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 - 악의 시대, 도덕을 말하다
샘 해리스 지음, 강명신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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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앉은 자리, 의자에 따라 바라다보이는 풍경이 달라진다는 말을 한다.

 쉬운 예로 출근시간 서울의 지하철을 떠올려 보자.

 어느 날은 운이 좋아 의자에 앉아서 편안히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책도 읽고, 음악도 들으며, 좁다거나 지옥같다는 생각에 휘말리지 않았다. 단지 밀고 밀리며 필사의 탈출 작전을 실행하는 하차의 순간에만 잠시 힘을 썼을 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계속된다면 '행운'이라 부르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다음 날은 서서 가게 되는 거다. 거의 같은 시간, 거의 같은 자리에 있음에도 어제의 편안하던 풍경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밀고 밀리는 보이지 않는 몸싸움에 시달려 아침부터 녹초가 되어버린다.

 

 이것이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의 정체다. 아주 사소한 일, 작은 조건의 변화가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해석을 달라지게 한다.

이 책은 그러한 풍경을 '도덕'으로 옮겨 놓고 있다. 문화와 도덕, 종교와 무신론, 신과 과학 간의 풍경의 차이를 확인시켜준다.

 이해하기 어렵고, 가끔은 이해할 수 없는데다, 이해하기 싫은 이야기도 나오지만 분명 흥미로운 주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만, 우리 나라는 비교적 종교적 세계관과 과학적 세계관의 충돌이 적은 편이라 이 책의 서술 배경을 이해하는 데 상대적인 시선을 견지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란 건 이야기해두고 시작하련다.

 

책의 원제는 The Moral Landscape(도덕의 풍경)이다. 저자는 상대적인 도덕이란 있을 수 없으며, 도덕이 더이상 비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과학 속에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도덕의 풍경은 하나가 아니며, 봉우리에 빗대어 표현한 것처럼 여러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창조론과 진화론을 두고 종교계와 과학계가 충돌을 일으켰다는 기사를 읽어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그만큼 종교에 관대한 것인지,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 깊은 것인지, 혹은 아무래도 좋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이 얼마나 팔릴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고민이(난 마케터도 아닌데) 저절로 떠올랐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거기다 온통 시커먼 표지란 신이 없는 암흑을 뜻하는 것일지 혹은 도덕 의식이 함몰된 도덕적 해이상태(Moral hazard)를 의미하는 것인지와 무관하게 뭔가 무거워 보여 부담이 된 것도 있었고, 무거운 주제에 종이 마저 무거운 재질이라 그 무게가 더욱 늘어나버린 탓도 있었다.

 

 여러 봉우리 어디에서 봐도 이 책이 무겁게 느껴질 수 밖에 없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무거운 책이 반가울 때가 있다.

카프카가 말한 것처럼 내 안의 얼어붙은 사고를 깨뜨릴 계기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무게가 무거운 만큼 그 파문 또한 큰 법이다.

 딱딱한 광물 일 수록 더 높은 경도를 가진 매개가 필요한 '과학적 원리'의 연장선인 거다.

 

저자는 '뇌과학자'다.

 심리학자도, 종교학자도, 역사학자도 철학자도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고 해석한다. 결국 그는 뇌과학자 답게 인간의 모든 것, 감정, 도덕, 정의, 믿음 등을 뇌의 활동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전작인 <자유의지는 없다>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믿는 것조차 사실은 기억과 경험에 의한 뇌의 판단에 불과하다는 주장처럼 말이다.

 

 또한 저자는 뇌과학자이면서 '신무신론자'로 불리는 그룹의 일원이다.

