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성기 옮김 / 이레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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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했던가.

우리가 어떤 잘못을 하게 되면, 그게 잘못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누군가 내게 비난을 하고 욕을 하고 훈계를 할 때, 그 앞에서는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변명도 해보고, 핑계도 대보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가 잘못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스물 다섯살 때였나. 짝사랑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러니까 그때는 그게 짝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 남자의 걷는 모습도, 냄새도, 농담까지도. 뭐 하나 맘에 들지 않는게 없었다. 그렇게 그를 혼자 좋아하고 있을 때, 후배가 내게 저 오빠 좋아해요, 라고 고백해왔다. 그러니 잘 되게 좀 도와달라는 식이었다. 아뿔싸, 나도 좋아하는데. 내가 그를 ‘먼저 알았고 먼저 좋아했’다는 것 쯤은 후배가 ‘먼저 고백’한데서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표면적으로 나는 그 둘이 잘 되게 도와주려 애썼다. 사실 내 진실한 마음은 그 둘이 잘되는걸 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명이 모여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을 때, 후배는 내게 그를 불러달라고 했다. 고백을 할거라고. 나는 그를 불러내줬고, 계속 술을 마셨다. 다음날 후배에게 물어보니 그의 대답은 노, 였다고 한다. 그는 동갑의 다른 여자를 좋아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후배는 내게 혹시 그게 언니 아니예요? 라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아닐거라고. 그러나 사실은 그러길 바랐다.

이 책 속의 선생님도 아가씨를 먼저 알았고, 먼저 마음에 품었다. 그러나 뒤늦게 알게 된 친구가 ‘먼저 고백’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그를 말린다. 아가씨를 좋아하지 말라고. 그리고 자신은 아가씨에게 청혼한다.

그리고 며칠 뒤 친구는 자살한다. 유서에는 선생님을 원망하는 어떤 문장도 없다. 친구가 자살하기 전에도, 친구를 말렸던 자신이 아가씨에게 청혼했단 사실에 대해 내내 불편해했던 선생님은, 친구가 자살하자 그 마음속의 짐을 덜어놓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가씨에게도 말할 수가 없다.

모든 감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친구의 애인을 뺏어놓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한 여자와 잘되기 위해 친구를 말린 누군가는 평생 편안한 마음을 갖지 못할 수도 있다. 그때 말할걸. 그때 말했어야 했어. 내가 그러는게 아니었어.
그를 힘들게 하는건 타인의 비난이 아니었다. 원래 악한 사람으로 태어나는게 아니라 상황이 되면 인간은 모두가 악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던 자기 자신이었다. 자신이 가장 경멸했던 행동을 자신이 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는 기분. 그는 그런 마음상태로 도무지 세상에 나갈 수가 없다.

나도 몇번. 아니 어쩌면 아주 많이.
타인의 어떤 행동들을 보고 경멸해놓고서는 내가 저지른 적이 있다. 그리고 그런 자신에 대해 치를 떨기도 했다. 어떻게 내가 이래, 어떻게…
어쩌면 이 책속에서 선생님이 말했듯이, 그 상황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같은 상황이어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수 있었겠지만.

이제와서 내가 저질렀던 잘못들을 후회해봐야 무얼할까. 다 부질없는 짓. 그저 나는 그 잘못들을 다시 또 반복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노력한다고 해서 내 마음의 빚이 덜어지는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마음이 늘 무겁다. 내 마음이 무거운 건 다른 누군가의 탓이 아니다. 그저 내가 스스로 알아서 느끼는 것 뿐이다.

어쩌면 마음은 그래서 존재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잘못을 잘못으로 인식하게 하기 위해서. 다시는 그런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그게 마음이 존재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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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인과의 하루
한스 카노사 감독, 헬레나 본햄 카터 외 출연 / 기타 (DVD)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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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피로연에서 남자는 여자에게 샴페인을 권하며 다가간다.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춤을추고 웃는다. 그들은 조금 더 시간을 함께 하고 싶지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밤이 깊어가는 그 시간, 여자는 새벽 네시에 일어나 런던으로 가기 위한 비행기를 타야 한다.

결혼식 피로연이 끝나고 둘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여자가 묵고 있는 방으로 올라간다. 남자가 방안의 불을 끄는 순간 여자는 그를 기억해냈다고 말한다.

