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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뿐하게 읽는 나쓰메 소세키
오쿠이즈미 히카루 지음, 지비원 옮김 / 현암사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나쓰메 소세키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일본의 유명한 작가입니다.
마지막 작품을 남긴 것이 100년도 더 전임에도 지금도 일본에서는 국민적으로 읽히는 국민 작가이기도 하고요.
우리나라 작품 중에서 혹은 작가 중에서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는 작가가 있는가를 떠올려보면 조금은 질투가 나기도 합니다. 시험을 위해 공부하면서 기억한 이름은 있어도 작품이 기억에 남는 작가는 얼른 떠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이랄까요, 지금의 일본 사람들 역시 나쓰메 소세키를 쉽게 읽을 수 있는 작가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니까요.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요? 그거야 지금도 나쓰메 소세키를 기억하고 사랑하며, 널리 읽히기를 바라는 사람이 쓴 책의 제목이 『가뿐하게 읽는 나쓰메 소세키』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이 책의 저자이자 소설가이기도 하다는 오쿠이즈미 히카루라는 사람은 분명 나쓰메 소세키를 소세키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건 또 어떻게 아느냐고요? 그거야 이 책을 읽어보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거니까요. 아주 여러 번 소세키의 작품을 읽었을 것이고, 다양하게 해석해보고 또 썼을 것임을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나쓰메 소세키라는 이름은 몰라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아는 분은 제법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그 작품이 나쓰메 소세키의 첫 장편 소설이라고 하네요.
종종 듣게 되는 이야기지만 대문호, 재능 있는 작가들은 대부분 처녀작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밀란 쿤데라의 처녀작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입니다. 이제 좀 믿을만하다 싶으신지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어쩌다 보니 저도 이 작품은 세 번쯤 읽었네요. 하지만 지금도 그 고양이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양이에게는 이름이 없었거든요. 그냥 '고양이'로 살다 '고양이'로 죽습니다.
이 고양이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건 회색이나 흰색이 섞여있거나, 노랑과 흰색이 섞인 고양이의 모습입니다. 섞인 것도 얼룩얼룩하게 섞인 것이 아니라 드문드문 섞여서 그 경계는 있지만 어느 색이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애매한 색일 거라는 생각을 해요.
나름의 근거라면 하나쯤은 있습니다. 바로 이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를 부르는 호칭이죠. 골목대장 격의 고양이는 검둥이입니다. 어쩐지 야쿠자 같은 느낌이라 느낌이 팍 오는 고양이죠. 또 하나는 얼룩이인데, 일찍 죽습니다. 얼룩이나 검둥이가 아니라면 역시 회색이나 흰색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데, 구체적으로 왜 그렇냐고 물으신다면 모르겠다고, 그냥이라고 밖에는 답할 수가 없네요.
이 책 얘기를 좀 하자면, 쉽게 말하면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해설집' 혹은 소세키 '읽기 안내서' 정도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이 한 권만 읽어도 소세키의 작품 10권을 읽은 것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는 기적 같은 책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소세키 작품을 여러 권 읽었거나, 여러 번 읽은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수도 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책인지.
소세키를 읽고 싶거나, 읽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거나 하는 분들에게는 적극 추천합니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가뿐하게 읽을 수 있을 만큼 흥미진진하고 쉽습니다. 흔히 딱딱하고 재미없는 작품 해설을 생각하고 '거기서 거기지 뭐'라고 여기신다면 아,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뭐, 어쩔 수 없는 건 없는 거니까, 마음대로 하셔도 좋겠습니다.
이 책에서는 총 10장에 걸쳐 10 작품을 소개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중간에 들어있는 소세키에 얽힌 칼럼도 쉽고 가볍게 읽힙니다. 이것으로 또 하나의 진리가 증명되는데요. 그 진리란 다름 아니라 모르는 것을 설명하려고 할 때 어렵게 설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설명까지 쉽게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깨달음 하나는, 무엇인가가 쉽게 설명할 수 없다고 여겨진다면 함부로 그것에 대해 '안다'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는 안다고 믿고 싶고, 안다고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아는 것 같은 것'이지 아는 것은 아니니까요. 저 스스로도 조심해야지 싶은 생각이 드는 부분이라 제가 적고서도 마음에 와 닿네요.
