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마카롱 에디션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심영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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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들이 내 책을 건성으로 읽는 게 싫다."

유명한 소설 도입부에 적은 작가의 목소리입니다. 어떤 작품인지 예상하고 계신가요?

 문장이 담긴 작품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입니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린 모자 그림. 
하나뿐인 장미. 
길든 여우.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 
기다림의 설렘과 떨림. 
정말 아름다운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이고, 비록 작가가 어린이였던 어른에게 바치기는 했지만 어린이들도 쉽게 읽을  있다는  생각하면 새삼 깊은 사유와 감성에 놀라게 됩니다. 

 인생책이라고 정말 좋다고 얘기하고 다녔으면서, 서너 번은 읽었으면서, 앞서 적은 문장이 마음에 와 닿은 순간이 없었다는 사실. 

이번에야 마치 처음 읽은 것처럼 발견하고서는 '생텍쥐페리가 이런 말도 했네.'하며 조금은 놀라고 말았던 일.

  아닐 수도 있지만 조금은 충격적이라고 느꼈던 건, "잘 읽고 있는가?"하는 의문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뭐, 어떤 작품을 읽고 무얼 느껴야 하고, 어떤  발견해야 한다는 식으로 정해진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개인적인 소망이랄까, 욕심이랄까, 아쉬움 같은  있어요.

좋은 작품이기에  풍부하게 보고, 느끼고, 알고 싶다는 원초적인 바람들요.


 워낙 좋은 작품이니 찬사를 보태봐야 신화에 덧칠하는 셈밖에 되지 않을 테고, 그래서 이번에는 처음   같은 문장  개를 적기로 합니다.


첫 번째는 "나는 사람들이  책을 건성으로 읽는  싫다."입니다.

진지하게 말하는데 건성으로 듣는다면 속상하고 기분이 나빠지기도 하죠. 

솔직함이 두드러지는 문장이라, 새삼 생텍쥐페리의 순수함을 다시 떠올리게 되네요. 

누군가가 읽어준다는 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낄  있지만, 읽은 느낌이나 생각을 전해준다면  기분 좋은 그런 인지상정의 아주 기본적이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진지함.

 입이 하나고 눈과 귀가 둘인 이유는 적게 말하고 귀 기울이며, 두루 살피라는 의미라고 하죠.

읽는 즐거움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금은 진지하게 읽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두 번째는 "넌 모든 걸 혼동해…… 모든  뒤섞어버린다고!"입니다.

비행기 고장으로 사막에 불시착한 상태에서 수리는 진전이 없는데 어린 왕자가 장미꽃 얘기를 하자 '나'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얘기를 가볍게 넘겨버리려고 합니다. 그러자 어린 왕자는 화가 나서 외치죠. "꼭 어른들처럼 말하네!"라고요.


어른들이 말할 때 모든 걸 혼동하고 뒤섞어버린다는 의미입니다. 

왜 그래야 하느냐는 물음에 답이 마땅치 않을 때, 핑계나 변명이 궁색할 때 얼버무리듯 모호하게 말하곤 하죠. 

아이들은 그렇게 돌려서 말하거나 일부러 모호하게 말하거나 애매하게 굴지 않습니다. 

오히려 명료하죠. 

 대표적인 어른들의 말은 정치가의 말하는 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유체이탈 화법'으로 대표되는 결국 무슨 말인지 아무 말도 아닌 복잡하고 무의미한 말들을 자주 쓰죠. 

뜨끔해하셔야 할 텐데 말입니다.

그분들이 특히.


세 번째는 "나는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없었다.  자신이 아주 서툴게 느껴졌다. 나는 어떻게 해야 어린 왕자에게 가닿을  있는지, 어디에서 그에게 다가갈  있는지   없었다. 눈물의 나라는 그렇게나 신비로운 곳이다."입니다.

 양이 장미꽃을 먹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 장미꽃 한 송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식의 태도가 일으킨 분노로 어린 왕자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나'는 비행기 수리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잊고 어린 왕자를 다독이고 달래죠. 

 특히 마음이 끌린 부분은 '눈물의 나라'의 신비입니다.  

 '눈물의 나라'는 뭘까요. 

눈물이 시작되는 곳? 아니면 눈물이 만나 섞이는 곳? 그것도 아니면 눈물의 근원이 되는 감정 혹은 위로?

결과적으로 보면 생텍쥐페리는 눈물의 나라에 닿은 모양입니다. 어떻게 하면 어린 왕자를 위로할  있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위로하는  성공했으니까요. 

 친구가 됐죠. 기적처럼. 

