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저녁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퇴근하고 집에 가 밥을 먹을라치면 저녁 7시30분은 족히 넘어, 11시경 잠드는 내게 식사 시간으로는 다소 부담스러웠고, 그렇다고 퇴근하면서 회사 근처에서 밥을 사먹고 들어가자니, 늘상 순댓국에 뼈해장국에.. 소주를 곁들여야 하는 술안주 느낌이라, 이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했었는데, 남동생이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라 했다. 풀무원 잇슬림인가 하는 걸 매일 배달시켜 먹을까, 했는데, 남동생은 내 생각을 듣더니 비용면에서 효율적이지 못하다며, 집에 밥 있는데 그냥 밥 싸가지고 다니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그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경제적이기도 하지만, 혹여라도 매일 배달시키는 도시락을 먹지 못하고 밀리게 될 때는 큰 낭패일 터. 매일 가지고 다니는 것도 귀찮고, 집에 가 설거지 하는 일도 영 내키지 않지만, 그래도 그릇 하나에 밥과 반찬을 눌러 담으면 설거지도 간단하겠지, 싶어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지난 주에는 근무일 총 5일중 3일을 싸왔는데, 2일은 술약속이 있기 때문이었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온 어느 하루, 동료가 '오늘 술마시자' 했는데, 도시락을 싸오고 보니, 그 밥을 처치하기가 곤란해 술약속에 거절을 말하게 되더라. 오늘도 마찬가지, 친구가 술마시자, 했는데, '도시락 싸와서 안돼' 하고 거절할 수 있었다.
반찬까지 싸면 냄새도 나고 번거로울 것 같아, 지난주에는 내내 볶아 왔었다. 닭가슴살과 마늘을 넣고 볶거나 계란이나 김치를 넣고 볶았는데, 이렇게 사흘 볶음밥을 먹으니 지겹다. 그냥 밥을 먹고 싶다. 주말에 엄마한테, 엄마 김치는 부담스럽고, 뭐 밑반찬 없을까, 했더니, 부지런히 시장 다녀오셔서는 우엉조림이며 버섯조림을 해두셨다. 덕분에 도시락통에 밥을 꾹꾹 눌러담고, 한 쪽에 엄마가 만들어준 밑반찬을 넣었다. 너무 신났다.
도시락은 이상한 설레임을 줬다. 어서 먹고 싶다는 설레임!
점심은 동료와 나가서 짬뽕을 먹었는데, 저녁에 맛있는 도시락 있으니까 굳이 점심 다 먹지 않아도 돼! 하는 일종의 해방감이 찾아왔다. 마치 그동안 저녁이 부실해서 점심 잘 챙겨먹었던 것 같은 이상한 논리가 되어버렸지만, 어쨌든 오늘 짬뽕은 남길 수 있었다. 나는 도시락이 있으니까!
우엉조림과 버섯조림 그리고 김치볶음을 반찬으로 한 가벼운 도시락이었는데, 어서 퇴근시간이 되어 다들 퇴근하기만 기다리게 됐다. 퇴근시간이 다가올수록, 으어어~ 도시락 먹는다, 도시락!! 하고 너무 신났다. 그리고 방금 막 다 먹었는데, 진짜 너무 맛있다! 밥은 너무 좋은 것이야!!
도시락 너무 설레인다!
지난주에는 도시락 먹고 집에 가서 술과 안주를 먹어 뭔가 메롱인 상태가 됐지만, 오늘은 집에 가면 바로 양치하고 자야겠다.
도시락 진짜 설레인다.