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4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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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들들이 완성된 전집으로 새롭게 나온다고 했을 때, 그 반가움은 예상보다 더 컸다.

지금까지 띄엄띄엄 출간되는 여러 출판사의 출간 도서를 통해 만났기에 중구난방 식으로 소세키의 작품을 읽었던 불편과 막상 읽으려고 해도 마땅한 것을 찾지 못한 나의 우둔함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전집의 1차 라인업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태풍>, <풀베개>였다.

그 가운데 읽어 본 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뿐이었고, <도련님>도 읽고 싶었지만, 굳이 <태풍>을 선택한 데는 까닭이 있다.

나쓰메 소세키가 그 시대 일본, 그리고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던져줄 화두가 <태풍>처럼 불어닥치길 바라는 마음이었던 거다.

 내가 읽어온 소세키는 무력하면서 음울하다. 하지만 그 가운데 최소한의 어떤 시도를 담고 있다. 체념하고 있지만 아직 놓치기 싫은 바람을 읽을 수 있다.

 전개에 비하면 결말은 뭔가 지나치게 가벼운, 밀란 쿤데라의 작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처럼 이라는 제목처럼 그토록 심각하게 고민하던 등장인물들의 마지막 행보는 뭔가 알송달송하면서 가볍게 보여지는 것이다.

 아마 극적인 비장미 같은 것 없이 무덤덤하게 서술되는 탓이 클 것이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의 매력은 바로 그것이다. 극적이지도, 비장하지도 않지만 마음에 묵직하게 남는 여운을 갖고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 시대 많은 사람들이 공유했을 그들의 날 것으로서의 정서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제 <태풍>이야기를 시작해보자.

 

 태풍은 한 교사가 학교에서 쫓겨나기를 반복하다 교사를 그만두고 살기 시작한 도쿄에서의 이야기다. 이 교사는 그 시대 보통 사람들이 좇는 가치를 좇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미움의 원인이 되어 결국 실직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의 부인은 그런 그를 마땅찮아 하지만 그렇다고 악착같이 덤벼들지는 않는다. 다 남편의 됨됨이, 성품이 어떤지 잘 아는 탓이다.

 이 소설의 등장 인물은 열을 넘지 않는다.

선생 도야, 부인, 형, 예전 그를 학교에서 쫓아내는 데 기여한 대학 졸업자 다카야나기, 다카야나기의 친구 나카노 정도가 주로 등장할 뿐이다. 그런데 이 등장인물들의 저마다의 특징은 대단히 뚜렷하다. 보통 뚜렷하다 함은 주관이 강함을 말하는 것일텐데, 강한 주관에 비해 등장인물들 간의 갈등은 거의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그려진다. 읽게 된다면, 그 부분을 꼭 눈여겨 보시길 바란다.

 

도야 선생이 살아가는 시대는 이런 사람들로 넘쳐난다.

107쪽.

"좀 기묘하기도 하고 바보스럽기도 한 일이라 그런 일을 하는 데는 나 같은 사람이 아니어도 상관없겠지요. 인력거꾼이라도 고용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그 사내가 아닙니다, 인력거꾼은 신뢰를 주기 어려워 안 됩니다. 역시 수염이라도 기른 그럴싸한 사람에게 부탁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더군요."

"정말 예의라고는 없는 놈이로군요. 대체 뭐 하는 녀석입니까?"

"뭐 하는 녀석이냐니, 그냥 보통 사람입니다. 세상을 속이기 위해 사람들을 고용하려고 온 겁니다. 무사태평한 사람이지요. 하하하."

 

세상을 속이기 위해 사람들을 고용하려는 사람을 두고 '무사태평한 사람'이라 하는 말도, 그런 사람들이 '그냥 보통 사람'이라는 말도, 앞서 '인력거꾼은 신뢰를 주기 어려워'라는 말도 참 가볍게 말하는 듯 보이지만 가벼운 말 같이 보이지 않는다.

 "이 시대가 이토록 한탄스런 모양을 하고 있다."는 비아냥거림처럼 읽히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126쪽.

도야 선생이 바라보는 세상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세상이다. 다카야나기 군이 바라보는 세상은 자신을 위한 세상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세상이기 때문에 자신을 보살펴주는 사람이 없어도 원한을 갖지 않는다. 자신을 위한 세상이기 때문에 자신을 개의치 않는 세상을 잔혹하다고 생각한다.

 

 도야 선생과 다카야나기 군은 작품 속에서 대단히 유사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두 사람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상반되게 비춰진다.

