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보내지게 되는 데는 적지 않은 이유가 존재한다. 덧붙여 계기도, 모양도 제각각이다.
<파이 이야기>로 잘 알려진 캐나다의 유명 작가 ‘얀 마텔’은 어째서인지 캐나다의 수상인 ‘스티븐 하퍼’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보통의 편지와 얀 마텔의 편지가 다른 점은 단순히 안부를 묻거나 하는 식의 편지가 아니라 문학 작품을 소개하고, 권하는 글을 담았다는 것이다. 거기에 소개한 책을 동봉하는 방식은 뭔가 ‘의미심장’해 보이기까지 하다.
책을 읽으며 “이 책을 왜 쓴 걸까?”하는 물음을 던지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내가 사용한 방법은 책을 읽으며 작가의 ‘목적’을 찾아내는 탐구와 발견을 위한 책 읽기에 돌입하는 거였다. 그리고 마침내 몇 가지 ‘유력한 목적’을 찾아 낼 수 있었다. 오늘은 그 얘기나 해야겠다.
느닷없을지 모르지만 바로 첫 번째 이유를 풀어놓으련다.
얀 마텔은 스티븐 하퍼의 ‘재산 목록’이 궁금했고, 그 목록을 내보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캐나다 수상의 역량을, 그 잠재력을 보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국민들의 당연한 권리라고 하면서 말이다.
얀 마텔이 수상에게 내면의 ‘재산 목록’을 요구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국민들의 요구, 국민을 위한 정책, 얼마나 창의적이고 현실적이며, 이상적으로 정책을 세우고 실행할 능력이 있는지 신뢰할 만한 담보를 꺼내놓으라는 말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를 꾸짖으며 “나를 보고 네가 믿느냐!”했지만, 요즘 국가 원수들, 혹은 지도자들 가운데 전적으로 믿을 만한 이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보니 이지경이 된 거다.
두 번째 이유는 좀 순수한 걸로 골라봤다.
얀 마텔은 스티븐 하퍼 수상이 ‘문학을 읽기’를 바라고 있다. 그 바람을 이야기하면서 고양이를 언급하는데, 고양이의 아홉 목숨이 부럽다고 말하면서 왜 책 한 권을 읽음으로써 누릴 수 있는 한 번의 삶을 외면하느냐고 한다. 고양이에 대한 부러움을 내려놓기에 필요한 책은 단 아홉 권뿐이라며 말이다.
지도자에게 다양한 삶에 대한 경험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당신이 생각하는 그거다.
“그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과 비슷한, 유사한 경험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단순한 이유 말이다. 국민이 원하는 정책, 진정 바라는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을 담은 이야기를 읽고 느끼라는 이야기인 거다.
세 번째 이유는 다른 의미로 순수하다.
얀 마텔은 스티븐 하퍼 수상이라는 확실한 ‘소재’를 가지고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 확실한 ‘한 권의 책’을 완성하고자 했다. (이 의혹이 억울하면, 얀 마텔씨는 내게 편지를 보내 항의 혹은 해명해도 무관하다.)그 이유를 얀 마텔은 이렇게 설명한다. 모든 이야기를 후대에 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책으로 출판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자신과 수상 둘만의 북클럽 이야기가 책으로 나와야 한다고 말이다. 처음 편지를 보낼 때부터 사본을 보관하고 원본을 보낸 것과 두 번 이상 자신이 보낸 편지가 책으로 출간되어야 하는 필연성이나, 중간에 출간된 책의 홍보를 겸한 편지를 담은 것도 의혹을 더한다. 얀 마텔은 제법 똑똑하다.
네 번째 이유는 좀 더 얀 마텔 본연의 욕구에 밀착되어 있다.
바로 자신이 지닌 영향력을 확인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얀 마텔은 편지에서 자신이 지니고 있는 정부 정책에 대한 견해나 소신을 피력하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식의 이야기 전개가 잦다. 그리고 실제로 영향을 끼쳤음을 확신시켜주는 답장을 받기도 한다.
