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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흑인과 훈장 ㅣ 창비세계문학 33
페르디낭 오요노 지음, 심재중 옮김 / 창비 / 2014년 7월
평점 :
전쟁 후 문학.
좀 더 자세히는 아프리카, 식민지 문학에 관심이 생겨서 몇 권 손에 잡히는 대로 읽고 있다.
알제리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어의 실종>에 이어 두 번째니 뭐 본격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새롭게 알게된 사실 하나는 카메룬 공식 언어가 프랑스 어라는 거다. 두 번째 언어는 영어. 토속어에 해당하는 270여 개의 언어가 있다는데, 젊은 층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거나 그들끼리의 소통에만 쓰고 있겠지.
언어를 잃어버린 셈이다.
본래의 문화, 얼마나 남아 있을까.
이렇게 추측하는 데에는 작품에 담긴 내용이 근거가 되었다. 제목 그대로 늙은 흑인 이야기다. 처음에 '훈장'을 완전히 잘못 이해해서 서당의 훈장인가 하고 생각하는 엉뚱한 짓을 해버렸다.
아프리카에도 훈장이 있나? 했으니.
결과적으로 이 훈장은 가슴에 다는, 공훈을 기념하는 뜻으로 수여하는 메달로 밝혀졌다.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메카라는 늙은 아프리카 인이 있다. 그의 집안은 아프리카 영주였으며, 넓은 토지도 갖고 있었다. 백인의 지배를 받으면서 함께 들어온 종교로 개종한 이 아프리카 인은 지금은 자신의 토지를 몽땅 교회에 기증한 후다(그 과정에서 강압성이 있었는지, 속임수는 없었는지 알 수 없다). 또한 그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는데 백인들의 전쟁에 나갔다가 모두 전사했다. 그러니까 이 흑인은 땅도, 자식도 모두 백인에게 빼앗기거나 내준 상태다.
부족 사이에서는 아직 어른으로서 존경받는 이 흑인에게 큰 일이 생긴다. 바로, 백인의 우두머리가 그에게 훈장을 수여하기 위해 그들이 사는 마을, 둠까지 찾아 온다는 거다.
부족, 친척, 인근의 부족들은 모두 기뻐하며 축하를 보낸다. 이제 비로소 백인과 친구가 될 사람이 자신들 안에 생겨나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때까지 백인은 흑인과 마주 하거나, 같은 자리에 앉거나, 대화 하거나, 함께 밥을 먹는 일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하게 했으나 이 훈장을 받기만 하면 그런 '금기'들로부터 자유로워질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 늙은 흑인은 완벽한 토착 아프리카 인이다. 백인들이 입는 갖춰진 옷이 아니라 걸핏 하면 엉덩이나 성기가 보이기 십상인 옷을 입고 다닌다. 신발은 물론 신지 않고 다닌다. 그랬던 흑인이지만 훈장을 받는 자리에서는 옷을 차려 입기로 한다. 가죽 구두도 신기 위해 애쓴다. 그에게는 옷도, 구두도 고통이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커다란.
훈장 하나를 받는 것 뿐인데 뭐 하나 간단하지가 않다. 땡볕 아래서 몇 시간이고 기다리게 하는가 하면, 훈장을 받았음에도 같은 잘에서 밥을 먹게 되지도 않는다.
그리고, 어떤 일들이 그와 그들에게 벌어진다.
식민지를 유지할 때 제국주의 국가들은 두 가지 태도를 취한다. 강경책과 유화책이 그거다. 총과 군대, 감옥은 그들을 가혹하게 다룬다. 훈장을 수여하고, 학교와 교회, 병원을 세우며, 통역, 시동, 낮은 계급의 행정직원, 파수꾼, 경찰 등으로 고용하기도 한다. 그들이 그들 스스로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동시에 분열과 갈등을 만드는 좋은 수단이 되는 거다.
이 소설에서도 그런 방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식민지를 유지하는 방식들은 어쩌면 그리 닮아 있는지, 지역과 인종을 막론하고 공유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졌다.
아프리카 지도를 보면 기이한 기분이 든다. 좁지도 않은 땅에 직선으로 국경선이 그어져 있으니 말이다.
한반도의 38선도 그렇게 반듯하지는 않다. 그건 마치 땅따먹기를 할 때 점과 점을 찍고 선을 그은 것 같은 모양이니 이상할 수밖에.
아프리카 역사를 조금 알고 나면 그 이상함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간단히 납득하게 된다. 실제로 땅따먹기였으니 말이다.
기만당한 아프리카 인. 본래의 문화와 삶, 언어와 종교 모두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우리 역시 그와 다르지 않은 운명을 맞이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안도하게 된다.
치기 어린 시절, 세계는 왜 우리의 억울함, 분노를 왜 몰라주는가, 한국이라는 나라의 비극을 그들은 왜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가를 궁금해 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에는, 넓은 세상에는 그와 비슷한 오히려 가혹한 비극이 너무나 많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었다. 과거가 아닌, 현재. 어쩌면 미래였던 거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이 소설은 잃고, 빼앗긴 자들의 설움이 담긴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