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요한 선택을 하는 날입니다. 

 누구나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라고 기대하고 있을 테죠. 하지만 내가 선택한 후보가 반드시 당선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또한 내가 선택한 후보가 내가 기대한 결과를 보여줄 거라는 확신도 무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 선택이 이기심에서 나온 것이든, 명분을 따른 것이든, 다른 사람을 좇은 것이든 선택하는 사람은 최소한의 책임을 다한 셈이기에 나름의 권리를 갖습니다. 

 이런 분들도 계시죠. 

"나는 선택하지 않는  선택했다."라고 하시는 분들.

솔직히 바보 같은 소리입니다. 

그냥 이렇게 말하면 간단한 이야기죠.

"난 포기했다."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후보가 없으므로, 누구에게 표를 던지든 의미가 없기에 행사하지 않겠다.'거나 '누가 되든 결국 도진개진인  아니냐,  선택에 의미가 없는  아니냐'라고 그럴듯한 말을 하기도 하지만 역시 허튼소리인  마찬가집니다. 

 후보는 개인인 동시에 집단이죠. '나와 일치하는 후보'가 어디 있겠습니까. 

맹목적으로 보이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나름의 이유와 명분이 있습니다. 이해 가능 여부를 떠나서 이유와 명분이 있기에 그들은 당당할  있죠. 

 선택하지 않은 사람은 발언권도 가질  없습니다.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소중한 권리,  행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경제학 카페>라는 책에 감상문을 쓰면서 시작하며 '선택'을 이야기한  오늘이 19대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날이어서만은 아닙니다. 유시민 작가도 말하고 있지만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선택'의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이죠. 이미  알고 계신 것처럼 대통령 선거 역시 경제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번의 선택이 적게는 5년, 길게는 수십 년을 결정지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경제학이 정치와 많은 부분에서 닮아 있고, 관련이 크기에 <경제학 카페>에서도 여러 차례 정치를 이야기합니다. 그중  부분을 공유합니다.

자기가 대통령이 되기만 하면 온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주고 빈부격차와 불황을 비롯한 온갖 경제적인 악을 제거할 것처럼 큰소리치는 정치가를 믿지 말라. 무식한 돌팔이가 아니면 말만 번지르르한 사기꾼이 틀림없으니까.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중


 우리는  선거 때마다 '저를 뽑아주시면'으로 시작해 '무엇 무엇하겠습니다'하는 약속을 무수히 받았습니다. 

믿지 못하면서도 찍고, 믿고 싶어서 찍고, 믿을  없어서 찍지 않는 일의 반복이었죠. 

 '저는   있습니다'는 믿기 어려운 말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경제의 문제, 외교의 문제, 정치의 문제라는  나만 잘한다거나, 내가 잘하고 싶어서 잘할  있는  아니라는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말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행보와 태도, 의지를 보고 결정하려고 하게 됩니다.   나은 결과를 기대하면서요.


 때로 우리는 마법사의 출현을 기대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많은 순간에 그런 마법적인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만능의 마법사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믿을  없을 만큼 좋은, 바라 마지않는 공약은 언제나 공허한 약속으로 끝이 난다는  우리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오래된 질문입니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었죠. 

 물음에 대한 답은 '이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래전에는 '희망'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나도 부자가   있다'는 희망에서라고요. 기이한  그런 희망이 거듭 좌절되는 경험을 하면서도 마치 이제는 '포기'할  없어서, '부정'하고 싶지 않아서 잘못된 선택이라는  알면서도 계속하고 있다는 겁니다. 잘못인  알면서도, 의심하면서도 계속할  있는  그것이 나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없습니다. 

 어떤 이득일까요?

'나만 이런 좌절, 실패, 분노, 가난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는 없다.'는 이기심, 타인의 실패를, 좌절을, 분노를, 가난을 어디에서나 발견하게 되는 위안. 그런 뒤틀리고 비틀린 이득.


 지나친 생각일  있다는  압니다. 

사실은 나아지고 싶다, 나아질  있을 거다,  나아짐을  후보가 이루어줄 거다라는 기대에서 선택하고 있을 겁니다. 믿을  없지만, 여러 차례 배신당했지만 그럼에도 이젠 미운 정이 들어서라도 계속 응원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을  있습니다. 혹은 해소되지 않은 연고주의, 지역주의, 사상과 이념의 문제를 용납할  없는지도요.


 중요한 건,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의 상당 부분이 '이기심'이라는 겁니다. 부자들은 자신의 부를 늘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자신은 자선사업가가 아니므로 자기의 부를 희생해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목격한 바, 생명에 치명적이어도 로비를 통해 판매 허가를 받고, 노동자가 위험에 노출될 걸 알면서도 외면하며, 실제로는 거의 같은 비용이 들더라도 해고를 쉽게 하기 위해 하청업체를 통해 비정규직을 운용합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저마다가 자유롭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곳. 그곳이 바로 시장입니다.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은 그런 곳입니다. 개인, 기업의 이기심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기에 예측도 조정도 간단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세계화, 국제화라는 불확정 요소가 더해지면 통제는 불가능에 가까워집니다. 

