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은 다른 곳에 - 교양선집 16
밀란 쿤데라 지음, 안정효 옮김 / 까치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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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시점에 더해 이 이야기를 쓰는데 쓰여진 시점을 '전지적 전망대 시점'이라고 이름 짓고 싶다.

 뭐 별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야기의 흐름이 마치 가상의 전망대에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등장 인물들의 마음까지 꿰뚫어 볼 수 있는 망원경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일 뿐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시인' 야로밀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그의 탄생에서부터 그의 죽음까지의 시간동안 그가 느낀 불안, 의심, 혼란, 갈망, 온갖 절망까지를 담고 있다.

 

야로밀은 현실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가 현실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삶은 '참된 삶'이었을까?

 이야기 속에서 그는 여러 인물들의 삶을 상상한다.

 그리고 어느 삶이 그의 참된 삶이었는지 나 역시 알지 못한다.

 

야로밀, 그는 죽는다. 스무살도 되지 못한 나이에. 그것도 병으로.

 병? 이라고 해도 좋을까? 그 죽음은 이미 그의 상상 속에서 완성되어 있었다.

 최후의 배신까지도 그의 삶은 예비하고 있었다.

 

그는 추하고 나약한 삶을 살았다.

 난 그에게 동조하고, 그를 동정하고, 그와 동일하다.

 

그의 망설임과 고뇌의 단면은 나의 망설임과 고뇌의 단면과 닮아있다. 

 나약함, 두려움, 갈망, 포기, 좌절, 절망, 사랑.

 

그는 불 같은 죽음을 원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는 물로 죽는다.

 물? 나르시스.

 

 

감상을 적기까지 조금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깨달은 것은 결국 내 생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내 삶이 나의 '참된 삶', 한번 뿐인 내 삶이다.

 우리 삶은 액자너머로 시선을 뻗어 들여다보듯이 밝게 드러나 보이는 것이 아니다.

 

삶에서 두려움과 불안은 결국 평생 함께해야만 하는 동반자다.

 경험하지 못했던 낯섦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 믿었던 것의 돌연한 배신, 사랑하는 이에 대한 집착.

 그 모든 것이 생의 조각 조각들이 두려움과 불안을 품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동시에 희망과 기쁨도 품고 있다.

 전망대 위에 있다고 생각하자.

 당신에겐  어떤 한편의 감정을 바라볼 수 있는 선택의 기회가 있다.

 그렇다면 역시 기쁨과 희망을 택할 때다.

 

우리 삶은 끝없이 분열한다.

 분열하고 분열하다 어느 순간 어떤 것이 정말 바람직한 삶이었을까하는 회의와 맞닥드리고 마는 것이다.

 흔히 찾아오지만 늘 버겁고 힘겨운 그 순간을 우리는 위기라고 부른다.

 

평형우주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수 없이 많은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내 삶은 달라질까?

 꿈에서 깨어라.

 지금의 삶이 최선의 삶이고, 최고의 삶이며, 유일한 현실이다.

 

우리는 전망대의 망원경을 돌리듯 삶의 다른 시간을 살필 수 없다.

 혹은 액자 너머, 창문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듯 음미할 수도 없다.

 

초 현실이 어떤지, 상상 속의 다른 삶이 어떤지 난 모른다.

 단지 지금 내 삶을, 이 곳에 있는 내 생을 그저 놓치지 않게 꼭 쥐고 있을 뿐이다.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를 적을 생각이었을리가 없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을 어쩔 수 없다.

 이런 것이 삶이다.

 이것이 내 삶이고 내 생이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적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어떻고 어머니가 어떻고 애인이 어떻고 질투가 어떻고 죽음이 어떻고 그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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