사실, 그들은 서로의 15년전 모습을 알고 있다. 15년전 그들은 함께 걸었고 함께 웃었고 아침저녁으로 한번씩, 혹은 두번 섹스를 나눴다. 남자는 여자에게 너의 섹스는 정말 끝내줬었지, 라고 말한다. 그 둘이 각자 자신의 과거를 말했을 때, 사실 그 과거는 ‘그들’의 과거였다.

15년전, 그들은 어렸었다. 철이 없었다. 처음 본 순간 키스를 했던 그들은 얼마 못가 결혼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여자는 런던으로 날아갔으며 남자는 여자를 찾곤 했다. 지금은 여자에게도 남편이 있고 남자에게도 애인이 있다.

여자는 남편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너와 섹스는 하겠지만, 이것이 잘 하는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현재의 남편을 사랑하고 식구를 사랑한다고 했다. 남자는 애인에게 큰 정이 없다. 남자는 여자로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말을 듣고 싶다.

15년이 흘렀고 그들은 지금 서른여덟. 여자는 추억은 추억일 뿐, 지금와서 그 무엇도 되돌릴 수 없음을 안다. 그래서 여자는 시종일관 시니컬한 말투를 버리지 못한다. 여자는 나이에 대한 언급이 싫고, 조금 지쳐있다. 과거에 열정을 쏟았던 남자가 눈앞에 있어서 그때가 떠올라 가끔 웃긴 하지만, 시종일관 그녀의 눈에는 삶에 대한 피로가 역력하다.

그래서 남자의 눈빛이 인상적이다. 여자가 하는 말를 들어주는 그의 눈빛은 밝게 빛나고 있다. 따뜻하다. 그는 원래 미소를 머금은 얼굴인걸까. 지친 여자의 시니컬한 말들을 들으면서도 그는 내내 따뜻한 눈빛을 유지한다. 어쩌면 그래서 지친 여자도 계속 얘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눈빛으로 날 보는데야 무시할 수가 없지.

『프랑켄슈타인』에서였던가. 나는 ‘헬레나 본햄 카터’를 보고 전형적인 미를 가진 여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녀는 작고 하얗고 예뻤다. 그런데 서른 여덟을 연기하는 지금, 아니 그녀는 현재 그정도의 나이이겠지만, 그녀는 더이상 예쁜 소녀가 아니다.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을 가진 소녀가 아니다. 그녀는 삶에 지친 여자다. 이 영화속의 남자가 그녀에게 얘기하듯이 15년전의 살결이 조금 더 부드러웠을 것이다.

서른여덟이 되어 15년전의 그와 섹스를 하려고 옷을 벗는 여자는 더이상 예쁘고 탱탱한 몸매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남자는 15년전보다 조금 더 살이 쪘다. 살을 빼야겠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그들의 모습을 변화시켰고, 되살아난 추억속으로 기꺼이 걸어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진 않는다.

영화는 남자의 시선과 여자의 시선을 따로따로 쫓아간다. 화면의 절반속에는 남자가 있고 또 화면의 절반 속에는 여자가 있다. 한쪽에는 여자가 보는 남자가 있고 한쪽에는 남자가 보는 여자가 있다. 그들은 쉽게 한 화면속에 잡히지 않는다. 때로 그들이 한 화면속에 잡힐 일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을 때이다.

그래서 처음엔 이 필름이 혹시 망가진 필름은 아닐까 생각했었다. 왜 절반으로 뚝 떼어놓아서 나로 하여금 그 둘을 동시에 보게 할 수 없는걸까. 참 신기하다. 화면은 하나인데 둘로 나눠 놓으니 나는 여자를 보거나 혹은 남자를 보거나 해야 한다. 그 둘을 동시에 보는 것이 어렵다. 나는 주로 여자의 시니컬한 표정을 보았지만, 가끔 시종일관 따뜻한 눈빛을 지니는 남자를 보면서 그에게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희망’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 희망이 한쪽만의 것이라면, 그 희망의 최종 목적지가 사랑일때, 이루어질 수가 없다.

화면은 나뉘어져있고, 등장인물도 거의 없다. 때때로 그들이 함께 화면의 한쪽을 차지하고 얘기할 때, 다른 한쪽에서는 그들의 애인이나 혹은 그들의 과거가 보여진다. 아, 물론 각자의 현재의 말과 마음속의 마음들이 보여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독특하다.

