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을 읽어야 할 시간
이케가미 아키라 지음, 오세웅 옮김, 김공회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안그래도 마르크스의 ‘자본’을 쉽게 풀어쓴 책을 찾던 중이었는데, 이 책을 만나게 되어 무척 감사합니다.

4주전부터 집에서 구독중인 경향신문에, 토요일마다 강신준 교수의 집필로 지문 한면을 ‘자본론’ 강의가 이어지고 있는데, 읽을때마다 이해가 가는듯 하면서도 어렵게 느껴져 좀더 구체적으로 알고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물론 학자들조차도 읽기를 버거워하는 ‘자본’의 직역본을 읽는다는건 엄두도 못낼 일이라 저에겐 아주 이해하기 쉽게 쓴 책이 필요했는데 이책이 딱이네요.

 

5개월전 신문을 구독하면서부터 사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느끼는 사회적인불만을 지식인들의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은 떨어지지만, 지금의 사회가 정상적이진 못하다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놓은 자본의독식, 승자독식의 천민자본주의, 빈익빈 부익부, 경쟁에서 탈락되면 영원한 낙오자가 되버리는 사회구조, 아니 출발선상부터 공정한 경쟁이란 애초부터 없었다는것 그 모든 것들이 저를 분노케 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자본주의는 초과이윤으로 굴러가는 시스템인데 초과이윤을 만들어내는 대다수의 노동자가 빈민으로 전락하게 된다면 결국엔 자본가조차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않을까?

경쟁에서 떨어진 절대 다수의 패자를 아우르지 못하고 죽게 내버려둔다는건 결국에는 싹 같이 죽어버리자는 의미가 아닐까? 란 생각을 했습니다.

유성기업사태,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등등 자본에 맞서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위해 싸우며 죽어가는 현실을 보면서 개인의 문제보다 절대적으로 사회구조에 문제가 있다는걸 확실히 알게 되었죠.

 

그리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자본의 횡포’ 에 대해 140년전 마르크스가 정확하게 예측하고 지적했다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때 독재정권을 유지하기위한 수단이었던 반공이데올로기가 워낙 강한 국가에서 자란탓에 나역시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자 ( 공산주의는 무조건 나쁜거다 라는 전제를 깔고) 이고, 우리나라를 북한처럼 만들자는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고 알았습니다.

당연히 불온서적 이 될수밖에 없다는것도 인정했죠.

 

하지만 과연 북한이 제대로된 공산국가일까? 그 시스템은 사회주의를 표방했을지 모르나 중앙집권적 전제군주체제의 봉건사회라고 하는게 더 맞지 않을까.

그리고 사람들은 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91년 소련이 붕괴했을때 현실사회주의는 끝났고, 마르크스는 틀렸고, 자본주의는 승리했다고 얘길했다.

하지만 소련 사회주의 혁명은 마르크스가 얘기했던것과는 다른 성질의것 - 노동자로부터의 혁명이 아닌 소수의 집권자 (프로레탈리아) 혁명이었다.

 

지금 우리가 자본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현재 우리사회가 140년전 마르크스가 예언했던 자본주의의 막장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일것이다.

노동자 혁명을 선동하는것이 아니라 절대다수의 빈민이 양산되는 현재 사회에서 이렇게 될수밖에 없었던 자본의 구조를 알고 자본주의를 좀더 수정하고 다듬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위한 고민이 필요하기때문이지 않을까.

 

이 책에는 자본론 총 3권중에 1권에 해당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저자가 핵심적인 내용을 위주로 쉽게 설명하고, 1권에서 중요한 부분을 발췌해 직역된 부분을 다시 해석해주는 식으로 되어있다.

자본론은 그만큼 어려운 책이다.

 

이번에 이 한권으로 처음 자본론을 맛보면서, 좀더 많은 책을 읽어보고싶단 생각을 갖게되었다.

기왕이면 이 저자가 2권 3권에 해당하는 내용의 책도 출간해준다면 더욱 고마울것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회에서 가르치는 거짓말 - 너무나 당연해서 아무도 묻지 않았던 43가지 진실
스티브 맥베이 지음, 김소희 옮김 / 터치북스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든지 처음 이 책 제목을 보고 선택한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이 책의 저자일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책을 펼치면 기독교인에게 진정한 하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책임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까닭에 기독교인이 아닌 본인과 같은 사람이 읽어 내기에 쉬운 책은 아니였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절대적인 하나님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되어 있지 않으므로 기존의 교회에서 하나님과 그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보내셨다는 예수님과 관계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좁아서 도대체 교회에서 가르치는 거짓말이 무엇이고 이 책에서 바로잡고자 하는 진실은 무엇인가에 대해 읽으며 혼란스러웠다