 

 독재라는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사람의 명령에 국가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시스템이라면 마법처럼 문제를 해결할  있을 겁니다. 정확히는 아주 잠시 동안은 그런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어려움, 문제들을 만든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바로 독재라는  아는 사람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마법은 없습니다. 마법사도 없죠. 

변화를 만드는  마법이 아니라, 변화된 선택입니다.


 시장에서는 선택받은 상품, 기업만이 살아남습니다. 기업은 선택받을 수 있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개발하며 생산합니다. 외부의 개입이 없는 이상적인 상태라면 결과적으로 최선의 상품과 기업만이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소비자는 선택에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선거에서 유권자가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도 같습니다. 유시민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시장에서는 소비자가 왕이듯, 정치에서는 유권자가 왕이다. 만약 그 왕이 왕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정치가 엉망이 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중


 유해한 상품을 만들어 판매함으로써 소비자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기업이 있습니다. 소비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당연히 해당 기업의 상품을 불매함으로써 업계에서 추방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소비자에게는 그렇게   있는 힘이 있죠. 하지만 기업도 살아남아야 하기에 방법을 찾습니다. 상품 가격을 낮추고, 이미지를 회복시키는 광고를 내보내며, 소비자를 유혹하는 이벤트도 기획합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수천 명의 소비자, 잠재적으로는 수만 명의 소비자를 위험에 빠뜨린 기업은 무사히 위기를 극복합니다. 


 정치도 닮아있습니다. 

나라를 혼란과 분열에 빠뜨린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위기에 책임이 있는 정당이 있습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유권자라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그런 정치인들과 정당을 퇴출시켜야 합니다. 선거에서 뽑아주지 않음으로써 유권자의 분노와 뜻, 힘을 보여줘야 하죠. 하지만 정당도, 정치인도 살아남아야 하기에 방법을 찾습니다. 우선 책임이 가장  사람들을 분리합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는 새로워졌다고 말합니다. 다음으로는 오래된 논란, 논쟁을 끄집어내서 반대를 위한 반대, 반감을 되살립니다. 우리 밖에는 그들을 막을  없다고 호도합니다. 의외로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납득합니다. 스스로는 대견하게 여기기까지 합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경건한 마음도 먹습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삶이 나아지기는커녕 부패와 부정이  만연하는  지켜보며 힘든 삶을  힘겹게 견뎌냅니다.


경제학은 '선택'의 문제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정치는 선택을 받는  최대의 문제죠.

둘은 무척 닮아 있습니다. 아마 그래서 정경 유착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일 테죠.(웃음)


 경제학은 최대의 만족, 최대의 효용을 이끌어내는 선택이 무엇인지를 고민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사람이 연구를 하더라도 완벽하게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최선이라는  단지 방향을 제시하고,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쓰는 것뿐이죠. 

 

 앞에서도 적었지만 선택의 핵심은 '이기심'입니다. 이득이 되는 행동을 하는  소비자의 기본적인 심리죠. 적어도 해가 되는 선택을 의도적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말입니다.

 문제는 사람이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이득이 되지 않아도 이기심은 작동할  있습니다. 이기심이 아니라 이타심에서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선택은 하는 쪽도, 받는 쪽도 최대의 효용을 기대하기 마련입니다. 최대의 효용의 기준과 요소는 저마다 다르더라도 말이죠.


 소비의 문제에서 소비자는 어느 상품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해당 상품을 쓰지 않기로 결정하면 단지 그뿐으로 자기 삶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정치의 문제는 다릅니다. 


더 나은 나라, 더 좋은 사회를 바라는 마음으로 거듭 투표를 했지만, 거듭 실망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더는 나아지지 않을 것처럼 여겨질지도 모릅니다. 결국 '선량한 유권자', '선의의 유권자'는 점점 투표의 의지를 잃습니다. 


그럴  있습니다. 포기하고 싶어 질  있고, 희망도 기대도 없을  있습니다.

하지만  순간에도 다른 유권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지지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져 권력을 안겨줍니다. 

결국 절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던 후보가 당신의 삶을 좌우할  있는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선택하지 않는 것이 자유라면 선택하지 않은 결과에 시달릴 의무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항의 명분도 분노의 이유도 없습니다. 선택을 포기한 사람은 권리는 잃고, 의무만을 지게 된다는 겁니다.


경제학에 관련된 책을 읽었는데 결국 정치로 귀결된 이유는 경제학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정치와 닮아있고, 떼어놓을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주권을 가진 사람들이 주권을 올바르게 행사하고, 행사된 주권이 효과적으로 영향을 끼칠  더디더라도 우리 사회는 나아질  있습니다. 


 오후 1시를 넘어서고 있으니 이제 6시간 남짓의 시간만을 남기고 있습니다.

아직 소중한 주권을 행사하지 않은 분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투표소로 향하시기를 권합니다.

나의 미래, 우리 아이의 미래, 우리 가족의 미래, 사회와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사람을 정하는 일을 포기하지 마세요.


 투표는 승리자를 정하는  쓰일 수도 있지만, 국민과 시민의 뜻을 전하는   수도 있습니다. 

마법사를 다른 곳에서 찾지 마세요.

모든 마법은 당신의 손에서 시작되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