어서는 법도 거의 없다. 책은 내 아편이다. 술만큼이나. - P48
베로니카가 나에게 책을 건넸고, 나는 책을 뒤집어서 뒤표지의 작가 사진을 확인했다."제길. 이 여자, 섹시하기까지 하잖아." (233쪽)이 부분을 읽다가 크게 웃고 말았다. 작가란 얼마나 좋은 직업인가. 자신의 아내가 섹시하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지 않은가. 게다가 그 과정이 재미있기까지 하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작가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 P56
쓰는 걸 잘하는 사람과 읽는 걸 잘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서 세상에는 작가와 독자가 존재하는가 보다. - P60
그래서 내가 밑줄을 그어 놓은 문장이 있는 책을 누군가가 읽으면 부끄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내가 밑줄을 그어 놓은글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내가 밑줄 친 글을 읽으며 어떤 감정이었을지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 P29
그러나 나 역시 자라나는 누군가에게 소년의 아버지처럼 책을 읽으라고 권할 것이다. 책을 읽는다고 좋은 사람이 되는 걸 보장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사람이 될 가능성은 커질 테니까. - P35
데아에게는 어둠이라는 베일이 하나 있었고, 그윈플렌에게는 자신의 얼굴이라는 가면이 하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