본문에 성경의 구절에 대해 저자의 새로운 해설을 설명하는 부분이 여러 번에 걸쳐 묘사되고 있으나 성경 전반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로서는 저자의 이런 설명조차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 책뿐만 아니라 다른 기독교 관련 서적과 목사님들의 말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성경이 워낙 추상적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성경에 대한 해석은 논란의 여지가 많아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기독교 관련 책들과는 달리 이 책은 여러 기독교 사상의 기초적인 사상들에 대해 쉽게 설명을 하고 있어서 읽기가 편했다 우리에게 보편적인 가치인 믿음 은혜 진실과 같은 말들이 기독교내에서는 좀 다른 의미로 쓰여 진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바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렇게 큰 괴리는 느끼지 못했다

 

특히 우울증에 대해 기존의 기독교내에서 믿음이 부족하여 은혜를 아직 덜 입었다는 식의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에 대하여 그 믿음의 크기를 비교하거나 우울함을 죄라고 주장하여 영적으로 신실하지 못하다고 하여 우울증에 빠진 이들에게 더 심한 고통을 준다고 말하고 있는 이 책에서는 실제적인 우울증에 대해 호르몬 불균형이나 뇌의 화학적 물질 물균형 등 몸의 알 수 없는 신체적 요인에서 기인했다고 인정하고 우울증은 단지 혼, 정신, 의지, 감정이 지쳐있는 상태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이것이 진실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또 기독교 사상에서 대표적 심성이라고 볼 수 있는 용서에 대해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자아에 맞는 행동이며 용서가 기독교 신앙과 메시지의 중심에 있고 우리가 받은 용서를 남에게 베풀 때 우리는 믿음으로 기쁨과 열매를 맺는 삶을 살 수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잊지 못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 일을 기억하지 않음으로써 자유롭게 생활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용서한 사람만이 맛보는 자유라는 구절은 참으로 마음에 와 닿았고 그동안 내가 피상적으로 기독교에 대해 접해 왔던 무조건적 믿음,사랑,용서 등에 대해 다른 솔직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까닭에 저자가 설파하는 진솔한 기독교 사상에 대해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책 첫머리에 종교의 어원이 속박되다, 억제하다, 단단히 동여매다 등에서 기원했다는 것을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데 나는 여기에 이 책의 매력이 있다고 본다 어차피 종교라는 것의 기원이 불확실성 속에 살고 있는 나약한 인간이 알 수 없는 힘에 의지하여 속박되거나 억제당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라는 것을 저자 자신이 솔직히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막연한 믿음만 강요하기 위해 거짓말도 불사하는 일부 종교인에 대해 아주 논리적이고 정직한 내용으로 경고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화는 총구에서 나오지 않는다 - 인류는 전쟁 없는 세상을 꿈꿀 권리가 있다
아르노 그륀 지음, 조봉애 옮김 / 창해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꾀 오래되어 내용이 가물가물하지만 제목만큼은 정확히 기억나는 영화 '구타유발자'들이란 영화가있다.

얼핏 기억하기로 음대교수와 여학생이 드라이브를 하다 차가 강가에서 멈추는 사고로, 그 일대의 집도없이 떠돌아다니는 건달? 아니 건달축에도 못끼는 쌩양아치 부랑자일당들에게 잡히면서 얘기는 시작된다.

그러니까 그 영화에서 주목할점은 폭력이 전도된다는것이다.

경찰역의 한석규는 양아치의 두목을 오랜기간 비인간적으로 괴롭혀왔는데, 경찰의 폭력앞에 무기력하게 당하기만하던 양아치두목은 또다른 폭력성으로 한 남학생을 주기적으로 괴롭힌다.

그리고 그 남학생 역시 폭력을 두려워하면서도 결국엔 그 폭력에 대항한 또다른 폭력성을 보여주는 영화였는데, 바로 이책의 소재인 '인간의 폭력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심리학자인 저자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있노라면 세상에 구타유발자는 따로 없다는걸 알수있다.

다만 구타를 가하는 사람의 폭력성향속에 내적인 불안감과 열등의식이 존재할 뿐이다.

 

이런 영화속 캐릭터를 우리는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만날수 있다.

작게는 가정폭력범에서부터 대량살상 전쟁을 주도하는 권력자들까지 남성성에 집착하고 폭력성을 띤 이들의 공통점은 공감능력의 부족인데, 저자는 어린시절 부모와의 상호 감정교류경험을 통해 이런 힘이 길러진다고 한다.

 

이책을 보면서 '또하나의 육아서' 라고 느꼈던것이 저자가 어린시절의 경험을 상당히 중요하게 설명한 부분이다.

