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캐럴: 유령이야기 - 한글판 + 영문판 (오리지널 스크립트 수록) 한정 판매 세계문학의 숲 28
찰스 디킨스 지음, 정은미 옮김 / 시공사 / 201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 읽어도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책이 있다.

연말 연초에 읽으면, 그 따뜻함이 새삼스럽게 여겨질만큼 흔하지만 소중한 깨달음을 안기기도 한다. 늘 보아오던 노커가 오래 전 세상을 떠난 동업자 '말리'의 모습과 겹쳐보이는 것으로 시작하는 크리스마스 정령과 스크루지의 만남 이야기처럼 낯익지만, 생각해보면 자세히 알지 못하고 있는 그런 깨달음들 말이다.

 

괜스레 바쁜 마음으로 연말을 보내고, 새해가 시작되고 한 주가 더 지나서야 읽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슬쩍 들춰보고, "아~ 크리스마스캐럴이 스크루지 이야기였구나!"하는 오랜 기억을 더듬는 일 정도를 했을 뿐이다.

 

스크루지가 먼저 세상을 떠난 동업자의 영혼과 만나고, 어떤 정령들과의 만남을 통해 개심한다는 사실은 기억해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정령들이었는지, 어떤 모습을 하고 있고, 스크루지에게 어떤 일을 경험하게 하는지는 잊고 있었다.

익숙하기에 오히려 쉽게 잊혀지는 일상의 동반자의 존재처럼, 익숙하고 낯익은 이야기이기에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내가 '기억'하고 '망각'한 것처럼, 스크루지는 많은 것을 잊고 있었다. 잊혀진 것 중에는 스크루지가 한 때 정말 소중히 여겼던 것도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가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는 소중한 것은 없나?', '지금이라도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물음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현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색하지만 철저하게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의 사용을 피할 수 없고 피해서도 안되며, 마음을 놓고 있다가는 언제 내 코가 베일지, 귀가 떼일지 모를 일이니 조심해야 한다는 걸 늘 되새겨야 하지 않던가?'

뭔가 개운치 않았을 스크루지의 마음처럼, 짓눈개비 날리듯 온통 흐릿해지고 혼란스러워지는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이런 물음들을 떠나, 한 걸음 물러난 자리에서 스크루지의 이야기를 '들여다 보았을 때', 스크루지는 단지 동정 받아야 하는 가엾은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우리가 동정받아야 할 불쌍한 존재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고 단순한 것이었다.

'사람'

어쩜, 스크루지는 그를 소중히 여기고, 진심으로 사랑하고 걱정해주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가 돌아봤을 때 언제든 팔 벌려 환영하고 끌어안아 줄 존재들이 곁에 있었던 거다. 그런 스크루지에게 몹시 질투가 났다.

 

언제나 사람이 답이고, 사람이 구원이다. 반대로 사람을 절망시키고 좌절 시킬 수 있는 존재도 오로지 사람 뿐이라지 않던가.

가족은 가까운 사람, 또 언제나 함께 해주는 사람, 그래서 오히려 더 냉담하고 차갑게 대할 때가 많고, 사랑이 담긴 말, 애정어린 말보다 화풀이 상대로 삼는 일이 더 많은 사람들.

오랜 친구, 나를 알아주는 친구와 좋은 일, 기쁜 일,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일보다 오늘 일하다 받은 스트레스를 풀며, 다른 사람의 흉을 보고, 무료함의 해소를 위한 만남을 계속하면서 가끔 거절 당할 때면 원망하고는 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생각해보면 스크루지보다 못하면 못했지 나을 것이 하나도 없어지는 것 같다. 스크루지는 나를 작게 만들었다. 나를 작게 만들어서 이야기를 작은 부분부터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내가 잊고 있는 것, 잃어버린 것을 떠올릴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 스크루지에게, 그의 동업자와 정령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거기다 스크루지는 너무나 순수하다. 동업자의 이야기, 세 정령과의 동행을 통해 하룻밤 만에 개심을 이루고 곧바로 실천에 옮기는 실천력도 가지고 있다. 나는 얼마나 순수한가? 깨달음을 얼마나 행동으로 옮기고 있나? 나를 바꿀 용기, 달라진 나를 타인 앞에 내놓을 용기를 가지고 있나? 인색하기로 소문난 구두쇠 스크루지만큼도 못되는 사람으로 살지는 않았던가.

 

잊었던 이야기를 되새기고, 솔직함과 순수함을 배우고, 용기를 닮기를 새해의 목표로 삼아야 하지는 않을까?

다음에 이 이야기를 다시 읽을 때,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과 그 때에는 또 다른 꿈, 잊고 있던 순수함, 그리고 어쩌면 다시 잃어버렸을지 모를 용기를 되살릴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나길 바란다는 말로 난잡한 감상을 마무리 짓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