어쩌면 조금은 과격하게 느껴질 만큼 독단적으로 그는 종교의 허위성을 말하며, 그 허상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그는 가차 없는 비판자를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가혹한 비판자로서 저자는 인간의 존엄성의 근원이라고 말하곤 하는 자유의지를 부정했고, 신의 창조물이라는 상징을 부수어 버렸으며, 도덕감정을 단순한 뇌 속에서 이루어지는 화학적 작용으로 설명하고 증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내놓는 사례들을 모두 수긍할 수는 없더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사고와 시야를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 저자의 목적이었다면 그 목적은 얼만큼은 달성했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이 책을 다 읽어내기까지 제법 많은 시간이 걸렸고, 몇 번이나 말도 안되는 논리라며 저자의 주장을 독단적 의견으로 치부하려 했었다. 그게 앞 쪽 100페이지를 넘기기 전까지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100쪽을 넘어서면서 본격적인 논의를 풀어나가는 부분에서는 서서히 눈에 들어오고 머리에서 읽히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천만 다행이었다. 그 때도 안나왔으면, 정말 읽다 말았을지도.

 

결론적으로 이 책은 제법 귀중한 메시지를 던져준 셈이됐다.

"다툼은 같은 수준의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라는 교훈 말이다.

 

 종교계에서는 저자를 비판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신성모독은 기본적인 죄목일테고, 독단이니 독선이니 독설이니 하는 말이 오갈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가톨릭은 타 종교에 대해 가혹하기가 보통이 아닌 모양이다.

 저자 쪽에서는 종교계의 허위와 허상, 비과학적 이론들과 억지스런 짜맞추기를 풀어놓으며 비판과 비난의 수위를 높이겠지.

 

 결국 어느쪽이나 결국 진흙탕 싸움 끝에 난장판 되듯 서로를 더럽히게 될 것이다.

 

 타협의 여지도 반론의 여지도 없는 원천 봉쇄의 오류를 전제로 전개되는 논의에 승자가 있겠는가?

 셋이 길을 가면 거기엔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했다.

바른 일을 하는 이가 있으면, 그 바른 일을 배울 수 있으니 스승이 있을 것이고,

그른 일을 하는 이가 있으면, 그 그른 일을 해서는 아니됨을 배울 수 있을테니 또한 스승이 있는 셈이다.

 

 책은 저자가 쓰고, 출판사에서 만든다. 하지만 그것으로 완성되었다고 하기엔 아직 한 가지 요소가 부족하다.

바로 독자에게 전해져, 독자에 의해 읽히고 해석되는 순간에 한 권의 책이 완성되는 것이다. 미흡하나마 이 책은 내게 왔고 내게 어떤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음은 물론, 마음에 경계를 세우게 했다.

 

 편협해지지 말 것.

 사실 도덕이 어떤 정신적인 것에서 저절로 생성된 것이든, 뇌의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의 결과물이건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이 책이 어디로 가서 누구에게 읽힐지는 알 수 없지만, 저자와 저자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 중 어느 쪽에 설까를 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자유의지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있다고 믿은 들 또 어떠한가?

 

 지금 돌아보면 의외로 재밌게 읽은 책으로 기억된다.

이것이 '기억하는 뇌'의 활동의 결과인지, '경험하는 뇌'의 결론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인간의 뇌 과학과 종교를 따라다니는 논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볼 만 하겠다.

 

 아, 깜박했는데 이 책을 읽으시는 분들은 "역자의 말"부터 보는 게 읽는데 도움이 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각 장의 내용의 개략적 정리를 하고 있음은 물론, 저자의 의도도 친절히 풀어주고 있거든요. 

 반대로 1장부터 읽는 건 좀 반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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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 - 악의 시대, 도덕을 말하다
샘 해리스 지음, 강명신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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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무신론자에게는 `성경`이고, 유일신론자에게는 `금서`다. 무신론자를 위한 무신론자에 의한 무신론자의 저서라고 할 수 있겠다. 더 이상 종교의 허위와 위선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지식인의 반란. 인간의 자유의지는 물론 감정, 도덕성까지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뇌`라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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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 - 예술의 형이상학적 해명
조중걸 지음 / 한권의책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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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또 읽고 나서 느낀 가장 강렬한 느낌은 좀 '시시한 부분'이었다.

"이 책 제목이 좀 잘 못된거 아냐?" 하는 흔한 불평이 가장 강렬했다는 것에 어떤 변명을 가져다 붙이면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을까? 고풍스런, 화려하기 짝이 없는 스테인드 글라스를 표지 배경으로 삼고 있음에 대해 심사가 뒤틀린 탓일 거라고 해도 사실 할 말은 없다.