그러니까 이런거다.

인간은 모태에서 어머니와 일치감을 느낄때 가장 안정된 상태였다.

하지만 출생후에도 어머니와 주변의 극심한 관심과 애정을 느끼면서 성장하는 경우엔 정체성이 제대로 확립되고, 내면이 안정적이며 타인을 공감할수있는 능력을 가질수 있게 되지만,

보호자의 애정이 필요한 나이에 외면당하고 무시당하는 경험은 그 아이로 하여금 참을수 없는고통을 주게되어 결국엔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그 감정을 자신의 감정에서 분리시키려고 한단다.

결국 아이의 분열된 자아는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던 그 감정을 자기것이 아닌걸로 인식하려한다.

더불어 고통을 준 부모와의 동일시를 시도하며, 자신의 고통스런 경험이 되살아날것같은 상황에서는 여지없이 폭력성이 발현된다.

인정받지 못한 자아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 그 대상을 파괴하는것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도 한단다.

 

결국엔 어린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오는 경험을 통해 폭력성 vs 공감능력 으로 발전할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어린시절에 제대로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앞으로도 폭력성에서 비껴나갈수 없다는걸까?

만약 그렇다면 정말 절망적일수 밖에 없을것같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얼마만큼의 상처와 열등감을 갖고 있을지라도 스스로 있는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수용할수 있다면  그 상처로부터 자유로울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러니까 부족한나, 열등감을 느끼는나, 무관심으로 소외되었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그 열등감과 부족함을 채우기위해 외부의 것에 집착하고 그 집착을 통한 폭력이 소요되지 않고 오히려 진정한 공감으로 갈수있는 열쇠일것이다.

 

기대하지 않고 읽었던 책인데, 책의 후반부는 에리히프롬의 소유냐존재냐에서 처럼 내면이 충만한 존재 그 자체로서의 삶이 주는 심리적인 안정과 평화에 대한 귀중한 감상을 얻으며, 오랜만에 무척 괜찮은 책을 만나 기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항하라! 세상의 벽을 향해 던진 연설 32 거꾸로 읽는 책 35
유동환 엮음 / 푸른나무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는 이 책을 통해 앞으로 제 독서의 목표와 방향을 정할수 있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저항의 역사였고, 그것은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힘의 논리로 지배되는 세상에서 공존하는 삶에 대한 고민, 소수의 약자들의 삶에대한 자유에 대한 갈망의 목소리를 들을수 있었고

지금껏 왜 그토록 무관심하게 살았나 하는 제 자신에 대한 반성할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무엇이 정의인지, 무엇이 사실인지 조차도 헷깔리는 세상입니다.

예를 들어, 며칠전 안산의 자동차부품회사인 SJM 노동자 파업사태와 관련해 컨택터스라는 용역깡패들의 폭행사건이 있었습니다.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신문에서는 용역깡패를 동원할수 없는 현실에 대한 양해와 파업 노동자들역시 만만찮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식의 기사를 흘려보냈습니다.

아마 그 신문만 읽은 사람들은 별 대단치 않은 사건이며, 사건의 진실을 알기 힘들겁니다.

하지만 한겨레, 경향과 같은 진보신문에서는 그 용역깡패들의 배후에 사측의 지원이 있었으며 깡패들이 사측,경찰, 더 나아가 정치계와 밀착된 내막을 얘기해주었고, 컨텍터스라는 회사가 과거 이명박의 대통령후보시절 그 배후에서 활동했던 용역업체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더군다나 그날의 참사는 소수의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찾기위한 일종의 비폭력시위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장 깡패들의 무자비한 폭력과 폭행으로 많은 사람들이 다친 사실을 기사화시켰습니다.

 

이책 속에 담긴, 민주주의와 평등 그리고 환경을 비롯해 더 나은 삶, 아니 기본적인 삶 , 인간의 존엄성을 찾기위한 몸부림과 저항은 비단 남의나라 일일 뿐만아니라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압축적인 현실이며 함께 고민해야될 이야기였습니다.

 

만약 이책을 읽지않았더라면, 저는 아직도 오사마빈라덴이 무장테러리스트로 아주 나쁜놈이다, 오바마의 표현대로 악의축이란 생각을 했을겁니다.

읽는 내내 더이상 우리주변에서 진실을 가리고 있는 목소리에 대해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는것이 중요하고,

소수의 삶, 약자의 삶을 대변할수 있는 목소리를 키워가는것이 더불어살아가는 공존의 삶을 위해 저항하고 또 저항하여 완전한 평등은 아니겠지만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책을 계기로 인권과 민주주의, 평등, 더불어 사는 삶, 환경에 관한 관심을 가질수 있었고, 앞으로 그런 방향의 독서를 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결국 감정이 문제야 - 자꾸만 꼬이는 직장, 가족, 연애, 인간관계
마르코 폰 뮌히하우젠 지음, 김해생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난 짜증이 심한 사람이다.

