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로 가는 길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arte(아르테)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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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진정으로 해야 하는 일은 오직 하나,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이었다."_데미안(을유문화사)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진정으로 해야 하는 일'은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의 제목은 <헤세로 가는 길>이지만 결국은 자신에게 가는 길이 될 게 분명하다. 

작가 정여울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길을 이야기한다. 단지 그 소재가 정여울 자신이 무척 좋아하는 작가인 헤르만 헤세가 태어난 고향 칼프와 죽기까지 머물렀던 죽음의 고향 몬타뇰라일 뿐인 거다.

 정여울이 들려주는 헤르만 헤세의 이야기도 역시 마찬가지다. 헤세는 누구의 길이 되려고도, 누구에게 길을 가르쳐 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려고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럴수도 없다. 만약 그가 그렇게 했다고 느낀다면, 그건 헤세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 그 독자가 스스로의 길로 나아갔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정확할 거란 이야기다.


헤세를 처음 만난 건 고 1 혹은 고 2 때였다. 그때 읽은 작품이 <데미안>이다. 그리고 종종 이야기하는 것처럼 나 역시 '카인의 증표'를 가진 존재라고 믿었었다. 물론 이 이야기를 다른 아이들에게 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관심사도 아닐 뿐더러, 카인은 박해받는 자의 상징이다. 

더 나빠질 것이 있다고 믿지는 않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통해 더 좋아질 것도 없었기에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던 거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흔히 '중 2병'이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단순히 생각하면 '카인의 증표'를 갖고 있다고 믿었다는 이야기에 대한 반응으로 '중 2병' 운운 하는 것 역시 일종의 박해다. 

 "너는 우리와 다르다."는 선언을 돌려서 말하는 셈인 거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첫 번째는 헤세의 고향인 칼프로 떠난 여행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담았다.

두 번째는 헤세의 대표작 몇 가지에 대한 작가의 해석과 이야기를 적었다. 

세 번째는 헤세가 독일을 떠나 죽기까지 살았던 스위스의 몬타뇰라의 이야기다.

여행 에세이와 서평의 균형을 잘 맞춘 것으로 보인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은 이 책을 읽고 독일의 칼프 혹은 스위스의 몬타뇰라로 떠나고 싶어질 거고, 책을 좋아하는 이 혹은 헤세에 관심이 있던 이들은 헤세의 전작에 욕심을 내게 될 거다. 어느 쪽으로든 그 결말은 각자가 택한 길로 나아가게 되어있다.


물어볼 것도 없이 후자 쪽에 욕심이 솟았다. 생긴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더 격렬한 욕구에 가까웠기에 솟았다고 적는 게 옳다.


누구나 자기의 읽는 방식이 있겠으나 나란 사람은 스스로도 감상을 적는 주제에 다른 사람의 감상을 읽는 것을 불편해 하는 경향이 있다. 모든 책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의 감상에 느끼는 것도 아니지만 일단 좋아하는 작가나 읽고 싶은 책에 대해 '서평가'들이 쓴 것은 어쩐지 읽기가 불편해지고 마는 거다.

이 책의 두 번째 부분에서 마주한 정여울 작가의 책 이야기 역시 어느 정도는 그랬다. 그나마 <마음의 서재>를 즐겁게 읽은 기억이 있어 거부감은 없었지만, 작가가 들려주는 헤세 이야기에서 상당 부분이 심리학자 융에서 시작한다는 게 어느 정도의 아쉬움을 남겼다. 융이 프로이트보다는 거부감이 덜하다고 해도 결국은 인간의 심리를 규격화 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한 바가 있기에 그 틀 안에서 헤세를 해석할 수 있게 된다는 게 못내 아쉬웠던 거다.

개인적 취향의 문제니 조금쯤 아쉬움을 털어 놓아도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책의 이야기는 먼저 적었던 '밑줄 긋기'에서 거의 늘어 놓은 것 같기에 여기서는 한 부분만 발췌해서 몇 마디 보태기만 해야겠다.


 76쪽

대부분 인간은 바람에 이리저리 날려 춤추고 방황하고 비틀거리며 땅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살아간다고. 하지만 별을 닮은 인간도 있다고. 별을 닮은 인간은 확고하게 자신의 궤도를 걷는다고. 어떠한 강풍도 별을 닮은 인간을 날려버릴 수는 없다고. 자신의 내부에 자기의 법칙과 자기의 궤도를 지니고 있는 사람, 그가 바로 별을 닮은 인간이다.

 


인간의 행위 중 가장 혼란스러운 상태의 하나인 전쟁에서 독일 청년들이 손에 들고 전장으로 향했던 책이 <데미안>이라고 한다. 별을 닮은 인간으로, 진정한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평생을 보낸 작가의 작품이 시대와 이념의 강풍인 전쟁 속에서 유난히 빛났다는 것은 참으로 묘한 일이다. 어쩌면 청년들은 헤세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이해하고 납득하고 받아들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믿든 생각을 하든, 그들이 늘 원하는 것은 자기네가 준비되어 있고, 자기네가 필요한 존재이며, 자기네로부터 미래가 형성되리라는 사실이었다."_데미안/을유문화사


자신의 삶이 이어지건 끝장나건 관계 없이, 오직 '자기네로부터 미래가 형성되리라는 사실'이 전쟁의 광기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그들의 최후의 보루는 아니었을까? 모두가 '별을 닮은 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해도 별똥별처럼 한 순간 격렬하게 타오르고자 하는 욕망을 실현하는 것이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 같은 삶보다 낫다고 믿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헤세로 가는 길>을 읽으면서 정작 내내 생각한 것은 '내가 가려는 길'에 대한 것 뿐이었다. 아마 그런 이유에서 이 책 속 이야기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으로 '별을 닮은 인간'을 옮겨 적게 됐을 거다. 인간이 모든 별의 궤도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별은 비틀거리는 것처럼, 방황하는 것처럼, 때로는 꺼졌다 다시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마 내 삶이 그런 비틀거림과 방황, 깜빡임을 계속하는 것도 내가 그런 삶을 구하고 나아가고 있기 때문일 거다.

 흔들리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이리 불거나 저리 불어대는 바람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내가 가야할 궤도 속에 있기 때문일 거다. 흔들림도 필요하고, 때로는 눈물도 흘리며, 방황하고, 대상도 없이 막연하지만 격한 분노를 터뜨리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역시 나에게는 이 길 뿐이다. 세상의 길이 아닌 나에게로 가는 길, 진정한 자신에 이르는 길을 끝까지 가고 싶다.


정여울 작가는 헤세의 탄생과 죽음의 땅 뿐 아니라 그의 작품 속 배경이 된 곳들도 들러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것도 자기의 길을 가는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미치도록 빠져있는 작가의 발자취를 좇으며 자신의 길로 이어진 골목을 찾는 일도 즐거운 일 일 거다. 


헤세를 좋아하는 사람, 정여울을 즐겨 읽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찾아가려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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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틈에 2015-05-22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별 다섯개!!! ㅋㅋㅋ

대장물방울 2015-05-22 23:13   좋아요 0 | URL
흐흣, 헤세에 대한 편애의 결과물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