3시 15분. 여자는 샤워를 한다. 들러리 옷을 두고 일상복으로 갈아 입는다.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느라, 남자가 내뱉는 말들을 전혀 들을 수 없다. 이제 공항으로 가야 할 시간. 그들의 하룻밤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같이 웃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몇시간전에 한 침대에서 웃었던 것 처럼 계속 웃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안에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어쩌면 상대가 앉아있을지도 모를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왜 우리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을까. 시행착오를 거쳐 우리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은 되겠지만, 우리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서 만나게 될 상대는 그때의 그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어쩌면 내내, 낯선 사람을 만나 한순간 웃다가, 조금 더 오랫동안 씁쓸하고 지친 표정으로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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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리의 특별한 로맨스
레베카 밀러 감독, 키아누 리브스 출연 / 이오스엔터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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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 리는 남편의 ‘첫번째 부인’은 아니다. 지금의 아내라는 위치에 대해 피파 리는, 그녀만의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모범적인 아내가 되는 것이 그녀가 조금이나마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내조를 잘하고, 자신의 일정부분은 포기하고 억누른채로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밖에서보나 안에서보나 그녀는 완벽에 가까운 아내역을 해내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남편의 외도를 목격한다. 그것도 자신과 가장 가까운, 게다가 자신보다 훨씬 젊은 여자와의 외도.

피파 리는 그러나 화내지 않는다.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바로 그때, 자신의 죄책감이 그녀를 떠나 갔음을, 그 바톤을 새로운 내연녀에게 옮겨줬음을 느끼게 된다. 그녀가 느낀건 자유. 남편의 외도를 목격하고 그녀가 한 일은 햄버거와 콜라와 후렌치 후라이를 사 들고 옆집 남자가 자고 있는 방 안의 창문을 넘어 들어간 일. 난 이제 자유에요, 라고 그의 침대에 앉아 말한 일.

숨어서 담배를 피던 그녀가 이제 딸 앞에서도 담배를 피고, 가정이야 어찌됐든 여행을 가겠다고 말하고, 집 앞에 여행을 함께 갈 젊은 남자가 찾아오게 한다. 이런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그녀를 이해하는건, 그녀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딸. 아들은 저 남자는 누구냐, 고 확연히 놀라고 싫은 표정을 짓지만, ‘내 친구야’ 라는 그녀의 말에 활짝 웃는건 딸이다. 아 맙소사, 나는 그녀의 딸이 된 듯 함께 웃고 있었고, 나는 피파 리가 되어 딸을 낳기를 잘했다는 느낌도 함께 든다. 역시 딸을 낳아야 하는건가. 나는 딸을 낳고 싶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름 아닌 ‘엄마의 젊은 남자친구’를 환영하는 딸을 보면서. 하핫.

그래, 이 영화는 피파 리의 ‘로맨스’를 포함하고 있지만 ‘특별한 로맨스’가 전부인 영화는 아니다. 로맨스는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산다. 물론 로맨스가 있으면 세상은 더 재미있지만, 삶이 더 즐겁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일년 내내 로맨스를 즐길수도 없고, 하루종일 로맨스에 푹 빠져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삶은 로맨스로만 채워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밥도 먹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친구랑 싸우기도 해야 하고, 옆집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기도 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방탕한 삶을 좀 즐기기도 해야 하는데, 그런 피파 리의 삶을 보여주는 이 영화에 대체 왜 ‘특별한 로맨스’라고 제목을 붙여버림으로써, 그녀 삶의 일부인 로맨스를 마치 전부인 것 처럼 표현했는지 모르겠다. 바보같아.

자, 다시 처음의 죄책감으로 돌아가서.
나도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어떤 것에 대해서, 어떤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가진 죄책감은 하루이틀 된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랜 시간 묵은것이라 해도 좋다. 이것은 앞으로도 나를 따라다닐 것 같고, 아마도 내내 내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이렇게 죄책감을 느끼게 될 선택을 그때 하지 말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후회도 물론 죄책감과 함께 덩달아 따라온다. 그러나 이미 저질러진 일을 후회하는 것은 부질없다. 그런데 올해 초, 친구가 보내준 별자리 운세에서 나는 이런 문장을 만난다.