이 그림(?)의 제목은 <음, 어쩌면> 이란다.

음? 어쩌면?? "만화 주제에 무슨 작품이라고!!" 라며 터무니 없이 빈곤한 감상을 빙자한 불평을 늘어놓는대도 사실 할 말이 없을 것 같은 그림이다.

그래도 작품이라는데 비전문가인 내가 들이대 볼 말은 없다.

(개인적 인상이지만 이 무슨 슈퍼맨 풍의 그림 아닌가?!)

아, 그 옆에 있는 '몬드리안'의 그림은 어떤가? 대충 그려놓은 것 같은 굵은 실선과 그 실선들에 의해 만들어진 사각형, 그리고 그 사각형 안에 들어가 있는 노랑, 파랑, 빨강, 검정, 연파랑(?)(아니, 흰색은?)의 채색은 또 뭔가?

중학교 고등학교 교육을 통해 이게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란 걸 몰랐다면, "어디 초등학교 포스터 인가요?"라고 무식한 질문을 날렸을 법한 그림이 아니던가?

그래서 이 책이 어쨌다는 건가?

개인적으로 이 책은 전체적으로 어수선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저자는 이런 감상을 염려했던 모양인지 표지 안쪽에 이렇게 적고 있다.

"학문 자체와 예술 자체는 위대한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바와 같이 '말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해질 수 없는 걸 말하려고 한 시도의 하나이니 말해지지 않은 것 같더라도 이해해 달라는 당부의 말이 전제 된 책이 었던 것은 아닐까?

이건 그저 개인적인 해석일 뿐, 작가가 말한 것도 작품이 말한 바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느꼈을 뿐인데다 내 감상 또한 말해질 수 없는 것에 속하는 바, 내 말이 서툴러 다 말하지 못했다고 해도 흉이 되지는 않으리라.

이 책은 석기 시대의 암각화와 동굴 벽화에서 시작해, 현대의 피카소에 이르는 미술의 흐름을 이야기한다. 미술사를 단 한 권의 얇은 책으로 꿰뚫어 보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보니 유명한 작가, 낯익은 작품이 자주 등장할 수 밖에 없고, 그 작품의 의미를 세세하게 적을 수 없는 지면의 한계에 의해 뭔가 부족한 인상을 줄 수 있음을 각오하고서도 저자는 써 내려갔던 듯 하다.

하지만, 지면의 한계를 생각해보면 중세의 건축에 지나치게 많은 지면을 할애 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건축 양식의 세부적인 사항들은 내 얕은 깜냥으로는 '미술' 보다는 세부적인 구분으로 '건축'을 따로 적는 것이 흐름상 매끄럽지 않았을까 하는 거다. 그게 좀 아쉬웠기에 미리 안타까움을 적어두고 넘어가는 바이다.

그래서 책이 어쨌다는 거냐? 는 이야기를 하다 만 것 같다. (삼천포에서 돌아온 것만도 다행으로 알자.)

위쪽 그림은 좀 예술 작품 같다.

하지만 아래쪽 그림은 미묘하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하라고?

"사라미 아니므니다~!"인 거다.

왼 쪽은 프라고나르,「목욕하는 여인들」 이고 오른 쪽은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이다.

솔직히 프라고나르라는 이름은 이번에 처음 들어봤다. 하지만 피카소라는 이름은 너무 또렷하다. 그는 수 없이 많은 작품을 남긴 사람이고, 그래서 유명한 사람이며, 그의 그림은 무척 비싸다라던가? 왼 쪽 그림도 싸구려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생판 모르는 사람보다는 거지라도 낯익은 사람이 덜 두려운 법이다.

중요한 건 금전적 가치가 아니다. 무엇이 이들의 그림을 '작품'으로 만들었는가? 하는 물음이야 말로 중요한 것이다.

그럼, 그 '작품'의 필수 조건은 뭘까?

저자는 실존주의는 인간 존재가 부조리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고 이야기한다. 부조리함을 실감하는 가운데서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노력이 바로 예술이란 이야기인 셈이다.