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세상'이라고 여기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을 위한 세상'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도야 선생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세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세상이 자신에게 무심하고, 가혹하게 굴어도 그러려니 하며 나름의 극복을 꾀한다. 하지만 다카야나기 군은 세상에 야속함을 느끼고, 야박하다 느끼고 너무하다 느끼는 마음이 커서 극복하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유의해야 하는 이유도 이런 것이 아닐까?

세상은 늘 우리를 동일하게 대한다. 세상은 내게 원한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럴 수도, 그럴 리도 없다. 그 원한은 언제나 내가 세상에 품는 것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시선을 늘 점검해야만 한다.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와 할 수 없는 것을 가르는 것이다.

 

 139쪽.

 게이샤나 인력거꾼이 이해할 만한 인격이라면 틀림없이 수준이 낮을 겁니다. 게이샤나 인력거꾼이 자신과 동등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버리기 때문에 상대가 자신을 업신여길 때 화가 치민다거나 번민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과 동등하다면 창작을 해봤자 역시 동등한 창작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들과 동등하지 않기 때문에 훌륭한 인격을 발휘한 작품도 나옵니다.

 

 타인이 나를 모욕하거나 업신 여길 때 화가 치민다거나 번민하는 것은 그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나를 싫어해서라고 생각하는 일이 잦다. 하지만 도야 선생은 그런 상황을 달리 보라고 말한다. 그들과 동등한 사람이 아니기에, 그들보다 인격의 수준이 높기에 그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런 높은 인격 수준에 이른 사람의 창작만이 훌륭한 인격을 발휘한 작품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이 내놓는 기준에 연연하는 일이 적지 않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마치 하늘을 날 수 있는 새가 스스로 날개를 꺾고 땅 위를 기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짧은 생각에서 벌어지는 '실수'나 다름 없다.

 더 높은 인격, 더 훌륭한 창작을 우리는 소유하고 만들어 낼 수 있다.

 

166쪽.

"스스로는 자신이 아주 훌륭한 줄 알고 있지요."

"하하하. 훌륭한 줄 안다니. 아무리 혼자서 뛰어나다고 해봤자 다른 사람이 상대해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지요."

 

 과연 그럴까 싶은 생각이 든다.

스스로 훌륭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고 그것을 알고, 또 확신한다면 다른 사람이 상대해주지 않아도 상관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도야 선생의 태도는 그야말로 이런 생각의 첨단에 있다. 타인이야 어찌되었든,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고집이 그의 태도에서 엿보이는 거다.

 타인이 제시하는 기준, 타인이 들이대는 잣대대로 재단되지 않는 훌륭함, 그 흔들리지 않는 고집이야 말로 유일한 가치가 아닐까.

지금은 빛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 그 가치는 빛나게 될 것이라는 거다.

 

 이 작품의 결말은 스스로 읽고 판단해야 할 것 같다.

누구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스스로의 결심, 혹은 타인의 도움을 받은 결과로 삶은 일순 변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변화일까?

 살아가는 동안 사람들은 자신만의 '그 무엇' 혹은 '어떤 것'을 남기고자 한다. 그것이 때로는 부일 수 있고, 명예나, 영광일 수 있다.

지금까지의 삶 속에서 만난 사람 가운데 자신과 닮았다고 느껴진 사람은 없었는가?

자신과 비슷하다고 믿었던 사람이 자신과 상반된 태도를 갖고 있는 것에 놀라 본 일은 없는가?

 

 내년 초쯤에 이 작품을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

도야 선생의 삶은 나를 매료시키는 향기를 품고 있다. 물론, 꼬장꼬장하고, 꼬질꼬질하기까지 한 그 삶의 꼬랑내도 날테지만,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자신을 대하는 태도는 부정할 수 없는 향을 풍긴다. 그것은 자신감이기도 하고, 고집이기도 하면서, 확신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보다 해야만 하는 일을 하며, 생계와 미래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지금이다.

부가 늘어났으니 더 행복해야 하지만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과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이 늘어가는 오늘이다.

 

 이 작품의 제목이 왜 태풍인지는 아직 확신하기 어렵다.

하지만 태풍은 난폭하지만 그 태풍의 눈은 대단히 고요하다. 도야 선생의 주변은 늘 혼란으로 요동치지만 선생의 내면은 고요하기 그지 없다.

 사람은 확신을 갖고 살아야만 한다. 그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또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전집 - 소세키의 고양이들 - 대장물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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