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통의 심리학 -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은밀한 본성에 관하여
리처드 H. 스미스 지음, 이영아 옮김 / 현암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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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을 시작하기 전에 두 가지만 이야기해두고자 한다.

하나는 책의 제목인 '쌤통 심리'가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의 해석이라는 사실이 적절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거다.

다른 하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 안에 숨겨져 있는 샤덴프로이데, 즉 쌤통의 심리를 확실하게 깨달았다는 거다. 

 그래서 이 감상은 불편함과 깨달음에 대한 것이 되겠다.


 이 책의 번역 제목은 <쌤통의 심리학>이다. 어쩐지 소소하고, 가벼울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원제를 알게 되면 그 생각이 정말 맞는지 의심하게 될 것이다. 


 "THE JOY OF PAIN: SCHADENFREUDE AND THE DARK SIDE OF HUMAN NATURE, FIRST EDITION"

이 책의 원제다.


 직역하면 <고통이 주는 기쁨: 샤덴프로이데,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 정도가 될까?

어쩐지 내게는 샤덴프로이데에 대한 거북함이 있다. 이와 비슷한 거북함을 주는 표현이 있는데 '홀로코스트'가 그것이다. 


 유대인에 대한 책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유대인이 생각하는 샤덴프로이데나 홀로코스트는 다른 민족들, 다른 언어에서의 의미와는 무척 다르다고 생각한다. 샤덴프로이데는 가볍게 '쌤통'으로 해석되지만 실제로는 목표가 되는 대상의 불행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기쁨까지를 희생하는 가학적인 면이 담긴 표현이라고 알고 있다. 가십에 관한 한 기사에서 진중권 씨는 샤덴프로이데를 언급하며, '남이 못되는 꼴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가리키는 말이다'(2013년 4월 6일 중앙일보)라고 했다. 대표적인 지식인인 그가 한 말이니 틀리지는 않았겠지만 깊이 파고 들어간다면 가볍게 웃어 넘길 수도 없는 표현이라고 덧붙이지 않았을까 싶다.


 샤덴프로이데는 악마적인 즐거움이다. 자신의 영혼을 팔아 타인의 영혼의 파멸을 사는 행위가 바로 샤덴프로이데라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자신 또한 파멸에 이를 것을 알면서도 타인의 불행을 보고자 하는 기쁨이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라는 표현 역시 유대인들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동서양의 비유대인들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두고 자꾸만 '홀로코스트'라고 한다. 이 책 <쌤통의 심리학>에서도 같은 표현을 쓰고 있다. 하지만 홀로코스트는 성물을 바치는 행위를 의미한다고 한다. 제사를 드릴 때 제물을 올리는 것이 홀로코스트인 셈이다. 히틀러를 포함한 나치는 유대인을 제물로 삼는다는 의미에서 홀로코스트라고 했던 거다. 몰살 지경에 몰렸던 민족에게 "너희들은 신에게 바쳐지는 성스러운 제물이었어."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말이다. 

 강제로 납치되어 위안부의 삶을 살아야했던 분들께 "당신들은 신성한 봉사를 한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이런 배경들로 인해 이 책을 무척 까칠한 자세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나라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는데, 샤덴프로이데와 비슷한 상태다. 

이 책은 타인의 불행, 고통, 실패, 패배, 심지어 죽음에 이르는 것들을 접했을 때 느끼는 즐거움, 통쾌함, 기쁨들에 숨겨진 인간의 심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기와 질투에서부터 유대인 대학살에 이르는 그 성질도, 결과도 다른 많은 일들의 뒤에 숨겨진 심리가 바로 샤덴프로이데, 쌤통 심리라고 말한다. 몇 번인가 부정해보려고 했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내 안에도 그런 감정들, 심리들이 얼마간은 담겨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틈만 보이면 시비를 걸어보겠다는 까칠한 마음으로 읽어나갔기에 평소에는 보고 지나쳤을 이야기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모순되게도 가장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된 것은 '쌤통 심리'라고 적은 제목이었다. 쌤통이라고 하면 너무 가벼운 느낌이라 이 책 속의 내용들이 사람들에게 지극히 자연스럽고 사소한 것으로 비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이렇게 가벼운 것처럼 들리는 표현 속에 얼마나 심각하고 지독한 악감정이 숨겨져있는지 일깨우는 역설적인 깨달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사뿐히 즈려밟고'라는 표현처럼 어울리지 않는 표현과 의미를 함께 담아냄으로써 경계심을 높이고, 더욱 조심하게 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아니다, 사실 그렇게까지 생각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그 정도까지 생각할 수 있다면 샤덴프로이데의 기쁨이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남아 있을 리가 없었을 거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표면적인 행간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안의 괴로움과 고통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쓰게 되는 변화가 일어났으면 하고 말이다. 


 이 책에는 가벼운 쌤통 심리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악의적인 심리까지의 다양한 심리가 '샤덴프로이데'라는 단어로 묶여 있다. 권선징악의 개념에서 악인이 망하거나, 처벌받거나, 다치거나 하는 것은 통쾌할 수 있다. 하지만 선의의 경쟁자의 불행까지 기뻐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그것은 어쩐지 슬픈 일이다. 


어수선한 글을 정리하면 이렇다.


 쌤통 심리라는 표현은 어쩐지 자업자득을 의미하는 것 같고, 가볍게 느껴진다. 누구나 그럴 수 있을 것 같고, 그렇다고 해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이해해야 할 것만 같은 거다. 하지만 쌤통 심리 혹은 질투는 때로 치명적인 상처 혹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의 원인이 될 수도 있음을 저자는 경고한다. 그처럼 가볍고 사소하게 느껴졌던 쌤통의 심리가 어떤 상황에서는 최악이자 절망의 심리로 둔갑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질투할 수 있다. 경쟁 관계에 있는 혹은 어쩐지 미운 상대의 불행을 바랄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마음을 먹었던 것을 후회하고, 상대의 불행을 두고 기뻐했던 마음을 부끄럽게 느끼는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은 타인의 고통, 실패, 아픔을 보며 즐거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설사 인간의 본성이라고 해도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로 잡고, 돌이키려 애쓰는 것이 인간이라는 거다. 

 인간에게는 샤덴프로이데의 심리도 있지만 동시에 황금률 혹은 은률 또한 존재한다. 

자신이 당하고 싶지 않은 것을 타인에게 행하지 않고, 자신이 받고자 하는 것을 타인에게 줄 수도 있다는 거다.


 저자의 의도는 모르겠다. 왜 이런 연구를 했는지, 무엇을 바라는지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한 가지는 단지 타인의 고통을 즐겨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쓴 것은 아니라는 거다. 인간의 악함을 드러내어 선함을 일깨우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이번에는 까칠하게 읽느라 마음 놓고 읽지 못했지만 다음에는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저자의 이야기를 다시 만나보고 싶다. 

어쩌면 그 까칠했던 마음 역시 쌤통의 심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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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02-19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바구니에 최근에 담았는데 말씀대로 원제와 번역 제목이 달라서 쌤통과 pain(고통)은 어감부터 다르니까 햇갈려서 구입을 망설이고 있어요 ^^

대장물방울 2016-02-19 11:39   좋아요 1 | URL
쌤통부터 고통까지 포괄적인 주제와 소재가 담겨 있어요. 뭉뚱그려서 읽으면 이 책의 가치는 상당부분 평가절하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경우에는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을 살피는데 쓰려는 생각의 단서라고 생각하고 읽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