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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대지 ㅣ 마카롱 에디션
생텍쥐페리 지음, 허희정 옮김, 윌리엄 리스 해설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에는 우리가 익히 들어왔고 또 적거나 적어 보냈던 문장이 담겨있다. 그 문장은 다음과 같다.
200쪽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것임을."
세상에 뿌리 없이 커 올라간 나무나 풀은 어디에도 없다. 어린 왕자의 행성 B612를 붕괴 위기로 몰아갈 위험을 가진 바오밥 나무 역시 몇 갈래의 뿌리에서 시작되는 거다. 그러나 세상에 오직 하나, 인간이 종종 자신의 근본과 뿌리를 망각하는 오만을 저지르고는 한다. 이런 오만은 자연의 어디에도 없는 인간 특유의 것이다. 인간이 이 오만의 벗어던질 수 있는 공간은 그리 많지 않다. 생텍쥐페리가 비행했던 넓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 혹은 바다, 별로 가득한 밤하늘 정도가 있을 뿐이다.
생텍쥐페리는 자신의 삶을 몹시도 사랑한 사람이다. 이것은 추측이 아닌 확신인데, 그의 이야기가 이런 생각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생텍쥐페리는 사막에서 혹은 만년설로 뒤덮인 산 속에서 홀로 죽어가더라도 고통보다는 마지막 순간까지 격렬하게 불타오를 생명의 고동을 지켜보며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것 역시 추측이 아닌 확신이다. 그가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 어떤 것에도 연민 어린 눈빛을 보내지 않았음이 그 증거다.
오래전 읽었던 기억이 있음에도 처음 읽는 것처럼 읽을 수밖에 없었다. 빈곤한 기억의 용량 탓이기도 하고 또 시간이 흐른 만큼 이야기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해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처음의 느낌이 어땠는지,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 그러나 불시착한 사막에서 이슬을 받았으나 먹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려서 구토에 시달려 오히려 더 괴로워지고 말았다는 부분만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에서 추측해보면 처음 읽었을 때는 생텍쥐페리의 '모험'에 더 열광했던 것 같다. 첫 비행을 허가받은 생텍쥐페리의 기쁨과 흥분, 동시에 두려움에 공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에는 생텍쥐페리의 매 순간이 모험 같던 비행이나 불시착보다, 그의 친구들과 그가 만난 사람들이 사람과 삶을 대하는 태도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을 느꼈다. 바르크라고 불린 노예 이야기와 직장을 떠나 전장으로 나와 전투를 앞둔 중사와 그의 동료들의 이야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생텍쥐페리는 누구보다 사막과 사막의 밤하늘을 선명하게 그려낸 작가일 것이다. 그가 아니고는 사막에 숨겨진 오아시스의 가치와 신기루의 위험을 그렇게 실감 나게 그릴 수 없었을 거다.
이 책의 제목은 <인간의 대지>다. 그러나 제목 속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인간이 아닌 대지다. 대지가 있기에 인간이 설 수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지가 없이는 비행조차 불가능하다. 수상선이 있지 않으냐고? 왜, 바다 위에서 비행기 한 번 조립해 볼 텐가?
188쪽
이 책을 쓰는 내내, 나는 절대적 소명에 따랐던 것으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을 언급했다. 다른 이들이 수도원을 선택하듯 항공로를 선택했던 이들을 말이다. 그런데 내가 이들을 찬양하도록 부추기는 것처럼 보였다면, 이는 내 의도에 반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감탄해야 할 것은 바로 그들에게 터전을 마련해 준 대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밝히듯이 생텍쥐페리는 '인간'보다 '대지'에 감탄한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여럿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는 사막이 황량하기 때문이라는 점도 있다. 황량한 동시에 사막 어딘가에 인간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사막이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새벽 생텍쥐페리와 동료들이 사람들로 가득한 어느 파티장에서 그 시간에 사막에서 벌어질 일들과 일상적인 풍경을 생각하며 그 장소의 자신들을 시시하다고 느끼는 이유 역시 대지의 부재 때문이었을 거다. 그들은 사막을 떠나서는 즐거움을 느낄 수 없을 만큼 고독이 가져다주는 진정한 자유로움과 아름다움에 빠져있었던 거다. 물론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고, 부인이 있으며, 자녀가 있었다. 그리고 그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도 작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것은 '절대적 소명'이었으니.