[과거의 10년정도 당신은, 다른 사람과의 1:1 관계에 있어서 무언가 놓쳐왔던 것이 아닌가요? 그리고 그로인해, 깊은 슬픔, 의심, 무력감이 생겨났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패턴이라든가, 자신의 상념이 너무도 혼잡해져버려서, 결국에는 무언가를 놓치고 계속 실망해왔을 것입니다. 그러한 이상한 근심이 2011년부터 2012년에 걸쳐 조용히 사그러들기 시작합니다.]

맙소사, 그러고보니 정말 십년이 다 되었다. 일년이 지나고 이년을 보내면서 내가 이 일을, 이 감정을 잊을 날이 오게될까 싶었는데 벌써 십년이 지나버렸다. 물론 아주 많은 것들을 잊어버렸고 또 중요한 감정들은 기억하고 있지만, 내가 가진 이것-죄책감과 후회와 미련-이 나를 내내 가두고 있었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서서히 없어질거라고 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바톤을 넘겨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넘길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니 나는 세상에 흔적도 없이 흩뿌렸으면 좋겠다. 나는 2011년에 이 감정을 정말 지울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올해 초에 별자리 운세를 보며 아 없어질지도 몰라, 라고 생각했던 것을 잊을만하니 이 영화, [피파 리의 특별한 로맨스]가 다시 상기시켜준다. 너는 그걸 잊을 수 있게 될거야, 바톤 터치를 하게 될거야, 라고. 그래, 나는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나는 위노나 라이더-그녀가 상처받아 병원 소파위에 엎드려 있는 연기는 최고였다. 압권!-, 모니카 벨루치도 좋았고, 오, 키에누 리브스는 이루 말할 것도 없다. 블레이크 라이블리는 너무 예뻐. 무엇보다 피파 리 역의 로빈 라이트 펜이 정말이지 엄청 예쁘다. 그렇게 나이 드는게 과연 나에게도 가능한 일일까? 중년의 여자라도 옆집 사는 젊은 남자 키에누 리스브와 사랑하려면 적어도 그정도 미모는 유지해야 하는게 아닐까?

아, 정말 재미있는, 마음에 쏙 드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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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의 마지막 로맨스 - 아웃케이스 없음
조엘 홉킨스 감독, 더스틴 호프먼 외 출연 / UEK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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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다보면 삶의 비참함을 경험하게 될때가 있다. 남자는 딸아이의 결혼식에서 딸아이의 손을 새아빠아게 넘겨야했고, 비행기를 놓치고, 직장을 잃었다. 그런 굵직한 일들이 아니어도 충분히 비참하다. 딸아이의 결혼식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야 한다는거, 그 자리에서 빛나고 싶은데 핸드폰을 받아 일을 하게 해달라고 말해야 한다는 거, 그 전화를 받으러 나가야 하는데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그 사이로 나가야 한다는거, 나가면서 발을 헛디딘다는 행위등. 게다가 전(前)부인은 아직도 남자가 자신의 앞가림을 제대로 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한다. 남자는 그저 비참하다.

여자도 비참하다. 엄마는 자꾸만 남자를 만나라고 하고, 남자를 만나러 간다고 하면 어떤 옷을 입었냐고 전화한다. 남자를 만나고 있을때도 전화를 한다. 여자는 엄마의 전화를 무시할 수가 없다. 엄마가 혼자니까. 자신이 전화를 받아주지 않으면 엄마는 어디에 대고 말하겠는가. 게다가 여자는 자신이 포함된 자리에서 자신이 언제나 주변인이라고, 바깥으로 떨어져 나가있다고 느끼게 된다. 소개팅을 한 자리에서도 우연히 소개팅남자의 친구들과 합석하게 되고 그녀는 그저 멀찌감치 떨어져 웃는것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그녀는 일주일에 두번 작문수업을 듣고, 혼자 있는것이 편하다. 까페에서 책을 읽고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다. 예쁘지도 않고 멋부리지도 않는다. 그렇게 독신으로 나이가 들어가고 있어서 주변에서는 그녀에게 남자를 소개시켜주기 위해 애를 쓴다. 아이구, 나는 그녀가 자꾸 나를 닮은것 같아서, 아니 내가 그녀를 닮은 것 같아서 덩달아 비참해지고 쓸쓸해진다.