아마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잠들기까지 내 마음속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짜증과 불평,불만들을 일목요연하게 나열해본다면 그 가짓수도 엄청나고 원인도 참 다양해서 , 나를 아는 주변사람들이 이런 내마음속을 들여다본다면 아마 기절할 정도고, 난 사람들에게 비난의 도마위에 오르게 될것이다.

예를들어 신문배달이 늦게와도 짜증이나고, 입고가려는 옷을 다려놓지않아도 화가나고, 버스에서 누군가 새치기하는걸 볼때도 화가나고, 직장동료가 내게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을때도 화가나고, 책읽기에 집중이 잘 되지않을때 조차도 화가나고 짜증이 난다.

 

그러니까 두가지다.

내 스스로에게서 오는 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화.

어떤 때에는 뻔히 개선될수 없는 현실을 알면서 화를 낼때가 있는반면, 또 어떤땐 정말 화를 낼만한 정당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주장하면서 화를 내기도 한다.

그래서 늘 감정적인 문제를 어떤식으로 풀어갈지가 고민이고 관심사였는데 이번에 이책을 읽으면서 생각할수 있는 기회를 가질수 있었다.

 

저자는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는 부정적인 감정이나 기분, 또는 꼬인 마음이나 잘못된 생각을 일컬어 늪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우리의 인생을 힘들게 만드는 그 늪에 빠지지않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얼마전에 읽은 한 책에서 "사람은 사물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물을 보는 견해에 의해서 방해 받는다." 고 말한 고대철학자 에픽테투스의 말처럼, 외부세계가 아닌 내면을 스스로 통제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난 이책을 읽는 내내, 정말 감정이 문제일까? 라는 생각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저자는 마치 좋은감정/ 나쁜감정이 따로 있기라도 한것처럼 슬프고,우울하고,짜증나고,화나는 마음을 나쁜감정으로 치부하고 없애고 제거하고 최대한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전제하고 그러한 감정들을 예방하고 최대한 제빨리 없애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내가 의아했던건, 감정자체를 좋은것/나쁜것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눌수 있는건가 였다.

 

어쩌면 에필로그에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이 가장 중요하다고 얘기하는 만큼,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화를 내면 안된다, 짜증을 내면 안된다 라는 가치판단이 아니라 ' 아 내가 지금 짜증을 내고 있구나' 하고 인정하고 수용하는 자세 말이다.

거부하지말고 받아들이는 자세 말이다. 그러니까 살아있는 마음에서 나오는 감정들은 모두 소중하다고 말이다.

감정은 억지로 멈추려고해서 멈춰지는 성질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안아줄때 봄볕에 눈녹듯이 녹아 들어가는 것이니까.

 

저자가 말한 스트레스는 안좋은거고, 스트레스를 안받을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가급적 스트레스에서 빨리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연구는 스트레스에 대한 너무 수동적인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과연 이 복잡 다단한 세상에 갖가지 종류도 다양한 스트레스를 근본적으로 피할수 있는 방법이 되기나 한걸까란 의문이 들었다.

스트레스보다 더 강력한 즐거움을주는 행위를 찾는다던가, 머리를 비운다던가,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 빨리 잊는다던가 하는 방법이 과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수있을까.

그런 주장이라면 머리를 비우는 방법적인 얘기가 나와야하고 또 그게 가능한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난 건방지게 이책에서 내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한가지를 추가해보고싶다.

변화에 초점을 두는건 어떨까.

내 감정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감정을 인정하고 이 모든것들이 변화할수 있는 것들을 인정하는 것 말이다.

 

실제로 많은 감정코칭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요즘 사람들이 '행복' 이란 이데올로기에 너무 경도된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왜 사람들은 마음이 행복하면 좋은거고, 슬프고 우울한건 안좋은것이라고 생각할까 를 많이 고민하면서 부정하는 순간 저자가 말한 '늪'으로 점점 들어가게 된다는걸 알게 되었고, 그 감정을 인정하고 변화까지 받아들일수 있을때 슬픔과 기쁨이 둘이 아니라 슬픔에서 기쁨으로 기쁨에서 슬픔으로 변화하는 마음의 원리를 느낄수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 감정이 문제가 아니라, 그 소중한 감정을 (내마음속에 일어나는 어떤 감정이라도) 잘 인정해주고 다독거려서 나와 상대방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돌리는것이 가장 중요한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것은 생활속에서 스트레스를 만날때마다 사실적인 훈련을 통해서 길러질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