파르테논 신전은(어쩌면 파르테논 신전 사진이 이것 하나밖에 없는지? 몇 권의 책에서 이 사진을 본 것 같아!!) 신화가 단순히 신화를 넘어서 인간 세상에 남겨진 유물이라는 의미에서 인간의 존재를 완전히 증명하는 하나의 이정표가 된다.

시간을 넘어 인간의 존재를 그 위대함을 증명하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건축에서 미술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라고 해도 그 안에는 작가가 이해하고 해석한, 그리고 마지막에는 표출을 통해 재구성한 시대의 철학이 담겨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감동하고, 슬퍼하며, 또 다른 창조에 나서는 것이 아닐까?

작품에 철학이 없다면 죽죽 그어놓은 직선과 대충 색을 칠한 사각형에 불과할 그림이 철학적 해석을 통해 작품이 된다.

초현실적으로 구성된 구도와 인물의 형상, 어린 아이의 낙서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그림도 작가의 비판과 사상, 철학이 표출 될 때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고대의 동굴에 그려진 벽화도 같은 맥락에서 그 시대를 반영하고, 사람과 삶, 존재를 반영한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이 작품이 된다.

삶의 무게, 존재의 가벼움을 표현해 낼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그 생각을 아주 먼 훗날까지 남기고 전한다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그런 증거를 남기는 일에 부지런히 임하는 이들이 있다.

시대를 따라 각각의 작품의 해석을 달라진다. 그 시대를 지배하는 철학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떤 형태로든 각각의 시대는 연대를 맺게 된다.

낯익은 그림들을 가볍게 만나고 싶다면 읽어봐도 좋으리라. 그 후에 더 깊이 심취해 간대도 누가 말을 보탤 수 있겠나.

철학은 견고한 건축물의 받침돌과 같다. 수천 년, 수만 년을 견디게 하는 건 바로 그 철학의 힘인 셈이다.

철학이 있는 삶은 무너지지 않는다. 철학이 있는 역사도 언젠가 의미를 갖는다.

개개인의 삶에는 저마다의 철학이 있다. 하지만, 홀로 존재하는 개인이 없듯, 홀로 존재하는 철학 또한 있을 수 없다.

우리는 거대한 시대의 구성원, 하나의 받침돌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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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신화 - 쾌락적응, 생존에는 유리자히만 행복에는 불리한
소냐 류보머스키 지음, 이지연 옮김 / 지식노마드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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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필수 조건은 무엇인가?

혹시 지금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어떤 것이 결핍되었다는 이유에서가 아닌지?

흔한 예를 들어보면, "난 돈이 없어. 그래서 불행해.", "난 병에 걸렸어. 그런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어?"와 같은 명제에 대해 당신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이 책은 우리 삶에 두루 퍼져있는, 신화처럼 여겨지는 행복의 필수 조건들이 진정 우리의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단순히 직관에 의지해 이론을 펴나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과학적 연구'의 결과를 바탕으로 이끌어낸 결론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행복을 갈구한다. 하지만 그 행복을 망칠만한 생각을 하는 것도 우리 자신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야기를 들어보자.

 

여기 하나의 실험이 있다.

선생님은 입구가 넓은 유리병을 아이들의 앞에 놓고 그 안에 큰 돌을 채운다. 그리고 학생들을 향해 묻는다.

"이 병이 가득 찼나요?" 아이들이 대답한다.

"네~!" 선생님은 이렇다 저렇다는 말 없이 큰 돌 사이에 작은 돌을 집어넣는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이 병이 가득 찼나요?"

"네~!!" 아이들은 이번에도 힘차게 답한다.

이번에도 선생님은 이렇다 저렇다는 답 없이 모래를 넣는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이 병이 가득 찼나요?" 아이들은 이번에야 말로 틀림없다며 "네~!!!!"하고 대답한다.

선생님은 이번에는 병 안에 물을 붓는다. 그리고 묻는다.

"이제 이 병이 가득 찼나요?" 아이들은 선뜻 답하지 못한다.

이번에는 선생님이 질문을 바꾼다.

"이 실험이 주는 교훈이 뭘까요?"

아이들은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선생님이 기대한 답은 그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답은 단순히 직관에 의지한 충동적인 것이었다.