그리고 그런 비참한 남자와 여자가 만난다.

그 둘은 대화를 한다. 서로가 얼마나 지독한 날들을 보냈는지를 얘기하고, 자신의 다음 일정을 얘기한다. 남자의 딸의 결혼식에 같이 가고, 같이 춤을 추고, 남자가 작곡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듣는다. 여자는 혼란스럽다. 남자와 여자는 하룻밤을 꼬박 새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이렇게 밤을 새워 놀아본것은 정말 오랜만이에요, 라고 여자는 얘기한다.

새벽에 헤어진 그들은 정오에 다시 만나기로 한다. 그러나 그자리에 남자는 오지 않는다. 남자가 오지 않는 이유를 여자는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남자가 나오지 않는것이 다행이라 생각한다. 포도를 사가지고 웃으며 그 자리에 나갔으면서도. 지금 돌아서 이 남자와 헤어지는 새벽, 버스를 타고 가는 그녀의 표정은 기대로 가득 넘쳤으면서도.

그러나 남자는 말하고 싶다. 자신이 왜 나오지 못했는지를. 바로 여기, 바로 여기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인데, 나는 ‘대화’야 말로 오해를 이해로 바꾸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며 가장 영향력을 발휘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말하지 않으면 오해가 쌓인다. 그러나 말을 하는 순간, 우리는 그게 무엇이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아, 맙소사, 너에게 그런 일이 있었던 거구나, 하고. 전하지 못한 말들은 효력이 없다.

여자가 나랑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그녀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말한다.

나는 단념하고 포기하는게 더 편해요. 그런데 당신때문에 힘들어요.

단념하고 포기하는게 더 편한 사람앞에 나타나서 단념과 포기를 할 수 없도록 만들다니, 자꾸만 기대하게 만들고 자꾸만 꿈을 꾸게 만들다니. 지금껏 살아온 내 삶의 패턴을 바꾸어버리려고 하다니.

남자는 그녀에게 물었다.

단 하루만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어떻게 살고 싶냐고. 그러자 그녀는 스페인에 있었으면 좋겠고, 글을 쓰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자 남자가 말했다.

그곳에 나를 초대해줘요, 라고.

이별은 상처라고 생각하는 여자가 남자를 받아들여야 하고, 모든것을 쥐고 있으려고 했다가 결국 모든것을 놓아버린 남자가 마지막 기회를 잡으려고 한다. 이것이 자신의 마지막 기회라고. 여자는 영국에 살고 남자는 미국에 산다. 여자는 남자에게 어디에 사느냐 묻고 남자는 이제 거주지를 옮길거라고 말한다.

묻고 싶은 말들이 많아졌다.
당신이 단 하루,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면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싶어요?
그곳에 나를 초대해줄래요?
어디에 살아요?

로맨스는 신이 주신 가장 커다란 축복이 아닐까. 로맨스는 어디든 찾아가니까. 젊고 예쁜여자에게도 그리고 나이들고 예쁘지 않은 여자에게도. 키 크고 잘생긴 남자에게도, 키 작고 주름이 많은 남자에게도. 영국에 있는 여자에게도, 미국에 있는 남자에게도. 로맨스는 그들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준다. 20대에도 50대에도. 그것이 로맨스의 미덕이다. 다가오는 로맨스를 우리가 밀어내려고 애써봤자 떨쳐지지 않는 이유이다. 로맨스는 버스 안에 홀로 앉아 있어도 웃게 만들고, 로맨스는 미국에 살면서도 영국으로 이사오게 만든다.

그리고 로맨스는,
눈물을 흘리게 하며, 그 눈물을 닦아주기도 한다. 계속 찾아와도 좋은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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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터스 투 줄리엣 - 일반판 - 아웃케이스 없음
개리 위닉 감독, 아만다 사이프리드 외 출연 / UEK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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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버릇처럼 페트병의 뚜껑을 딸 때마다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비빔밥 비빌때도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사실 내가 혼자인 여자라서 가장 짜증이 날 때는 내가 원하지도 않는 남자들이 내게 무작정 달려들때다. 그게 제일 피곤하고 그게 제일 속상하다. 물론 내가 남자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거나 하는건 아니라서 남자들이 마구 쌓이는 타입의 여자는 결코 아니지만, 어쩌다 아주 드물게 내가 원하지도 않는 놈이 남자랍시고 나를 건드려 볼려고 할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르고, 그때가 바로 가장 혼자인 여자로서 힘이 드는 때다. 내가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내가 누군가의 파트너라는 혹은 애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면, 너 따위가 나한테 감히 얼씬도 하지 못할텐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때가 가장 피곤하다. 바로 그때, 나는 사랑이고 조건이고 뭐고 아무것도 상관없이 그냥 확 결혼을 해서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이미 누군가의 아내야, 그러니 나를 좀 내버려둬, 하고 말할 수 있도록.