다섯 번째 이유는 다시 좀 더 공익적인 관점에 있다.
국민의 요구와 바람을 직접 수상에게 전달하려는 노력이 바로 그것이다. 구중궁궐이라 불릴 만큼 폐쇄적이었던 조선 시대와 달리 인터넷이나 스마트 기기들이 발달한 현대에 정보가 부족해 소통의 단절이 생길 리 없지만 그럼에도 주변의 다른 소리에 묻혀 국민의 바른 소리가 들어가지 못할 수 있다는 노파심에 편지를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여섯 번째 이유는 모범을 보이고자 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데 머뭇거림이나 망설임이 없는 작가나 연예인이 존재한다. 하지만 보통은 감정적인 처사를 하는 통에 서로 간에 싸움이 불거지기 일쑤다. 참 못난 꼴 많이 봤다. 그런 정치에 영향력을 끼치려는 인사들을 ‘소셜테이너’라고 하는데, 얀 마텔은 소셜테이너의 바람직한 표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일곱 번째는 다시 조금 소심하게 돌아온다.
얀 마텔은 수상에게 문학을 권한다며 책과 편지를 보냈지만 사실은 그것을 공개함으로써 국민들이 책과 문학, 독서에 관심을 갖도록 하고 싶었던 것일 거다. 위에 책으로 내야한다고 한 말에는 내가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국민들이 더 널리 책을 읽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많이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여덟 번째는 자신이 각각의 유명 문학 작품에 갖고 있는 견해를 피력하고자 하는 의도다.
만인만색, 한 권의 책을 같이 읽었다고 그 감상이 하나같을 수는 없다. 당연히 서로 다른 경험을 갖고 있는 이들끼리 다른 결론에 가 닿게 되는 것이다. 얀 마텔은 자신의 견해를 공개함으로써 자신의 결론이 절대적이었다고 판단하고 있을지 모를 편협한 독자들에게 생각의 여지를 제공하고자 했을 것이다.
아홉 번째는 오프라인 서점, 중고 서점이 사라져가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중고 서점에서 발견한 책의 가치에 대해 설명한다. 단순히 텍스트에 가치를 두는 것이 아닌, 그 책이 담고 있는 본래의 텍스트 외의 스토리야 말로 진정 책을 가치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출판계 역시 거대 서점과, 온라인 서점이 점점 더 많은 시장을 차지함으로써 오프라인의 중소 규모 서점과 중고 서점이 외면당하는 상황에 처해있어 남 이야기 같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열 번째는 얀 마텔이 문학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는 읽기 위해 읽지 않고, 쓰기 위해 읽지도 않는다. 어떤 작품은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으면서도 필요에 의해 읽고, 전혀 무관한 작품이라 해도 좋아서 읽는다. 그는 그저 문학에 심취한 한 사람의 독자로서의 애착이 담긴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얀 마텔의 인상은 개구지면서, 어딘가 날카로워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대통령이나 정책 핵심인사들의 ‘독서지도’를 그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얀 마텔의 말처럼 우리 국민들은 우리를 대신해 우리 살림을 책임지고 있고, 나라를 대표하는 인사들의 ‘재산 목록 공개’를 요구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성추행 사건을 저지른 전 대변인과 같은 인물의 독서지도는 형편없을 것이 분명하다. 만약 그의 독서지도가 훌륭함에도 이번과 같은 일을 저질렀다면 어디 컨설턴트에게 컨설팅 받아 아웃소싱을 통해 대외 홍보용으로 작성한 겉치레에 불과할 것이란 걸 확신할 수 있다.
나는 정치적으로든 문학적으로든 거의 영향력이 없는 그저 한 사람의 독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 역시 그들에게 문학을 권한다. 무얼 읽어도 좋다. 그러니 제발 읽기부터 하길. 그러고 나서도 지금 같다면 “어쩔 수 없는 구제불능”이라며 기꺼이 포기해 줄 테니 말이다.
그러나저러나 이 글을 읽은 당신부터 문학의 재흥을 위해 "문학을 읽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