우리가 행복에 대해 생각하고, 우리의 행복을 결정짓는 요소라고 믿는 것에 대한 생각 또한 마찬가지다. 행복이라는 필수적인 요소에 대해 우리는 너무 많은 부분에서 직관과 헛된 믿음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선생님의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지는 이 실험의 교훈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결론은 직관에 의지한다기 보다 확실히 과학적 근거에 의해 지지받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대답한다.

"이 실험의 교훈은 큰 돌을 먼저 넣는 것입니다."

이 예삿말이 내 뇌리에 얼마나 큰 소리로 울렸는지 아마 상상할 수 없으리라.

"큰 돌을 먼저?, 내 삶에 있어 큰 돌의 의미를 갖는 것이 뭐지?, 너무 늦은 건 아닐까?" 그 어떤 물음에도 자신있게 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물음에 제대로 답을 할 수 없었다고 해서 거기서 멈춰버리게 된다면 이 책을 읽은 의미가 없어진다.

"늦게 시작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 역시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신화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짝의 신화, 둘째 일과 돈의 신화, 셋째 나이듦의 신화다.

구체적으로는 좋은 짝, 헤어짐, 아이, 싱글, 직장, 돈, 부자, 병, 꿈, 인생의 절정을 지남과 같은 요소들이 우리를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 한다는 믿음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선생님은 큰 돌을 먼저 넣는 것이라고 말했다. 큰 돌과 작은 돌, 모래와 물은 어디에나 있다. 문제는 집어넣는 순서에 있고, 우리 행복은 각각의 요소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우리는 언제나 행복을 찾는다. 쉴 새 없이 행복을 바라고 구한다. 하지만 그 누구의 말처럼 우리가 행복을 찾는 이유는 우리가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의 결정적 요소라고 믿는 것들은 분명 결정적 요소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요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혹은 자신의 불행이나 행복은 타인이나 세상의 잘못이 아니라 전적으로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는 명제가 절대적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는 결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결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고민하고 슬퍼해도 소용이 없다. 우리의 힘이 미치는 것, 우리가 바꿀 수 있고, 결정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행복의 절대명제라는 것에 너무 자주, 또 오래 노출되어 왔다.

부자가 되고 싶어하면서도 성경에 쓰여있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 귀를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말에 위안을 얻는다.

매일 같이 다툼과 싸움을 계속하면서도 자식을 위해서 라는 이유로 이혼은 꿈도 꾸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가? 부자는 분명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더 많은 기회와 더 많은 경험을 얻을 수 있다.

다툼을 계속하는 것과 이혼을 통해 다툼을 마무리 짓는 것, 어느 쪽이 아이를 위한 것일까? 어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아이들은 순간의 충격(이혼)보다 오래 노출된 스트레스(지속되는 다툼)에 더 큰 심리적 상처를 받는다고 한다.

저자는 단순히 우리가 믿어온 신화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행복의 신화들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단지 어떻게 활용하고 이용할 것이가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이다.

우리 삶을 타인이 결정짓도록 방치하는 주체는 우리 자신이다.

모든 행복과 불행이 자신에게 달려있으며, 책임 또한 스스로가 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과 세상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해보는 것은 어떨까?

세상이 하는 말에 끌려가기 보다는 자신에게 더 좋은 것을 선택하는 일에 더 당당해지면 어떨까?

행복의 신화에 하나를 더해 보고 싶다.

"책을 많이 읽으면 똑똑해진다."

똑똑해 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히 머릿속에 지식을 채우기 위해 읽는 책이란 얼마만큼의 의미를 갖는 것일까?

책을 읽고 아무리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았다 해도, 그 깨달음을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면, 경험으로 재현하지 않는다면 그 깨달음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저자는 이야기한다. 돈을 쓰더라도 단순히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는 '소비'를 하지 말고, 자신의 경험에 투자를 하라고.

거기에 덧붙여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지 말고 타인을 위해 사용해 보라고 말이다.

행복에 왕도는 없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수십 억의 사람이 살아가듯 행복으로 가는 길도 수십 억 가지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있었을지 어떨지도 모를 신화에 휘둘리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일.

