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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독서뿐 - 허균에서 홍길주까지 옛사람 9인의 핵심 독서 전략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3년 6월
평점 :
어려서부터 유난히 부끄러운 것이 많았다.
이 '부끄러움'은 창피함을 느끼거나 타인의 앞에 나서는 재주가 부족함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지금은 그 의미에 상당한 변화가 생겼다.
시골 출신이기에 늘 들일하시는 부모님을 보며 자랐다.
시골의 일이란 건 장마와 겨울을 빼면 언제가 시작이고, 어느 때가 끝이라는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바쁘면 며칠 밤이라도 새야 하고, 한가하면 몇 날이라도 늘어지게 쉴 수 있는 것이 시골 일인 거다.
부모님은 일 벌레였다.
그런 점은 아버지가 환갑을 훌쩍 넘기고, 어머니가 환갑에 가까워진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좀처럼 변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젊어서부터 몸에 밴 습관의 영향이 가장 크다. 부모님께서는 늘 "그렇게 해왔다"는 말로 지금은 '무리'에 가까워진 일들을 매년 해치워야 하는 이유로 삼는다. 지켜보는 자식으로서 마음이 편할 리 없지만, 그 고집을 꺾을 수도 없으니 그저 바라볼 뿐이다.
어릴 때부터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상황에서 돕지 않으면 그것이 참 부끄러웠다.
조금 자라서는 새벽같이 일어나시는 부모님을 두고 늦잠 자는 게 부끄러워 늦잠을 자지 않게 됐다.
컨닝하려는 마음을 먹는 것조차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할 것이 늘 부끄러웠다.
"다들 그렇게 한다"는 말을 듣는 것이 부끄러워 늘 "별난 놈", "까다로운 놈" 소리를 기꺼이 들었다.
착한 사람일지는 몰라도 좋은 사람은 못 된다는 사실을 언제부턴가 깨달았다. 그래서 착하기만 한 사람인 것조차 부끄러울 때가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부끄러운 이야기를 주루룩 늘어놓게 됐을까.
물론 이 책《오직 독서뿐》을 읽은 탓이다. 아니, 말을 바로 잡자면 읽은 '덕'이다.
2년 여 전, 느닷없이 닥친 구제역의 파동 속에서 세상의 '인식'에 혐오에 가까운 실망을 느꼈었다. 그래서 그 실망의 근원을 캐내려는 생각에 책을 파고들었다.
어디서 봤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책에 답이 있다"는 말을 본 기억이 있어 그 안에 들어있을 답을 찾으려는 시도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 된건지 독서는 지지부진했고, 몇 번이나 '실패'를 실감했다.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느낌이 늘 상한 음식을 삼키는 순간의 어렴풋한 불쾌함처럼 책을 덮는 순간에 들이닥쳤다.
"낫지는 않아도 나아지기는 한다"(그냥 내가 만든 말이다)고 한 권의 책에서 '단 하나라도 발견하기'를 구하고, 조금씩이라도 '실천하기'를 2년 정도 했더니 이제 제법 폼이 잡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럴즈음 찾아온 책이 바로 《오직 독서뿐》이다.
그리고 여지없이 정신이 번쩍나게 하는 찬 소리를 내쏟아 부었다.
더운 날에 더 차게 느껴지는 찬물처럼, 뇌리를 후려치듯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책을 읽으며 느꼈던 것, 생각했던 것, 지금 한계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사유로 책 한 권이 뿌듯이 채워져있었다.
배움과 독서, 실천에 이르기까지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엄했던 분들의 이야기 앞에 어떻게 자만하고 앉아 있을 수 있을까.
그저 책 몇 권 읽으면서 우쭐해했던 내가 부끄러울 뿐이었다.
"책을 읽는다"는 핑계로 일을 미루고, "일을 한다"는 이유로 책 읽기를 미뤄왔던 날들의 기억이 적나라하게 떠올랐다.
왜 잊히지도 않고 떠올랐을까.
책은 "책을 읽는 까닭"으로 시작해서 "책은 마음을 지켜준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연다.
책이 마음을 지켜준다는 말은 옳으나 그 지키는 마음이 한 가지로 '좋은 마음'뿐이라고는 할 수 없다. 잘못 읽은 책은 그 반대의 마음까지도 지켜낸다. 그것을 경계할 수 있도록 하는 두루 살필 수 있는 통찰과 포용력을 길러주는 것이 진짜 독서가 아닐까.
어떤 장르의 책을 읽던 그것을 좋게 쓰는 사람이 있고, 나쁘게 쓰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책이 나쁘다기 보다 읽는 이가 어떻게 읽느냐로 그 책의 가치가 정해지는 일이 많지 않겠나.
'부분과 전체'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책은 마무리 된다.
흔히 '문일지십',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는 것을 미덕 혹은 뛰어남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옛 성현께서는 그러한 마음까지도 경계하라고 일렀다.
하나를 가지고 열을 판단하면 편협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편협해질 뿐 아니라 장님 넷이 저마다 코끼리를 만지며 누구는 기둥같다 하고 누구는 부채같다 하고 누구는 절구공이 같다하고 누구는 채편같다고 하는 모양이 되는 '착각의 늪'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독서란 시간이 남아 돌아 하는 것이 아니라, 굳이 시간을 내서,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면서 사실상 실천에 옮기는 건 한 달 삼십 날에 열흘이 못 됐다.
깊이 읽어야 할 책을 건성으로 읽어 넘기고는 다 읽었다 자만했던 일은 또 얼마나 숱하던가.
비록 이 책을 읽는 내내 부끄러움과 씨름했지만 책을 읽으며 마음 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기마다 내게 필요한 책이 찾아드는 것에 감사했고, 마음을 다잡는 계기로 삼을 수 있어 고맙기까지 했다.
지난 달 지키지 못한 약속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 책과 관련된 것만도 지금 생각나는 것만 세 가지가 넘는다.
올 해의 절반을 보낸 시점.
남은 한 해를 좀 더 뿌듯이 채워줄 훌륭한 부끄러움과 마주한 것이 반갑기까지 하다.
소크라테스는 스스로를 아테네의 등애로 칭했다.
나같은 사람에게는 이 정도가 딱이다.
마음과 몸을 좀 더 다잡아야겠다. 이런 저런 핑계를 가져다 대기 전에 스스로 부끄럽지 않도록 떳떳한 마음을 지니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