그러나 내가 혼자인 여자라서 가장 좋을 때 역시 남자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는 거다. 나를 사랑하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 나는 누군가에게 속해있지도 않고 나를 좋아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도 아니다. 나를 좋아하는 것은 지극히 자유롭고 안정적이며, 나 역시 자유로운 여자라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에 거침이 없다. 나는 오늘 이 남자를 만날 수도 있고, 내일 저 남자를 만날 수도 있다. 내가 오늘 집에 가는 길에 아무나 붙들고 두시간 동안 코피 쏟아가며 질퍽거리는 밤을 보낸다 해도, 아무도 내게 손가락질 할 수 없다. 그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고, 내가 만나고 싶은 남자를 내가 원하는대로 만날 수 있다. 그 점이 가장 신나는 점이고, 그럴때마다 아 내가 혼자인 여자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곤 하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는데 갑자기 내 자신이 혼자라서 다행이라고 여겨졌다. 나는 아직도 괜찮은 남자를 만날 확률이 아주 적지만 그래도 있고, 또 만나서도 괜찮은 상황이다. 만약 내가 마음에 들어하고 또 나를 마음에 들어하는 누군가와 언젠가 어딘가에서 만난다면 우리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나도 너를 사랑하고 너도 나를 사랑하니 우리 서로에게 연인이 되어주자, 고 해도 정말이지 괜찮은 것이다. 그것이 무척 다행이라 여겨지는 바로 그런 영화인 것이다.

소피는 찰리를 사랑하고, 찰리에게 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약혼자에게 우리는 아니라고, 말을 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뿐이랴, 그 과정을 끝내고 나서는 다시 찰리에게 날아가 나는 이제 혼자이고 너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과정까지 필요하다.

소피는 이 두가지의 어려운 과정을 다 끝냈다. 이것은 영화이니만큼 그 일들을 소피는 해냈고, 그것을 나는 관객으로 앉아서 볼 수 있었다. 나는 그 장면들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생각했다. 만약 내가 소피라면, 일단 약혼자에게 우리는 아닌 것 같아, 라고 말을 할 수 있다. 내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데 대체 어떻게 이 약혼을 유지하고 어떻게 결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한 사람을 가슴에 품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나도 할 수 없는 일이니, 그만큼의 용기는 나도 억지로 쥐어 짜내어 나올 수 있다. 이봐요, 우리는 아닌것 같아요,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뒤, 그 뒤의 과정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찰리에게 날아가는 일, 날아가서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일, 나는 그것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날아가기는 하지만, 반갑게 인사를 하지만, 사실은 너를 보러 왔다고, 나는 약혼을 깼다고, 그 말은 내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걸 어떻게 해, 대체 어떻게. 거기까지의 용기는 내게 없다.

그래서 로맨스를 보여주는 영화가 좋다. 내가 못하는 걸 그녀들이 한다. 내가 내지 못하는 용기를 그녀들이 낸다. 내가 꺼내지 못하는 말들을 그녀들은 꺼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영화를 보고 달라지느냐 하면 천만의 말씀이지만, 보는 동안에는 한껏 꿈꿀 수 있다. 나라면, 나였다면, 그랬다면?

로맨스 영화의 여주인공들은 참 예쁘다. 어쩌면 그렇게 안찌질할까. 현실의 나는 이토록 찌질한데. 하고 싶은 말을 하지도 못하고 용기도 없는데. 찌질해서 용기가 없는걸까, 용기가 없으니 찌질한걸까. 에라이 모르겠다. 그런 여자들도 있고 나같은 여자들도 있고 그러니까 세상이 유지되는거지.

지구는 둥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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