이 이야기는 온통 사랑과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 사랑이 컸던 만큼 사랑스러움을 잃어가는 인간에 대한 안타까움도 컸던 모양이다. 생텍쥐페리는 마치 유언이라도 하듯 마지막에 이렇게 적는다.
215쪽
오직 '정신'만이 진흙에 숨결을 불어넣어 '인간'을 창조할 수 있다.
흔히 인간은 흙에서 왔다고 말한다. 숨을 쉬는 흙, 그것이 인간인 셈이다. 생텍쥐페리가 말하는 그런 흙을 인간으로 만드는 본질은 '정신'이라는 숨결이다. 정신을 잃어버린 인간은 그저 단순한 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흙에 불과한 인간이란 개성을 상실한 인간이다. 찍어내듯 길러지는 어린아이 들이다. 인간 속에서 죽어가는 모차르트다. 만약 생텍쥐페리가 이 시대를 돌아본다면 분명 대단히 실망한 채 돌아갈 것이다. 사막은 더 이상 고요하지 않으며, 그 안에 숨은 생명이 하루하루 말라가고 있음을 슬퍼할 것이다. 무엇보다 대지에 감탄하는 인간이 거의 사라져버렸음을 안타까워할 것이다. 이제 위대한 것은 자연도 대지도 아니다. 위대한 것은 인간이라고 한다.
<인간의 대지>는 <어린 왕자>처럼 아기자기하지는 않다. 그러나 생텍쥐페리 특유의 짤막한 문장이 그려내는 다채로운 풍경은 오히려 더 풍부하게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인간이 피해갈 수 없는 고독과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코 직접적으로 이렇게 해야 한다거나 저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르치지는 않지만 이 이야기를 읽는 동안 저절로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될 거다. 적어도 인간을 설 수 있게 해주는 대지의 가치에 대해 한 번은 생각하게 될 것이다.
사막 한 가운데 불시착하던 날, 물탱크는 터져버리고 먹을 것도 거의 남지 않았음을 깨닫던 순간에도 생텍쥐페리는 2시간이나 편안한 잠을 즐긴다. 거의 물 한 방울 마시지 않고 200킬로미터를 희망도 없이 걸어가면서도 걷기를 완전히 멈추지 않는다. 거듭 되는 신기루에 기쁨과 실망을 오가면서도 좌절하지 않는다. 생텍쥐페리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면서 익숙한 데 있었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관계 때문이다.
208쪽
우리가 우리의 역할을 자각할 때, 아무리 하찮은 역할일지라도 그 역할을 깨달을 때, 그때에만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그때에만 우리는 평화롭게 살고 평화롭게 죽을 수 있다. 왜냐하면 삶에 의미를 주는 것은 죽음에도 의미를 주니까.
삶에 의미를 주는 것이 죽음에도 의미를 준다면 반대로 죽음에 의미를 주는 것은 삶에도 의미를 갖는 것이 된다. 그렇기에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도 밀어낼 필요도 꺼릴 필요도 피할 필요도 없는 거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포기의 종용이 아닌 최후의 순간까지 대지 위의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지켜내라는 의미일 거다. 무엇이든 '기꺼이'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꺼이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한다면 그것은 봉사가 되지만 강제로 일을 한다면 노예가 되는 것과 같다. 최선을 다한 삶이 죽음으로 끝이 난다 해도 그 삶이 허무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삶은 죽음으로서 더 분명한 의미를 갖게 되는 거다.
<인간의 대지>는 우리가 잃어버린 혹은 잃어가는 본래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를 기쁘게 했고, 행복하게 만들었던 '정신'을 되찾아야 한다고 일러주는 이야기다. 몹시 고독하고 위태로운 동시에 지극히 인간다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인간다웠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인 것이다.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는 모험을 떠날 준비가 된 이들 혹은 준비 중인 이들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