이제 우리가 스스로의 신화를 적어나갈 때 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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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들쥔장과 컴퓨터그래픽스운용기능사 비밀과외 2390
이동윤.박신영.윤들닷컴수험서개발팀 지음 / 윤들닷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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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그래픽스란 이제 막 이런저런 프로그램들을 배우기 시작한 내겐 사실 조금 높은 벽처럼 느껴지는 부분이다.

하지만, 배우고자 하는 마음에 넘지 못할 벽이란 없다는 마음으로 펼쳐봤다.

 

그리고 난 세 번 놀랐다.

 

 

 

처음 놀란 건 가볍고 얇은 책의 두께와 부피였다.

"아니, 수험서가 이렇게 빈약해도 되는거야?"

 

어쩔 수 없이 따라붙은 의문이었다. 그만큼 그동안 두껍고 무거운 수험서에 익숙해졌기에 낯설었던 것이다.

거기에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이럴 수가!!

 

하지만 책을 들춰보다 곧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래서

난 두 번째 놀랐다.

 

이 책은 거의 혼자 작업해서 완성했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맙소사!!"였던 거다.

아무리 주위에서 도움을 주었다고는 해도 보통의 수고로 책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란 걸 대략은 알기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디자인과 편집, 교정과 교열, 감수까지 혼자 다 했다는 건 엄청난 강행군을 견뎌왔을 것이란 말이나 다름 없었다.

 

세 번째 놀란 건 조금 뒤다. 동영상이 제공 된다기에 가입을 위해 찾아간 홈페이지.

동영상이 생각보다 길고, 많다.

저자도 밝히고 있지만 책은 가볍게 핵심을 짚어 적고, 자세한 기법과 노하우는 동영상에 담기로 했다는 그 방침을 실현한 결과였던 거다.

얇은 책에서 받은 충격도 이쯤 오고 보니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세상엔 아직 양심이 살아있고, 이이가 그 양심의 한 자리를 지탱하고 있던 거다.

 

책의 구성은 참으로 간략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허술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먼저 시험에 임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꼼꼼히 짚어주고, 시험에 관한 정보를 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랜 강의 경력을 지니고 있다는 저자의 말이 헛말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단출한 목차다.

시험에 관한 정보를 먼저 싣고, 자주 올라오는 물음들을 정리한 후 바로 실전 예제 풀이에 들어가는 군더더기 없는 구성이 낯설지만 깔끔하다.

 

자격 시험을 본 경험이 있다면 낯익을 Q-Net 홈페이지다. 간단한 것이라 넘어가기 쉬운 것부터 짚어준다.

출제 범위에 대해서도 자세히 적고 있어 참고할만 하다.


본문은 역시 간략하게 구성되어 있다.

먼저 문제의 예시를 주고, 그 예시문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각각의 중요한 부분을 설명하는 방식.

익숙한 사람이라면 책만으로도 따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동영상과 함께 할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이 책에서 주의할 점은 자세한 설명을 적고 있지 않기에 각각의 프로그램의 툴이나 환경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수험자들은 각각의 프로그램의 기본서들을 통해 관련 지식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 해도 만능일 수는 없는 법이다. 자신이 해야 할 몫은 한 후에 불평을 해야 그 불평이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으리라.

 

이 책의 가격은 결코 싸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단순히 종이로 된 책이 이 책의 가치의 전부가 아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의 문제에 10개가 넘는 동영상이 있고 각각의 동영상이 10분이 넘어 책 제목도 2390인 거다.

 

2390이란 2390분이라는 의미라는 말이 단순히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란 것을 느껴보길 바란다.

 

세상에 책은 많고, 그 안에 수험서도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험서는 이제 개성을 상실한 채 '팔기 위해' 내놓는 경향이 있다. 계속 팔기 위해서는 한 권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는 안되기에 더더욱 함량 미달의 수험서가 넘쳐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그래픽스 운용기능사의 꿈을 꾸는 분들의 도전에 이 책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나 역시 도움을 받을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

책에 의지하는 건 책이 해줄 수 있는 만큼에 대해서다. 나머지는 내 노력이 필수적임을 잊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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