솔직히 진정한 친구가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진정한 친구끼리는 눈물에 국경이 나뉘어 있지 않을 거라는 걸 알겠습니다. 슬픔의 근원, 아픔을 달래는 방법은 머리로 알아낼 수 없는 거겠죠. 마음을 담지 않고는 마음에 가 닿을 수 없다는 것. 

기억해야겠네요.


마지막으로  번째는 "그가 가로등을 켜는  마치 별이나  하나를 새로 태어나게 하는 것과 같아. 가로등을 끄면 꽃이나 별이 잠드는 거고. 아주 아름다운 일이야. 아름답기 때문에 쓸모 있는 일이고."입니다.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름답기 때문에 쓸모 있'다는 말에 얼마나 동의하나요?

쓸모가 있기에 아름답다는 말이  동의하기 쉬운 가요?

비슷하지만  생각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미 발견하셨는지도 모르겠네요.

근본이 어디에 있는 하는 문제입니다. 근본은 다른 말로는 의미 혹은 가치라고 적을 수도 있겠죠.


'아름답기 때문에 쓸모 있다'는 생각에서는 '쓸모'가 목적이 아니라 아름다움에서 생겨난 결과입니다.

'쓸모가 있기에 아름답다'는 생각에서는 '쓸모'가 목적이고 아름다움이 결과죠. 

간단히 말하면 후자의 생각은 쓸모가 있는 것만 아름답다는 겁니다. 

 어린 왕자에 따르면 어른들의 생각이죠.

'장미꽃  송이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장미꽃은 얼마든지 있으니까.'라는 식입니다.

아름다움은 하나의 '가치'입니다. 가치는 '부여하는 것'이죠. 

같은 것, 흔한 것이라도 내게 의미가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아름다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소한 물건이라도 소중한 사람이 선물해줬다면 아름다울  있습니다. 의미와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이죠. 

쓸모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소중한 존재가 전해준 것이기에 아름다울  있다는 거죠.

  쓸모가 있기에 아름답다의 예를 생각해보면 이런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습니다.  사람은 가난해서 금반지도 겨우 선물합니다. 다른 사람은 부자라서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죠. 절대적인 가치로 따진다면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반지가  겁니다. 쓸모가  크니까요. 어떤 쓸모인가? 단순하게는 금전으로 환산할  있다는 쓸모의 차이부터 무척 큽니다. 비교하기 어렵죠. 

 하지만 금반지를 선물한 사람의 사랑이 더 작은 건 아니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동등하면 동등했지 어느 쪽이 작다고   없다는 겁니다. 


 우리는 '더 좋은 일'을 갖기를 원합니다. 세속적인 의미에서  좋은 일은 편하고, 돈을  많이 버는 일이죠. 하지만 보람 있고, 의미 있으며, 가치가 있는 일이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즐겁게 계속할  있는 일을   있다는   행복입니다. 누군가 시켜서 마지못해 해야 한다면 괴로움이  크겠죠. 단지 돈만을 위해 일한다면 자신이 쓸모 있는 일을 한다고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아름답기 때문에 쓸모 있는 일'

평생을 이런 일들만 하며 보내고 싶은 바람입니다.


어린 왕자는 자기 별로 돌아갑니다. 소행성 B612호로요. 

장미꽃과 다투고 자기 별을 떠난 어린 왕자는 일곱 개의 별을 돌며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 나누며 깨달음을 얻어갑니다. 성장하죠. 

  

 아이는 성장하면 바빠집니다. 처리해야 하는 중요한 일들 너무 많아서  틈도 없죠. 그렇게 성장해서 어른이 되지만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완전해지는  아닙니다. 오히려 성장해야  이유가 늘어나죠. 

  

 우리는 너무 많은  잊고 살아갑니다. 

소중한  보지 못하고 지나칩니다.

정말 중요한  뭔지 알지 못합니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 눈물 흘려본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번은 그런 경험을 했을 테니, 모르는  아니라 잊어버린 셈입니다. 

사랑은 책으로 배우지 말라고 하죠. 

그렇더라도 사랑을 책으로 깨우지 못할  없을 겁니다.

그래서, 건성으로 읽어서는  되는 건지도 모릅니다. 

생텍쥐페리가 서운해합니다. 


이렇게 말했다니까요.

"나는 사람들이 내 책을 건성으로 읽는 게 싫다."


글자를 세심히 살펴 읽으라는 말이 아닐 테죠.

 안에 담은 마음을 들여다봐달라는 부탁 아닐까요.

간단하지 않지만, 나의 마음이 당신의 마음에 닿을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는. 

그런 의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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