혹시 소설은 재미가 없어서 읽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분이 있을지 몰라 재밌는 부분을 옮겨와 보기로 하겠습니다.
저 역시 어렸을 적에는 아무런 재미가 없었던 소설을 어른이 되어 다시 읽으니 재미있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반대로 예전에는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습니다.
소설의 재미란 그때그때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어떤 소설이 시시하다는 느낌이 들 때는 그 소설을 시시하게 만드는 것이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쪽
소설가 답다고 해야 할까요. '소설이 시시하다는 느낌이 들 때는 그 소설을 시시하게 만드는 것이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먼저 생각해'보라고 하다니 말이죠. 하지만 저 역시 어느 정도는 이 견해에 공감합니다. 함량 미달의 소설이 아니라면, 특히 그것이 고전의 반열에 들고 꾸준히 읽힌다면, 그 책은 결코 시시하거나 재미없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옳다고, 나름의 재미를 추구하겠다고 하는 것은 그것대로 좋겠지만 시시하니까라거나 재미없어서라며 언젠가 읽어볼 가능성마저 허락하지 않는 것이 시시하고 편협한 태도라는 건 분명합니다.
소세키의 작품과는 무관하지만 또 한 가지 좋은 이야기가 있어 나누고자 합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독서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독서가 삶에 도움이 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적어도 삶은 독서에 도움이 됩니다.
21쪽
독서가 삶에 도움이 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삶은 독서에 도움이 된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정말 재밌으면서 공감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경험이 늘고, 생각이 깊어질수록 재밌어지는 것이 독서라고 생각하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어렸을 때는 사람의 복잡한 감정이나 욕구와 욕망의 충돌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인간의 내면을 표현한 작품이 재미없다고 느꼈다가 자라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한 것처럼 흥미롭게 여기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에 공감합니다. 그래서였는지 삶이 독서에 도움이 된다는 표현이 마음에 콕 박히더군요.
책의 지면 대부분을 소세키 작품에 숨겨진 비밀과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방법들을 이야기하는데 할애하고 있는 책입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이 책만 읽어도 소세키의 작품 10권은 읽은 셈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작품에 대한 폭넓고 깊은 이해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혹시 읽고 싶어 지는 책이 있다면 꼭 마저 읽어보시기를 권하고 싶네요.
타인의 해설이란 아무리 완벽해도 마음에 차지 않는 법입니다. 반대로 스스로 내놓은 해석은 부족함이 느껴지더라도 만족의 수준이 남다르게 됩니다. 독서가 삶에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고 했었지만 이런 점에서는 분명 독서도 삶에 도움이 됩니다. 삶은 독서에 도움이 되고, 독서가 삶에 도움이 되기에 같은 작품을 다시 읽었을 때 다른 느낌을 얻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끼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책을 읽는 재미가 한층 크고 깊어질 것입니다.
읽기 어렵다고 하는 책을 읽었다고 자랑하기 위해 하는 독서마저도 의미가 있습니다. 독서도 결국 끈기 있는 연습으로 다져지는 능력이니까요.
책에서 무엇을 찾느냐에 따라 책에서 얻는 것이 달라지게 됩니다. 제가 찾기를 권하는 것은 자신의 삶입니다. 책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 전혀 상관없는 세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결코 교차할 수 없고, 마주할 수도 없었던 두 세계가 만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기적은 종종 화학작용에 비유되기도 해요. 거기서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전혀 다른 성격의 무엇이 나오더라도 놀랄 일이 아니죠. 화학작용이란 그런 것이니까요.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이라는 신화는 믿지 않는 주의입니다. 그러나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는 책들은 분명 인생을 바꿔놓습니다. 인생의 무엇을 바꿀지, 어떻게 바꿀지는 읽는 이가 붙들고 있는 방향키를 어느 쪽으로 트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독서란 어디까지나 자율적이고, 열려있는 활동입니다. 그러니 가뿐하게 읽어나가세요.
그것이 나쓰메 소세키든, 밀란 쿤데라든, 헤밍웨이든, 찰스 디킨스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두려움도, 시시함도 내려놓고 산책하듯 가볍게 읽어나가시길 권합니다. 그 시작이 이 책이어라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겠네요. 세상에 이렇게 읽는 방법도 있구나 하고 알게 될 테니까요.
독서에 도움이 되는 삶과 삶에 도움이 되는 독서, 즐기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