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름, 조나단 노엘.

직업, 은행 경비원.

나이, 50대.

소원, 7.5평방미터짜리 아파트를 소유하여 남은 평생을 평화롭게 지내기.

가족 관계, 이민  누이동생.

친구, 특정한 인물 없음.

인생 최대 위기, 출근을 준비하던 아침, 아파트 복도에 들어와 있는 비둘기와 마주친 일.


세상에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세상이 끝나버린  절망하는 사람들이. 

그렇다고  사람들이 나약하다거나, 유난히 비관적인  아닙니다. 

단지, 조금  예민하고, 섬세하며, 일상이라는 평화를 몹시 아끼고 사랑하고 있을 뿐이죠.

일상이 너무 소중해서, 영원히 흐트러지지 않기를, 변하거나 끝나지 않기를 몹시도 바랄 뿐입니다.


 조나단 노엘 역시 그런 사람의 하나입니다.

오래전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고, 누이동생과도 헤어진 뒤에 마지막으로 믿었던   아내였던 여자의 배신을 경험한 이후, 조나단은 더는 세상에 많은  바라지 않게 되었습니다. 

 소박하고  소박하게, 다만 지금 살고 있는 7.5평방미터짜리 아파트를 자기 소유로 만드는 일에 몰두하고, 30년 넘게 해온, 이제는 완전히 익숙해진 경비 일에서 퇴직하는 날을 기다리며, 평화로운 일상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전부죠.


 인생 최대의 위기가 찾아온 건, 어느 평화로운 금요일 아침입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화장실에 가려던 조나단은 복도  복판에 앉아 있는 비둘기  마리에 얼어붙고 맙니다. 

 고작 비둘기  마리.

어디에나 있는 회색 날짐승 하나가  인간을 절망으로 몰아넣는데 걸린 시간은 순식간이었습니다.

조나단은 30년 넘게 살아온 집을 영원히 떠날 생각, 불안, 초조, 긴장, 좌절, 절망, 죽음까지를 생각하죠. 


  오래전에는, 사실은 얼마 전까지도 이런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조나단을 나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작, 비둘기  마리인데.'하고요.

조나단이 삶을 그리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비둘기  마리 때문에 포기할 정도의 삶이니까요. 

그런데 오늘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조나단은, 자기의 삶, 쓸쓸할 만큼 조용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너무나 사랑했던  아닐까."


 다른 사람, 세상,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쓸쓸하고 외로워 보여서 비참하게 느껴지는 삶이라고 해도 당사자에게는 너무나 소중해서 잃고 싶지 않은 삶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독하고 고독해서, 위태로워 보일 정도의 삶이라고 해도 말이죠.


나는 <비둘기>에서 너무나 작고, 사소해서 무시하기 쉬운 삶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평소라면 너무나 당연했을, 그래서 고마움은커녕 번거롭고 귀찮게 여겼을 일들조차 소중하게 느끼게 됩니다. 

당연할 거라 믿었던 내일, 계속될 거라 믿었던 일상이 얼마나 간단히 부서질  있는지 깨닫습니다.

 순식간에 불안에 집어삼켜졌다가,   아닌 일을 계기로 회복할  있음도 알게 됩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행복이라고 이름 짓는 일들의 허허로움과 착각에 생각이 닿습니다.

행복은 불변하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거죠. 

이미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책 속의 이야기, 누군가의 일화를 더하면 감상을 얼마든지 늘일 수도 있겠지만 그만 두기로 합니다.

<비둘기>는 짧은 이야기입니다.

 시간, 길어도 하루면 충분히 읽을  있으며 어렵거나 복잡한 이해를 요구하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집채만 한 바위가 아니라 작은 돌부리에도 우리는 간단히 균형을 잃어버립니다. 때로는 넘어져 다치기도 하죠. 

하지만 너무나 운이 나쁘지만 않다면 보통은 조금 다치는 정도에서 털고 일어날  있습니다. 운이 좋다면 작은 돌부리 덕에  바위를 피할 수도 있겠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롭기만 한 삶도 좋을 겁니다. 

그러나 가끔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사건들, 작은 위기들을 넘어서는 경험은 우리가 잊고 지낸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떠올리게 도와줄 거예요.


다른   포기해도 좋습니다마는, 자신만은 간단히 포기하지 마세요. 

비둘기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언제든 날아들 수 있습니다. 

비둘기는 자기 삶을 열심히 살아갈 뿐, 누구를 훼방하거나 위협하거나 놀라게 하기 위해 살지 않습니다. 

나의 삶과, 나의 일상과, 나의 지금과,  모두를 더한 나를 사랑하시길 바라요.


불안도, 두려움도, 사랑도, 모두 나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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