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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반양장) -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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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갖는 의미 가운데 가장 커다란 것은 '경제학'을 아는 것으로 경제학 속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게 한다는 거다. 경제학 속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의 다른 의미는 경제와 내가 결코 별개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이 책으로 경제학을 '공부'해야 하느냐? 그건 그렇지 않다.
읽다보면 기억나는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잊어버리게 될 것이고, 또 어떤 내용들은 처음 읽을 때부터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 속에는 우리가 '외워야할 것'은 하나도 없다. 많은 것을 기억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 책의 목적은 처음부터 '학습'이 아니라 '교양'에 가깝다. 그렇기에 끙끙거리며 이해하기 복잡한 내용들까지 짚어보느라 씨름할 필요는 없다는 거다. 물론 학습하는데 쓸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저자가 서문에 적은 것처럼 「특정 경제 상황과 특정 도덕적 가치 및 정치적 목표하에서는 어떤 경제학적 시각이 가장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지 판단할 수 있는 비판적 시각을 갖출 수 있도록 경제학을 배우는 일_본문 15쪽」에 초점을 두고 읽어보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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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스스로 적어둔 이 책을 읽는 법이다. 이 읽는 법에서 눈에 띄는 건 '에필로그' 혹은 '맺는말'을 여러 번 언급했다는 거다. 그렇다면 맺는 말에 무엇을 적었기에 읽어보라고 하는 걸까?
에필로그에서 가장 중요해 보이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전문 경제학자가 아닌 사람들도 주요 경제학 이론에 관한 약간의 지식과 어떤 문제의 배후에 깔린 정치적, 윤리적 가정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만 있으면 경제 문제에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어떨 때는 그들의 판단이 전문 경제학자들의 판단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 비전문가의 판단은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고, 특정 좁은 영역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는 전문 경제학자들에게만 맡겨 두기에는 너무 중요한 문제이다._본문 441쪽」
결국, 경제가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전문가'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는 거다. 그들이 항상 옳은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라는 전제는 아주 기본적인 것인데다 그들이 '종종' 틀리거나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는 말도 거침 없이 풀어 놓는다. 서문과 맺는말을 통해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경제학이 결코 일부 사람들의 영역이 아니라 경제 생활을 하는 모두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볼 수도 있고, 나름의 판단을 해볼 수도 있는 거다.
개개인은 경제학에서 여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중요한 존재다. 경제학이 개개인의 가치판단과 성향, 욕구 등을 '무시'한 가정들 속에서 '과학'을 내세우며 그 완전무결성을 주장한다고 해서 거기에 동조하거나 동의하거나 혹은 외면할 필요가 없다. 경제는 이미 생활이자 삶의 일부로 우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다르게 말하면 이 책의 목적은 경제학이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더라도 우리 삶과 별개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시키려는 것이다. 왜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내전이 우리 경제를 위협할 수 있게 되는지, 그 위협이 실제인지, 실제라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나름의 판단을 내려볼 수 있도록 하나의 시각을 갖게 해준다는 거다.
이 책이 담고 있는 것은 사실 방대하다. 경제학의 의미에서 시작해 자본주의의 역사를 훑어, 다양한 경제학파들을 소개하고 비교한 후 경제학 속으로 들어와서는 생산과 금융, 불평등과 빈곤, 일과 실업, 경제학 속의 정부의 의미와 역할, 세계화까지 두루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내용이 이 한 권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게 오히려 믿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 책의 목적이 경제학을 설명하고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중심을 이어 하나의 시각으로 끝맺으려는 시도가 가장 중요하기에 온갖 용어와 복잡한 이론들에 대한 설명이 없이도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던 거다. 덕분에 생긴 이점이 하나 더 있는데, '딱딱하지 않다'는 거다. 본문 곳곳에서 저자의 유머 감각이 엿보이는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이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된다. '비아냥거리지 않으면서 비판하기'랄까?
경제학이 단순히 돈을 벌고 쓰는 문제처럼 보였다. 그 규모와 방법만 변할 뿐 결국 뻔하다고 생각했던 거다. 하지만 경제학의 본래 이름은 '정치 경제학'이다. 경제학과 정치가 언뜻 보기에는 물과 기름 같지만 사실은 칵테일처럼 균일하게 섞여 전혀 새로운 것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나 자신이 얼마나 무지했는가 하면 몇 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의미와 과정과 결과를 이제서야 알게 됐을 정도다. 경제학이 정치와 같건 다르건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으로 가깝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것처럼 이제는 누구나 경제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나 자신의 의견이나 견해가 경제의 흐름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할지라도 나름의 시각으로 보고 판단하고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경제학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휴가철이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휴가를 보내든 우리 모두는 경제의 '주체'다. 결코 수동적인 '객체'가 아닌 거다. 그렇기에 떳떳하고 당당하게 우리 모두 경제학 하자.
왠지 캠페인 같아지고 말았지만, 저자가 '로레알 법칙'이라고 부른다는 "난 소중하니까"의 법칙이 떠올라서 적어봤다.
(로레알 법칙이라니, 샴푸 광고가 떠올라 살짝 웃었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